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민들레 연가 *-

paxlee 2006. 6. 30. 22:58

 

                      민들레 연가 

 

모처럼의 밝은 햇살을 등에 받으며 길을 걸었다.
바람이 잔잔해진 산책로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에
봄빛이 묻어 있는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오랜만에 걷는 길섶에는 이름을 모르기도 하고
알아야 될 이유도 없는 풀꽃이 그들의 방식대로 피어있다.
그들은 언제나 남루한 장소에서 단순하게 봄 노래를 읊어낸다.

 

 

 

작년에 갓길의 틈새에 핀 민들레와 제비꽃, 그리고 여름이 익어 갈 무렵에
자리를 같이 한 엉겅퀴가 한 줄로 나란히 시범을 보여 준 곳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아스팔트 포장을 하면서 그 부분을 무겁게 덧씌워버렸다.
그런데 오늘, 곁을 지나다가 놀랍게도 홀로 핀 생명의 경이를 보여준 민들레를 만났다.
그 놀라움은 흙속에서 순을 틔운 것이 아닌, 기름기가 배어 있는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뚫고 나온 힘을 만났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 건 감탄의 차원이 아니라 신기한 모습이었다.

 

 

 

″ 세상에, 어떤 힘으로 이렇게 밀어 올렸을까? ″를 연발하며 눈길을 거두지 않는 나에게,
같이 간 분은 ″그 게 뭐가 그렇게 신기 하냐 ″며 싱겁다는 투로 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렇다면 나는 늘 작고 시시한 것에 바보스런 사랑을 보내는 것일까?
하지만 이럴 때, 신기함을 느끼지 않은 이가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집으로 돌아와 예전에 샀던 시집을 챙긴다.
″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단절의 벽을 볼 때 외로워진다. ″는 토막글이 속표지에 적혀있는
이 책은 세상을 지혜롭게 살자는 교훈적인 지침서도 아니고, 재테크에 눈을 크게 뜨게
하는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자연에 대한 잠언 시집인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대자연의 생명계와 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글들로 묶어져 있다. 자연과 대화하는 능력을 빼앗아 간 모든 것이,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물과 돌, 흙과 공기에 대하여
고마워하라는 충고가 있다.
자연을 보는 눈과 귀를 열어 두어야 여러 감각이 되살아난다는 강조를 한다.

 

 

 

이제 나는, 왜 민들레를 사랑하는가에 마음을 열어 보려 한다.
화창한 봄날, 다른 꽃들이 호화로운 빛깔로 모습을 드러낼 때, 땅바닥에 엎드린
민들레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소박한 듯 겸손한 생김새가 오히려 마음을
사로 잡는다. 겨울을 이겨낸 메마른 자리에서 다소곳이 피어난 풋풋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약한 듯 낮은 자세로 있는 굳센 생명력이 가상하기 때문이다.

 

 

 

민들레의 별칭은 구덕초(九德草)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어서 얻은 이름이다.
모진 환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것이 일덕(一德 )이며,
씨가 날아 앉는 자리가 어디이건 상관치 않고 피어나고 마는 억척이 이덕(二德 )이며,
뿌리를 캐어 며칠동안 햇볕에 노출 시킨 후에 심거나 그 뿌리를 난도질하여 심어도 싹이 돋아난다.
한 뿌리에 여러 송이의 꽃이 피지만, 동시에 피는 법이 없고 한 송이가 지면 차례를
기다렸다가 피는 장유 유서(長幼 有抒 )의 차례를 아는 것이 삼덕(三德 )이다.
어둠에 꽃잎을 닫고 비가 오려할 때나 구름이 짙어지면 꽃잎을 닫아서 명암의 천기를
알아 선악을 헤아리는 것이 사덕(四德)이고, 꿀이 많고 진하여 멀리 있는 벌들을 끌어들이니
정이 많다고 하여 오덕(五德)에 속하기도 한다.

 

 

 

새벽 먼동이 트면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니 근면이 육덕(六德)이다.
또한 씨앗이 제각기 의존 없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자수성가하여 일가를 이루는
모험심이 칠덕(七德 )이고, 그 흰즙이 흰 머리를 검게 하고 종기를 낫게 하여 열을 내리게 하므로
팔덕(八德 )이다. 여린 잎을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유즙은 커피나 와인, 맥주나 차에 타서
쓴 맛을 더 첨가하여 마셨으니 살신성인이 구덕(九德 )이라고 전한다.

 

 

 

이런 이유로 역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없는 교훈을 주는 꽃이다.
그러나 꽃말로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여 무분별과 나쁜 점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화초 속에서는 잡초로 홀대받지만,
꽃으로 아껴 주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끈질기게 자신을 피워낸다.
아름다운 꽃들을 가꾸는 어느 정원사는 뽑아도 줄어들지 않는 민들레를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했지만 허사였다. 마침내 그는 정원 가꾸기 협회에 상담을 했다.
그 협회에서 가르쳐 준 것은 이미 그가 시도해 본 것이었다.
그러자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었다.
″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이렇듯, 민들레가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보잘 것 없는 풀꽃에 불과하다.
봄날의 가벼운 바람을 타고, 민들레 씨들은 하얀 깃털을 펼치면서 약속된 장소도 없이
날아간다. 귀한 꽃이 아니기에 여느 꽃처럼, 소중하게 대해주는 법이 없지만
제 힘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다.
사람들은 화사한 벚꽃의 짧은 황홀을 사랑하지만, 나는 어떤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는
곧은 심지의 사람을 보는 것 같아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
어떤 꽃을 피워 내더라도 자신답게 피는 것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아무 곳에나 피어 있어도 민들레를 당당한 꽃으로 인정해 주고 싶다.
소외된 자를 사랑으로 보듬는 마음으로.
산책로를 걷던 어느 날 오후, 갓 피어난 꽃 망울을 향해 내 마음을 전한다.
″ 너 참 예쁘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잘 잡았구나″ 라고... .

 

     - 수필 : 제비꽃님의 '민들레 연가'에서 -

     - 사진 : 김선규님의 '사진여행'에서 -

"Arrival at Netherlie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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