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히말라야 고봉 14좌에 도전하는 산악인 오은선 *-

paxlee 2010. 4. 10. 23:00

 

히말라야 고봉 14좌에 도전하는 산악인 오은선

 

현재 8000m급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우리나라의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씨를 포함해 세계에서 13명뿐이다. 산악인 오은선은 2010년 초 마지막 한 좌 안나푸르나(8091m)까지 올라 세계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여성 산악인이 되기 위해 출발하였다. 

 

  매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며 신화를 써 가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청담동의 한 뷰티숍에 등장한 그는 여러모로 기대를 배반했다. 우선 그는 왜소했다. 155cm에 50kg의 그를 본 순간 ‘땅꼬마’라고 표현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또 그는 천생 ‘여자’였다. 그는 “나는 한 순간도 여자가 아닌 적이 없다”고 했다. 이날도 맨 얼굴 보이기 민망해 비비크림을 발랐다고 했고, 생사를 걸고 정상에 오르면서도 자외선 차단제와 수분크림을 수시로 바른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는 “여자는 찬 데 앉으면 안 돼요” 하며 방석을 청하는가 하면, 조금만 추워도 오돌오돌 떨었다.
 
  “저 추위 엄청 타요. 그래서 불가사의한 거예요. 산에만 가면 어디서 그런 열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얼마나 엄살이 심한데요.”
 
  히말라야 정상의 온도는 날씨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평균 영하 30~40도. 그 날씨에 침낭, 텐트, 각종 장비, 눈을 녹여 물을 만들 코펠과 버너 등이 담긴 20kg짜리 배낭을 메고 등정해야 한다. 지난해 마나슬루 등정 때 함께한 네팔인 셰르파 옹추 씨는 그에게 “남자보다 힘이 더 좋다, 이런 여성은 처음이다”라고 했고, 뉴질랜드 영사이자 산악인 리포터 홀리 여사는 “이틀 만에 속공으로 등정한 것은 내 기록엔 없다. 대단한 여성이다”라고 했다.
 
  마나슬루 등정 때에는 SBS 여행다큐 <쉼표>에서 동반 촬영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의 등정 모습은 (미안하지만) 쉬워 보였다. 웬만한 아마추어가 동네 야산을 오르는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사흘 동안 한 끼밖에 못 먹었다는데 목소리에 에너지가 남아돌았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혈색이 살아 있었다. 턱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시커먼 얼굴로 좀비처럼 사진에 찍힌 남성 산악인들의 표정과는 대조적이었다.
 
브로드피크 정상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에스컬레이터 타고 갔느냐고 웃으며 묻는 분도 있어요. 그때는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았어요. 날씨가 나빠 마지막 캠프에서 오래 기다리느라 컨디션 조절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똑같이 훈련한다고 다 오은선처럼 되지는 않을 터. 그는 ‘타고난 유전자’도 한몫했음을 인정한다. 태능 선수촌에서 “황영조보다 심폐 기능이 더 낫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부모님이 워낙 체력이 좋으세요. 아버지는 69세, 어머니는 65세이신데, 요즘도 두분이 매일 산에 오르시거든요. 북한산, 도봉산에도 오르고 우리 집 뒷산인 용마산에도 오르세요. 제 속에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걸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칭기즈칸이에요.”
 
  군인 출신인 그의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훤칠한 키에 서구형 미남이었다. 아버지는 당신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셨단다. 자식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믿어 주고 밀어 줬다. 그러면서도 가정적이라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고. 그는 “어렸을 때에는 산, 강, 바다 등으로 놀러다닌 기억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산악인이 되겠다는 꿈도 이 과정에서 자라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다 북한산 인수봉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광경을 보고 ‘어른이 되면 나도 저걸 꼭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나슬루 정상

  메이크업을 받던 그는 속눈썹에 마스카라가 닿자마자 눈이 시뻘개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히터가 오래 가동돼 건조해도 금세 눈물을 흘렸다. 산에 다닐수록 인공적인 것, 오염된 환경에 민감해진다고 한다. 또 육감이 점점 발달한다고 했다.
 
  “생존본능 같아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으면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와요. 신경이 곤두서면서 시각과 청각, 후각 등이 점점 발달하죠. 사람을 보는 눈도 예리해져요. 상대의 기운이 선한지 아닌지를 몇 초 안에 본능적으로 판단하죠.”
 
  늘 예상하지만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일들을 맞닥뜨리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오은선. 지난 마나슬루 등정 때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가 닥쳐 그는 텐트 안에서 펑펑 울었다. 아무리 계획을 철저히 세워도 천재지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속상하죠. 하지만 자연에 복종하고 기다려요. 그걸 거스르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따지면 뭐하겠어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 때를 기다리죠. 그게 사실 더 지루하고 힘들어요. 무시무시한 눈보라를 만나면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요.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 절감해요.”
 
마나슬루

 
  산에 오르며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고, 점점 예뻐졌어요
 
로체 정상

  8000m 이상의 고도는 ‘신의 영역’으로 불린다. 공기가 희박하고 기온이 낮아 생명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고봉 등정은 신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내는 거대한 드라마다. 우주에 나가 초록 지구를 본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은 “신을 믿게 됐다”며 전도사가 됐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사람은 종교적이 된다고 하는데, 그의 종교가 궁금했다.
 
  “종교는 없어요. 엄마는 불교신자시고요. 산과 가까이 해서인지 절에 가면 편하긴 해요. 히말라야를 등정할 때는 라마제라는 걸 지내요. 인간의 영역에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니 굽어 살펴 달라고 하는 의식이죠.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따랐어요. 셰르파에게는 그네들의 종교이자 중요한 의식이니까 그들의 풍습을 존중해 주자는 의미에서 맹목적으로 따른 거죠. 그런데 자꾸만 가다 보니 (신의 존재가) 느껴져요.”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설원에 혼자 서 있을 때 기분은 어떨까. 아득한 공포감일까, 대지의 신에게 포근히 안긴 느낌일까.
 
  “상상하는 것과 실제는 달라요.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무서워요. 막상 그 안에서 동화되면 무섭지는 않아요. 한 걸음도 못 뗄 정도로 힘들지만. 다녀와서 사진으로 다시보면 그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요. ‘아, 내가 저기 다녀온 거 맞아?’ 하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에베레스트는 아득히 다른 세계를 다녀온 느낌이에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상상만 하면서 두려움에 주춤하면 안 돼요. 몸으로 해야 해요.”
 

  그는 7대륙 최고봉(에베레스트, 매킨리, 아콩카구아, 엘부르즈, 킬리만자로, 코지어스코, 빈슨매시프)과 가셔브룸Ⅱ(8035m), 시샤팡마(8027m), 초오유(8201m), K2(8611m), 마칼루(8463m), 로체(8516m),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56m) 등정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네 개의 고봉 등정에 성공해 갈수록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1966년 말띠 생, 올해로 마흔 셋. 나이를 굳이 들먹이는 건 히말라야 등반가의 평균 나이가 35세라는 사실 때문이다. 올해 또 네 개의 고봉을 등정하려는 그에게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는 조바심은 없는지 물었다.
 
  “그게 크죠. 게다가 14좌를 완등한 여성 산악인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으니까 내가 처음으로 완등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욕심이 더해졌고요. 지나친 욕심은 해가 되지만 약간의 욕심은 추진력이 돼요. 무리해서 가면 탈이 생기지만 적당한 욕심은 좋다고 생각해요. 한번 해 보고 능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는 무슨 질문이든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고 핵심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 느낌을 전하자, “당연하죠. 정상만 봐야죠. 삼천포로 빠지면 죽음이에요” 하고 농을 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도전’, ‘정복’이라는 말을 피했다. 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사고 자체가 싫다고 잘라 말했다.
 
  “정복이라는 말은 서양인에게는 맞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아요. 알프스는 굉장히 험하지만 우리나라 산들은 만만하잖아요. 옛 선인들 보면 누가 산을 정복한다는 표현이 없어요. 입산한다고 하지. 등산이라는 표현이 생긴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저는 ‘시도’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오은선은 수원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컴퓨터 학원 강사를 했다. 그 후 3년간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속 전산직 공무원으로 지내다 1999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모집에 지원하면서 안정된 직장을 버렸다.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대원의 실종으로 정상 시도를 눈앞에서 접어야 했다. 그 해 가을 다시 박영석 등반대 대원으로 마칼루에 갔지만 이번엔 셰르파의 죽음으로 실패했다. 2001년 또다시 박영석 원정대의 일원으로 K2 등반에 나섰지만 대원 한 명이 추락사하면서 마지막 캠프(8000m)에 있던 그는 눈앞에서 또 꿈을 접어야 했다. 그 와중에 스파게티 집 운영도 하고, 학습지 방문교사도 했다.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는데 학부형들에게 인기 짱이었어요. 씩씩하고 활기 넘친다고 다들 좋아했습니다. 주 3일 근무했는데, 주 5일 근무한 선생님들과 급여가 비슷했어요.”
 
  그는 자신을 ‘현실적인 사람’으로 소개한다. 전산학과를 택한 이유는 ‘비전이 좋아서’, 공무원을 택한 이유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서’였다. 살면서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는 오은선. 그가 간절히 바라본 대상은 오직 산뿐이었다. 미혼인 그에게 사랑에 대해 묻자 “산에 집중해야 해요. 생명이 오고가는 일이라…”하며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마칼루 정상

  “이전에 누군가가 ‘너는 산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아요. 새로운 고봉을 만나는 건 새 애인을 만나는 느낌과 비슷해요. 가기 전에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고…. 그런데 사랑도 버거운 거 맞죠?”
 
  그에게 산을 만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을 묻자 “인상이요”라고 답한다.
 
  “처음 에베레스트 갈 때에는 전투하듯이 준비했어요. 훈련을 마치고 나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제가 봐도 섬뜩했어요. 그 느낌을 잊지 못해요. 그런데 갈수록 인상이 좋아지는 걸 느껴요. 어렸을 때 누구한테 예쁘다는 소릴 듣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예전부터 알고 지낸 분들도 ‘네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다’고 해요. 40세 넘어서 예쁘다,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는다니까요. 하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요즘 그는 법정 스님의 책에 푹 빠져 있다. 배낭에서 주섬주섬 《무소유》를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법정 스님 책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어요.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죠. 평이한 문장이 어떻게 그렇게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는지…. 예전에는 누가 글을 써 달라고 하면 ‘내가 뭐 대단하다고…’ 하면서 거절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의 평범한 문장 속에 힘겨움이 드러나고, 누군가는 그 힘겨운 호흡을 같이하면서 희망과 위로를 느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아, 독자들에게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평범함 속에 길이 있고, 평범함 속에서 빛나는 게 진짜 아름다운 거라고요.”
 
  - 글 김민희  TOP CLASS 기자 / 사진 : 이창주 / TOP CLASS 3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