지평선

-* 수필 쓰기 [1] *-

paxlee 2013. 2. 15. 22:41

                             수필의 소재와 주제 [1]  


소재(素材)란 글을 쓰고자 하는 재료를 말하며, 일상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은 모두 소재가 된다. 이를테면 눈 쌓인 창가에 핀 매화를 보았을 때라든가, 신문 사회면에서 선행(善行)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감동했을 때라든가, 길모퉁이의 포장마차와 그 주인을 보고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던가 할 때, 매화․선행․포장마차가 소재가 되어 충동을 일으킨다.
일상 속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고는 했으나, 작자의 체험이 특이하면 더욱 좋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것이라 해도 남다른 관찰력과 높은 식견의 인격에 사색이 따르면 좋은 수필이 된다. 이와 같이 소재에 의한 충동이 수필을 쓰게 하는 것이나, 앞에서 말했듯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쓰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즉 쓰고자 하는 중심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제다.
글에 나타나는 주제는 문체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작자의 개성적 인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중심 사상이 들어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수필의 가치는 없다.
주제(主題)는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작자의 시각(인격)에 따라 달라지므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가시적으로 겉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시인이 소재의 대상에서 심상을 잡는 것과 같다.
수필도 실체적 대상에서 심상의 대상으로까지 확대시킬 때 주제는 분명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제 의식이다. 가령 찬바람이 부는 밤길 모퉁이의 군밤장수가 있다고 하자. 큰 봉지를 사드는 사람, 작은 봉지를 사드는 사람, 어떤 날은 사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날도 있다. 이 때 작자의 눈에 비치는 군밤장수의 모습에 작자의 느낌(사상)이 붙는다. 이러한 군밤장수가 소재가 되었다고 했을 때 군밤장수는 작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첫째, 군밤장수가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둘째, 그저 있구나 하는 정도일 수 있으며, 셋째로 군밤을 사면서 그가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관계 이상으로 군밤장수에 대한 사정이나 연민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정신에 바탕을 둔 것과, 타산적․이기적인 상반된 인생관의 글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재와 주제와의 관계는 작자의 시각에 따라 갈려진다.
글이 사람이란 말은 이런 데서 나오는 말이다. 독자를 움직이자면 글 속에 인간정신이 깔려 있어야 한다.
짤막한 수필이 장편 소설 못지 않은 질량감을 지니는 이유도 이런 점에 있다.
예문을 통해 소재와 주제의 갈림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자.


[예문 1] 군밤장수
밤늦게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좀처럼 사드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사는 사람을 보면 내가 군밤장수가 되기라도 한 듯 마음이 밝아진다.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철따라 리어커 장수를 한다. 여름이면 참외, 수박을 팔고 가을이면 밤을 굽기 시작한다. 가을이 가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카바이트 등불을 깜박이며 밤 늦게까지 행인을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쯤의 딸아이가 번갈아 나와 어머니를 돕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혹시 없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지나다녔다.
나는 무심할 수가 없어 팔리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가끔 군밤봉지를 사들곤 했다. 고향에서 군밤을 만들어 먹던 일을 회상하면서 하루에 팔리는 양을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밝게 웃으면서 팔릴 때도 있지만 별로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군밤을 사면 두서너 개를 언제나 덤으로 집어주곤 한다. 어렵게 살아도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그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은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자리 속에서 동생과 먹으면서 군밤장수 아주머니 얘기를 했다.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머니를 따라 나와 있는 딸아이를, 동생은 자신에게 비교하면서 말했다. 살아가는 길이 제각기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난을 딛고 살아가는 아주머니 가족들의 얼굴엔 어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날씨가 또 추워지려는 모양이다. 늦은 밤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와 차 소리가 소란스럽다. 자주는 못 팔아줘도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군밤장수 아주머니의 희망을 돋구기 위해서도, 이따금 나는 군밤봉지를 사들곤 한다.

[예문 2] 군밤장수
냉장고에는 언제나 갖가지 먹을 것이 채워져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입맛대로 먹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사시사철 음료수는 물론, 이른 봄부터 딸기로 시작해서 한 여름의 수박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춰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불평이다. 어쩌다 미처 대놓지 못할 때가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그럴 때면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불평을 왜 들으랴 싶어 열심히 채워 놓는다. 하지만 그래도 정성이 부족할 때가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처럼 군것질을 즐기는데, 지난 가을에는 밤 줍는 모임에 데리고 나갔다. 남이섬으로 갔지만 거기까지 안 가도 밤은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맑은 공기 마시며 즐기고자 해서 승용차로 나섰던 것이다. 돌아올 때는 상당한 분량의 밤을 싣고 왔다.
오던 길로 삶아서 주었더니 군밤 맛만 못하다고 한다. 이튿날 군밤을 만들어 먹었으나 웬일인지 길가에서 파는 것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의 불평에 따라 어제는 동네 어귀의 군방장수로부터 사들고 돌아왔다. 동창회를 마치고 늦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봉지를 집어들자 덤으로 두서너 개 넣어주었지만, 내가 몇 개 더 집어넣었다.
동네 어귀의 그 군밤장수는 매우 궁색해 보인다. 지나다니며 몇번 팔아주었더니 나를 보면 인사를 하지만, 그 인사가 내게는 부담스럽다. 군밤을 팔아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샀다. 며칠 전부터 바나나가 떨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동네로 들어섰을 때 군밤장수의 시선을 느꼈지만, 못 본 체하고 지나쳐 왔다.


같은 소재를 쓴 글인데도 주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문 1]은 삶의 진실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자기 성찰이 깔려 가치 있는 글이 되고 있으나, [예문 2]의 경우는 문장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도 한마디로 속된 글이다. 이런 글을 속문이라 한다.
자신의 행복감에만 도취되어 있고 진실성이라든가 삶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극치를 드러내 자신의 행복만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수필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두 예문을 비교할 때, 전자는 미혼 여성이지만 삶을 보는 눈과 생각의 깊이가 있고, 후자는 인생을 알 만큼의 나이에다 자녀를 가진 주부인데도 삶에 대한 생각이 천하고 속되기 그지없다.
오늘의 한국 수필에는 이런 류의 글이 적지 않다. 물론 작자의 개성적 영역이므로 남이 간섭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글을 써야 할 이유와 읽어야 할 가치가 없다.

1. 수필의 주제

세계문예대사전(편자대표 문덕수)에는 '주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뜨인다.
문장의 중심사상, 본질적 개념, 근본적 의도, 화제(話題). 작문에는
①주제설정, ②취재, ③구상, ④기술, ⑤퇴고- 여기에 '목적, 종류의 결정, 태도의 결정'을 추가할 수 있다. 등의 차례가 있는데, 그 중의 최초의 절차. 주제는 문장의 통일성(統一性)과 긴밀성(緊密性)을 유지하는 구실이 잇다.
주제는 단순히 문장의 중심 사상일 뿐 아니라, 소재의 성질을 분별하여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문장의 통일성을 유지하며, 선택된 소재를 다시 일정한 순위로 정하여 배열, 조직함으로써 문장의 긴밀성을 유지한다.
수필 작자는 자기가 쓴 작품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엄격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대개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너그러운 데에 길들여져 있어서 자기 작품을 엄밀하게 볼 줄 모르는 맹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또는 '그러니 어떻다는 말인가'하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대답이 궁색하게 되면 주제가 제대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재(素材)가 선택되어야 하고, 그 소재를 통해서 작자가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때 주어지는 소재 가운데에서 주제를 위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소재를 제재(題材)라고 한다.
수필 창작을 위해서는 우선 소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소재는 주제를 나타내는 데에 적합한 소재, 즉 제재여야 한다. '수필감'이라고 할 때의 그 제재는 주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작품 창작이 가능하도록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주제는 인간의 정식작용 같은 것이다. 주제는 인간의 정신처럼, 작품에 스며있을 뿐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정신이 육체의 기경계통과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고 전달하고 지시하며 조절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정신이 전체적인 통일된 합목적대로 사지백체를 움직여 원할한 활동을 돕듯이, 주제는 인생을 이해하고 비판하여 이를 새로운 해석으로써 재표현 하려는 정신적인 과제인 만큼, 제재의 배후에서 그것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통일원리가 되기 때문에 식물의 씨앗에 발아하는 씨눈이라든지, 계란의 배자(胚子)와도 같이 생명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1) 주제의 착상

① 가설 추리

가령 석굴암을 둘러 볼 때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대불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왜 대불의 체형이 정신형의 가냘픈 심성질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일까? 만약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다. 첫째, 그 당시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고 한다면,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에서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 계급이었던 석공이 가령 못 먹어서 빼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체형이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다면 그 욕구 충족의 투영 현상이 그 조각에 형상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이런 가설을 세워 상상과 추리를 해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② 유사 현상

이른바 아나로지에 의한 착상법인데, 자연계를 잘 살펴 보면 그럴듯한 풍부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럽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발견해 낼 수도 있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에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은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수 없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없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한 가지씩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겠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 '인체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망원경, 다리-비행기, 귀-음파탐지기 등으로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설도 결국은 유추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 하겠다.

③ 대비 현상

가령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어 밀어내면서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 사용에 있어서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어떤 이치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④ 의문 현상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는 것이다. 가령 예수의 제자는 12명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가져 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유대 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정과 부 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는가라는 의문을 품어 본다면 그런 착상에서 한 편의 흥미로운 수필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⑤ 역설 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착상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즘은 자가용 홍수 시대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역 사고로 자가용의 불편성이나 위험성에다 초점을 맞추다 보면 <무자가용이 상팔자>라는 수필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 '돈이 많으면 좋다'라는 물질만능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한편 떼강도들의 침입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역 사고에서 <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 사고법에 착안하여 흥부와 놀부를 두고 이미 흥부격하론이나 놀부변호론이 나왔으며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악처로 소문나게 된 크산티페를 위해 역 사고로 <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왔던 것이다.

⑥ 역상 착상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 보는 착상이다.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 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 떠오르지 않는 법인 만큼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노력도 열심히 해 보아야 한다.

⑦ 고정 관념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 중 그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쁨과 희망의 계절'에다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런 대로나마 참신한 착상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⑧ 시점 변화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관찰도 있을 것이고 측면, 후면, 수직, 수평, 입체 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착상법은 한 우물을 계속 파고들어 가는 '수직적 사고'가 아니라 여러 개의 우물을 동시에 파 보는 것이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라는 이른 바 수평적 사고와도 통한다 하겠다.

⑨ 풍속 착상

낡은 지식이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전통사고나 사상 그리고 낡았다싶은 민속이나 풍속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분만시 총각의 붉은 머리 댕기를 복부에 얹어 놓으면 순산한다는 것을 속신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통분만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이 그 예일 수도 있다.

⑩ 결합 착상

이 사고법은 이것 저것 서로 다른 이질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다 전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 둘러 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위에서 열거해 본 열 가지의 착상법으로 비록 참신한 주제가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워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주제로서의 가치성이 없다 하겠다. 참신한 주제일수록 가치성,시대(시기)적인 필요성, 보편타당성,독창성,개성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명작은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야 한다는 얘기는 수필이 어떤 주제로 씌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보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가 없다. 주제를 놓고 주제문을 작성해 보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오늘의 물가고>라는 주제에는 <요즈음, 물가는 천정높은 줄 모르게 껑충 껑충 뛰기만 한다.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생활필수품은 안 살 수도 없는 형편이다>라는 주제문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작자가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주제문을 한 번 작성하여 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이 주제문이 구체화되었을 때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일어남은 물론, 주제 제시가 뚜렷한 수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위에 제시한 10가지 주제 발상법 말고도 수필 창작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먼저 테마의 개척이다. 한계성과 단조로움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독자성과 개성을 높여주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노출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수필은 작가의 인생 모습을 투영시킨 글이다. 주변 인물이 아닌 작가의 심경, 체험, 이상과 철학, 인생관, 교양, 취미까지도 드러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인물수필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우스운 외양이나 우스운 행동에서 소재를 구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격상 결점, 무지나 오만에서 오는 실수담 등을 제재로 하는 수필은 읽는 재미를 줄 것이다. 또 대항 이데올로기 기능의 심화 확산하는 글을 써 보는 것도 유익하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가는 글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로 향해 가는 글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긴 하지만 그 가는 방향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아니라 사회공동체다. 이런 수필은 기존 질서나 가치를 재발견하여 그 허위의식을 폭로, 비판하는 글이 된다. 한국적인 것의 발견에도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는 글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삶을 가꾸는 수필 쓰기도 중요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환기력이 있는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여 수필을 써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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