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오은선, 세계여성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

paxlee 2010. 4. 27. 21:02

 

'안나푸르나 등정' 오은선,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철녀'(鐵女)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세계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개봉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

"이 기쁨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의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8000m급 고봉(高峰)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오은선은 27일 오후 6시 16분(이하 한국시간)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로서 오은선은 해발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지난 1997년 갸셔브롬 2봉(8035m) 등정 이후 13년만에 이룬 쾌거다. 이중 12개봉은 무산소 등정이다.

 

오은선은 이날 오전 1시 40분 라이벌이었던 고(故) 고미영 대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서 캠프 4(해발 7200m)를 출발했다. 고미영은 지난해 7월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다가 추락해, 결국 사망했다.

이날 오은선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13시간 넘게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은 채 물 몇 모금에 의지하면서 발을 내딛었다. 오전 6시 이후 눈사태 위험 구간을 통과하면서 몇 차례 위태로운 상황도 연출됐다. 눈사태 탓에 일부 대원들은 헬기로 철수를 했지만, 오은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을 향했다.

 

오후 6시 16분, 드디어 정상에 오른 오은선은 태극기를 들고 두 손을 흔들었다. 오은선은 "이 기쁨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등정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엄마, 아빠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고도 했다. 지구상에서 해발 8000m가 넘는 산은 에베레스트(8848m), K2(8611m), 캉첸중가(8603m) 등 모두 14곳으로,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다.

 

지금까지 해발 8000m가 넘는 14좌를 완등한 19명은 모두 남성 산악인이었다. 우리나라 산악인으로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3명이 포함돼 있다. 오은선 대장은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하면서 세계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여성이라는 영예를 얻게 됐다. 오은선의 강력한 경쟁자인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은 마지막 시샤팡마 정상을 눈 앞에 둔 상태였으나, 결국 '세계 최초'를 오은선에 넘겼다.              - 김동현 조선일보 기자 -

 

/첨 오은선

'철의 여인' 오은선이 12시간여의 외로운 싸움 끝에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두 발을 모두 디디며 전 세계 20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히말라야에 있는 8000m급 14좌를 모두 올라섰던 이들은 전부가 남자였다. 가장 먼저 14좌 완등에 성공했던 산악인은 이탈리아 출신의 라인홀트 메스너(66)로 지난 1970년부터 1986년까지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정복했다. 14좌 완등을 마무리했을 당시 42살이었다.

뒤이어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이 경쟁적으로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에 올랐고, 모두 19명의 산악인이 8000m급 14좌의 정상에 모두 밟는 감격의 순간을 맞았다. 이 가운데 한국 출신 산악인들은 무려 3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엄홍길(50)이 2000년에 가장 먼저 성공한 뒤 박영석(47. 2001년), 한완용(44. 2003년)까지 연달아 히말라야 8000m급 14좌에 올랐다.

오은선은 한국인으로서 4번째, 전 세계 여성 산악인 가운데는 가장 먼저 14좌에 모두 오르는 영광의 순간을 맛봤다. 1997년에 가셔브룸 II(8035m)를 오른 후 에베레스트(8848m)와 시샤팡마(8027m), 초오유(8201m)까지 차례로 정복한 오은선은 히말라야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8611m)에 오른 이후 본격적으로 8000m급 14좌 완등을 목표로 삼았다.

2008년과 2009년에는 나란히 4개 봉우리씩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며 경쟁자들을 가뿐히 제쳤다. 지난 해 7월,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고미영이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던 중 안타까운 죽음으로 도전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오은선은 동료를 가슴에 품고 14좌 완등에 성공하겠다는 더욱 굳은 각오를 불태웠고, 10월에 자신의 도전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상을 눈 앞에 두고도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아쉬움 속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결국 다시 한 번 도전한 끝에 '풍요의 여신'의 허락을 받았다. 오은선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에드루네 파사반(37. 스페인)은 앞서 안나푸르나 등정을 마치고 지난해 실패를 맛봤던 시샤팡마(8046m)를 남기고 있다.

"오은선이 여성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던 겔린데 칼텐브루너(40. 오스트리아)는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와 두 번째로 높은 K2(8611m)를 남기고 있어 사실상 경쟁에서 뒤진 상태다.

산이 좋아 안정된 직장도 버린 철녀 오은선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어릴 적 아버지와 북한산에 오르며 산과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85년 수원대 산악회에 입회하면서였다. 키154㎝, 뭄무게 50㎏의 가냘픈 체격이지만 대학에 다닐 때 대학산악연맹이 1년에 한 번씩 여는 마라톤 대회에서 언제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체력을 타고났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고지대 적응 능력도 뛰어나 고산 등반에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8천m 이상 높이에서도 등정하고 내려올 때 힘이 달릴 것 같으면 단호하게 포기할 줄 아는 냉철한 판단력도 갖추고 있다. 고산 등반에 필수적인 육체와 정신적 조건을 갖춘 오 대장이지만 평소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산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할 뿐”이라며 산에 대한 애정을 14좌 완등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대학 산악부에서 산과 사랑에 빠진 오 대장은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낸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당시 다니던 서울시 교육청에 장기 휴가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이 원정대의 지현옥 대장과 김순주, 최오순은 그 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천848m)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오은선은 당시 함께 갔다가 등반대장이 곧바로 내려오라고 해서 하산했다.

오 대장은 그로부터 꼬박 11년 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단독 등정하면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첫 외국 원정의 아쉬움과 갈증으로 오 대장은 이후 더욱 고산 등반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원정에 드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던 오 대장은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거나 학습지 교사로 일해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오 대장은 “당시만 해도 히말라야는 꿈이었다. 외국 원정은 경비 마련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시에는 여자에게 돈을 대 주는 곳이 없어서 스파게티집을 운영했다”며 외국 원정 초기 어려움을 회상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한 오은선은 1997년 가셔브롬Ⅱ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14좌 완등에 앞서 7대륙 완등을 먼저 목표로 삼은 오 대장은 2002년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 등정을 시작으로 이듬해 북아메리카대륙 매킨리에 올랐다. 2004년 한 해 동안 에베레스트 등 5개 대륙 최고봉을 연거푸 오르며 여성 산악인으로는 12번째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오 대장은 14좌 중 두 번째로 오른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기로 고산 등반에 필요한 경험을 얻었을 뿐 아니라 14좌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서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동료 산악인 박무택을 보고도 정상에 올라간 것을 두고 매정하고 독하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오 대장은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며 “저렇게 죽지 않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다른 산악인 뒤를 따라 올라갔다”고 말했다.

2006년 시샤팡마, 2007년 초오유와 K2에 오른 오 대장은 2008년 5월 마칼루를 시작으로 2년 동안 매년 4개씩 8천m급 봉우리를 오르며 ’철(鐵)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 수년 동안 1년의 절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보냈지만 국내에 있을 때는 수영과 마라톤, 가벼운 등산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면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 왔다.

산에 빠져 40살이 넘도록 아직 독신인 오 대장은 “아직 산만큼 나를 사로잡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14좌 완등 이후에는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산악인 16명 잠든 '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안나푸르나(8091m)는 네팔의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연봉(連峯)이다.

제1봉을 중심으로 7000m급 산이 약 10개 있다. 서쪽으로부터 제1봉(8091m), 제3봉(7555m), 제4봉(7525m), 제2봉(7939m)의 순으로 이어지며, 제3봉의 남쪽에 마차프차리(6997m)라는 위성봉이 있다. 흔히 안나푸르나로 불리는 제 1봉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 중 10번째로 높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와 약 800m 정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등정 난이도는 오히려 에베레스트보다 힘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산악인은 3500여명에 달하지만, 안나푸르나를 오른 이는 200명 남짓한 수준이다. 안나푸르나는 1950년 6월3일 프랑스의 모리스 엘조그, 루이 라슈날이 처음으로 올랐다. 이는 세계 최초의 8000m급 봉우리 정복이었다.

안나푸르나는 한국 산악계와는 악연이 깊다. 국내 여성 산악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씨 등 16명이 이곳에 묻혔다. 아시아 최초로 14좌 완등을 달성한 엄홍길 대장도 네 차례의 실패 끝에 1999년 정상을 밟았다.
 
 - 조선일보 4월 27일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