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 세계적 미래학자 3인이 보는 '메가 트렌드' *-

paxlee 2009. 10. 2. 22:57

 

세계적 미래학자 3인이 보는 '메가 트렌드'

 

" 독수리의 눈을 가져라 "

 

혹한의 겨울날 안경 쓰고 올라탄 버스 안처럼, 글로벌 경제 위기에 강제로 탑승당하면서 눈앞이 흐릿해진 지 오래다. 미래를 투시(透視)해보기 위해 Weekly BIZ가 저명한 미래학자 3명을 연쇄 인터뷰했다. 미래학의 거목(巨木)인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Toffler), IBM·맥킨지·코카콜라 등 주요 글로벌 기업에 미래 트렌드를 컨설팅하는 리처드 왓슨(Watson), 떠오르는 차세대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Pink) 등이다.

 

신문 기자와 잡지 칼럼니스트 출신인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과 '권력 이동' 등의 명저를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토플러는 컨설팅사 액센추어가 '빌 게이츠(Gates)와 피터 드러커(Drucker)에 이어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지도자 3위'로 선정한 바 있고, FT가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꼽은 바 있다. 그는 현재 거주 중인 미국 LA에서 기자와 만났다.

 

Weekly BIZ가 연쇄 인터뷰를 가진 3인의 저명한 미래학자들. 왼쪽부터 앨빈 토플러(Toffler), 리처드 왓슨(Watson), 다니엘 핑크(Pink).

 

리처드 왓슨은 미래 전략 컨설팅 기관인 '퓨처 익스플로레이션 네트워크(Future Exploration Network)'의 수석 미래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다니엘 핑크는 앨 고어(Gore) 전 미국 부통령의 수석대변인을 지냈고, 현재 미국에서 인기 높은 미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2009 글로벌 서울포럼'에서 특별 강연을 하기 위해 방한한 길에 인터뷰에 응했다.

나이도, 활동 무대도 각각 다르지만 세 미래학자의 전망은 주요 키워드에서 교집합을 이뤘다. 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밑그림에서 서로 교직(交織)했다. '너무 빨라지고 너무 복잡해진 세계…. 그래서 위기가 왔다. 그래도 미래는 낙관한다. 인간은 늘 위기를 이겨왔다. 도저히 양립하지 않을 것 같은 극단들이 공존(共存)하는 미래가 머지않아 열릴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점점 스토리와 디자인이 중요해진다. 하이콘셉트(high-concept)가 각광받을 것이다. 감성과 예술까지 아우르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통섭과 종합의 능력을 뜻한다. 인간의 오른쪽 뇌가 주로 관장하는 영역들이어서, 우뇌(右腦)의 시대 개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역사의 무게 중심과 세계의 눈길은 아시아로 쏠릴 것이다. 중국은 순항하겠지만, 잠재한 리스크를 잘 관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의 미래가 이미 싹트고 있는, 미래 국가의 전형이다.'

특히 세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겪고 있는 이례적
글로벌 경제 위기가 '하이콘셉트(high-concept)의 시대' '우뇌의 시대' '통섭의 시대'의 도래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에서 이견(異見)이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의 위기가 한 분야만 깊게 파고들어간 전문가들의 조망(眺望) 능력 결여에서 비롯됐다는 진단 때문이다.

다니엘 핑크는 "글로벌 경제 위기 탓에
어느 분야에서든 넓고 큰 시야를 갖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전문가를 원하게 됐다"며 "이런 '하이콘셉트의 능력', '우뇌의 능력'은 갈수록 가속화할 '자동화'가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리처드 왓슨도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감성·디자인을 맡고 있는 우뇌가 경제 경영의 중심으로 떠오른다"고 내다봤다. 감성과 디자인, 창조경영의 아이콘인 '애플(Apple)'이 만드는 자동차를 한번 상상해보라는 게 그의 제언이다. 앨빈 토플러 역시
전문가의 장벽이나 기존 사고(思考)의 틀을 깨고 넘나드는 인재, 더 열려 있고 더 신축적인 인재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교육 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3인의 미래학자는 한국에 대해 "다른 나라의 미래가 벌써 싹트고 있는, 재미있고 아름답고 역동적인 나라"(왓슨)라든가, "IT 분야에서 앞으로도 세계 최고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고, 현 위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창의적 방법을 발견할 것"(토플러), "풍요의 극적인 사례를 이룬 국가"(핑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 43세의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그 똑똑하다는 앨 고어(Gore) 전 부통령이 연설문을 맡기고 수석 대변인으로 삼은 사람이라더니, 이 43세의 젊은 학자는 과연 야무지게 말을 잘했다. 차세대를 이끌 대표적 미래학자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Pink)는 대화하는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명쾌하고 명랑하고 명석한 문장들을 인터뷰 내내 뿜어냈다.

―당신이 보기에 지금의 경제 위기는 왜 왔는가?

"아무도 큰 그림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만 봤을 뿐, 아무도 조각을 맞출 줄 몰랐거나 외면했다. 감당 못할 주택담보대출이 증권에 얹히고, 전 세계로 뿌려지는 과정에서 모두들 부분 부분에만 집착해 있었다. 그러다가 지탱 불가능해진 것이다."

―조각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이콘셉트(high-concept)를 중시하고 개발해내야 한다."

―하이콘셉트가 무엇인가?

"예술과 감성까지 아우른 통섭과 종합의 능력이다."

―당신이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말하는, 텍스트(text·본문 구절)에만 매몰되는 좌뇌(左腦)보다, 콘텍스트(context·맥락)를 감지하는 우뇌(右腦)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정확하다. 당신의 설명이 더 좋네. 내 대답을 그걸로 대체해 달라(웃음). 우리 모두 이 우뇌의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이 우뇌 능력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용하지 않은 근육과 같다.
우뇌의 능력, 그러니까 공감(共感)하고 디자인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 21세기형 학교 교육은 이런 우뇌 능력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왜 중요한가?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우리에게는 팩트(fact·사실)들이 너무나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 팩트들을 스토리로, 문맥으로 엮어내지 못하면 팩트는 증발된다. 스토리는 영화 산업·게임 산업 등 많은 산업의 기초이다.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직장에서 귀가했을 때 배우자가 '오늘 어땠어?'하고 물어보면, 컴퓨터를 켜고 파워포인트로 설명하는가? (웃음)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저런 일이 있었고, 그다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스토리를 말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글로벌 위기가 끝나면 세계는 어떤 미래에 직면하는가?

"G20 회의 등을 통해 큰 논쟁을 거친 끝에 세계적으로 새로운 금융 규제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에 예전보다 훨씬 확대된 투명성이 구현될 것이다. 금융 부문은 예전보다 작아질 것이다. 예전의
미국처럼 거인 같은 금융 분야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것이다."

―이 위기가 없었다고 가정했을 경우와 비교할 때, 이 위기 때문에 미래는 확 달라지나?

"흥미로운 질문이다. 이 위기는 분명 흔적(imprint)을 남길 것이다. 미국에서 자유 시장은 절대적인 신봉의 대상이자 구세주 같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정부의 개입을 상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도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자유 시장이 대세(大勢)인 시절이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앨런 그린스펀 같은 인사도 자유 시장이 모든 걸 할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자유 시장에 대한 신봉은 무너졌다. 정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순수한 의미의 자유 시장 시대는 갔다."

그는 여기서 목소리의 톤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G20 정상회의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G20 정상회의를 통해 각국 최고 지도자들은 자유 시장의 적절한 역할은 어디까지이고, 또 정부의 적절한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선을 긋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에 대한 2010년대의 대답은 2000년대나 1990년대와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또 뭐가 있나?

"이번 위기로 전 세계가 얼마나 꽁꽁 서로 묶여 있는지 알게 됐다. 10년 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10년 전에는 서울의 위기가 미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미국의 상황도 한국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아주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 증시를 보라. 미국민이 아침에 일어나서 아시아 증시 결과를 살핀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해야 하고, 고든 브라운아소 총리와 대화해야 한다. 어느 나라도 고립해서 지낼 수 없다. 모두 다 연결돼 있다. 좋은 점도 있다. 미국 어린이와 젊은이가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영화를 본다. 엄청난 지식의 교류(cross-pollination)가 생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빨리 흐른다. 좋은 사물도 빨리 흐르고 나쁜 사물도 빨리 흐른다.

 

서로 묶인 게 싫다고 이 글로벌 시스템의 문을 닫아버리면 좋은 사물도 흐르지 못하게 된다.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위기 덕분에 아마도 지금은 전혀 무명인 인사가 5년 이내에 세계적 유명인사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어느 회사에 있거나 창고에 있다가 엄청난 혁신자로 돌변해 나타나 우리 모두의 화제가 될 것이다. 위기는 늘 그렇게 누구에게는 기회니까…."

―귀하는 저서에서 풍요(Abundance)와 아시아(Asia), 자동화(Automation) 등 '3A'를 패러다임 변화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풍요는 확연하다. 한국이야말로 극적인 사례이다. 당신 할아버지의 삶과 당신의 삶을 비교해보라. 경기 침체에 따라 아시아와 자동화는 부각될 것이다. 기업들은 더 처절하게 경비 절감을 추구하면서 가장 싸게 생산하는 법을 찾다 보면 아시아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자동화도 침체 때문에 가속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보다 통섭과 감성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우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특히 경기 침체의 심리적 위축 때문에 사람들은 지갑을 잘 열지 않고 있다. 이럴 때는 제품의 미세한 작은 개선으로는 지갑을 열게 할 수 없다. 매우 두드러지고 가파른 개선, 즉 우뇌를 동원한 혁신이 있어야 소비자의 지갑을 열 것이다."

―귀하가 말하는 하이콘셉트를 위한, 우뇌형이 되기 위한 인재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디자인이다. 디자인이란 이제 기본적인 비즈니스의 필수 교양이다. 이제 당신은 디자인이란 언어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경험이든, 기능은 기본이고 디자인으로 더 강력하게 호소해야 한다."

여기서 그는 기자가 인터뷰를 녹음하고 있던 작은 MP3 겸용 녹음기를 가리켰다.

"이 기계도 예쁘고 상큼하지 않은가?"

―삼성 제품이다.

"그렇지. 절대 미국 제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삼성전자도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예전에는 가장 싼 물건이란 이미지가 있었다. 이런 이미지를 디자인을 통해 바꾸면서 경쟁자들을 제쳤다. 이런 풍요의 사회에서 싼 가격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운 게임이 됐다. 디자인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하이콘셉트의 두 번째 조건은 스토리다.

"스토리는 아까도 말했듯 사실들을 엮어 문맥을 만들어내면서 감성적 충격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스토리에서 차별화라든지, 강력한 마케팅이라든지, 비즈니스 리더십 등이 창출된다.

셋째, 조화(symphony)다. 이건 '큰 그림으로 생각하기'다. 조각들을 맞춰 결합시키고, 패턴을 찾는 것이다. 조각을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아웃소싱하기 매우 어렵고 자동화하기도 매우 어려우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 누구나 이렇게 조화의 사고(思考)를 할 줄 아는 전문가를 원한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가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든 더 넓고 큰 시야를 갖고, 더 큰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원한다."

그는 마치 원고를 좔좔 왼 명배우처럼, 막힘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넷째, 공감(empathy)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판매나 디자인 모두에 필요한 능력이다. 이것도 아웃소싱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노년층을 위한 디자인이나 제품을 보자. 젊은 디자이너는 일부러 시야가 좁아지는 안경, 민첩성을 떨어뜨리는 장갑을 끼고 체험을 해본다. 그래야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디자인과 진정한 제품이 나온다.

다섯째, 놀이(play)다.
웃음과 유머, 게임, 기쁨을 갖고 있는 인재를 뜻한다. 이런 요소는 이제 필수적이다."

―한국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계획을 세우지 마라."

―미래학자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충고하나?

"그렇다. 스무 살에 이걸 하고 그래서 다음에 이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 81세의 거장 '앨빈 토플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은 이 81세의 노(老)석학은 목소리가 카랑카랑했고 웃음이 인색하지 않았다. '미래학의 대표적 거장'인 앨빈 토플러(Toffler)는 "자고로 미래를 정확히 전망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믿으면 안 된다"며 웃었다. '제3의 물결'과 '권력 이동' 등의 저자로 이름난 그는 최근 '불황을 넘어서'란 제목의 책을 한국에서 펴냈다. 사실 이 책은 신간(新刊)은 아니다. 34년 전인 1975년에 발간했던 'The Eco-Spasm(발작적 경제 위기) Report'를 다듬어 재출간했다.

―왜 처음 쓴 지 30년도 넘은 책을 다시 펴냈는가?

"어느 날 한 잡지의 에디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당신이 1975년에 쓴 책을 최근 다시 읽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현 경제 상황과 흡사하다'는 얘기였다. 나도 오랜만에 내가 쓴 책을 읽고 놀라고 말았다. 오래전 쓴 그 책의 소제목들이 오늘날 신문 헤드라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전혀 알 수조차 없었던 1975년에 내다본 위기의 맥락이 오늘날과 비슷하다면, 분명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항공기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식판·수하물·승객 등이 일시에 날아가는 광경을 생각해보라'며 언젠가 찾아올 자산 디플레이션 위기의 발발 장면을 가상(假想)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글로벌 경제 위기야말로 항공기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자산 가치가 빨려나갔다는 묘사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미증유의 현 글로벌 경제 위기는 왜 왔을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복잡성과 속도이다. 오늘날의 경제·사회·정치 등 모든 분야는, 심지어 전문가가 보기에도 너무 복잡해졌다. 어마어마한 복잡성이다. 경제와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런데 금융을 비롯한 민간 부문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공공 부문의 속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엄청난 복잡성과 속도는 미래에도 오랜 기간 중요한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얼음물을 마신 후 다시 답변을 이어갔다.

"더구나 정량화(定量化)할 수 없는 지식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과거의 경제 모델들로는 현실을 설명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경제의 규모도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세계화도 상당히 진행됐다. 결론적으로 과거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복잡성과 속도, 규모, 세계화가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었으므로, 1930년대 대공황의 틀을 현 위기에 들이대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틀렸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두루 종합한 사회적 생태계를 주목해야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은 언제쯤 발견할까?

"낙관론자냐 비관론자냐에 따라 다르겠지…(웃음). 내 처 하이디는 비관론 쪽이고, 나는 낙관론 쪽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현명한 것 같다(웃음). 비관론이 유리하다." 앨빈 토플러에게 부인 하이디 토플러는 '연구 동지(同志)'이자 공동 저자이다.

"내가 볼 때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위기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과 관련돼 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자신들만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전문의라고 착각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주요 변수들을 사회학·정치학·인문학 등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챙길 수 있도록 리더십이 작용해야 한다."

―당신이 낙관적인 이유는?

"지구 상에서 인류만이 오랜 기간 동안 미래를 조망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이번에도 그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재앙이 발생해도 늘 좋은 면은 있게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인류는 위기를 통해 새 지식과 새 기술을 재창조하고 마침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지혜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엄청난 속도'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쾌속(快速) 덕분에 이 위기를 벗어나는 해법도 세계적으로 빨리 공유되고, 결론적으로 이 위기에서 빨리 빠져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10년이 지난 2020년쯤에는 누가 세계의 최강자일까?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웃음). '미국의 시대'가 끝났다고들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이 내리막길인 것은 맞다. 그러면 누가 올라올까? 내 견해로는 역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이다.

단,
중국의 발전 가능성은 과대평가된 측면도 없지 않다. 중국 내부에 잠재된 리스크가 과소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중국 정부의 리더십이 대체로 현명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중국 정부가 제2의 물결(산업화)과 제3의 물결(후기 산업화와 정보화)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결정한 1983년의 선택은 지혜로웠다."

한국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IT 분야에 관한 한 한국은 지금까지 아주 잘해왔다. 앞으로도 세계 최고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역동적인 한국인은 지금의 위기에서도 미래로 나아가는 창의적인 방법을 발견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위기 때문에 당신이 그리는 미래는 달라지는가?

"물론 달라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 스토리 라인은 비슷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대표적 변화 중 하나는 직장의 변신이다.
지금처럼 집에서 출근해 직장으로 간다는 개념은 확 바뀔 것이다. 집에서 일하는 재택(在宅)근무, 사무실이 정해지지 않은 탄력적 근무가 확산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연료를 절약하고 교통 문제를 해결하고, 사무용 건물 건축 문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가? 속도가 점점 중요해지는 미래 트렌드에도 부합하고 말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통찰이 있다면, 재정 지출을 통한 인프라 건설에서도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지 세부적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5~10년 후쯤의 미래에는 어떤 인재가 촉망받을까?

"음…. 좀 상투적 표현이지만, 창조적 인재가 각광 받을 것이다. 전문가의 장벽, 기존 사고의 틀 같은 것을 깨고 넘나드는 인재, 더 열려 있고 더 신축적인 인재가 긴요해질 것이다. 관료주의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사회를 두루 다 조망할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해질 것이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학자든, 공무원이든 말이다."

―그런 인재가 되려면?

"그러니까 교육 제도가 확 바뀌어야 한다. 나는 빌 게이츠와 만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한 바 있다. 왜 다들 똑같은 나이에 입학하고 똑같은 나이에 졸업하는가? 미래형 인재를 키우려면 현 교육 시스템을 수선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전체를 바꿔야 한다."

미래전략 컨설턴트 '리처드 왓슨'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Watson)도 다니엘 핑크처럼 '우뇌(右腦) 타령'이었다. 앞으로 점점 우뇌가 관장하는 영역이 더욱 중요해지고 각광받는다는 진단이었다.

그에게 "기업인들에게 미래와 관련해 어떤 충고를 주겠느냐"고 묻자, 그는 "시간이 갈수록 마케팅의 승부가 하이테크(high-tech)보다 하이터치(high-touch)에서 갈리는 추세가 확연해질 것"이라고 운을 뗐다. "첨단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그럴수록 기술보다 감성과 디자인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정보 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좌뇌(左腦)보다 감성·디자인을 맡는 우뇌(右腦)가 경제와 경영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이제 기업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이 되고, "옛날에는 삐딱하다고 눈총받던 사람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로 대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말 우뇌형 인간이 중요한가?

"그렇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맥킨지를 보라. 10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 중 60% 이상이 MBA(경영학 석사)였지만, 지금은 40% 선으로 떨어졌고, 그 빈틈을 예술 전공자들이 채우고 있다."

―산업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좋은 예로 자동차 산업을 들 수 있겠다. 자동차는 모든 기술이 구현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아마 애플(Apple)이 새로운 감각과 터치로 최신 자동차를 만든다면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급진적이고 의미심장한 변화나 혁신은 기업 내부나 산업 내부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서 초래될 것이다. 그러니 기업하는 사람들은 늘 시선과 관심을 내부보다 외부에 두어야 한다. 기업 CEO(최고 경영책임자)라면 하루에 2시간은 창 밖을, 산업 바깥을 쳐다봐야 한다. 너무 바빠서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틀에, 너무 가까운 미래에만 집착하다 보면 기업을 망친다."

―또 다른 충고가 있다면?

"신뢰와 윤리를 담은 브랜드가 더욱 중시될 것이다."

그의 최신 저서 '퓨처 파일(Future File)'을 보면 스스로를 '냉소적 낙관주의자(cynical optimist)'라고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냉소적 낙관주의자(cynical optimist)란 무슨 뜻인가?

"미래에 대해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란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는 그로 인해 너무 큰 두려움에 시달리는 나쁜 버릇이 있다. 과거를 보라. 전쟁과 질병에 대한 공포로 지구가 망할 것이란 극단적 우려까지 나왔지만, 결국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세상은 좋아져 왔다. 3차 대전? Y2K 문제(2000년이 되면서 컴퓨터 표기 혼선 탓에 빚어질 것으로 우려한 엄청난 부작용)? 별일 없었다.

 

현재의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도 분명히 일리는 있지만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해 수억명이 죽을 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 이미 매년 수백만명씩 걸려 사망에 이르는 에이즈의 심각성은 간과하는 식이다. 단, 나는 미래를 유토피아로 보지는 않는다는 뜻에서, 분명히 여러 문제는 있을 것으로 본다는 뜻에서 '냉소적'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에도 그런 낙관론이 적용되나?

"물론 앞으로 약 2년은 대단히 힘든 시절이 되겠지만, 역시 어마어마한 재앙은 생기지 않은 채 넘어갈 것이다. 물론 지금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피부에 와 닿는 상황이므로 사람들의 공포가 이해는 된다.
아마 세상 변화의 속도, 위기 전파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걱정도 배가되는 것 같다."

―지금의 위기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1930년대 대공황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경제 시스템에 아주 많은 돈이 투입됐고, 돈이 흐르면 최악의 불황은 피할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크게 힘들겠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것이다. 다만 중국이 큰 리스크이다. 중국은 이번 위기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것으로 보지만, 만에 하나라도 중국 경제가 엄청난 실업률 등으로 인해 주저앉는 최악의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엄청난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할 때 꼭 머리에 담아둬야 할 핵심을 정리해달라.

"핵심이라?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구 노령화', '1인 가구 급증'이다. 각국 정부들은 애써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큰 변화이자 화두(話頭)이다. 노년층은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출할 것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도심 소형 주택의 수요가 늘고 개인적 소비도 증가할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이런 흐름의 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파워의 이동이다. 세계적 파워의 축은 미국을 떠나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은 당연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세계의 미래가 벌써 싹트고 있다. IT 환경을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미래 국가의 전형이다. 정말 재미있고 아름답고 역동적인 나라이다. 미래의 중심권에 한국이 위치한다."

그의 '핵심 정리'는 다시 이어졌다.

"셋째, 세계적 연계성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도 이런 연계성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첨단 기술의 발달이다. 특히 로봇과 인공 지능의 발달이 두드러질 것이다.

다섯째, 지속가능한 성장의 추구가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물·에너지·환경 등의 문제 말이다."

―당신이 전망하는 미래 세상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얼핏 봐서는 도저히 공존하기 힘들 것 같은 양상들의 공존(共存)이다. '양극화'와 '공존'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원래 대형 트렌드가 생기면 그 역류(逆流)가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 와중에 어중간한 가운데는 없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기업도 엄청나게 큰 글로벌 기업은 살아남고, 또 아주 작은 로컬 기업도 공존할 것이다. 24시간 패스트푸드 가게가 성업하지만, 유기농 슬로푸드 음식점도 번창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 국가주의도 적절하게 공존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뛰어난 미래학자는?

"역사가들이다. 그들은 문맥(context)을 이해한다."

―당신이 지식과 지혜를 얻는 원천은?

"나는 많이 읽는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책과 잡지 등을 두루 읽는다. 내 컴퓨터의 시작 홈페이지는 뉴욕타임스다. 내 독서 리스트에는 약 200개의 각종 읽을거리가 올라있다. 나는 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을 다닌다.
읽기와 대화하기와 여행하기에서 패턴과 연계성을 찾는다." 

  • 장원준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