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724. <급하고 화잘내면 고혈압 위험... 그런 내가 약 끊은 비결>

paxlee 2022. 8. 23. 07:51

급하고 화잘내면 고혈압 위험... 그런 내가 약 끊은 비결

 

# 천성인지 후천적 습성 탓인지 나는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편이다. 내가 보기엔 ‘솔직하고 뒤끝 없는 성격’이지만, 아내는 ‘지랄맞은 성격’이라고 잘라말한다. 평소 잘 참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벌컥 한다는 것이다.

 

30대 후반에 150이 넘는 고혈압 판정을 받았을 때 ‘급한 성격’ 탓이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늘 경쟁에 쫓기는 기자 생활에다가 친・외조부 모두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가족력에 따른 유전적 요인이 겹친 것이라고 여겼다.

 

매일 운동과 명상을 열심히 했더니 혈압이 저절로 정상이 돼 십수년 먹던 혈압약을 끊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선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이 중요하다. /셔터스톡

 

예나 지금이나 병원에선 고혈압 환자의 90% 이상을 ‘원인을 알 수 없는’ 본태성(本態性)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기계적으로 혈압약을 처방한다. 그리고 평생 먹어야 한다. 지금은 하루 1~2알로 간편화됐지만 30년전만 해도 끼니때마다 4~5알씩의 약을 한웅큼씩 먹어야 했다. 결국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약을 몇 달 먹다 그만두었다. ‘침묵의 살인자’란 별명처럼 고혈압은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으며 약을 먹지 않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급하고 화 잘내는 성격이 고혈압을 비롯 심혈관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1960년대초 처음 나왔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대 심장내과 전문의 메이어 프리드만(Meyer Friedman: 1911~2001) 교수는 성격과 질환의 함수관계를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한 기념비적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병원 심장내과 환자 대기실 의자 커버가 유독 다른 대기실보다 더 자주 닳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환자들이 불안하고 조바심한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의자를 손톱으로 긁거나 몸을 자주 뒤척인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심혈관질환자들을 대상으로 8년여간에 걸친 광범위한 조사결과, 늘 시간에 쫓기는 듯한 초조감을 느끼고, 화를 잘 내는 것이 대부분 공통적 특성임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운전 중 앞차가 느리면 습관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남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핏대를 올리며, 슈퍼마켓 직원이나 간호사의 동작이 느리면 언짢아해 했다.

 

프리드만 교수는 이런 환자들을 ‘A타입(Type A) 성격’이라고 명명하고 특성으로 ▲조급성 ▲공격성 ▲과도한 경쟁심 ▲강한 성취욕 등을 들었다. 일 욕심이 많고 완벽주의적 성격 탓에 성공적인 사업가, 각 분야의 리더, 전문가, 뛰어난 운동선수 중에도 A타입이 많았다.

 

의료계에선 A타입이 특히 심장 및 관상동맥질환에 매우 취약하다고 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자주 증가해 고혈압・동맥경화・심근경색・협심증・뇌출혈・뇌졸중 질환의 위험성이 2~7배나 높으며, 흡연까지 한다면 ‘최악’이라고 했다.

 

# 연구결과를 보면 나도 전형적인 A타입이다. 긴장을 하거나 분노가 치밀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오른다. 한국 사회가 그래서일까. 한국인 5000만명중 1200만명이 고혈압 환자다. 성인으로 따지면 10명중 3명꼴로 ‘고혈압 공화국’이다. 심장병 환자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암 다음 사망원인 2위(2019년 10.5%)며, 뇌혈관질환(7.3%)도 4위를 차지한다.

 

프리드만교수의 연구가 발표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전세계 병원들과 대형제약사들은 여전히 약을 최선의 방책으로 내세운다. 심장질환의 경우 특히 환자의 마음 상태 등 심적(心的) 상황의 개선이 중요하지만 그저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공자님 말씀’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은 의지대로 잘 고쳐지지 않는다.

 

# 젊은 시절 혈압약을 먹지 않고 버티던 나는 나이 오십이 넘어 혈압이 160·170으로 더 높아지면서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쯤 먹었을까.… 이번에는 앉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운 증상이 시작됐다. 보통 빈혈이나 저혈압 환자에게 생기는 ‘기립성 어지럼증’이었다. 알고 보니 언제부턴가 정상혈압 상태로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혈압을 낮추는 약을 먹어 오히려 저혈압이 돼 어지럼증이 생긴 것이었다.

 

한번 올라간 혈압은 자연적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10여년전 우울증을 경험한 이후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다 명상까지 배워 실천한 덕인 것 같았다. 특히 명상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분비를 활성화시킨다.

 

나는 이 사실을 평소 다니던 병원 주치의에게 얘기하고 상의 끝에 혈압약을 끊었다(다만 고지혈증 약만 최소량으로 먹고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3년간 내 혈압은 정상이다. 결국 마음상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급한 마음이 혈압을 올리듯, 편한 마음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편안한 마음’이야말로 건강과 행복의 지름길이다. 미 MD앤더슨암센터 종신교수를 역임한 세계적 암전문의 김의신 박사는 “암 치료에 있어서 수술과 약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다.

 

함영준·마음건강 길 대표

 

[함영준의 마음PT] 함영준·마음건강 길 대표. 조선일보 / 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