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6구간(늘재-비리미기재)종주기
[늘재-(2.49)-청화산-(3.7)-갓바위재-(1.15)-조항산-(4.35)-밀재-(1.25)-대야산-(4.55)-버리미기재 (17.49km)]
지난번 산행에서 앞으로는 2주에 한번씩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대간 산행은 평소보다 더 빨리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대간 종주를 마치려면 17회쯤 남았는데 그것을 일박 이일까지 계산하면 일년 중 한달 정도를 산을 오가며 보내는 셈이 된다. 11시 출발인데 10분 늦게 삼성역에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해 12시 11분 음성휴게소에 도착했다. 거기서 잔치 국수를 먹었다. 12시 57분 증평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화산 IC를 나와 평야지대를 지나며 평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와 달리 오늘 구간은 험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오늘은 새로 산 배낭을 메고 왔다. 그래서 조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대장이 그런 배낭을 쓰면 산행에 더 힘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견디면 되지 하고 써 왔었다. 그런데 그 것은 밀착된 것이 아닌 개나리 봇짐 같아서 덜렁거렸다. 평소에 잘 몰랐었는데 지난 번 속리산 암릉 구간을 지날 때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몸에 밀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사서 준비했다. 2시 널재에 도착했다. 지난번 구간을 마칠 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그윽한 장소감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고 12시8분 출발했다.
산을 조금 오르고 나니 아래쪽으로 마을 불빛이 보였다. 널재에서 청화산 정상까지 바로 올라가는 구간이다. 밤이지만 마을 불빛으로 인해 우리가 지나온 주변의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지난번 마칠 때는 급히 하산해서 평소보다 더 그 주변 지리에 대한 감각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속리산의 장엄한 산세가 침묵하고 있었다. 높을 뿐 아니라 산세가 옆으로 길게 펼쳐있어 더 깊고 그윽하게 느껴졌다. 속리산은 실제로 그 곳을 지나오기 전까지는 관념상으로만 갖고 있던 세계였다. 그 곳은 범접하기도 쉽지 않은 곳일 것 같았는데 지난 구간에서 당일로 지나왔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의식에서는 한 구간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지났다. 그런데 지나와서 되돌아보니 속리산 산세의 기운을 대하니 특별한 감동이 생겼다. 가는 동안 군데군데 암릉 밧줄이 매어 잡고 올라갔다. 밤의 세계 밤의 정적이 그윽했다. 아래 마을 불빛이 보였다. 봄내음의 공기와 너른 산세의 기운을 대하며 걸었다. 낮과 다른 밤의 세계가 펼쳐졌다. 채 총무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데 대화 내용이 우리 일행인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누군가 길을 잘 못 들어서 연락이 온 것 같아서 앞에 가던 이대장에게 말을 전했다. 우리는 봉우리에서 멈춰 주변을 돌아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뒤에서 일행이 올라왔다.
2시 18분 헬기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걸어갔다. 앞쪽의 오르는 봉우리 너머로 더 큰 산세가 보였다. 그 곳이 청화산일 듯 했다. 다시 약간 내리막길을 갔다. 완만한 좌우로 굽은 길을 지났다. 돌아 본 능선 너머로 산자락 위에 떠 있는 교교한 달빛을 느끼며 걸다. 2시 29분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그 곳에 그런 표지석을 만들어 놓은 것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청화산을 복지(福地)라고 극찬 한 데서 연유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뒤에 오는 일행을 가다리며 스케치 했다. 뒤에 오던 일행이 다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다시 청화산 정상을 행해 걸어 올랐다.
2시 52분 바위로프를 잡고 올랐다. 검은산 허리 너머 속리산 산세가 보였다. 3시 4분 우측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자갈을 주워 쌓은 작은 돌탑이 보였다. 그 곳을 지나 경사 길을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3시 17분 청화산(970m)에 도착했다. 이대장이 표지석이 바위 위에 올라 있다고 했다. 그 정상으로 가서 정상석 사진을 찍고 바위 봉우리 아래로 와서 일행을 기다렸다. 백원철 건축사가 번갈아가며 이대장과 나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밤에 아른거리는 모습을 포착할 의식을 갖는 것이 상당한 프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검게 윤곽이 보이는 산줄기 사이로 이곳저곳 점점이 불빛이 보였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정상적 주변 공간이 좁아서 함께 서지 못하고 나누어 두 번 찍었다. 3시 45분 청화산을 출발했다. 내리막 길에 바위로 된 곳을 지났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으며 뒤를 돌아보니 산에 걸려 보이는 달이 올라오는 일행의 헤드랜턴 불빛과 어우러져 보였다. 우측으로 봉우리를 돌아 내려가다보니 3시 52분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머리 위쪽으로 북극성이 보이고 우측에 마을 불빛이 보였다. 4시 8분 조금 후 길에 쌓인 낙엽이 푹신하게 느껴지는 완만한 내리막 낙엽길을 걸었다.
다시 오름길에 능선 너머가 트여 보였다. 그리고 뒤로는 청화산 검은산세가 보였다. 뒤로 더 이상 속리산 보이지 않았다. 앞에 걷던 이대장이 “출출하네“라고 했다. 다시 내리고 오름길을 걸어 암릉 구간을 지나니 평평한 길이 나왔다. 앞서 걷던 대장이 바람 없는 곳에서 쉬자고 했다. 암릉 구간을 지나니 우측에 낭떠리지가 있어 조심하며 지났다. 4시 27분 우측으로 급히 꺽인 내리막 급경사길을 갔다. 그리고 다시 길을 오르다 멈춰 휴식을 가졌다. 강성택 건축사가 이번에도 복분자 술을 가져와 돌렸다. 하늘에 별이 아까보다 더 총총해 보였다. 4시 45분 암릉구간이 나타나 7mm로프를 잡고 올랐다.
그리고 다시 암릉 민둥산을 지났다. 주변이 절벽이 되어 위험이 느껴졌다. 다시 내림길을 걷다 다시 올랐다. 그리고 앞에 놓였던 봉우리를 넘어 다시 내림길을 걸었다. 경사가 심한 구간을 내려가면서 옆에서 “한없이 떨어지네...” 라고 했다. 조용한 밤에 돌 구르는 소리가 나서 짐승이 지나가는 줄 알고 바라보니 옆에서 돌이 구르는 소리라고 했다. 점차 밤이 지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우리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봉우리 아래로 내려오니 길 위에 낙엽이 푹신하게 쌓여 있었다. 좌로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불빛이 보엿다. 5시 봉우리를 올랐다. 점차 주변이 훤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갈 능선이 포근하게 펼쳐보였다. 봉우리를 오른 후 다시 내림 랜턴을 꺼도 그리 어둡지 않은 듯 해서 끄고 있다가 다시 켜고 걸어갔다. 비탈길 내림길을 걸어가니 다시 낙엽이 쌓인 평평한 길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에서 칼날 같이 바위가 날이 선 곳을 지나갔다. 어둠속에서 앞으로 검게 산세가 보이고, 새소리가 들렸다. 앞에 나타난 봉우리을 좌측으로 지나 능선 길을 걸었다. 어둠이 점차 가시고 있었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완만한 내림길을 걸었다. 5시 19분 갓바위재에 도착했다. 거기서 조황산까지 15분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5시 20분 주변이 밝아져서 랜턴을 껐다. 잠시 멈춰 지점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오름길을 걷다보니 5시 21분 헬기장이 나왔다. 잠시 후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다 다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 좌우로 너른 큰 산세의 공간이 느껴졌다. 다시 내림 길을 걸었다. 우측 계곡으로 삶터의 불빛이 보였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가니 조항산 봉우리가 보였다. 이제 그 길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다. 점차 오를수록 능선이 칼 바위 암릉으로 되어 있어 발에 자극이 왔다. 능선을 걷는 동안 약한 바람이 불었다. 6시 암릉을 지나며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다시 오르다 뒤돌아 산세가 보여 스케치를 하고 있으니 뒤에 오던 최회장 부부가 지나쳐 갔다. 5시 58분 조항산(951m)에 도착하며 앞을 바라보니 해가 막 솟아 있었다. 지평선에서 약간 떠 있었다. 아까 갓바위재에서 여기까지 15분으로 쓰여 있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일찍 당도했으면 지평선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었을 것하고 아쉬움 마음이 들었다. 해가 떠서 주변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대장이 앞으로 진행할 방향의 주요 산들을 가리키며 이야기 했다. 지난번은 제대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느끼며 지났다. 속리산은 우리 일행의 산행구간을 단숨에 험준한 곳으로 돌려놓았다.
험준한 암릉의산세는 그만큼 육신을 고단하게 했다. 그러나 막바지에 다른 신경을 쓰느라 그 산행의 기분이 저하된 측면도 있었다. 앞으로 게가 옆걸음을 치듯 대간은 우측으로 지나간다. 그런데 그 곳들은 역사적으로 마치 희말라야를 넘듯 다른 세계를 경계 지우던 곳이다. 국가의 강건한 경계였으며 넘나드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의 발길 닿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처럼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은 경관을 보고 심신을 맑게 하려거나 척박한 곳에서 견디며 수련하려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수도처로서 이상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화양동이 그런 곳이다.
다시 출발해 내려가다 6시 15분 앞에 있던 봉우리를 지났다. 그 곳은 진달래 이제야 막 피어나고 있었다. 지대가 높아 기온이 낮은 듯 했다. 내려갈수록 길이 완만해졌다. 계속해 내려가면서 들꽃길을 걸었다. 길가에 있는 고사목이 배를 멈추게 하는 돗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아래로 가니 바람에 쏠려 많은 낙엽이 길에 쌓여 잇어서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주변에는 뾰족뾰족 피어오르는 새싹들이 보였다. 6시 36분 고모령(670m)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이대장이 10m 아래에 있는 고모샘에 들러 수량을 확인하고 왔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리니 잠시후 일행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는 거기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자리를 두개 이어서 펴고 각자 휴대한 접이의자를 펼쳐 빙 둘러 않았다. 이번에도 박사장이 선지 해장국을 끓였다. 출출한데다 아침에 쌀쌀하게 느껴지는 터에 따뜻한 찌게를 먹는다는 것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각자 갖고 온 부침, 삶은 오징어, 총각김치, 무무 말랭이 등에다 소주잔을 돌려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며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7시 30분 다시 출발했다. 지도에 앞쪽에 오르는 산은 마귀할미통시바위가 놓여 있었다. 그 산을 오르다 7시 56분 통시바위 갈림길에서 뒤의 일행을 기다려 쉬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백원철 건축사가 안경을 잃어 버려서 찾기 위해 뒤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고 고모령에서 의상저수지 쪽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판단한 일이라 할 수 없이 생각하고 나머지 일행이 다시 출발했다. 햇살이 점차 따가워지고 있는 가운데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 길은 경사가 심해서 발이 미끌어지기도 하여 조심스러웠다. 8시 10분 큰 소나무가 길을 막고 뿌리를 드러낸 채 넘어져 있는 봉우리를 지났다. 그리고 8시 14분 전망이 좋은 바위에 도착해 쉬며 뒤의 일행을 기다렸다. 그 곳에 큰 바위가 있어 한동안 누워 쉬었다.
무박 산행이라 졸음이 왔다. 잠시 후 일어나니 기다리던 최회장이 도착했다. 일행이 좀 더 쉬려 하자 그는 걸음이 느리니 먼저 출발하겠다고 하며 떠났다. 몇 사람은 아예 거기서 좀 자고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8시 21분 봉우리 우측으로 돌아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곳 나무들은 아직 싹이 돋아나 있지 않았고 땅 바닥에만 파랗게 풀이 돋아나고 있었다. 주변이 점차 햇살이 퍼져 있었다. 능선 길에 다다르니 능선 좌측으로 산 사이에 형성된 들녘이 보였다. 그 곳은 산세로 둘러친 계곡에 좁게 띠처럼 형성된 다른 곳들과 달리 조금 너르게 보였다.
8시 51분 큰 바위 봉우리가 나타 우측으로 돌아 걸어갔다. 뒤로 지나온 봉우리가 보였다. 그 봉우리 우측이 트여 바라보니 멀리 큰 산줄기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8시 52분 큰 바위가 나타났다. 이대장과 조병섭 건축사가 우측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바위 사이로 지나갔다. 그 곳을 빠져 나가다 우측으로 돌아가던 그들을 다시 만났다. 빠져나가서 뒤돌아보니 그 통로로 멀리 산세가 겹쳐 보였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앞쪽의 숲과 봉우리 너머로 대야산 정상으로 보이는 봉우리 끝이 보였다. 다시 능선을 올라 평평한 길을 걷다 우측에 큰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는 것을 보며 지나갔다.
잠시 후 다시 봉우리를 넘어 지나갔다. 바위 옆에 큰 소나무가 가지를 넓게 펼치고 서 있었다. 9시 바위 옆으로 지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옆에서 아래쪽에 보이는 계곡을 밀령일거라고 했다. 그러나 표지나 옆으로 통과되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완만한 길을 걸어가는 동안 봉우리가 가로 막듯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참동안 오름길을 걸어 넘었다. 경사길을 한참 오르는 동안 힘이 들어 이마에서 굵은 땀이 맺혀 흘러내렸다. 봉우리를 넘어가니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야산 정상부가 보였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 9시 8분 밀재에 도착했다.
문경소방서표지가 있는 것이 문경 관할이었다. 다시 산을 올라갔다. 바로 앞에 거북처럼 보이는 큰 바위가 보였다. 앞서가던 이대장이 그 바위에 다가가면서 그 바위 뒤에서 소변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어디쯤 오는지도 모르는데 “내려오는 사모님이에게 보이지 않겠지” 하며 바위 뒤로 갔다. 이제 정말로 대야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대야산이 있는 이번 구간은 백두대간 전 구간 중 가장 험한 구간이라고 들은적이 있다. 암릉이 많아서 로프를 의지해 지나가야 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오늘 산행에 나서면서는 대야산을 지난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의식하고 있었다.
지나오는 동안 로프를 잡고 암릉을 지나기도 했지만 아직 소문에 듣던 것 같은 험한 구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나 힘이 들지 긴장도 되었다. 산경사지에 햇살이 가득 퍼져 있었다. 길 옆에 있는 생강나무에 꽃이 지고 새싹이 오르고 있었다. 9시 13분 큰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가 계곡처럼 되어 있는 사이로 뒤로 지나온 봉우리가 보였다. 9시 16분 봉우리에 올라서자 마치 조각을 설치해 놓은 듯한 바위가 보였다. 그 곳을 지나가자 다시 좌측으로 마치 바위 표면이 천전리 암각화를 새겨 놓은 듯한 바위가 보였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곳에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다.
9시 21분 능선을 오르자 앞쪽으로 정상부가 보였다. 소나무에 나무판자로 만든 표지에 대문바위, 코끼리 바위라고 써 놓은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뒤로 지나온 산세가 다시 보였다. 그 곳 봉우리 표지판에 지나온 밀재가 25분 걸린다고 써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보니 밀재에서 그 곳까지 1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기서 나아갈 방향에 대야산 정상부가 보였다. 그리고 앞쪽에 큰 바위가 보였다. 9시 29분 좌측 위로 집채만 한 바위가 마치 조각대에 올려놓듯 서 있었다. 앞으로 지나갈 능선을 바라보니 조형미가 빼어난 모습으로 펼쳐 보였다. 다시 나아가니 바위의 뿌리 부분이 깍여 있어 그 사이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다시 그 곳을 지나가니 높은 바위 사이가 절벽처럼 트여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그 사이로 보니 바위 사이로 속리산 쪽 산세가 보였다. 게속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대야산 정상부가 보였다. 그 정상부로 지나는 길이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징검다리처럼 흩어져 놓여 있고 그 뒤로 정상 봉우리가 보였다. 앞으로 보이는 곳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순광을 받아 빛깔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다시 앞으로 나가니 소나무 한그루가 벼랑 같은 바위 옆에서 조형적인 자태로 서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좌측으로 난 길을 돌아갔다. 우측 위를 바라보니 큰 바위들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능선 마루에 다가가지 않고 우측으로 올랐다. 나무 잎 평상으로 깍아 남든 나무판에 까만 글씨로 대야산 정상이라고 쓰여 있고, 빨간색 화살표를 그려 놓은 표지판이 있었다. 지나온 뒤를 보니 멀리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가까이에는 조항산과 대야산 사이에 놓여진 아담한 산의 모습도 보였다. 비석처럼 놓여 있는 바위앞에 이르니 조항산 쪽에 조금 더 가까이서 뻗쳐 내려가는 산줄기가 계곡따라 길게 이루어진 들녘으로 뻗쳐 있고, 그 뒤로는 굽이굽이 산줄기가 펼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9시 42분 지나는 길에 줄이 끊어진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을 지나 다시 봉우리를 오르며 보니 오른편 너머로 정상이 보였다. 대야산 정상은 하나의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것과 달리 암석으로 된 봉우리 두개가 연이어진 상황이었다. 그 봉우리 사이에 계곡이 놓여 잇고 봉우리를 넘어선 다음에는 다시 그 봉우리를 로프를 이용해 올라서야 되었다. 내리고 오르는 곳에 로프가 각각 걸려 있었다. 앞 쪽 봉우리를 오르며 뒤돌아보니 여러 바위 조각이 높은 성벽처럼 이루어진 곳을 로프를 잡고 내려오도록 되어 있었다. 8시 48분 다시 로프를 잡고 봉우리에 올라서니 그 너머로 다시 계곡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리고 앞 쪽의 봉우리에 이대장이 올라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한번 로프에 의지해 계곡을 지나 정상 봉우리로 올라갔다. 9시 53분 대야산(930.7m) 정상에 도착했다. 거기서 사방이 휜히 바라보였다. 주변은 거대한 산세가 끝없이 펼쳐지는 형국이었다. 넉넉한 품으로 주변에 화영동, 선유동 같은 별천지의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산세가 이루는 공간들이 대간의 줄기를 이루며 지나가고 있었다. 거기서 일행이 다시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멀리 뒤에 오는 일행이 보였다. 바로 뒤에 오던 일행인 줄 알았는데 가장 뒤에 오는 일행들이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다 도착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10시 30분 대야산을 출발했다.
이 대장이 금새 앞쪽 봉우리로 넘어가 바위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뒤 이어 바위 봉우리로 올라갔다. 지나갈 아래쪽으로 서릿발처럼 바위가 모여 이루어진 산봉우리가 보였다. 그 곳 가까이 내려오니 길이 좌측으로 급히 꺽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했다. 위험이 느껴져 스케치북을 배낭에 넣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냥 목에 걸고 있었다. 이대장이 로프를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뒤따라 내려왔다. 그 곳은 20m쯤 되는 직벽구간을 다섯 번 정도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긴장을 하며 로프에 의지해 내려오다 보니 이미 꽤 내려오게 되었다.
다시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지나 내려갔다. 다시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내려온 대야산봉우리가 절벽으로 보였다. 봉우리를 지나 내려오면서 한동안 완만한 길을 지났다. 주변이 봄철에 생명력이 뻗치고 있었다. 찬 겨울을 언 몸으로 지난 나무줄기에 생명이 약동하여 싹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10시 53분 활짝 피어난 진달래가 길 양옆을 수놓듯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났다. 가다보니 평평한 바위가 전망대처럼 되어 잇는 곳에 두 그루 큰 소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계곡사이로 높은 산이 푸르게 솟아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보였다.
10시 58분 촛대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앞에 놓인 봉우리를 올랐다. 촛대재에서는 급경사진 봉우리로 보였으나 조금 오르다 보니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좌우로 경사를 이루고 길 부분만 솟아 있었다. 가다가 좌측 계곡을 보니 잎이 핀 나무들이 점차 무성해지고 있었다. 기온이 차이가 나는지 참나무도 잎이 피어 자라나고 있었다. 어제는 4월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온난화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오늘 같은 날씨에 그것을 실감케 된다. 그만큼 계절도 빨리 변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문명화가 불러오는 당연한 귀결들이다. 그리고 요새는 그 문제가 현실화 되면서 인류의 가장 큰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위기가 바로 닥치면서 이제 더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하게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고부터 망각하고 있던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완만한 길을 걷다 다시 봉우리를 향해 경사진 길을 올라갔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대야산이 조금 멀리 보였다. 그런데 그 봉우리 끝이 유독 더 뾰족하게 보여 그 산을 다가가면서 느끼던 인상과 다른 느낌이었다. 이 쪽에서 보니 우리가 로프를 잡고 내려온 봉우리만 봉긋 솟아 보였다. 그리고 그 절벽을 이루는 바위 모습이 마애삼존불처럼 사람 형상으로 보였다. 다시 길을 걸어가다 앞을 보니 로프가 매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 길을 오르다 보니 묘를 이장한 듯 보이는 곳이 나타났는데 그 꼭대기 부분이 촛대봉 정상이었다. 11시 10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 구간에서는 청화산, 조항산, 그리고 대야산이 주봉이었다. 그래서 주로 그 산들을 의식하며 걸었다. 그래서 대야산에 오른 후로는 잠시 후 산행이 끝날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마칠 길이 먼 것 같았다. 봉우리를 넘어 내려오면서 앞쪽을 보니 반대쪽에 보이던 대야산쪽 방향과 달리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앞에 보였다. 이제 막 피어난 숲은 햇빛을 가리지 않아서 밝은 빛이 가득 내리 쬐고 있었다. 그 햇살을 받은 진달래가 활짝 피어 눈부시게 화려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11시 24분 불란치재(510m)를 지나 다시 길을 올라갔다. 조금 후 뒤를 돌아보니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키가 큰 나무 숲 뒤로 대야산이 따뜻한 대기 가운데 푸른빛을 띠어 보였다. 걷다보니 앞에 다시 봉우리가 나타났다. 경사길을 조금 오르니 다시 완만한 길이 놓여 있고, 길 끝 지점에 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보였다. 길을 걷다 큰 바위가 나타나 로프를 잡고 올라갔다. 바위를 올라 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구간이 촛대봉까지 능선으로 완만히 이어져 보였다. 수직으로 떨어지던 대야산 봉우리도 거기서는 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큰 바위를 우로 돌아 올라가 돌아보니 커다란 바위 끝에 발가락처럼 작은 바위가 돋아난 모습의 미륵바위가 보였다. 그 곳을 지나니 밋밋한 흙산으로 된 봉우리가 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 봉우리까지 밝은 햇살아래 완만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끝 지점에 이르니 다시 큰 바위가 있어 우측으로 돌아 지나갔다. 그 봉우리를 지나니 송면 쪽 마을이 좀 더 가깝고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뒤로는 여전히 속리산 줄기까지 보이는 커다란 산세가 보였다. 봉우리를 넘은 후 길을 내려가니 다시 봉우리가 보였다. 그 봉우리는 끝이 암릉으로 되어 있어 다시 자나기 힘들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오늘 산행에서 대야산은 암릉으로 유명해서 각오를 했지만 봉우리를 오르면서는 막바지까지 계속해서 르프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더 힘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날씨가 금새 더워져서 때 이르게 땡볕을 쬐며 지나는 상황이 되었다. 여름철보다 기온은 낮지만 그늘이 없는 점은 더 불리했다.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가까이 다가가니 겹쳐 새워져 보이는 큰 바위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나는 길은 좌측으로 돌아나 있어서 비켜갈 수 있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가니 기어코 정상으로 올라 봉우리를 거쳐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 봉우리 바위를 올라가는 도중 좌측으로 시선이 트인 곳이 있었다.
바위와 큰 소나무 한 그루가 V자를 이루어 멀리 보이는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르고 보니 그 곳이 지도에 표시된 곰넘이봉(733m)이었다. 거기서 함께 오른 이대장, 채총무와 사진을 찍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그 봉우리에서도 역시 주변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 보였다. 오늘 구간을 마칠 버리미기재 너머로 다시 지나야 할 산들이 펼쳐 있었다. 거기서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우측으로 용틀임하며 지나가는 구간이다. 거기서 보니 주 산맥이 지나가는 방향의 지형과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아갈 구간에 하얗게 희양산이 보였다.
*[백두대간 마루금이란 / 백두대간 지도상에 대간 길을 굵은 선으로 그의 놓은 표시금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800km이다.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는 약 670km이다.]
그 곳은 우리 일행이 다음에 갈 구간이인데 그 산의 위치가 뚜렷해서 우리가 지나갈 길을 가늠할 수 있었다. 대간의 큰 흐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지나갈 그 영역에 희양산 봉암사, 소백산 부석사 등 속세와 멀리 떨어진 수도처가 있었다. 그리고 예로부터 오지를 넘나들던 큰 고개가 있다. 다시 로프를 잡고 내려왔다. 앞에 봉우리가 보였다. 그 봉우리도 봉우리 끝이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길 옆에 진달래가 유독 더 화려한 색상으로 띠며 피어 있었지만 심신이 지쳐서인지 더 이상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봉우리 바로 앞에 당도해 넘어갈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길이 좌측으로 돌아나 있어서, 비켜 가나보다 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높다란 바위 절벽에 로프가 매인 곳이 앞을 가로 막고 나타나 기어코 넘어가야 했다. 그 곳으로 다가서던 이대장이 “죽여라 죽여! 인내심 테스트 하는고만...” 하고 평소와 달리 볼맨 소리를 했다. 힘겹게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더 높은 봉우리가 보여 정말 심신을 지치게 했다. 잠시 후 그 마지막 봉우리를 넘었다. 거기서 마칠 때까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 재가 지나는 길이 보였지만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12시 27분 헬기장을 지났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다 보니 차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하산 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내려가다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도로가 보였다. 그리고 도로 가까이 다가가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서 있었다. 12시 30분 오늘 산행의 종착지 버리미기재에 도착했다. 먼저 온 조병선 건축사가 계곡에서 등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덧 때 이르게 등목을 반기는 상황이 되었다. 차에 오르니 맥주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반갑게 한 캔을 들고 다리 및 계곡으로 갔다. 발을 게곡물에 담구니 금새 얼얼했다. 맥주를 계곡물에 잠구어 두었다가 천천히 따서 마시니 맛이 일품이었다. 신발을 신고 올라와 먼저 도착한 일행끼리 차 옆에 자리를 펴고 맥주를 더 마시며 기다렸다.
잠시 후 일행이 하나 둘 도착했는데 모두 얼굴에 힘겨운 표정이 다 드러나 있었다. 그들도 계곡으로 씻으려 갔다. 잠시 후 올라와서 음료수를 마시고 나니 점차 기운이 회복되어 보였다. 박정호 사장이 함께 타고 가기 위해 백인철 건축사와 연락을 했다. 옆에서 궁금해 물어보니 안경을 찾지 못했다고 하였다. 일행이 다 타자 최회장이 “산이 사람을 약올려... 사람 갖고 테스트를 해” 하며 힘겨웠던 소회를 드러내자 모두 맞장구를 치며 한마디씩 했다. 1시 45분 버스가 출발했다. 내려가는 길에 우측에 산불이 나서 출동한 소방관들이 진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초기에 소방차가 출동해서 불길이 잡혀가고 있었다.
계속 길을 가다 우측으로 선유동 방향 표지판이 보였다. 차가 송면 삼거리로 내려오자 기다리던 백인철 건축사가 탔다. 부인이 얼마전 자신의 생일 선물로 사준 비싼 안경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처럼 안경을 찾지 못해 심난할텐데 비비빅을 사 갖고 와서 나누어 주었다. 그는 의상 저수지로 내려와서 아줌마가 운전하는 차를 히치하이킹을 해서 얻어 탓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일행이 “과연!” 하고 호응했다. 버스가 다시 출발해 가다 우측 37번 도로로 진입했다. 2시 30분 이대장이 알고 있던 할머니 순두부집에 도착했다. 이 곳은 우리가 내려다 본 삶터 중 하나였다.
산에서 보이던 지점으로 내려와 들르니 더 살갑게 느껴졌다. 그 곳은 다른 식사 메뉴는 없고 순두부만 팔고 있었다. 모두부도 있지만 따뜻이 끓여준 순두부 맛이 일품인데 금새 떨어지고 말았다. 더 주문하니 더는 없다고 했다. 순간 할머니가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만 정성으로 만드셨을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졌다. 2시 54분 순두부집을 나와 차에 타고 출발했다. 4시 37분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났다. 강변도로로 접어드니 우측에 한강이 보였다. 5시 3분 버스가 출발지인 한전 앞에 도착했다. 종착지까지 갈 사람은 그냥 안에 타고 있고 먼저 내린 일행들은 각자 교통편을 이용해 집으로 행했다. (김석환 0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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