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생)이 보일때까지 걷기 [28-2]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 이지혜 옮김
2004년 4월 28일 <워너스 스프링스 : 켈리포니아>
나는 샌디에이고 카운티 북부 작은 산간 마을인 워너스 스프링스의 우체국에 들렀다. 종주를 시작하고 처음 만나는 마을이었다. 이곳은 우체국과 호텔만 하나씩 있어 스루하이커 들은 트레일을 걷는데 필요한 보급품을 이곳 우체국으로 미리 배달 시켜둔다. 나도 도중에 보충 하거나 교체해야 하는 온갖 물건이 담겨있는 바운드박스는 우편 차량으로 이동하게 되므로 최대한 튼튼해야 한다. 우체국 양식에 서명한 뒤 페인트통(바운드박스)과 등산스틱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오자 강한 햇빛이 사정없이 내려 쬐이고 있었다. 이곳 호텔 숙박비는 하루 120달러 였다. 마을 전체를 통과하는 79번 국도를 건너려는 순간 도로 맞은 편에 서있는 갈릭맨이 눈에 띄였다. 그는 멀리서 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 오드니 곧장 용건을 꺼냈다. "안녕 하세요? 크리스티네씨,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스팟과 내가 6인실을 빌렸는데 혹시 이곳에 묵을 의향이 있나요? 칼과 펙맨, 와일드 플라워도 함께 묵기로 했는데 아직 침대 하나가 남아 있거든요. 숙박비는 1인당 20달러예요" 믿을 수 없는 행운에 나는 입이 귀에 걸린채 대답했다. 당연하죠, 정말 잘됐다. 너무 고마워요!" 예산을 절약 할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졌다. 갈릭맨은 바운드박스를 가지러 잠간 우체국에 들렸다며 나와 함께 워너스 스프링스 휴양 목장으로 향했다.
어느정도 친해진 사람들과 한 방에 묵게 되었다. 휴양목장에 들어서니 온천에서 풍겨오는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배낭과 바운드박스를 방안에 던져두고 잽싸게 사워를 한뒤 여남은 명의 다른 PCT 여행자와 함께 리조트의 넓다란 수영장에 뛰어 들어 신나게 물장구를 쳤다. 나는 팬티와 녹색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다. 적당한 온도의 물속에서 팔을 쭉 뻗고 있으니 힘들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힘들게 한것은 무더위 였다. 그래서 매일 해뜨기 전에 출발해서 점심때는 몇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해야 했다. 2시간을 걸으면 1리터의 물이 필요했는데 트레일 엔젤들이 곳곳에 마련해둔 식수 보급소나 미국 산림청이 관리하는 방화수가 없었드라면 이곳의 트레일은 생각도 할수 없었을 것이다. 해가 질무렵에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상쾌하게 사워를 한 후 커다란 호텔 수건을 몸에 감은채 방문을 열자 별안간 악취가 코를 파고 들었다. 아주 야생적인 냄새였다. 여행자의 발 냄새가 벤 양말, 땀에 전 티셔츠, 썬크림, 거기에 온천의 유황 냄새까지 섞여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방안의 여행자 들을 관찰했다. 40대 초반의 갈리맨과 그리스팟은 결혼 20년의 부부는 눈을 씩고 봐도 닮은 곳이 없는 한쌍이다. 나는 바운드 박스에서 커다란 튼살 크림 튜브를 꺼냈다. 뜨거운 사막에서 장거리를 걷는 동안 내발은 말라 비틀어진 나무 꼅질처럼 변해 있었다. 유분 함량이 높은 크림을 바르면 튼 부분의 통증이 조금 가라 앉을 것이다. 녹나무 향이 강하게 풍기는 크림을 바르고 있는데 칼이 물었다 "이봐, 그건 독일산 묘약이라도 되나? 내 증조 할머니가 쓰시던 류머티즘 연고 만큼이나 독한 냄새를 풍기는 군! " "독하기로 치면 선생님 양말 냄새도 못지 않아요. 이 크림은 건조한 발에 바르면 효과가 아주 좋다구요. 한번 발라 보실래요?" 곧바로 말을 받아치자 칼은 눈을 흘겼다. 그에게 뚜껑이 열린 튜브를 그를 향해 던졌다.
"선생님은 이 트레일의 각선미 왕이 잖아요." 능청스럽게 말을 던졌드니 폭소가 터졌다. "예쁜 다리라. 프리티 레그(Pretty legs)도 아주 멋진 트레일 별명이 될것 같은데," 팩맨이 웃으며 중얼 거렸다. "선생님, 새 이름으로 '프리티 레그' 어때요?" 이번에는 와일드 플라워가 칼을 향해 물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내게 붙였다가는 혼쭐날 각오들 하라고 내가 어니 여자애라도 되는가?" 칼은 으름장을 놓으며 튼살 크림 튜브를 내게 던졌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여자 한테서 다리가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건 엄청남 칭찬 이라고요." 짐짓 시치미를 떼고 칼에게 말하자 칼릭맨과 그리스팟 마져 배꼽을 쥐고 웃었다. "자네는 이 쓸데 없는 소리를 한 대가를 치르게 될껴야." "다리가 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큰 실례인가요?" 내 말에 와일드 플라워가 "영어권에서 "프리티 라는 표현을 여자에게만 써요. 남자에게는 '핸섬 레그"라는 표현이 적절하죠. '프리티 라는 말은 쓰지 않아요."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게다가 저렇게 털이 많은 다리에는 더 더욱 안 어울리는 다리죠! 거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과의 말을 건냈다. "그런줄 몰랐어요. 저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마우것도 모르는 독일인 관광객이니," "자, 그럼 당신에게도 이제 트레일 별명이 생겼군요. 독일인 관광객, '저먼 투어리스트'(German tourist)라고 하죠." 갈릭맨이 말했다. "에이, 아니지! 저 사람에게는 외계인 그러니까, '에일리언'이 더 어울린다고" 칼이 이렇게 반격해 왔다. "무슨 말씀을! 저먼 투어리스트가 훨씬 어울려요" 그리스팟과 갈릭맨이 손을 들어줬다. 팩맨과 와일드 플러워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먼 투어리스트는 나도 좋아요." 에얼리언으로 불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 나도 동의 했다. "그럼 이것으로 두 스루하이커의 세례식을 마침니다 '프리티 레그'와 '저먼 투어리스트'씨, 우리 클럽에 오신것을 환영 합니다"
2004년 5월 11일 <딥 크리크핫 스프링스 : 켈리포니아>
켈리포니아 남부의 PCT는 롤로코스트처럼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 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눈 쌓인 고산지대를 올라가는 가 싶다가도 어느새 메마르고 먼지 날리는 사막으로 내려가는 길이 반복 됐다. 샌저신토(Sanjacinto) 산맥의 해발 3,000m 지점에 있는 설원을 뚫고 지나친 다음날, 해발 2,000m 지점으로 내려와 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달하는 소노라(Sonora) 사막을 힘겹게 가로 지른적도 있었다. 어느 화요일 오후 나와 네비게이트, 웨더케릿은 온천이 있다는 메마른 협곡을 내려갔다. 기온은 30도 전후로 다른 날 보다는 참을 만 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 처럼 흥분해서 빠른 속도로 비탈길을 내려갔다. 마침내 천연 온천욕장이 드러나자 나는 땀에 절어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옷을 벗어 던지고 온몸에 달라붙은 벗겨 내고픈 마음이 절실 했다. 그저 물에 뛰어 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동행을 제치고 천연 온천 욕장을 향해 달려간 나는 배낭을 벗어 놓고 잽싸게 신발과 바지와 티셔츠를 벗고 완전히 나체가 되어 미그러지듯 물속으로 들어 갔다. 적당한 온도의 물이 몸을 휘어감아 오자 어마어마한 행복감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깊은 심호흡을 하며 두팔을 벌리고는 온 몸을 뻗은체 기분 좋게 첨벙 거렸다. 그렇게 물속에서 몸이 풀어지고 난후 동료들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네비게이트와 웨더케럿은 보이지 않았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훑어 봤다. "보아하니 유럽 사람이구먼, 내 말이 맞죠?" "예,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묻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간단해요. 그런데 PCT 여행자 중에서 단숨에 옷을 벗어 던지고 물에 뛰어든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오" "아, 그렇군요,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네요." "맞아요. 이곳에서 벌거벗고 온천욕하는 부류는 보통 켈리포니아의 히피들 이에요." 그는 웃으며 다른 온천욕장을 가르겼다. "댁의 친구들은 옷을 벗기가 망설여 지는 모양 이드군" 사실이었다. 웨더케럿과 네비게이터는 옷을 입은체 100m 쯤 떨어진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함께있는 5~6명의 스루하이커들도 마찬가지 였다. 몇 몇은 발을 담그고 네비게이터는 옷을 입고 물속에 있었다 흥이 깨진 나는 이브가 된 기분에 물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태양은 몇분만에 내 몸에서 물기를 걷어 갔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몇명이 서로 툭툭치며 눈짓을 햇고,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체 온천욕을 하던 남성도 엉큼한 웃음을 지었다. "댁은 아마 며칠 동안 계속 스루하이커들 입에 오르내리게 될거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썬크림을 건냈다. "잘못 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이걸 발라요"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고 옷을 입었다.
몇 분뒤 나는 네비게이트에게 어째서 트레킹복을 입고 수영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니, 어차피 옷도 빨아야 하고...." 그는 우물쭈물 했다. "그럼 당신들은 수영을 안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침묵했다. 웨더케럿이 "난 그냥 수영을 종하지 않아요" "나는 나중에 사람들이 별로 없을때 하려구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자연인을 자처하는 그들이 옷 벗는 일을 그렇게 꺼릴줄 몰았다. 그때 올리케와 밥이 나타나 나를 곤경에서 구해줬다. 그들과 헤어진 후 다시 만난 그들이 몹시 반가웠다. "우린 오늘 여기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에요. 당신도 묵을 건가요" "그거 잘 됐어요, 나도 오늘은 니어로 데이(Nearoday)를 즐길까 생각하던 참 이었어요" '니어로 데이'는 제로(Zeroday)와 같은 말이다. 제로 데이는 걷지 않고 한나절 정도 쉬는 날을 의미한다. 내가 화제를 돌렸다. "일단 텐트 칠 자리를 찾고 뭐라도 좀 먹으요. 수영은 조금 어두어진 뒤에 해도 늦지 안으니" 저녁 9시, 주위는 검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어두웠다. 스루하이커들은 오후에 갈길을 재촉했고, 당일치기 여행객들도 떠났다. 욕장은 통체로 올리케와 밥과 내가 독차지 하게 되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온천에 몸을 담근체 별로 뒤덮인 밤 하늘을 바라봤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 내 곁에서 연인과 함께 나체로 드러 누워있는 올리케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던 올리케가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어로 그들의 특별한 관게를 들려 줬다. 공장에서 제단사로 일하던 올리케는 28세에 직장을 그만 둔 뒤 자전거를 싸들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 갔다. 자전거는 경비가 부족해서 이동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그녀는 자신 만큼이나 가벼운 호주머니로 여행 중이던 밥을 만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1년동안 호주와 뉴질랜드를 자전거로 누볐다. 전직 군인인 밥은 저축해둔 약간의 돈을 가지고 여행을 계속 했지만, 올리케는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되돌아와야 했다. 여행을 계기로 그녀는 야외 활돌에 커다란 애착을 갖게 되었고, 이후 두 사람은 매년 6개월에서 8개월간을 함께 길 위에서 보냈다. 유럽,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트레킹을 하고, 카약이나 자전거로 여행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올리케는 겨울 몇 달 동안에만 독일에서 돈을 벌었다. 간호사로 직종을 바꾼 이유도 요양보호 관련 업계는 단기간에 일을 찾기 쉽고 적은 비용으로 간호사 기숙사에서 지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넉달에서 여섯달 동안 간호사로 일해서 반년 동안 여행을 다닐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고? 그녀에게 되 물었다. 그녀는 "예, 가능해요, 그 만큼 절약하며 사니까.게다가 우린 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들거든요. 나는 옷이나 배낭, 텐트, 침낭을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어요. 밥도 마찬 가지고요." 다시 케 물었다. "그래도 독일에 살때보다는 생활비가 훨씬 덜 들어요"
텐트에서 자면 월세를 안내도 되니까요" "그래도 가끔 호텔에 묵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아요" 밥이 끼어 들었다. "호텔에서 하루 묵는데 드는 숙박비면 트레일에서 1주일을 지낼수 있어요, 우리는 호텔에서 하루를 자느니, 1주일 더 걷는 편을 택하죠"
대화를 끊었다가 그는 "침대와 욕실이 있는 방이 편하다는 생각도 어짜피 과장된 거예요" 한참 침묵이 흐른뒤 올리케에게 나직이 물었다. "항상 적은 돈만 가지고 생활 하는게 고되지는 않아요?" "물론이죠,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황홀한 모험을 수없이 경험 했어요, 그에 비하면 좀 아껴 써야 하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이에요. 난 전혀 아쉬운게 없어요. 그녀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앞으로도 내게 선택권이 주어 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금의 삶을 택할 거예요" 어느듯 추위가 느껴졌다. 초경량 배낭에는 수건 따위는 없었다. 티셔츠로 물기를 대충 닦고 오들오들 떨며 트레킹복을 입었다. 헤드 렌턴에 의해 텐트로 향했다. 침낭으로 들어 가는데, "잘 자요." 라고 올리케의 목소리가 건너 왔다. 따뜻한 물속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느라 나른해진 나는 금새 혼곤한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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