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를 넘어 하늘로… *-

paxlee 2008. 1. 13. 18:50
에베레스트를 넘어 하늘로…
 
1953년 에베레스트를 세계 첫 등정한 뉴질랜드 힐러리경 타계

히말라야 10개봉·남극도 '정복' / 인간적인 면모로 사랑·존경 받아, /네팔 돕기 앞장… 전세계 산악인이 애도.
 
"경외, 감탄, 겸손, 자부심, 흥분…. 이는 다른 이들의 수많은 실패 끝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오른 사람이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이었다."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Hillary)경은 1953년 에베레스트산 정상(8848m)에 세계 최초로 발을 디딘 뒤 느낀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 세계 산악계의 거인(巨人)인 힐러리(88)경이 11일 오전 9시(현지 시각) 모국인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병원에서 폐렴 등의 지병으로 숨졌다. 큰 위업(偉業)을 이루었음에도, 겸손하고 이타적인 자세로 평생을 산 그에게 세계는 조의를 표했다.

◆"우리가 저 자식을 넘어뜨렸어"

뉴질랜드에서 양봉(養蜂)을 하던 33세 청년 힐러리는 1953년 5월 29일 네팔의 셰르파족(族) 가이드인 텐징 노르게이(Norgay·당시 38세)와 함께 나중에 '힐러리 스텝'으로 이름 붙여진 험난한 수직 빙벽(높이 12m)을 올라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올랐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그는 "우리가 저 자식을 넘어뜨렸다(We knocked the bastard off)"는 유명한 말로 감격을 표현했다.
 
▲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2007년 1월 건립 50주년을 맞은 남극의 뉴질랜드‘스콧 기지’를 방문해 기념 연설을 하던 중,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AP뉴시스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소식은 나흘 뒤(6월2일) 엘리자베스(Elizabeth) 2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에서 정식 공표됐다. 전 세계는 기쁨과 놀라움에 휩싸였고, 여왕은 그에게 기사(knight) 작위를 수여했다. 이후 그는 1957년 썰매와 도보로 남극을 탐험해 그곳에 뉴질랜드의 '스콧 기지'를 지었고, 이듬해는 개조한 트랙터를 이용해 최초로 남극을 차량 탐사하는 데 성공했다. 또 1956~1965년에 걸쳐 히말라야 봉우리 10개를 더 오르는 열정도 보였다.

◆무한한 겸손

힐러리는 1975년 자서전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Nothing Venture, Nothing Win)'를 발간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자질을 가진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였던 노르게이와 자신 중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오랫동안 "우리가 함께 올랐다"고만 했다. 노르게이가 사망(1986년)한 지 13년 뒤인 1999년 출간한 회고록 '정상에서'를 통해서야, "내가 먼저 발을 디뎠고 노르게이가 곧바로 합류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오른쪽)와 네팔의 셰르파족 가이드인 텐징 노르게이가 당시 등정 과정에서 캠프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AP연합뉴스
 
1962년엔 '히말라얀 트러스트'란 단체를 설립, 노르게이의 나라 네팔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노력으로 네팔에 학교와 병원, 비행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1975년 네팔로 향하던 비행기가 사고를 당해 함께 있던 처와 딸을 잃는 슬픔도 겪었지만, 그는 2007년까지 120번이 넘게 네팔을 오가며 '정신적 고향'을 위해 헌신했다. 생존 인물로서는 유일하게 뉴질랜드 지폐(5달러)에 얼굴이 그려진 그는 1982년에는 자신이 사인한 5달러 지폐 1000장을 판매해 모은 53만 달러(약 5억 원)를 네팔에 기부하기도 했다.

◆애도 물결

헬렌 클라크(Clark) 뉴질랜드 총리는 11일 "힐러리는 에베레스트를 '넘어뜨린' 영웅일 뿐 아니라 결단력과 겸손함, 관대함을 갖고 살았다"고 애도했다. 네팔 사회도 슬픔에 잠겼다. 짐바 장부(Zangbu) 네팔 산악협회 부회장은 AFP통신에 "우리는 그를 아버지와 다름 없는 존재로 여겨왔다"며 "추도식을 가진 뒤 그의 동상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 글 / 남승우 기자 / 조선일보 2008.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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