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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떼가 하늘 높이 날더니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는 곧 장마가 시작되었다.
산행다운 산행을 몇 번 해보기도 전이었다.
아쉬웠다. 일 년 중 암벽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 들어 잠깐, 여름이 되니 장마가 들고, 한더위에는 바위가 달구어져 암벽화가 미끄러지고, 가을에 몇 번 하다 보면 벌써 11월 말, 그 해의 마감이었다.
덧없는 시간이 빗속에 흘러갔다.
반짝 해가 날라치면 번개치기 산행이 계획되었다가 취소되고는 했다.
비에 지친 열성당원들이 2박3일의 설악산 산행을 감행했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토요일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동행하지 못했다. 야영 짐과 먹을거리, 암벽등반 장비를 산더미처럼 지고 우중에 따라 나선다는 것이 약간 겁나기도 했고, 산간계곡에서 여럿이 숙식을 같이 하는 일도 아직은 주저되었다. 아침에 눈곱 낀 눈으로 일어나 비를 맞으며 계곡물에 쌀을 씻어 밥을 해먹을 일이 낭만보다는 스산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야영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고, 식구가 아닌 사람들과 맨얼굴로 지내는 일이 낯설었다.
혼자 서울에 있자니 서울이 텅 빈 것 같았고, 마음이 허허로웠다.
살다 보면 비행사가 기상이변으로 불시착하듯이 낯선 곳에 내려 두리번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 산행에도 그런 일들이 생겼다.
나는 약속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두터운 구름 뒤로 숨었던 태양이 눈부신 빛 무리를 펼치며 고개를 내밀었다. 오랜만의 해후였다. 설악산에 간 사람들은 좋겠구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암장으로 갔다. 암장운동이라도 해야 조금쯤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암장에는 마침 정창연씨가 와 있었다. 햇빛이 환하게 난 날 어두운 실내암장에서 불을 켜고 운동하자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자기 운동만 했다.
운동이 끝날 무렵 창연씨가 내게 내일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 산악회는 설악산에 가고 없기 때문에 그냥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기네 산악회에 따라가자고 했다. 자기들은 선인봉에 간다는 것이다. 나는 선뜻 그러마고 하지 못했다. 따라가고는 싶었지만 암벽산행은 특수산행이었다. 내 다리로, 내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나를 알고, 그러한 사태가 양해된 상황이라면 모른다. 또 젊은 남자라서 힘을 쓸 수 있는 경우라면 다르다. 그러나 나는 여건상 낯모르는 사람들을 따라 무턱대고 나설 수는 없었다. 내 망설임을 뜨뜻미지근한 성격으로 파악한 창연씨는 볼멘소리로 화를 냈다. 누구나 자기 산악회가 있지만, 뭐 산악회가 아니더라도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동행하기에 마땅치 않은 날이 생기고, 그런 애매한 날에 다른 팀을 따라가는 게 뭐가 나쁘냐고. 운신의 폭을 넓힐 여분의 팀이 하나둘쯤 있어야 된다고.
맞는 말이었다. 사실은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산과 관련해서 폭넓은 인간관계들을 지니고 있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자연 많은 얼굴들을 익히게 되고, 그런 알음알음으로 이리저리 동행하는 게 상례였다. 다만 나는 암벽산행에 관한 한 특수한 입장이었으므로 여러 가지를 따져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기세에 떠밀려 가겠다고 대답했다.
일요일 아침에 부지런히 포돌이광장으로 갔다.
창연씨 한 사람만을 알고 갔으므로 첫 대면에서 그쪽 눈치를 탐색해 여차하면 나 혼자 워킹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포돌이광장에서 만난 산빛산악회 사람들은 의외로 부드럽고 친절했다. 정말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산빛’이라는 산악회 이름 때문인가 하고 나는 산마루를 올려다보았다. 운무가 짙게 끼어 있는 산은 푸르렀고, 여름 꽃들을 은닉하고 있었고, 발치에 부드럽게 안개를 드리우고 있었다. 문득 두보의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이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산빛이 푸르니 꽃은 불붙는 듯하도다.’ 그런 뜻이었다. 철쭉은 졌지만 다른 여름 꽃들이 열심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을 터였다. 애틋하게 고향을 그리워하던 대 시성의 마음이 나를 휩쌌다. ‘산빛’이라는 예쁜 이름. 봄날의 산빛은 연둣빛이리라.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 라는 시구도 있으니. 나날이 짙어져가는 연둣빛 속에 노랑 분홍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 속에 하얀 꽃들이 성시를 이루고, 가을에는 오색 창연한 단풍이 화려하게 수를 놓겠지. 그리고는 순백의 겨울……. 그 모든 빛깔과 모습을 아우르는 산빛, 산빛산악회……. 나는 거듭 발음해 보았다. 산빛산악회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들은 나를 처음 보았는데도 마치 고향의 친지를 만난 것처럼 대했다. 나는 외갓집에 온 기분이었다. 조금 있으니 나와 등산학교 동기인 양규옥씨가 왔고, 암장친구인 송경옥씨도 왔다. 너무도 반가웠다. 든든한 원군이 생긴 나는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 선인봉 아래로 갔다.
산빛산악회의 산행은 연간 계획이 월 단위로 미리 짜여 있는 것 같았다. 그날 계획은 들었던 대로 표범길이라는데, 등반대장은 초짜인 내가 느닷없이 끼어들었지만 루트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드디어 표범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김문섭 대장은 겪어보니 말수가 적고 점잖은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는 창연씨가 나를 데리고 갔을 때 아마도 처음에 난감했을 것이다. 내가 나이 든 여자인 데다, 암벽도 제대로 못할 게 뻔하고, 로프도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그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 나를 자기 바로 밑에 붙여 등반시켰다. 염려스러웠고, 안심할 수 없어서였으리라. 그는 피치 내내 직접 내 빌레이를 봤다. 때로는 용기를 주고, 때로는 루트를 안내하고, 때로는 힘으로 끌어올리면서 실력이 부족한 내가 안심하고 오르도록 조용조용히 격려했다. 그는 선인봉에 와본 지 꽤 오래 되었다고 하면서 먼 시선으로 앞의 루트를 찾곤 했는데, 아무리 난이도 높은 코스가 닥쳐도 충분히 해낼 만한 실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덕택에 처음으로 루트다운 루트, 즉 표범길에 올랐다.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테라스에 올라서서 쉬고 있을 때 옆 팀의 여자가 자기가 얼려온 과일 칵테일을 모두에게 한 입씩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도구가 없어서 그녀가 떠먹여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기절할 정도로 시원하고 맛있었다. 내가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국에서 맛보는 진기한 후식이 이럴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녀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테라스에 있는 사람 전부에게 달콤새콤 차가운 진미를 선사했다. 마치 표범길에 오르느라고 수고했다는 듯이.
신선한 바람 한 점을 만난 것 같았다.
그녀가 여신처럼 보였다.
하강 길에도 대장은 나에게 특별히 신경 썼고, 내 하강이 끝나자 비로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는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오늘 자기네 산행에 참가한 사람이므로 나를 포함해 팀원 전체를 끝까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뒤풀이 장에서도 그는 ‘대장이니까’, ‘오늘 수고했으니까’ 따위의 특별대접을 거부했다.
그는 팀원들과 똑같이 취급되기를 바랐다.
겸허함이 전해졌고, 진실한 인품이 느껴졌다.
지금도 김문섭 대장을 생각하면 내 산행생활에서 아주 우호적인 느낌의 지대가 열리고, 그 맨 윗줄에 그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단 한 번뿐이었지만 최초로 형성된 느낌은 변하지 않아서, 그가 동문 운동회 같은 때 초등학생인 듯싶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그 아이들에게마저 무척 정감이 인다.
밤이 되어 헤어질 때, 산빛 친구들은 하나같이 “또 오세요”, “언제든 또 오세요”하고 복창했다. 입에 발린 인사가 아니라, 진정 어린 얼굴들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들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데, 폐만 끼쳤는데…….
그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외갓집에 이별을 고하듯 작별했다.
강물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나는 산빛산악회 사람들과 또 한 번의 피치산행을 하게 되었다. 일부러 그들을 따라 간 게 아니라, 모든 동문들이 간현에 모였을 때, 어쩌다가 그들과 함께 등반한 것이다.
이번에도 창연씨가 역할을 했다.
내가 어느 팀에도 끼지 못하고 어정거리고 있자 “이리 오라”고, “왜 그러고 다니느냐”고 나를 붙잡아 자기들 팀에 합류시킨 것이다.
나는 골수산악회지만 당시에는 정 선생님과 사모님을 빼고는 다른 사람들과 개인적 친분을 쌓기 전이었다.
또 골수회는 사실 좀 도시적이랄까, 개인의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참견하지 않았고, 모두들 자기 등반력이 향상되는 걸 추구했고, 스스로 알아서 모든 등반을 결정했다. 매주 참석하던 사람이 안 나와도 그저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여겼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아주 편하다. 또 여러 사람들과 친밀해진 상태다.
그러나 산빛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 참, 이 사람들은 다르지’ 하고 새삼 느끼곤 한다.
그날도 나는 엉겁결에 산빛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같이 등반했던 사람들은 팀을 달리 했는지 그 자리에 없었다. 체격이 왜소하고 어린 남자가 선등을 서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끼어들자마자 기존의 순서를 바꾸어 나를 바로 자기 밑에 서게 했다. 표범길에서의 등반대장처럼 자기가 직접 관할해야만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2피치를 지나 3피치 상단으로 올라가자 심한 오버행이 나왔다. 게다가 루트가 나선형으로 꼬여 있어 다른 팀들은 모두 이 구간을 피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간현에 별로 와보지 않은 듯 이 루트가 처음이라고 하면서 눈으로 길을 찾았다. 그러더니 원 사이트로 단번에 올라갔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발끝 동작이 빠르고 명쾌해서 묘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실력으로 올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위 앵커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줄을 팽팽히 잡아당겼다. 이런저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말 따위가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나는 그 지점을 통과해야만 했다. 어떻게 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나는 거의 그의 노력에 힘입어 용을 쓰고 마의 지대를 벗어났다. 땀범벅이 되어 올라가서는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거듭 인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정말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것을 무척 계면쩍어했다. 내려오면서야 나는 그가 산빛의 부등반대장인 이철호라는 것을 알았다. 지방에 살기 때문에 자주 등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도. 그는 등반대장보다 더 말수가 적은 성격이었다.
내려온 뒤에 그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물이라도 한 잔 따라주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암벽대회나 빙벽대회 때 그가 번번이 상을 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걸음마도 떼지 못하던 시절 저 사람이 오버행을 끌어올려줬지, 참 힘들었을 거야’ 생각하곤 한다.
이후로 산빛 사람들을 만나면 내 쪽에서 먼저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들 모두 내 특수성을 이해해 주고, 번번이 넘치는 호의로 대해주었다.
지금도 산빛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힘들었어’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당연히 그럼직한 순간에도 끝까지 봐주어야 하는 식구처럼 굴었다. 그들은 사람을,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 우연한 동행자에게마저 진심을 다하는 분위기가 못내 부러웠다.
나는 그들이 남쪽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한 감성의 나라 말이다. 대비해서 우리 골수회는 차가운 이성의 지대 같다. 인류 역사 이래 이성과 감성이 각축을 벌여왔지만 둘 다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 과학 등 역사의 많은 발전은 이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또한 감성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얼굴 하나 팔이 두 개 똑같은 것 같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하는 것, 가치관, 살아가는 방법이 천양지차다. 개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도 개인 이상의 특질을 지닌다. 한두 사람이 주도해서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구성원이 많고 집단형성이 오래 되었을수록 대다수의 공감을 얻어야 특질을 유지한다. 더불어 살고, 개개인이 성장해야 하리라. 두보의 시 첫 구절이 생각난다. 강벽조유백. 강물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다는 뜻. 산빛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대하자 골수의 도시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졌는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은 없을 것이다. 조화만이 문제될 터.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 강물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 산빛이 푸른데 꽃은 불붙는 듯하도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 올봄도 또 휙하고 지나가니
何日時歸年(하일시귀년) 어느 날이 돌아갈 해일런가
두보는 안녹산의 난을 피해 성도로 피난 가서 살면서 고향인 하남이 그리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시를 썼다. 그러나 결국 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못했다. 인생의 무상함이여!
- 글·이청해 월간 산 2012 08
- [암벽에세이 | 아름다운 시절 10] 낯선 별에서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