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특파원 르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1] *-

paxlee 2008. 1. 11. 22:15

            

                [특파원 르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만년설과 함께 일출을 맞는 트레커들.

몽환적 분위기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아침 10시를 넘어서면 따뜻해진 대기에 온산은 구름에 휩싸인다. 아무 것도 뵈는 게 없다. 구름 속, 아니 구름을 타고 어딘지 모를 곳을 찾아갔다. 오후도 구름 안개 속에 갇혀 지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세상이 바뀐다. 새카만 밤하늘은 둥근 달과 보석 같은 별들로 가득 찼다. 그 빛을 받은 키보는 빛났다. 반짝였다. 과연 아프리카 최고봉이자 세계 최대의 분화구다운 위용이다.

밤이 지나고 새날이 밝아오면 그 신비로움은 한층 더해진다. 그러다 다시 구름안개가 몰려오면 모습을 순식간에 감추었다. 그리곤 우리는 또 구름 속으로 들어섰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는 그렇게 하루 24시간 동안 색깔을 달리하며 아시아의 이방인들을 맞아주었다.


▲ 대우림 경계선에 위치한 마차메 캠프. 키보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한라산 장구목에서 부악과 제주시 바라보는 기분

첫날 마차메(Machame·1,800m) 게이트 출발 이후 한동안은 산을 볼 수 없었다. 열대우림 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지루할 정도였다. 원숭이가 튀어나오고 표범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우거지고 을씨년스런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산길은 후텁지근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게다가 첫날 캠프지인 마차메 캠프(3,000m) 도착 직전 송신영씨(46)가 변고를 당하고 말았다.
 
평택 여산회 회원인 송씨는 나무등걸에 앉아 조정옥(50), 이기열씨(49)와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실신하고 말았다. 이튿날 1년간 별러온 킬리만자로 등정을 접어버리고 후배 간병을 자청한 조정옥씨와 함께 마차메 캠프에서 하산한 송신영씨는 이틀 뒤 심한 오한과 탈진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말라리아로 판명됐다. 출국 전날부터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었기에 진단결과를 아는 순간 모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귀국 후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는 말라리아균이 발견되지 않았음).

이튿날, 킬리만자로는 첫날과 달리 환상적인 풍광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한밤중 달빛에 반짝이던 설사면과 설릉은 푸르른 열대우림 위로 솟구쳐 더욱 반짝인다. 마차메 캠프를 지나자 나무의 키가 점차 낮아지면서 산 안팎이 눈에 든다.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이나 다름없다.

▲ (좌)킬리만자로에서 한 축을 이루는 시라 산맥의 조망이 일품인 시라 캠프./ 라바타워 가는 길. 메루산은 트레킹 내내 든든한 후원자인양 우리를 지켜보았다. (우)라바타워로 향하는 일행. 키보 화구벽에 붙은 만년설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희귀한 형상의 식물인 키네시오 킬리만자리 군락지. 바랑코 캠프 위쪽에 있다.
캠프를 출발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구름이 몰려오더니 산을 반쯤 가려버리자 더더욱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야생화들은 순간 순간 활짝 핀 얼굴을 내밀었다. 가이드인 조셉을 붙잡고 이름을 묻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캠프 출발 3시간쯤 지나 널찍한 산마루에서 점심을 먹는 사이 멀찌감치 떨어진 식당텐트 앞에서 포터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은 활기가 넘쳐났다.

해발 3,700m를 넘어서면서 왼쪽(동쪽)으로 사면을 가로지르다 턱을 넘어서자 시라 캠프(3,830m)와 거대한 시라(Shira·3,962m) 산군이 바라보인다. 세계 최대 분화구인 키보(Kibo·최정상 우후르피크 5,895m)를 중심으로 동쪽에 마웬지(Mawenzi·5,149m), 서쪽에 시라가 솟아 있다. 킬리만자로를 이루는 세 개의 화산들이다.

캠프 정리를 마친 뒤 조셉은 킬리만자로에 대해 설명해준다. 킬리만자로 기슭에 사는 차가(Chaga)족들은 킬리만자로를 산이란 뜻의 'Kilema'와 오르기 어렵다는 의미인 'Kyaro'(추위를 만드는 악마라는 뜻도 있음)를 합쳐 ‘킬레마캬로’라 불러왔다. 이를 19세기 들어 독일 사람들이 ‘킬리만샤로(Kilimansharo)’로 불렀고, 이후 아랍어와 스와힐리(Swahili)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이름인 킬리만자로로 부르면서 명칭이 굳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셉은 키보는 '빛나는 산(Shinning Mountain)'이란 뜻으로 ‘키포(Kipo)’가 맞는 명칭이라 강조한다. 초등은 1889년 10월5일 독일인 한스마이어( Hansmeyer)와 루드비히 푸르셀러( Ludwig Purscheller)에 의해 되었다.

시라 캠프에 도착, 김영미씨가 만들어낸 골뱅이 안주에 매실주를 한 잔 하는 사이 빗방울이 후덕이더니 곧 멈춘다. 그리곤 하루종일 메루산(Mount Meru·4,566m·아프리카 제5위 고봉)을 짓누를 듯 무겁게 덮여 있던 먹장구름이 갈라지면서 햇살이 쏟아진다.

“와~, 킬리만자로다.”

그와 동시에 키보도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쪽 사면에 만년설을 인 키보는 순수함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봉처럼 느껴졌다. “이거 정말 한라산 같아요. 모시(Moshi)의 불빛은 마치 한라산 부악을 등진 채 장구목에서 제주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이라니까요.”

딱 그랬다. 어둠이 밀려오면 산기슭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전등이 하나 하나 밝혀지면서 야경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많은 불빛이 밝아졌다. 달빛 받은 키보의 하얀 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바랑코 캠프(Barranco Camp·3,950m)로 가는 길은 라바타워(Lava Tower·4,600m)까지 오르막 일색이다. 조셉은 “폴레 폴레(pole pole·slow slow)”라며 천천히 가라고 수시로 당부한다. 그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기열씨와 김영미씨(27·강릉대 OB)는 평원에 솟구친 메루산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느라 진도를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셉은 우리에게 운이 좋단다. 이렇게 아침에 출발할 때와 저녁에 야영지에서는 조망을 즐길 수 있고, 기온이 올라갈 무렵이면 구름이 몰려와 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구름이 몰려와 키보는 모습을 감추고, 우리는 구름 속으로 들어선다.

▲ (좌)카랑가로 향하다 내려다본 바랑코 캠프. 폭포와 계곡을 끼고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우) 바랑코 캠프를 출발, 절벽을 올라선 다음 환하게 웃고 있는 일행.
 
큰 산답게 천의 얼굴 가진 킬리만자로

“선배들이 7대륙 최고봉 가운데 가장 멋없는 산이 킬리만자로라고 하던데 그게 아니네요. 이 길을 따랐다면 가장 멋있는 산으로 꼽았을 텐데 말이에요.” 이미 5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에베레스트도 두 차례나 등정을 시도해봤던 김영미씨는 순간 순간 색다른 풍광으로 감탄케 하는 킬리만자로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국내에서 킬리만자로를 다녀간 이들 대부분이 삭막한 마랑구 루트를 따랐기에 그런 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밤중 둥근 달빛에 반짝이는 키보 만년설과 산 아래 마을 불빛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이튿날 아침을 맞는다. 오늘을 절벽길을 올려쳐야 한다. 어제 오후 조셉은 “키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절벽에는 표범이 살고 있는데, 배고픈 놈들은 간혹 캠프장으로 내려와 먹을 것을 찾는다”며, “자다가 텐트 밖으로 팔이나 다리를 내놓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키가 180cm가 훨씬 넘고 체격이 당당한 조셉은 외모답지 않게 간혹 농담을 해대 즐거움을 주었다.

오늘 트레킹 중 지나칠 최고 높이는 라바타워(Lava Tower·4,600m) 안부. 외국 트레커들은 20여 분 아래의 라바타워 캠프장에서 점심을 먹고 올랐지만 우리는 고소적응을 위해 안부에서 충분히 쉬면서 도시락을 까먹기로 했다. 그러나 을씨년스런 날씨에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랑코 캠프장으로 내려선다.

"야, 이건 완전히 키네시오 농장이네요."

라바타워 안부에서 바랑코 캠프장까지는 표고차 약 700m로 쏟아질 듯 가팔랐다. 그 하산길은 마치 사막에서오아시스로 들어서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키네시오 킬리만자리 숲 때문이다. 바랑코는 킬리만자로에서 자생하는 키네시오 킬리만자리가 유일하게 군락을 이룬 곳이다.
400년 넘게 산다는 키네시오 킬리만자리는 묘하게 생긴 식물이다. 어떤 것은 외가닥으로 5~6m 높이로 자라고, 또 어떤 것은 선인장처럼 서너 가닥 가지를 치며 자란다. 꼭대기 잎이 말라붙으면 밑으로 처져 나무를 덮는다. 고산에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생존법인 듯싶었다. 그 키네시오 킬리만자리를 지나칠 때면 우리는 모두 신비롭고 원시적인 아프리카로 들어선 듯해 흐뭇해했다.

시라 캠프를 출발한 지 5시간 반만에 바랑코 캠프에 도착하자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근 채 피로를 풀고 있는 트레커가 있는가 하면 절벽 Rm트머리에 앉아 조망을 즐기거나 사색에 잠긴 트레커들도 보인다. 멋진 곳이다.
 
등 뒤로는 우리가 내려선 라바타워가 절벽을 이루고 있고, 오른쪽으로도 200여m 높이의 거대한 절벽이 돌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캠프장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바위병풍이 둘러쳐 있고 앞으로는 낭떠러지를 이룬 것이다.
 
▲ 바랑코 캠프. 키보와 라바타워 조망이 멋진 야영장이다. 이튿날에는 앞에 보이는 절벽을 넘어 카랑가 캠프까지 갔다.
 
밑에서 바라볼 때는 파고들 틈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던 거대한 절벽에는 산길이 잘 나 있었다. 정말 표범들이 어슬렁거리며 다닐 만한 길처럼 느껴졌다. 절벽을 오르는 사이 바랑코 캠프장은 또다른 풍광으로 우리를 흥분시킨다.

“우와~, 폭포다.”

킬리만자로에 물이 퀄퀄 흘러내리는 계곡이 있고, 또 폭포가 있다니-. 캠프장 아래로 3단 폭포가 아름답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절벽 위에 올라서자 능선마루의 바라푸 캠프(Barafu Camp·4,600m)가 보인다. 서부 영화 속의 인디안 주거지를 보는 듯한 지형이다. 그런 기분 때문일까. 카랑가 캠프(Karanga Camp·3,930m)로 가는 도중 절벽만 눈에 들어오면 더욱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 묵을 카랑가 캠프까지 산행 거리는 2시간30분. 내일 묵을 바라푸 캠프까지 간다 하더라도 대여섯 시간 거리다. 해서 하루에 밀어붙여도 별 무리가 없겠다 생각도 해봤으나 모두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고소적응 시간을 넉넉히 갖자는 데 네 사람 모두 합의를 보았다. 마지막 물줄기로 내려서자 석상명씨(49·동대부고 OB)와 함께 발을 씻을 생각에 신발 끈을 풀자 조셉은 아래쪽에서도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이 물줄기는 음브웨(Umbwe) 루트 캠프지로 흘러내린다.
마지막 물줄기에서 가파른 사면을 10여 분 올라서자 능선 사면에 자리 잡은 카랑가 캠프는 바랑코 캠프와 달리 경사진 사면을 깎아 만들었지만 제법 널찍하다. 마차메 루트와 음브웨 루트를 따르는 트레커들이 만나는 캠프장이다 보니 넓을 수밖에 없다. 

    
 -/ 글 사진 :  한필석 차장대우 
      / 월간 산 [459호] 2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