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648. <혼자 여행하는 이유>

paxlee 2022. 8. 8. 00:25

혼자 여행하는 이유

 

 

남편은 심각한 일 중독자다. 남편과 성격이 맞지않아 아이가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 덜 자랐는데 극심한 우울증이 와서 여름마다 가출하는 마음으로 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집을 떠나 떠돌다 돌아오면 예전보다 집이 더 좋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는 혼자서 여행했던 것이 남편하고 이혼할 고비들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 종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나를 알기에 극심한 우울증이 조금 지나간 다음부터는 가장 애를 써서 한 일이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슬픔에 항상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라는 말을 부적처럼 써서 가지고 다니면서 정말 온갖 노력을 했다. 그전에는 눈만 감으면 항상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혼자서 차를 운전하며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해서 외롭기만 하면 외롭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아지고 외로움도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아무리 오래 혼자 여행해도 전혀 외롭지 않게 되었다. 외롭기는 커녕 호기심이 발동하고 밤에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서 메모하고 다음 날 일정을 수정하느라 왜로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그냥 여행하면 외로움이 더 크게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하기전, 나는 어느날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봉건적이고 벽같던 남편을 두고 가방을 싸서 목적지 없이 기차를 탄 후 종착역에 내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영국 할머니 이야기가 거기에 실려 있었다. 

 

그 할머니라고 집을 쉽게 나온건 아니다. 가방을 들고 나온 후에도 수없이 집을 돌아 보면서 다시 들어가 버릴가하고 망설이다가, 자포자기한 기분으로 아무 기차나 타고 떠나 결곡 원하는 자신의 삶을 얻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아이가 크면 그 할머니처럼 집을 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좀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우선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가 궁금하여 족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가며, 처음으로 다녀온 20일간의 스페인 여행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눈으로 관광지를 보고 쇼핑을 하며 차도 마시는 여행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 오히려 외로움을 가중 시켰다. 그래서 스페인을 혼자서 여행하면서 즐겁기는 켜녕 항상 외롭고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했다. 절망감도 들었다. 집을 떠나도 나는 행복하지 하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 출구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때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이 구원처럼 다가왔다. 그림을 그리게 되면 사물을 스케치하듯 바라보게 되어 모든 것을 자신만의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므로 지루할 틈이 없는 여행의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 다시 그림을 그리자,. 마침 그때 마음에 드는 화실을 만나 스케치부터 시작해 유화도 그리고 몇 차례의 단체전에도 참가하면서 여행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겨났다. 

 

2014년 핀란드 여행은 두 번째로 나 혼자 떠난 장기간의 여행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의 소재를 찾으며 다니니 즐겁기만 했다. 더위를 싫어하는 내가 피서도 겸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고, 결혼 초부터 뜨개질을 시작한 나로서는 그들의 니팅 생활에도 관심이 생겨 그 이후로 5년간이나 북유럽의 여러나라를 여행하게 되었다. 

 

핀랜드, 스페인에서도 도시 위주로 여행하던 나는 2017년 노르웨이 트레킹 여행을 계기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좋아하는 여행지도 달라졌다. 도시와 달리 자연은 무서울 때도 많았지만 찬바람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했을 때도 집에 있을 때보다 행복했다. 그리고 시골이나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따뜻했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을 눈으로 카메라로 닮으면서 내 눈은 반짝였고 늘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심신이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 되어 거실의 전망 좋은 자리에는 자그마한 책상도 가져다 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동안 수기로 써서 모아둔 여행기를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이 자유롭고 평화롭다

 

이 이야기는 『혼자이고 싶어서, 북유럽』의 저자 송경희님의 책에서 인용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