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739. <‘불일암’의 추억>

paxlee 2022. 8. 27. 07:39

‘불일암’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절이 전남 순천의 고찰(古刹) 송광사라 요즘 여행객들로 붐빈다지요. 송광사에서 와온해변까지 박근희 기자가 취재해온 여행 기사(B6~7면)를 읽다가 불일암에서의 작은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불일암은 ‘무소유’ ‘산방한담’으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수행하던 암자로, 송광사에서 이삼십분 대숲길을 올라야 닿을 수 있지요. 20대 기자 시절 송광사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 아침 불일암까지 걸어 올라간 적이 있는데, 법정스님은 이미 강원 정선 오두막으로 떠나신 뒤라 안 계시고, 대신 제자 스님 한 분이 암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젊은 처자들이 암자에 들이닥치니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스님은, 그래도 짐짓 위엄을 갖추시고 불일암에 얽힌 이야기며 수행 생활을 들려주셨지요. 마침 점심때가 되어 출출해지려던 참인데, 스님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찬은 없지만 된장찌개에 밥 한술 뜨고 가라며 뚝딱 상을 차려오십니다.

 

절 음식엔 마늘 파 부추 등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아 속세의 맛과 다를 수 있으니 그런 줄 알라 하시는데, 웬걸요! 어찌나 구수하고 담백한지, 지금도 저에게 불일암은 양은 밥상 위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와 뒤꿈치에 커다랗게 구멍이 나 있던 스님의 해진 양말로 기억됩니다. 나중에 법정스님을 만나 불일암 방문기를 들려드렸더니, “서울 처자들이 왔다고 땡중이 어지간히도 폼을 잡았구나” 하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불일암에서의 추억은 저에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재불(在佛) 화가 방혜자 선생은 2011년 조선일보 ‘Why?’와의 인터뷰에서 불일암에서의 추억을 들려줍니다. 법정스님이 직접 나뭇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때 만든 음식을 드셨다는 건데요, 그 음식이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이번 주 <아무튼, 주말> 뉴스레터를 통해 11년 전 인터뷰를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열매가 무르익어 꼭지가 똑 떨어지듯이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던 방 화백이 그때 74세였으니 지금은 85세가 되었겠군요. 이번 주말 막을 내리는 중앙박물관 ‘이건희 특별전-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에도 방혜자의 작품이 걸려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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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처럼, 비 오는 날 송광사 풍경이 아름답다 하니 올가을엔 시간을 내어 꼭 가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주말]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 /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