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12월 4일. 계곡에서 야영을 하면 침낭이 눅눅해진다. 압축매트를 깔고 그 위에 에어매트를 깔면 바닥의 냉기는 차단되지만 공기 중의 수분까지 막을 수는 없다. 계곡은 해마저 늦게 든다. 야영지로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하지만 밥을 하자면 물이 꼭 필요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계곡의 아침에는 모닥불이 최고다. 마을에서 야영할 때는 불을 피우지 못하지만 깊은 산중에서는 가능하다. 뜨거운 모닝차를 마시며 모닥불을 쬐면 굳은 몸이 스르르 녹는다. 가끔 즐기는 산중의 낭만이다.
-
야영지에서 가까운 양 카르카를 지난다. 어제 우리에게 양을 팔았던 할아버지가 너와움막을 짓고 수십 마리의 양을 돌보고 있다. 한쪽에는 허름한 티하우스가 영업을 하고 있다.
티하우스는 일종의 주막으로 간단한 식사와 술을 판매한다. 좁기는 하지만 잠을 잘 수도 있다. 깊은 산중을 오가는 나그네에게는 반가운 곳이다. 전에는 주로 오고 가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했다. 하지만 근래에 외국인 트레커가 늘면서 티하우스는 세련된 로지로 발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티하우스 부근의 큰 나무 아래에 돌탑이 있다. 돌탑 위에는 소를 타고 가는 목각 인형이 올려져 있는데 힌두교 상징물로 보인다. 여행자의 안녕을 빌고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는 목각 인형이 흔하다. 집 앞이나 다리 난간, 동네 어귀에서 목격되며 웃는 모습이 특징이다.
광대한 원시림을 지났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울창한 숲이 자연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끼 낀 고목과 두텁게 깔린 낙엽은 숲의 역사를 묵묵히 말해 준다. 이 지역에서 이런 규모의 원시림은 드물다.
너댓 시간 걸려서 숲을 통과했다. 리미가온마을이 나타난다. 70호 정도로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계단식 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 마을도 개간 전에는 나무가 울창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남쪽 경사면에 계곡물이 있다면 곧 마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발 2,500~ 2,700m 사이의 지역은 거의 그렇다.마을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계단식 밭이 존재한다. 물론 그 밭은 원시림을 파괴해서 얻는다.
- ▲ 주타산(4200m) 정상에서 본 히말들 . 왼쪽 큰 산이 사이팔 히말(7040m)이다.
-
대책 없는 원시림 파괴 진행 중
리미가온마을은 한술 더 떠 북쪽 사면까지 벌목하고 있다. 벌목 현장을 비디오로 촬영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고함을 치며 막아선다. 불법 행위가 고발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나무가 사라지면 산사태의 위험은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실제로도 산사태 현장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인간이 불러들인 재앙이다. 지혜로운 개발이 필요하다. 이제 대책 없는 파괴를 멈춰야 한다.
12월 5일. 동틀 무렵 야영장 옆으로 현지인 포수가 조수 두 명과 함께 지나간다. 포수의 총은 조잡한 사제총으로 총열이 길다. 잠시 후 능선 위에서 총소리가 들리더니 곧 연기가 피어오른다. 짐승을 잡아 손질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야생동물을 촬영하며 깊은 교감을 느껴왔는데 기분이 몹시 언짢다.
테코르바라마을을 방문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자 인근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산의 남사면을 통째로 계단식 밭으로 개간했다. 엄청난 규모다. 20~30호 규모의 마을이 계단밭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전체적으로 300호 이상의 큰 마을이다.
밭 여기저기에서 남자들이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다. 여자들은 괭이질해서 고랑을 만든다. 씨앗을 파종하는 사람도 있다. 겨울이지만 고도가 낮아 기후가 따뜻한 탓에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다.
마을 상점에서 사과를 구입했다. 이곳 사과는 부사의 색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수분이 적어 버석버석하며 우리 사과에 비해 신맛과 단맛이 많이 떨어진다. 기후와 토질이 사과 재배에는 적합지 않아 보인다.
- ▲ 리미가온마을 캠프지에 모인 동네아이들.
-
비프랑마을을 방문했다. 가축들이 떼를 지어 목초지로 향한다. 열 살가량의 목동들은 신이 나서 저마다의 물소를 타고 간다. 이 물소는 야성이 남아 있어 외부인들을 보면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침을 뱉곤 한다. 그런 물소를 능숙하게 다루는 목동들이 신기해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한 목동이 우리에게 한눈을 팔다 그만 물소 등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우리 책임도 일부 있기에 깜짝 놀라 달려갔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다.
리미가온마을에는 헬기장이 있다. 인근 마을에서 수집한 약초를 자루에 담아 헬기장 근처에 쌓아 놓았다. 약초는 헬기에 실어 네팔 간지를 경유, 인도로 수출한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고가의 약초가 틀림없다.
오후에 코차니마을을 방문했다. 여인들이 밭에서 거둔 여러 가지 곡식을 절구에 찧거나 돌판에 갈고 있다. 기름 짜는 여인도 있는데 방법이 지극히 원시적이다. 볶은 호두나 유채씨를 나무 상자에 넣고, 그냥 손으로 주무르고 두드려가면서 기름을 짠다.
현지인이 빵을 먹고 있어 조금 얻어 먹었다. 콩과 보리 등의 잡곡을 섞어 만든 빵으로맛이 담백해서 먹을 만하다. ‘뿡기’라는 빵이다. 돌포 지역에서는 보릿가루로‘짬빠’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 짬빠와 뿡기의 맛은 거의 비슷하다. 설탕은 전혀 안 들어가고 소금이 약간 들어갈 뿐이다. 담백한 뿡기와 짬빠는 현지인을 꼭 닮은 빵이다.
12월 6일. 코차니마을을 떠나 시간 반 정도 오르막길을 오른다. 밀참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전면에 순한 산세의 육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 뒤로 사이팔 히말(7,025m)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티베트 크라니봉이 크게 보인다.
구릉지를 내려가자 흙과 돌로 쌓은 세련된 사층탑이 서 있다. 어딘가 중국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근처에 있는 퇴락한 큰 무덤 역시 예사롭지 않다. 풍화되어 글씨는 알아볼 수 없으나 인공적으로 손질한 비석이 서 있다. 티베트나 네팔에서 매장 풍습은 매우 드물다. 아마도 오래 전 중국에서 이주해 온 유력한 인물의 무덤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 ▲ 코차니마을에서 유채기름을 손으로 짜고 있는 아낙.
-
물 마시려 사람과 소, 양, 말, 당나귀들 줄지어 기다려
밀참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한가운데 공동수도가 있다. 계곡물을 호스로 끌어왔는데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마냥 물이 나온다. 그 물을 먹으려고 동네 사람들과 소, 양, 말, 당나귀가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가 보인다.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흡연율이 높다. 파이프는 흙으로 굽거나 나무를 뚫어 만든다. 직경은 3cm가량, 길이는 15cm 정도로 곧은 원뿔 모양이다. 표면에는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문양들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다.
담배는 잎을 쪄서 말린 다음 절구에 빻는다. 담배를 가루 상태로 파이프에 담아 피운다. 물론 필터는 없다. 대신 파이프 주둥이에 천을 감아 연기를 걸러 피운다. 그런데도 연신 기침을 한다. 연기가 매우 독하다.
밀참마을을 지나 점심을 준비한다. 주변에 크고 작은 야생 호두나무가 많다. 스태프들이 호두를 주워 돌로 깨뜨려 먹는다. 껍질은 두껍고 알맹이는 작지만 맛은 고소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밭을 개간할 때 유일하게 남겨놓는 나무가 호두나무다. 호두는 간식용으로 인기가 높고, 기름은 채취해서 여러 용도로 쓴다. 호두나무가 많은 지역은 부스럼 환자가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부의 지방 부족을 호두가 보충해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월 대보름에 부럼을 먹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는 우리 풍습은 확실히 근거가 있다.
- 양 치고, 땔감 해와야 하는 히말라야 산골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 ▲ 뿌바가온마을 입구에서 만난, 양실을 뽑고 있는 여인.
-
뿌바가온마을에서 혼례 행렬을 만났다. 북 치는 사람들을 앞장세우고 한 남자가 어린 신부를 업고 뒤따른다. 다른 마을은 보통 말이나 대나무 가마에 신부를 태워 간다. 몹시 가난한 마을이다.
열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신부는 붉은 스카프와 화려한 혼례복 차림이다. 많은 사람들이 혼수품을 지고 따른다. 송아지가 끌려가는데 지참금으로 짐작된다. 어린 신부의 고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행복했으면 싶다.
12월 7일. 아침부터 산길을 오르고 또 내려간다. 매일 이런 산행을 반복하노라면 몸은 지쳐서 기계적으로 걷게 된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가벼운 흥분으로 늘 부풀어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풍광과 풍물에 대한 기대와 그것을 촬영하고자 하는 욕심이 오늘도 걸음을 이끈다.
꼽라노마을에 도착했다. 10여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로 잡곡빵인‘뿡기’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한다. 이들은 도정시설이 없어 거의 매일 절구에 곡식을 빻는다. 뿡기는 그때그때 빻아서 굽는 빵이라 더욱 맛있다.
돌집 1층에서 소 두 마리가 고개를 빼고 내다본다. 1층은 가축 우리고, 2층은 살림집이다. 이들에게 가축은 가족과 다름없다. 그래서 건초 비축에 신경을 쓴다. 옥상과 나무 위에 건초가 가득한데도 부근 산에서 건초를 베는 여인들이 보인다. 건초 비축은 여자들의 몫이다.
무와가온마을을 지난다. 한 남자가 풀무질을 하며 장작불 속에서 쇠를 달구고 있다. 양가죽으로 만든 풍구를 사용한다. 비록 간단한 농기구지만 이 지역에서 대장질하는 광경은 처음 본다.
계곡 근처에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배가 아프다고 약을 달란다. 아쉽게도 전문적인 약이 없어 진통제를 주었다. 그 중 한 남자가 한국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한국청소년 오지탐험대의 기념 티셔츠다. 네팔 오지에서 한국어를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스태프들이 밭두렁의 돌담에서 웬 식물의 풀잎을 채취하느라 바쁘다. 키가 1m 남짓 되는 풀로 들깨 비슷한 잎에는 가는 털이 나 있다. 그 잎에 피부가 스치면 톡 쏘면서 한동안 가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중에는 머리가 시원해진다. 특이한 약성을 가진 약초다.
이 풀은 야생으로 돌담 근처에 자생한다. 잎을 넣고 국을 끓이면 파래국처럼 풀어진다. 다소 풀냄새가 나고 특이한 맛은 없다. 그런데 스태프들은 유난히 좋아한다. 이 풀만 눈에 띄면 신이 나서 나무젓가락으로 잎을 딴다.
안나푸르나의 산간에서 이 풀 가지로 아이 엉덩이를 때리는 여인을 목격한 적이 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훈육법으로 짐작된다. 아이는 따갑고 가려워 울고불고 난리다. 혼을 내면서도 정신은 맑게 하니 일석이조다.
- ▲ 담배를 피고 있는 양치는 노인.
-
할아버지처럼 보여도 실제 나이는 사십 세에 불과
시말가온마을에서 야영을 한다. 현재는 빈 마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거주하며 농사를 짓다가 겨울에는 아랫마을로 이사를 간다. 북사면이라 춥기 때문이다. 어제 야영했던 뿌바가온마을도 겨울에는 아랫마을로 이사를 간다. 추위 때문이 아니고 물이 없어서다. 햇빛과 물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12월 8일. 시말가온마을을 떠나 가파른 침엽수림을 오른다. 비교적 나무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네팔 서부지역의 중심마을인 시미코트가 가까워진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다. 세 시간을 올라 3,800m 지점의 뷰포인트에 올랐다.
왼쪽으로 칸지로와 히말과 다울라기리 산군, 구리자 히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사이팔 히말, 천사다 설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울창한 산림 뒤로 하얀 히말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내려가는 경사지가 몹시 미끄럽다.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 있다. 사람은 그런대로 내려가는데 짐을 실은 말들이 문제다. 징을 박지 않아 반들반들 닳아버린 발굽 때문에 더 미끄럽다.
얼음 지대는 돌아간다지만 솔잎이 깔린 경사지는 넓어 그럴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말을 살살 끌고 내려간다. 말들은 그럭저럭 버티다가 나중에는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한바탕 웃고 만다. 마부는 혼비백산이다. 스태프들까지 달려들어 간신히 사고를 모면했다.
꼽까마을 부근에서 장작을 패서 등에 지고 가는 소녀 둘을 만났다. 열 살가량의 예쁜 소녀들이다. 나란히 앉아 양을 돌보고 있는 모녀도 보인다. 소녀는 피부가 무척 고운데 엄마는 거칠고 주름이 깊다. 그 대비되는 모습이 왠지 슬프다.
이 지역은 건조해서 먼지가 많다.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 노화가 빠르다. 남자든 여자든 사십이 넘으면 거친 피부와 깊은 주름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스태프 중에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친구도 실제 나이는 사십 세다.
꼽까마을은 50호 정도로 다른 마을과 비슷한 풍경이다. 여인들은 절구를 찧고 남자들은 양털실을 뽑아 실패에 감는다. 한 여인과 어린 소녀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무척 행복해 보인다.
- 30분을 더 걸어 랄리가온마을 인근에 캠프를 쳤다.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구경을 온다. 사진을 찍어 영상을 보여주자 신기해한다. 서로 찍어달라고 난리다. 한 아이가 답례로 호주머니에서 호두를 꺼내준다.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더니 너도나도 집에 가서 호두를 가져와 건넨다. 호두 두 개를 한손에 잡고 비비는 방법을 가르쳐줬더니 열심히 따라 배운다.
이 지역의 아이들은 표정이 밝고 맑다. 걸어 다닐 무렵이 되면 물을 떠오고, 양을 치고, 땔감을 해오고, 건초를 베어 날라야 한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거들어야 한다. 장난감이나 컴퓨터 게임은 상상도 못 한다. 자연에서 뛰고 뒹구는 게 놀이의 전부다. 그런데도 행복지수는 높다.
- 글·사진 조진수 사진작가 / 월간 산에서 -
- 양 치고, 땔감 해와야 하는 히말라야 산골 아이들의 행복지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