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산악인(山岳人)"이란 *-

paxlee 2009. 7. 12. 12:09

산악인(山岳人)"이란

 

산악인(山岳人)"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이고, 어느 범주의 사람들을 산악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전 산에 다니는 몇이 모인 술자리에서 누군가에 의해 새삼스럽게 거론되어 제법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모두가 대화의 분위기를 즐기려했을 뿐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 기회에 비록 새삼스러울지라도 진정한 산악인의 의미와 우리 산악인이 늘 함께 하여야 할 몇가 지를 나름대로 정리 복습해 봄도 큰 의의가 있을 법하다. 등산이란 무엇이고, 산악인이란 누구인가? 나아가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를 논하려면 먼저 근대등반의 발원지이며 현재까지 세계 산악계를 주도 하고있는 유럽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서구 산악인의 등반사조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겠다.

 

한국등산학교 동창제위께서 잘 알고 계시다시피 1786년 드 소쉬르의 현상금을 목표로 의사 미쉘 빠가루와 농부 작끄 발마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브랑을 초등정한 시점부터 근대등산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후 간단히 요약하면, 이 시점을 전후한 여명시대부터 개척시대 그리고 황금, 은, 철의 시대를 지나면서 알프스 등반사는 극변하기 시작한다.

 

머메리즘의 영향을 받은 암벽등반, 북벽등반, 가이드레스등반, 스키등반, 대륙과 바다 건너 새로운 산을 찾는 도전, 인공등반의 발달, 연속등반 등으로 등반사는 거듭 새롭게 변천한다. 이어 히말라야 거봉의 초등시대를 지나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다양해진 이들의 등반은 직등, 동계, 직벽, 제7급, 소수정예, 무산소, 단독, 속도등반 등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발달해 왔다. 

 

작금에 이르러서 이른바 제8급으로 향한 수퍼 알피니즘이 태동되기 시작하고, 그 대상지도 카라코람의 거벽을 포함한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고난이도의 벽등반은 ´인공벽등반세계선수권대회´로 까지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이제 형식적인 면을 떠나 왜 산에 오르는까? 다시 말해 삶의 방편이 아닌 등산의 개념으로 서구인들의 등산관을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한 근대등반의 여명기인 17세기 당시 서구인의 의식구조는 [인간은 자연계의 주인이자 소유자]라는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산업혁명도 철저히 자연파괴와 더불어 이루어졌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이들의 무한한 도전욕은 자연스럽게 산정으로도 이어져 순수한 의미의 등산관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산정을 향한 이들의 도전욕은 [투쟁과 정복 그리고 착취]라는 귀족정신에 일맥상통하였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연구 등을 통하여 산을 향한 진취적인 탐구정신이 싹트게된다.

등산을 통하여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세계를 추구하게 된 이들은 점차 도전의 대상을 바꿔가며 산을 향한 진취적인 인간과 그 정신세계를 존중하게 되었다.

 

산을 향한 지식욕은 자연스럽게 기록, 정리, 정보교환으로 이르게 되어 좋은 자료와 장비들이 상당수 제작, 개발되었다. 좋게 말해, 이들은 다양하고 준엄한 대자연 속의 산을 무대로 끊임없이 인간 한계에 도전하고, 그 속에 동화되어 자기극복을 통한 모험과 개척정신을 기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의 무대는 점차 깍아지른 암벽과 가파른 능선, 눈과 얼음, 고도와 수직의 공간으로 다양화 되었다.

 

이들의 등산은 보다 높고, 보다 어렵고, 보다 위험한 대상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한편, 동양의 등산관은 서양이 그것과 큰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수천년동안 동양인들은 [자연은 최고의 선(善)이고 인간에 있어 투쟁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조화의 대상]이라는 관념을 지니고 살아왔다.

 

인간도 자연 그 자체라는 이들의 순수한 자연사랑 사상은 19세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산의 품안에서 생활하며 산을 바라보고 살고 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호연지기(浩然之氣), 인자요산(仁者樂山)... 등 이른바 선비정신도 산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자 어쩔 수 없이 서구의 알피니즘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를 기존의 동양사상과 접목하게 되었다.

 

서구인들은 이제야말로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하지만, 이제 문명사회로 접어드는 동양인들 중 상당수는 엄청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산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등산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나라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리적으로 볼 때 이 땅은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이지만 오히려 산악국가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작은 많은 산들이 이 땅에 자리잡고 있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단군이래 이 땅의 온갖 흥망성쇠가 대부분 산을 끼고 이루어졌다. 인간의 생활 면에서 볼 때에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대부분의 도시와 농촌들이 산자락을 끼고 형성되어있으며,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생명수로 마시면서 살아왔다.

 

산에서 태어나 주어서 산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으며, 마음의 고향으로 산을 사랑하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 땅의 백성들의 산에 관한 그리고 등산에 관한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생각된다.

히말라야 8,000m거봉 중 우리가 맨 처음 오른 산이 바로 세계 최고봉이라는 사실도 우리의 등반 잠재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때부터 겨우 18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8,000m 14봉을 모두 등정한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등이 있으며, 오은선과 고미영이 도전 중인 몇 안되는 나라에 당당히 기록되어있다. 실로 놀라운 발돋움인 것이다. 사견이지만, 라인홀트 메쓰너나 예찌 쿠쿠츠카 그리고 크리스 보닝턴 같은 훌륭한 산악인도 이 땅에서 곧 나타나리라고 믿고있다.

 

여기서 필자는 다음의 제언을 하고자 한다. 상당수의 산악회정관을 보면 목적으로 "순수한 알피니즘을 추구한다"는 글이 눈에 자주 띈다. 알피니스트라는 말도 흔하다. 사전을 찾아보자 Alpinism ; Mountain climbing in the Alps or other high mountain ranges. 또 다른 사전에는 "알프스와 그 정도 이상의 고소인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 행하는 등반활동"이라고 적혀있다.

 

서구의 알피니즘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 단어를 이 땅의 등반에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Alpinism은 Alpinsme(F) Alpinismo(It) Bergsteigen(G) 등으로 알프스지방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같은 맥락의 뜻으로 세계에서 제일 긴 산맥인 안데스산맥 지방에서는 Andinismo 란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등산을 꼭 영어화 한다면 낯설지만 당당한 느낌을 주는 [백두대간이즘]이라 칭하는게 어떨까 한다. 한편 우리가 가끔 쓰는 Himalayanism 이란 단어는 영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밝혀둔다. Alpinist란 단어도 미국의 경우 상당수가 그 뜻을 산에서 스키 타는 사람정도로 잘못 알고 있다. 쉽게 말해 알프스지방을 제외하고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지역은 별로 없다.

 

이제 우리나라의 산악인을 논해보자 우리 산악계를 보면 몇 가지 특이함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산악인]이라 호칭하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산 좋아 산을 오르고, 여기에 기본 장비만 갖추면 누가 보아도 의연한 산악인이다. 또 우리나라처럼 산악회가 많고 산악회 회장과 리더가 많은 나라도 없다는 사실이다.

 

산악회 OB가 모여 OB산악회를 만드는 나라도 없다. 아마도 우리의 산악인은 소속과 구속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대부분의 등산활동이 산악회라는 소수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느 수준까지는 발전이 빠르지만 그 후는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소수 집단끼리의 이기주의와 경쟁이 팽배하고, 산악인 서로가 서로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점도 우리의 특이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악인의 칭호를 변함없이 자랑스럽게 갖기를 원한다면 다음의 몇 가지를 우리는 항상 곁에 두어야한다. 첫째, 윤리적인 면으로 대자연 속에서의 겸허함이다. 공명정대하고 순리와 도리를 따르며 단정한 품행으로 예의를 지키는 밝은 마음이 겸허함에서 나온다. 이는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고 나라사랑 정신과 철저한 공공의식을 기르게 된다.

 

둘째, 기술적인 면으로 새로운 지식탐구와 끊임없는 훈련 그리고 풍부한 체험을 말한다. 냉철한 판단으로 제반 등산 지식과 상식을 가까이하며, 능력자로서의 명확하고 신속한 기술습득 그리고 부지런하고 솔선 수범하는 강인한 체력이 따라야한다. 셋째, 내면적인 면으로 과감한 용기와 강한 인내심을 뜻한다. 미지를 향한 모험과 개척 정신으로 고산과 직벽, 어려움과 위험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을 기른다.

 

급변하는 자연 속에서 자기극복을 통한 불굴의 인내성을 기르고 새로운 것을 향한 욕구와 연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그것이다. [내가 과연 산악인인가?]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스스로가 [나는 산악인이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으면 틀림없는 산악인이다는 말도 있다. 또 의미 있게 살고 싶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위의 세가지, 즉 대자연 앞에 겸허하고, 끊임없는 지식과 체험을 훈련을 통해 쌓으며, 용기와 인내로 산을 오르고, 산행의 예절을 지키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한 삶을 위해 건전한 취미로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오늘날 이 땅의 진정한 산악인이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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