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암벽에세이 5

paxlee 2013. 9. 18. 17:01

        [암벽에세이 | 아름다운 시절 5]
        신은 내게 와서 무엇을 구현하려 했을까
 

암벽수업

 


등산학교에서의 둘째 주 수업은 크랙 오르는 훈련이었다. 우리는 선인봉의 명심길과 외벽길 아래쪽에서 연습했다. 특히 외벽길 1피치는 발 재밍(jamming·비틀어서 끼워 넣는 기술) 구간이었는데, 내게는 가장 어려운 코스였다. 나는 지금도 발 재밍을 해야 하는 좁은 크랙이 나오면 겁부터 난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붙어보면 힘이 부족한지 요령이 없는지 둘 다인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발이 무지하게 아프고,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탓에 무릎이며 정강이가 온통 멍투성이고, 그럼에도 몸이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진흙탕에서 정신없이 허우적대듯 그저 나대보는 게 고작이다. 앞으로 어떻게든 체득해야 할 등반술이다.


셋째 주에는 첫째, 둘째 주보다 좀더 어려운 슬랩과 크랙을 오르는 연습을 했다. 설우길, 현암길, 푸른 길 아래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고군분투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곳은 설우길 1피치다. 볼트가 박힌 곳은 경사가 심한 데다 반질반질 미끄럼판 같아서 볼트 따기를 해 잽싸게 볼트 위로 몸을 올리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번번이 잘 되지 않았고, 좌절감이 무럭무럭 일었다. 이토록 어려운 등반을 어떻게 하나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2피치까지 올라가서 앵커에 확보한 뒤 후등자 빌레이로 뒷사람을 올리고 하강기를 이용해 내려오는 것은 재미있었다.


스타트 포인트에 개미떼들처럼 머리를 들이밀고 법석을 치다가 설핏 올라서니 시야가 툭 트이고 구름 아래 선인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거대한 봉우리를 마음으로 푹 끌어안았다. “이 범상치 않은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승권 선생님이 등산학교에 지원한 우리들을 처음 맞대면하자마자 하신 말씀이다. 웃음 띤 얼굴이었고, 부드러움과 점잖음 안쪽으로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낮게 깔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반드시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범상치 않은 세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전문적인 알피니스트가 아니어서 그런지 산을 보면 정복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그 산에 들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산은 나보다 크고 깊고 웅대해서 어떤 면으로 비교해도 도저히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인 우리가 수십만 년 세월을 견뎌온 우직한 산을 어찌 정복하겠는가. 단지 그 몸을 한 번 만져보고 꽃 같은 정수리를 직접 본 후 내려오는 것일 뿐. 정복이라는 단어는 잘못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복이라는 말은 내 발 아래 꿇어 엎드리게 하고 내가 계속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히말라야가, 알프스가, 매킨리가 인간에게 정복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넷째 주에는 인수봉을 실제로 오르는 교육이었다. 그동안의 훈련을 눈여겨 본 교장선생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맞는 루트를 배정해 주셨다. 강사선생님들 아홉 분이 초빙되어 왔다. 우리들을 두 명씩 한 조로 묶어 강사선생님이 인솔해 등반한다고 했다. 우리 클래스는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나와 최용준씨는 인수B코스에 배정되었다. 최용준씨는 서른 중반을 넘어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었다. 원만하고 친근한 성격인 데다 사회경험도 있었고, 또 그들 세대의 특징인 쿨한 면모를 지니고 있어 나하고도 무리 없이 잘 어울렸다. 우리조를 인수봉 정상까지 안내해 줄 강사선생님은 예종남 선생님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하늘길, 의대길, 동양길, 아미동길, 크로니길, 취나드B길 등등 난이도가 높은 길에 배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용준씨는 암벽에 완전 처음이었고, 나 또한 다른 동기생들보다 체력과 기술이 현저히 부족했다. 인수B코스는 최고난이도가 요세미티 십진 등급 체계로 5.8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가는 길은 5.10a, 5.10b, 5.10c 등으로 우리보다 높았다. 우리와 비슷한 조는 노스페이스사의 선후배 사원들인 정현준씨와 이재봉 군 조였다. 그들은 고독길을 배정받았다. 출장과 업무 등으로 두 사람은 제대로 실력을 다질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야영장 입구에서 우리들은 강사 선생님들께 인도되어 인수봉 밑으로 갔다.


대슬랩 왼쪽과 오른쪽에서 조별로 흩어져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흥분해서 볼이 발갛게 되었다. 대개 강사선생님들이 선등을 서고, 실력이 좀 나은 조원이 선등자 빌레이를 보았다.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우리 조는 오아시스까지 두 피치로 끊어서 올라갔다. 장비를 회수하며 올라가야 하는 마지막 등반자의 역할에 신경을 쓴 예종남 선생님이 처음에는 최용준씨에게 마무리를 당부하고 내게 선등자 빌레이를 보게 했다.


그러나 선등자 빌레이도 힘이 들었다. 세 사람이 하는 등반에서, 아직 체력과 등반 기술이 부족한 내가 세컨드의 위치에 서보니, 선등자 빌레이를 보자마자 곧바로 내 등반을 해야 하고, 뒷줄을 끌고 올라가는 것도 엄청 힘이 드는 터에 올라가자마자 뒷사람을 끌어올려야 하고, 그것이 끝나면 또 선등자 빌레이를 봐야 했다. 쉴 시간이 조금도 없었다. 헐떡대는 게 느껴졌던지 예 선생님이 중간에 선등자 빌레이를 최용준씨로 바꾸었다. 그러자 진행이 좀 완만해졌다. 최용준씨는 같이 등반해 보니 유머러스하고 머리가 좋았으며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치밀하고 정확했다. 나는 기구를 사용할 때마다 미심쩍어 그에게 확인을 구하고 안심하곤 했다.


오아시스에서 숨을 돌리며 산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온 산은 단풍으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었다. 능선마다 계곡마다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예쁜 치마폭을 펼치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새처럼 날아 자연의 치마폭에 내려앉아 한잠 자고 나면 환상의 나라에 가 있을 것 같았다.


왼쪽으로 조금 가자 인수B코스가 시작되었다. 첫 피치는 30m쯤으로 길지 않았다. 크랙이 주를 이루었는데, 어쩐지 내게도 의욕이 생겼다. 막 재미를 붙여 올라가자 네가 나를 얕보았느냐는 듯 바위가 성을 내며 갑자기 난코스를 내밀었다. 발로는 밀고 손으로는 당기는 레이 백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게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당황해하며 힘들여 그곳을 통과했다. 그러고 나서 바위에게 진정으로 사과했다. 앞으로는 너를 절대 얕보지 않겠다고.


두 번째 피치는 제법 깊은 침니였다. 나는 긴장했다. 강사선생님이 인수B코스는 인수봉에서 제일 쉬운 길이라고 금방 정상에 오를 거라고 하더니 이런 복병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침니 안에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재밍 크랙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날 차례였다. 강사선생님은 배낭에서 리지화를 한 짝만 꺼내 왼발에 바꾸어 신고 오른발에는 암벽화를 신은 채 살랑살랑 잘도 올라갔다. 마치 금붕어가 즐기며 물살을 가르는 것 같았다.


그의 궁둥이 뒤에서 암벽화 한 짝이 달랑거리는 것이 우스워 나는 입을 막고 웃었다. 우리도 강사선생님처럼 한쪽만 등산화로 바꾸어 신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발 짚을 데가 마땅찮은 앵커에 매달린 채로 배낭 속의 리지화를 꺼내 신는 게 너무 어려워 암벽화를 신은 채 그대로 있었다.


최용준씨의 차례가 되었다. 그가 침니에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엉기는 것을 보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발재밍 손재밍에 몸재밍까지 온통 재밍으로 도배된 구간이었다. 나는 내 손에 감긴 클라이밍 테이프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교장선생님이 두껍게 감아주신다 했더니! 아침에 도선사 주차장에서 대기할 때 교장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오늘 산행을 격려하며 그 중 몇 명에게는 손가락에 테이핑을 해주셨는데, 내게는 손등까지 올라오도록 두툼하게 감아주신 것이다. 바로 이 구간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최용준씨가 우여곡절 끝에 위의 앵커에 도착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진입하자마자 진흙탕 속의 미꾸라지 꼴이 되었다. 걱정했던 대로였다. 제 몸이 미끄러운 미꾸라지가 흙탕물 속에서 용을 쓰듯 온몸으로 바위를 치받으며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보면 1cm쯤 올라가 있곤 했다. 발이 아파 크랙에 제대로 끼울 수도 없었고, 민둥민둥해 손 홀드도 전혀 없었고, 자세도 애매했다. 몸의 조화가 깨지자 침니 안에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힘들었다. 나는 탈진하고 말았다. 이런 길을 왜 노가다길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강사선생님이 팽팽하게 줄을 당겨주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또다시 허우적댔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마의 구간을 벗어났다. 옆의 검악길로 오르는 사람들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피치는 밴드를 따라 왼쪽으로 가로지르다 슬랩으로 오르는 구간이었다. 내게 슬랩은 크랙보다 쉬웠고, 밴드도 뚜렷한 형태로 나 있어 수월하게 올라갔다.


숲길을 통과하자 긴 피치가 시작되었다. 거의 60m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크랙이 확실했고, 슬랩도 어렵지 않았다.


또 숲길을 올랐다. 10~20m가량 올랐을까? 참기름바위가 나왔다. 이곳만 오르면 정상이라고 했다. 기쁨의 기운이, 흥분의 냄새가 명절 전날의 공기처럼 정상 쪽에서 흥건히 흘러내려왔다. 나도 약간 달뜬 기분이 되어 늘어져 있는 로프를 잡고 단숨에 올랐다. 먼저 도착한 동기생들이 기쁨에 찬 얼굴로 왁자지껄 모여 있었다. 우리를 보자 모두들 달려와 인수B코스는 어땠는지, 크럭스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다투어 물었다.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우리 조의 정상 도착을 축하해 주었다.


천천히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을 해가 백운대 깃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서해바다의 운해 속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들은 주황빛 햇볕을 온몸에 칠하고 사진을 찍었다. 절정에 이른 단풍이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내밀며 정지된 순간을 장식해 주었다.


바람이 거세졌다. 후드를 덮어쓰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조를 기다렸다. 바람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흔들리는 대상을 통해서만 제 존재를 구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신처럼. 나는 신이 내게 와서 무엇을 구현하려 했나를 생각했다. 소설이었을까? 암벽이었을까? 뒤늦은 도전? 내가 죽은 뒤에 나를 통해 무엇이 남을까? 아무 것도 안 남을까? …알 수 없었다. 인수봉 정상의 바람은 거칠고 사나웠다. 나는 바람의 배우가 되어 바람이 시키는 대로 연기했다. 웅크리고, 떨고, 진저리를 쳤다.


이재봉 군과 정현준씨 조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감복해서 강사선생님에게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두 사람 다 흥분되고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들 조의 등반은 엄청나게 재미있으면서도 힘들고, 또 의미 있었나 보았다.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을 완전히 감복시킨 백호기 선생님은 장발에 히피 같은 차림, 입만 열면 상대방을 데굴데굴 구르게 하는 말솜씨 등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그들을 긴장시켰다가 풀어주었다가, 자지러지게 웃게 하다가 또 정신 버쩍 차리게 하다가, 결국은 정다운 다스림으로 이끌어 인수봉 정상에 올린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환희가 범람하는 강물처럼 흘러넘쳤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흠씬 적셨다. 우리들은 펄쩍펄쩍 뛰며 또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축하해 주었다.


전체가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승권 등산학교 2010년 2기 파이팅!”


누구의 입에선가 그런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합창으로 화했다.
(정승권 등산하악교 2010년 2기 파이티잉!)


멀리서 산이 우렁차게 메아리로 대답해 왔다.


산과 물


마지막 주에는 간현에 가서 야영한 뒤 다음날 졸업시험을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조별로 먹을 것을 준비하고, 차편을 맞추어 출발했다.


나는 간현이 어디 있는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도착할 무렵 이상하게도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물이 흐르고 있는 듯한 아른아른한 느낌.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의아스러웠는데 도착하고 보니 간현암은 강물 위에 솟아 있었고, 그건 내가 아득한 옛날에 본 풍광이었다. 조금 변한 것 같긴 하지만 분명 내가 감탄을 거듭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기억 속의 풍경, 기시감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경치였다. 철길 아래 강물 속으로 기암괴석과 오색 단풍이 기기절묘하게 떨어져 내린 바로 그 모습. 산과 물이 조우해 극치의 아름다움을 빚어낸 파라다이스 같은 정경. 나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해져서 아름다운 산과 물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미국에 가서 한의사로, 또 플라워디자이너로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의 얼굴이 물 위로 오버랩되었다.


우리들은 여고생이었고,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다. 아마도 경주로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탔으리라. 서울에서 길과 집만 보다가 모처럼 도시를 벗어나자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려고 다투어 출입구까지 나가서 끼리끼리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 아아 하는 탄성이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우리 모두 밖을 내다보며 빼어난 경치에 넋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지나간 경치였기에 더욱 아쉬웠다. 우리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며 고대하다가 또 한 번 푸른 물과 거기 떨어져 내린 절경을 감상했고, 그곳이 간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간현에 내가 지금 온 것이다. 4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암벽 하드프리로 졸업시험을 치르려고.<계속>


- 글·이청해님 / 월간 산 20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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