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 - 2』
>절골에서 꽂감 만들기<
친구가 여기 절골에 집을 건축한 것도 10여년이 되었다. 집을 짓기 전에는 몽골텐트를 치고 그 안에 나무 난로를 설치
하고 지낼때부텨 고향 친구들은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그때가 더 낭만적 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한다. 나무
난로는 투박했다. 굴뚝을 높게 뽑아 올려 연기가 역류하지 않게 설치를 하여 나무가 잘 타서 따뜻 하였다. 산골이라
나무는 산에 쓸어진 나무를 잘라서 가져다 때었다. 여름에는 산골이라 시원했다. 그렇게 몇년 지나다가 집을 짛으야
겠다고 하였다. 집을 지으려고 허가문제를 알아보니, 이곳이 속리산 법주사를 건축할 때, 그 보다 먼저 세운 관음사가
이곳 산 밑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도 절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절터에는 부도와 관음사의 내력이 세겨진 비석이 서있고, 몇가지 유물들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으로 인하
여 유물 발굴이 끝나지 않았다고 건축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발굴 작업을 하는데 3년이 걸렸다. 그 후에 건축허가를 받
아 건축한 집이다. 절골에 친구의 집이다. 친구가 건설회사 사장을 할때 사촌 동생과 함께 지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조가 잘 되어 있다. 1층 앞쪽에 테라스가 있고, 방이 2개 하나는 나무를 때는 황토방이다. 거실과 주방이 있고, 화장실
과 샤워실이 있다. 2층에는크게 하나의 거실이다. 한쪽에 주방이 있고, 화장실은 2개를 배치하였다.
앞 뒤쪽에 각각 테라스를 설치했다.
친구가 정년후에 이곳에 내려와 살려고 집을 지었는데, 집사람이 서울 본토박이라 시골에 몇번 내려와서 보고는 도저이
이곳에 내려와 살수 없다고 하여, 금요일에 내려 가서 2박하고 일요일 오전에 올라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후에 가면
차들이 밀려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 친구가 혼자는 너무 적적하다고 백수인 나를 끌어들여 절골에 내려가게 되었다.
가끔은 고향 친구와 후배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고향친구 중에 몇 사람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건강
이 여의치 않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가끔 대구 친구가 함께 한다. 서울에 형님도 내려오면 고향 동네에 머
물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을 이용한다.
요즘은 절골에 가도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봄에서 가을까지는 놀러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간다. 어쩌다 한주를 가지
않으면 풀이 집 안밖에 무성하게 자라 그것을 열심히 뽑아 주어야 한다. 첫 해는 그렇게 허송을 하고 지났드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봄에 호박 구덩이를 파서 호박을 심고, 고추도 조금 심고, 가지도 심고, 방울 토마토도 싶었다. 풀을 뽑아
주고 비료를 주었드니 그곳을 찾아갈때 마다 호박이 달리고 고추가 달려 크가는 것을 보는 것 만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시골에 내려가면 먼저 부추를 베고 애호박을 따서 지짐을 붙인다. 그 맛이 꿀맛이다. 친구는 이런 생활을 오래해서 제법
맛있는 솜씨를 발휘하곤 한다. 밥을 하고 된장을 끓이고 김치 한가지, 그러면 밥 한그릇을 뚝닥 먹어 치운다. 반찬이
많아야 밥맛이 나는 건 아니다.
지난 봄에는 친구 동생이 계란을 부화 시켰다면서 몇마리 줄테니 닭장을 지으라고 해서 닭장을 만들어 어미닭과 병아리
13마리 분양 받았다. 얼마를 지나니 어미닭이 계란을 안겨주기 시작하였다. 금요일에 내려가면 계란이 10개에서 13개 쯤
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수정란이라 알이 탱탱하고 맛이 달랐다. 가을이 되어 감이 붉어 갈 쯤에 닭장에
갔드니 계란의 크기가 반도 안되는 아주 작은 계란이 있어 신기하여 들고 와서 이야기를 하였드니, 닭을 분양해 준 동생
이 병아리가 자라서 처음 낳은 닭알이라 작다고 말해 주었다. 좀더 닭이 크면 계한도 큰것을 낳는다고 하였다.
집터 이곳 저곳에 서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데, 보통 힘든게 아니다. 처음에는 나무 밑에서 손이 자라는 것을 먼저
따고 감따는 도구를 이용해서 따고, 그 위에 있는 감은 나무에 올라가서 감따는 도구로 감을 따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사람은 위에서 따고 밑에서 받아주고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감을 따서 꽂감을 만든다고 감을 갂아 건조시키는 도구
에 매달았다. 이번주에 조금 하고, 다음주에 또 갂아서 달아 놓은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이곳 생활이 의미가 있고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엿다. 올해는 가뭄이 계속 되다가 장마가 또 지루하게 내려 농작물이 무엇이나 흉작이었다.
고추도 붉은 고추를 한번 따고 탄저병이 들어 말라 죽어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도 청량고추는 식사를 준비 할때마다 밭
에 나가 따다가 반찬에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된장을 끓이는데 청량고추를 넣고, 애호박도 쓸어넣고, 길 섶에 쑥도 뜯어
넣고, 그때 그때 임기응변으로 친구와 둘이 있는 것들로 만들어 먹으니 누가 흉을 보는 것도 아니고, 자연의 맛을 즐기는
우리의 삶은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 의지 하면서 자연을 닮아 가려고 노력한다. 어느 때는 한의사가 와서 먹으면 약이
되는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오면 자기들이 먹을 소주와 맥주는 들고 온다. 대구 친구는 과일과
고기, 생선 등을 많이 가져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기도 한다.
그 후 날이 지날수록 작은 계란의 숫자가 늘어갔다. 친구와 절골에 내려갈때 마다 3일분의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가는 데,
먼저 두부 2팩 계란 10개를 사 가는 것이 기본이고, 때로는 돼지고기도 사고, 어느때는 생 오리를 한마리 사가지고 가서
들통에 물을 넣고 임시 끊여서 물을 버리고, 다시 감자를 한 10개쯤 넣고 이것저것 양념등을 넣어 푹 몇 시간 끊이면 다
른 반찬이 필요없다. 고기보다 감자가 더 맛이 좋다. 나는 처음에 밥만 겨우 하였는데, 지금은 친구에게 많이 배워서 어느
때는 내가 준비를 하기도 할 정도이다. 먹고 사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 닥치면 하게 되는 게 사람인것 같다. 모르는 것을
할때나, 새로운 것을 할줄 모르는 것은 여동에게 물어서 알려주는 대로 하면 먹을 만한 것이 되어 준다.
지난 년말에는 물이 꽁꽁 얼어 이웃집에 가서 물을 길러다가 밥을 우선 해 먹었다. 주방 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데, 밖에 수도를 틀어 보니 호스에 언 얼음이 막혀 있는데, 소리가 나는 것 같아 호수에 얼음을 망치로 주수었드니 물이
나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친구에개 문의 하였드니, 지하 1m 이상 파고 그 밑에 수도를 설치하여 이중 잠금장치를 하
여 뒷쪽 원 수도꼭지를 잠그고 앞쪽에 수도를 열어놓으면, 앞쪽의 꼭지는 지하로 물이 빠져 비어있기 때문에 얼지 않는
시스템으로 설치가 되어 그렇다고 알려 주었다. 밥을 할때나, 설거지를 할 때도 밖에서 물을 길러다 사용하였다. 세수 물
까지 그 물을 데워서 사용하였다.
다행히 화장실은 비대를 전기에 연결해 놓아 얼지 않았다. 샤워기는 꽁꽁얼어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도 식수가 나오고,
화장실을 사용할수 있어 그냥그냥 아쉬운대로 생활을 할 수 있어 다행 이었다. 지난 겨울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난
12월에는 혹독한 겨울을 살았다. 12월에는 꽂감이 말라서 올때마다 꽂감 따 먹는 재미가 일품이었다. 친구도 주고, 집에
도 조금 가져가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는 맛이 바로 시골 맛이 아닌가 한다. 꽃감은 옛날부터 유명한 명품이다.
흰쌀과 누에고치, 꽂감이 희게 분이 하얕게 나와 이 세가지 특산품을 일러 삼백이라 하였다. 지금도
삼백의 도시라는 말이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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