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자재암 일주문 주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한창인 소요산 산행기 *-

paxlee 2008. 11. 9. 22:54

                자재암 일주문 주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한창인 소요산 산행기

 

산행일시 / 2008, 11, 09. 일요일 오전 10시.
만남장소 / 동두천 소요산역 앞.
산행회원 / 아우게님, 살미님, 가을님, 샛별님과 연수(샛별님 딸 10살), 드리님, 은하수님, 장성근님.

                이상일님, 저녁노을님, 소나무.
산행코스 / 소요산역-팔각정매표소-하백운대(440m)-중백운대(510m)-상백운대(559m)-칼바위-

                나한대(571m)-의상대(587m)-공주봉(526m)-자재암-일주문 단풍

 

 

 

오늘은 소요산 단풍산행을 가기로 하였다. 창동역에 도착하니 소요산행 전철이 막 출발하고 있었다. 다음 전철은 의정부행이고, 그 다음 차는 양주행이어서 망서리며 동료들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궁금하여 전화를 하였드니, 지금 도착하고 있는 의정부행에 타고 있다고 하여 열차가 출발하기 전에 가까스로 승차를 하였다. 제일 앞 칸으로 가서 반가운 동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출발을 하였다. 일산에서 오는 살미님과 샛별님은 승용차편으로 녹양역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의정부역에서 기다리다가 소요산행 전철을 타고 출발하였다. 성남에서 오는 저녁노을님도 이 차에 승차하였다는 연락이 왔다. 

 

약속시간 보다 약 15여분 늦게 소요산역에 도착하니, 회사일로 바쁜 일정 때문에 거의 한 달만에 산행에 참여하는 반가운 살미님과 샛별님, 그리고 귀여운 따님인 연수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소요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자재암 일주문을 향해 오르다가 우리는 6.25참전용사기념탑이 있는 곳으로 산행을 시작(10:35)하였다. 이 능선길은 처음부터 오르막 길이 전개되어 힘 들게 올라가야 한다.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땀을 흘리며 20여분을 오르면 팔각정에 이른다. 이곳에선 입장료를 받는다. 전에는 2000원이었는데, 입장료 받는 것에 말이 많아서 그런지 1000원씩을 받고있었다. 팔각정에 조금 쉬었다가 출발을 하였다.

 

날씨는잔뜩 흐려있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않아 다행이었다. 단풍철이라 그런지 소요산 산행 등산객들이 생각외로 많았다. 전철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편리해 져서 그런것 같기도 하였다. 산 능선마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들기는 하였는데, 붉은 색은 찾아보기 어렵고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올해는 단풍이 곱지 않다고 한다. 가뭄으로 수분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아 그렀다고 전한다. 벌써 참나무는 낙엽이 되어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낙엽이 산을 온통 두껍게 덮고 있다.

 

"명성산은 가을억새가 유명하고, 소요산은 그래도 가을단풍이 일품이고, 자재암이 있어 소요산의 이름을 더 높이고 있다. 자재암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얼이 깃든 전설의 절로도 유명하다. 대개의 사찰이 그 격을 높이기 위해 원효대사나 의상대사, 혹은 도선국사 같은 고승들을 끌어들여 창건주로 숭앙하고 있다. 그러나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의상대사의 수도처로 두 대사를 '모시고' 있다. 또한 원효대사가 수행하는 동안 신라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을 데리고 와 머물렀다는 전설의 궁터가 있어 원효대사의 창건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자재암이 6.25전쟁 때 폐허가 되었다가 지금의 법당은 그 후에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쓴 '소요산기'에 요석궁에 관한 기록이 있고 위치는 원효폭포에서 서북쪽으로 80장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소요산의 마지봉을 공주봉이라 이른다. 자재암의 유래는 수행 도중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심야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께서 원효스님에게 하룻밤 쉬어 가기를 원했고 중생구제의 구실을 붙여 수도일념의 심지를 시험하였으나,"

 

"원효대사 이르기를 「心生卽種種法生(심생즉종종법생)」이요 「心滅卽種種法滅(심멸즉종종법멸)」이라 마음이 생한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법이요, 마음이 멸한즉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는 법문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후 지극한 정진으로 더욱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계할 생각으로 정사를 짓고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의 이름을 자재암(自在庵)이라 했다고 한다."

 

"소요산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것을 보면, '소요(逍遙)'라 함은 '기분 내키는 대로 거닐다', '바람을 쐬다', 혹은 '자적(自適)하여 즐기다'라는 뜻 이다.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스님들의 삶을 빗대기도 하여, '소요복(逍遙服)'이라 하면 스님의 옷, 가사(袈裟)를 뜻하기도 하고, '소요자재(逍遙自在)'라고 하면 '구속됨 없이 자유로이 소요함'을 뜻한다. 요즘 같은 황량한 세상에 이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게다가 소요산에는 자재암까지 있어 그야말로 '소요자재(逍遙自在)'인 산이다. 소요산에는 청량폭포(淸凉瀑布)와 원효폭포, 그리고 비룡폭포와 선녀탕이 있다." 

 

"소요산에는 요석공주와 관련된 공주봉과 원효대사의 원효폭포 및 원효대, 그리고 의상대사의 의상대까지 있다. 의상대는 소요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587m이다. 훤칠하게 크고 잘 생긴 봉우리인데 원효대사의 전설이 더욱 강한 소요산에 의상대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점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통일 이후 의상대사의 화엄종 세력이 더욱 득세하면서 그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원효대사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각인된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설화에서도 의상대사가 한 수 위로 표현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신라의 고승으로 너무 유명하여 삼각산에도 원효봉과 의상봉이 마주하고 있다. 원효폭포에서 300여m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대웅전이 나온다. 앞 계곡은 맑기가 주정같다. 또한 대웅전 앞 폭포도 장관이어서 스님의 독경 소리와 폭포소리가 서로 시샘하는 듯 높아만 간다. 또 하나의 보물은 '반야바라밀다심경 약소(般若波羅密多心經 若疏)' 언해본이다.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대한 주석서인데 세조 10년(1464) 금강경과 함께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이다. 세조의 명령에 따라 효령대군을 비롯한 고승들의 참여로 국역하고 교정하여 펴낸 것이다."

 

팔각정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서 소요산의 산세를 물들이고 있는 단풍은 가을의 풍요로운 풍광을 만끽하게 해 준다. 날카로운 바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길을 오르면 다시 평평한 길이 이어지고 또 한 번 오르막을 오르면 작은 능선에 올라선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날카로운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있어 주의를 하면서 진행을 하여야 한다. 작은 봉우리 두어개를 넘어서 올라가야 첫 봉우리 하백운대(440m)에 도착을 한다. 나무잎들이 많이 낙엽이 되어 산하의 조망은 더 좋아진 것 같다. 동두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시내에는 그래도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중백운대(510m)를 지나 상백운대(559m)에 이르는 길도 여전히 오르막 길을 오르고 구슬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었다. 조금 더 진행하다가 길 옆 넓은 곳에 많은 등산객들이 중식을 들고 있어, 우리도 한곳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식사(12:20)를 하였다. 정상주로 막걸리 한잔씩을 하고 찌게와 다양한 반찬을 풀어놓으니 먹음직 하였다. 각자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반찬들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맛은 산행의 또 다른 재미이고 등산객의 주고받는 정이 쌓여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산행보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아껴주는 정이 산방의 산행을 이끌어가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식후의 과일과 커피 등은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 넉넉함이 있고, 함께하는 우정이 있어 힘든 산행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식후에 연수가 핸드폰의 음악을 틀어놓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예쁜 춤까지 선사를 해 주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자리를 정리한 후 다시 산행을 시작하였다. 이번 구간은 칼바위 능선이라 암벽구간을 지나가는데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암벽사이를 타고 내려가는 곳에서는 지체가 되기도 하였고, 나한대(571m)를 오르는 오르막의 가파른 길은 또 땀을 흘리게 하였다.

 

암벽길 옆에 아름다운 푸른잎의 소나무는 암벽길 산행의 어려움을 달래주었다. 경치가 마음에 든다고 사진을 찍고, 단풍이 아름답다고 사진을 또 찍고, 그렇게 즐거운 산행을 하면서 진행을 하여 나한대에 올라서니 더 넓은 산하의 조망은 등산객들 만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나한대에서 한 참을 내려가서 다시 소요산의 정상봉 의상대에 오르는 길도 암벽의 경사길이어서 힘든 산행을 해야한다. 의상대에 오르는 정상봉은 암벽으로 되어있어 어렵게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정상에 올라서면 소요산 의상대 587m라고 표지석이 서있는데, 산에 비교하여 표지석이 너무 초라하게 적다. 

 

우리는 정상에서 먼저오른 산객들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후미를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을 하지않아 전화를 하였드니, 연수가 오르기 힘들어 겨낭 지나갔다고 하여 공주봉을 향해 출발하였다. 의상대에서 공주봉으로 연결되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다듬어 져 있다. 많은 계단길을 지나서 내려가니 후미가 우리보다 앞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주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바위 암벽때문에 허리길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한 참을 평평한 길을 돌아서 공주봉을 향해 올라갔다.

 

공주봉(526m) 정상에는 나무로 광장을 만들어 놓아 그곳에 앉아서 과일과 삶은 고구마, 삶은 계란,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사서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동두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조망은 아름다웠다. 아파트가 많고 현재도 신축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전철이 연결되면서 삶의 환경이 많이 좋아진것 같다. 휴일이면 이렇게 많은 등산객들이 소요산을 찾아주는 것도 동두천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많은 휴식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하산을 하였다. 하산 길은 경사가 급하고 이곳에도 암벽길이 군데 군데 존재하였다.

 

낙엽이 지천으로 쌓여있는 길을 내려갔다. 구절터에 이르면 길은 평지처럼 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속리교를 지나 일주문에 이르면 환상적이 단풍이 길을 수놓아 등산객의 눈 길을 사로잡는다. 소요산 단풍은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정열이 타는 것 처럼 붉은 단풍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그 사이사이에 푸른 단풍과 소나무들이 한데 어울어진 소요산 단풍이 오늘 이렇게 많은 등산객을 불러 모은 것 같다. 올해는 내장산 단풍구경을 가지 못하였지만, 내장산 단풍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올해 단풍은 여기서 단풍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보고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내려오다가 식당(16:40)에 들어가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였다. 오며가며 먹고 또 먹어 배는 거득하였지만, 산행 후에 간단하게 한잔 나누며, 오늘 산행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하고, 다음 산행에 대한 의견도 나누며 함께 무사히 소요산 종주산행을 마무리 한 것에 대해 건배를 하였다. 어린 연수가 끝까지 힘든 산행을 해 주었고, 드리의 수다는 산행의 안주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첫 산행을 함께 해 주신 이상일님에게 고마움을 드리며, 오랜만에 소요산 산행을 같이 해 준 살미님과 샛별님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즐거운 산행 함께 해 주신 님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8:03분 발 전철로 귀가하였다.

 

 

 

 

 

               [소요산 자료제공 / 장꼬마마님, 사진제공 / 다우산방 아우게님 ]

                          /-WHEN I DREAM - CAROL KID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