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 이야기 [1]*-

 

기녀로 살다간 황진이의 참 모습

 

 

 

황진이는 송도삼절의 한 분으로 노래와 춤과 한시로 당대의 문장가와 세도가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기구한 운명을 살다간 철학자요 예술가로 동서고금에 몇 안되는 여장부였다. 기녀라는 천한 신분이면서도 그의 문장과 기예는 예술의 경지는 세월의 흐름에도 그의 혼은 살아서 현세에 희자되고 있어 그의 참 모습을 한번 되돌아보려고 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는 30년을 수행한 지족선사를 하룻밤에 파계시킨 미모와 화담 서경덕과의 우정, 그녀가 그리워한 벽계수, 당대의 가인 송순과의 만남, 그녀가 죽은 뒤 그의 무덤에 술을 올렸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파면단한 벽파 등...그녀의 사랑과 우정은 무엇이었을가?

 

황진이가 기녀가 된 까닭을 기록에 의해 보면, 황진사의 서출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 부터 어느 여염집 여자아이 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황진이가 집을 뛰쳐나가 기생이 된 까닭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황진이가 사는 마을의 한 총각이 먼 발치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 누워 있다가 결굴은 죽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가 없는 황진이는 어느날 집 앞에서 상여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웅성거렸다 황진이가 사는 집 앞에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상사병에 결려 죽은 사람은 그 집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법일세, 그러니..."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황진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었다. 

 

그녀는 옷장속에서 곱게 접어 둔 적삼과 치마를 꺼내 사람들에게 주었다. 상여꾼들이 그 옷을 관위에 얹어 놓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엿다고 한다. 황진이가 자기 때문에 죽은 자의 상여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외모 때문에 한 남정네가 죽었다. 내 용모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내가 시집을 간다면 다른 남정네들이 또 죽게 될지 모른다. 황진이는 여러 모로 생각 끝에 서출로 바라는 결혼도 불가능하고 나로 인하여 한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영혼을 저벌릴 수 없다는 고민 끝에 기생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지 얼마 않되어 내노라하는 문장가와 풍류객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세상의 풍류객들은 황진이를 만나러 먼 길을 달려 송도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황진이를 두고 하늘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온 선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진이가 노래를 하면 모두들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절조는 처음이라며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녀는 시를 잘 지어 시인 판서 소양곡과 사랑을 나누었고, 노래를 잘 불러 당대 최고의 가인 송순과 친하게 지냈으며, 풍류를 알아 당대의 풍류가인 이사종과 6년 동안 환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내노라 하는 남정네들이 그녀 앞에선 맥도 못쓰고 비실겨렸다.

 

그녀는 이제 이런 부류의 남자들 말고 색다른 남자들을 농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었다. 자신처러럼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을 뿌리칠 남자가 과연 있을까? 결국 그녀는 커다란 모험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하룻 밤에 파게된 30년 생불] 당시 30년 동안 불도를 닦아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가 그녀의 첫번째 유혹 대상이 되었다. 천마산 청량봉 아래에 있는 지족암으로 스님을 찾아가는 날, 지족선사는 산 아래에서 이름석자만 들어도 알만한 기생 황진이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그만 황망하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산에서 불공만 드리던 스님은 눈이 부시게 빛나는 황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미 스님의 마음을 꿰뚫어 본 그녀는 슬슬 스님을 농락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스님, 저로 인해 상사병에 걸려 죽은 총각이 있나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못잊어 죽을 수도 있나이까?"  "허허! 나무관세음보살1"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요염한 자태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제대로 황진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간 30년 수도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판국이었다. '과연 빼어난 미모를 가졌구먼, 저 정도의 얼굴이면 상사병이 걸릴 만도 하겠어' 혼자서 깊은 사념에 빠져있는 시간은 흘러갔다. 산사의 밤이 깊어지자 지족선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덥석 안아벼렸다. 지족선사의 가슴에 안긴 그녀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새벽녘 암자를 내려왔다. 30년 불공을 하루 밤에 무너뜨린 기녀의 묘한 웃음 뒤에는 허탈감이 느껴졌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화담] 지족선사를 하루 밤 사이에 파계시킨 황진이는 이번에 화담 서경덕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대학자 서경덕을 만약 유혹할 수 있었다면 사내들은 늙은이고 젊은이고 모두 계집 치마폭에서 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서경덕 선생을 점찍은 다음부터 욕망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정 잡사를 멀리하고 오로지 초당에 기거하며 학문에 정열을 불태우는 화담선생,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학자를 반드시 자신의 미모로 유혹해 그의 고매한 인격과 높은 학문을 일시에 땅에 떨어뜨려 보겠다는 일종의 오기가 충만 해 있었다. 그러나 화담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상황은 달랐다. 지족선사는 자신의 미모에 너무 당황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화담은 달랐다.

 

황진이가 큰 절 올리자 편히 앉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황진이의 미모 따위엔 전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래 , 어쩐 일로 날 만나러 왔소?" "일찍이 선생님의 고매하신 인격과 높은 학문의 경지를 들었사옵니다. 미천한 제가 선생님의 고매한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었나이다." 황진이와 화담은 서로 학문과 시를 겨루어 보았다. 밤이면 술과 춤으로 화담선생을 유혹하려 했으나, 화담은 황진이를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 정도로만 여겼다. 황진이는 오기가 발동해 며칠 동안 화담을 유혹했지만 화담선생은 전혀 그런 것과는 무관한 표정이었다. 황진이는 생각다 못해 마지막으로 육탄공세를 취하기로 하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저녁부터 황진이는 비를 맞고 돌아 다녔다. 탄력있는 유방, 가는 허리, 물기를 머금은 그 자태는 한 마리의 학을 연상시켰다. 황진이는 온갖 교태를 다 보이며 드러난 물기어린 몸으로 화담의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 너무 추워요." "허허 이런, 온몸이 비에 젖었구려 어서 옷을 벗고 이리 들어오시오." 옷을 벗으라는 화담의 말에 황진이는 옳거니 너도 별수없구나 하며 화담 앞에서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이윽고 눈부신 그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그러나 화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젖은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니 내 벗은 몸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는 단 말인가!' 그녀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화담을 쳐다 보았다. 

 

"젖은 몸으로 그대로 있으면 감기가 드니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있으시게, 내 옷을 말려 줄 터이니," 화담은 알몸인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는 황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코를 골며 이내 잠이 들었다. 황진이는 저절로 화담의 인격에 고개가 남자에게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잠이든 화담의 모습을 보면서 황진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진이는 화담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냈다. 이튿날 그녀는 마른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는 화담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말했다. " 선생님, 송도의 삼절을 아시나이까?" "송도삼절(松都三絶)? 글세, 그게 무슨 뜻인고?" "송도에 삼절이 있사온데, 그 하나는 박연폭포이고, 또 하나는 황진이옵고, 나머지는 화담인가 하옵니다."

 

화담은 대답대신 미소를 머금고는 항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에서는 박연폭포이고, 여자세계에서는 자신이며, 남자세계에서는 화담이란 말이었다. 송도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황진이는 문장의 대가들과 시를 지으면서도 절대로 뒤떨어지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멋진 남자를 그리워한 황진이] 그러나 그녀도 여자 였으므로 멋진 사내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내노라하는 양반들이 그녀 앞에서 기어다니다시피 하였지만,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으면 언제 그를 다시 만날까 하는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이렇듯 멋진 사내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외로움은 결국 시가 되어 오늘날 고전문학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더이다.

 

  어져 내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 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치고 유유히 떠나간 사람이 화담말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벽계수였다. 그는 황진이의 아름다움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아무리 황진이가 유혹을 해 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는 황진이와 풍류를 즐겼다. 황진이는 귀인 벽계수를 유혹하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결국 벽계수는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스쳐 지나갓다. 황진이는 벽계수를 그리며 그 외로움을 시심으로 달랬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밤마다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들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린 임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그녀는 결굴 임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뜻을 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마흔이 채 못 된 그녀는 그때까지도 아름다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눈을 감았다. 생을 마감할 때는 누구나 자신을 뒤돌아 보듯이, 황진이 역시 여자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죄책감을 유언속에 담았다. "내가 살아생전 내 몸을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은 후에는 관에 넣어 매장하지 말고 동문 밖 모래 틈에 시체를 버려 세상 여인들로 하여 경계하게 하라." 그러나 황진이를 아는 이웃들은 결코 유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녀의 시체를 장단근교 구정고개 남쪽 길가에 고이 묻어 넋을 위로해 주었다. 후에 당대의 문장가 백호 임제가 관의 일로 송도에 왔다가 제일 먼저 황진이의 안부를 물었다. 황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즉시 묘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때 임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홍안을 어데 누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양반가의 사람들 사이에 일개 송도기생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제사를 지내 주었다는 이 소식이 장안에 퍼져 나갔다. 결국 조정에까지 이 사실이 알려져 백호는 공직에서 파면을 당했다고 한다. "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기생 따위의 죽음을 슬퍼하여 넋을 위로하다니 당장 파면시켜라."  백호는 덤덤한 심정으로 관직을 내 팽개쳤다. 그는 당대의 손꼽히는 문장가였기에 그녀의 죽음을 두고 기녀보다는 한 사람의 문장가를 잃은 것을 슬퍼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황진이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은 기녀는 없었다. 그녀는 기녀이기 전에 예술과 철학을 통달한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가장 완숙한 아름다음을 유지해야 할 때 세상을 등졌다 . 그래서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오늘까지 전해져 오는 지도 모른다. 

  - 인생은 물 흐르듯이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