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자연, 사람을 만나며 행복해지는 길 *-

paxlee 2010. 9. 22. 17:14

 

               자연, 사람을 만나며 행복해지는 길을 만들다

 

                          -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제주의 바다와 오름, 중산간을 모두 경험하면서 걷는 길 ‘제주올레’ 3코스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만난 글이다.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제주의 바다와 바람, 하늘을 사진에 담는 데 자신의 생명을 던진 김영갑. 그의 말처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한 이어도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길을 지날 때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 6시. 길을 안내하는 ‘올레사인’을 따라 걸으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신풍목장’이다. 매혹적인 말들이 바다를 뒤로하고 서 있다. 약재로 쓰인다는 귤 껍질을 바닷가 가득 깔아 놓아 주황색 비단을 깐 듯 보이는 풍경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쉬멍쉬멍(쉬다가) 걸으멍걸으멍(걷다가) 하는 제주올레(www.jejuolle.org)는 한 여인의 이어도다. 봉긋하게 솟아 푸근한 느낌의 오름과 돌담길 너머 핀 유채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가 열리는 길, 마늘 밭을 따라 걷다 미술관에서 제주를 사랑한 화가나 사진가의 영혼을 만나는 예술적인 길,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들풀마저도 가슴에 담는 길을 원했던 한 여인의 꿈이 서린 길이다.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산일출봉 오름. 텅 비었지만 더없이 충만한 이곳은 신화의 땅임을 말해 준다. 시흥초교와 종달리, 성산을 잇는 올레 1코스 길로 오름과 해안을 모두 품고 있다.

  이 황홀한 '제주올레길'을 만든 제주 여인을 만났다. 길을 통해 ‘간세다리’(게으름뱅이의 제주말) 정신을 퍼뜨리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51). 그는 사유지로 툭툭 끊긴 길을 동맥처럼 이어 사람들이 걸으면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고 있다. 길이 리조트를 지나야 하면 리조트 사람들을 동참하게 하고, 사유지목장을 지나가면 목장 주인을 설득해 길을 열었다. 제주올레가 개척한 ‘제주 걷는 길’ 코스는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제1코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12개 코스 198km가 만들어졌다. 올레를 따라가다 보면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코스를 계속 개척할 예정이라고 한다.
 
  “맹숙아, 아방*(아버지) 왐시냐 올레에 나강 보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곳에서 사람들은 제주를 재발견한다.

  제주 토박이인 그는 엄마에게서 이런 말을 무시로 들으며 성장했다. ‘올레’는 제주말로 ‘자기 집 마당에서 마을로 들고나는 진입로’를 말한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확장되는 변곡점, 소우주인 자기 집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최초의 통로가 올레입니다. 자기네 집 올레를 나서야만 이웃집으로, 마을로, 옆 마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올레를 죽 이으면 제주뿐 아니라 지구를 다 돌 수도 있지요.”
 
  ‘올레’는 지난해 한글문화연대에서 제주어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사랑꾼’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3만 명이 제주올레 코스를 따라 걸었다고 한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테마별 올레 걷기’ 와 코스별로 ‘1사 1올레 자매결연’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그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느 길이 가장 아름다우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어제 걸었던 길”이라고 대답한다. 또 하나는 “왜 길을 만드는지” 하는 것이다.
 
  “길이라는 게 눈으로는 보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비우고 정리하고, 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걸으면서 하는 참선을 행선이라고 해요. 마음을 정화시키는 거죠. 불가(佛家)에서는 참선 위에 행선이라고 한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듭니다. 여러 가지 물건과 생각할 거리에 둘러싸여 있으니 힘들지요. 철학자나 음악가들이 산책을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왼쪽 : 외돌개로 가는 길의 올레사인. 제주도의 바다를 상징하는 바다색 올레사인은 올레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가운데 : 풍림 7경 중 5경에 해당되는 몽돌 해안. 둥근 몽돌로 이루어져 파도 소리가 독특하다.
오른쪽 : 외돌개 가는 길. 올레 7코스로 제주 바다의 천 가지 표정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길 에서 만난 올레꾼들은 그에게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그도 길 위에서 참 행복하다.

  산티아고 순례 후 ‘고향 제주에 길을 내자’고 결심
 
  23년간의 기자 생활을 끝으로 그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자연이 주는 위안과 평안, 치유를 얻었다고 했다. 파울로 코엘류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과 부딪히며 ‘사람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중 영국에서 온 한 순례자가 “돌아가서 너희 나라에 길을 만들면 어떻겠니?”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단다. 길을 만들 수도 있구나. 이 길을 만들면서 오랫동안 서먹했던 남동생과 화해했고, 잊고 지내던 친구들, 선후배와 재회할 수 있었다. 이 재회는 제주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봄을 환하게 하는 유채꽃. 제주인들에게는 기름을 짜고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로도 무치고 샐러드로도 해 먹는 꽃이다.

  제주올레 1코스는 작고 아담한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성산 광치기 해변까지로, 바다와 오름을 함께 경험할 수 있고, 외돌개에서 법환포-월평포구(현7코스)를 잇는 바당올레는 제주 바다의 천 가지 표정을 볼 수 있다. 포구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8코스월평포구에서 중문해수욕장, 대평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송악 오름의 절경을 볼 수 있는 10코스, 쇠소깍에서 이중섭문화거리, 외돌개를 잇는 문화생태 코스 등 제주의 모든 올레는 신화와 사람, 문화와 역사, 예술, 음식 등 제주의 순수한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중섭이 살았던 집에서 올려다본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문화거리는 올레길 중에 만나는 행운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마지막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해요. 이 길을 걷는 올레꾼들은 처음에는 자연에 반하는데, 마지막에는 사람에 반한다고들 해요. 올레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박함에 반하는 것이지요. 닳고닳은 친절이 아니라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 때문이지요. 손세실리아라는 시인은 5코스 길을 걷다 조그만 점방에 들어갔대요. 갈증이 나서 맥주를 사러 들어갔는데, 그곳을 지키던 할머니가 밥을 차려 주시더래요. 쌈까지 싸서 입에 넣어 주시는데, 알고 보니 시인이 할머니 딸과 비슷한 또래였나 봐요.”
 
  길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돌아가는 길에 모두들 “행복하다”고 말한다. 제주올레가 유명해진 것은 이렇게 혼자서, 친구끼리, 어머니와 딸, 부부, 연인들이 다녀간 후 입소문이 나면서였다.
 
  “‘행복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요.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여성이 70%예요. 여자들의 섬에 여자가 낸 길을 여자들이 걷는 거잖아요. 정말 좋아요. 한 달에 세 번씩 온 사람도 있지요. 여성은 관계지향적이에요. 맛있는 걸 보면 같이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좋은 길을 같이 걷고 싶어 해요.”
 
  제주도에서 시작된 올레는 춘천올레길, 일산올레길, 서울북한산올레길 등 이제 전국적으로 퍼져 갈 조짐이다. 그는 그것을 ‘신 대동여지도’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 ‘속도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느림의 여행’. 그는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러 간 날, 일본 취재진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음 달은 홍콩 쪽에서 취재차 다니러 온단다. 올레는 이렇게 제주의 또 다른 면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중이다. 그가 낸 길을 걸으며 마음껏 행복해하고, 아픈 마음은 어루만지자. 그것이 나를 향한 행선길, 신과 자연의 숭엄함을 깨우쳐 가는 순례길의 시작이므로.
 
김영갑 갤러리에서 올레를 따라 표선방향으로 10여 분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신풍목장.
- 천수림  TOP CLASS 객원기자 / TOP CLASS 2010년 09월호 -
서명숙씨는 1957년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에서 태어났다. 시장통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서명숙상회’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 서귀포시에서 고교를 마친 뒤 고려대(교육학과)에 진학해 30여 년간 서울에서 살다가 2007년 제주로 돌아왔다. 지금은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제주올레를 잇는 일을 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편집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냈다. 《제주걷기여행》(북하우스)을 썼는데, 일본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