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부산 희망원정대 시샤팡마 등정기 [2] *-

paxlee 2010. 12. 31. 21:44

 

       [해외원정 | 시샤팡마]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시샤팡마 등정기

 

1952년 지질학자 토니 하겐, 최초의 시샤팡마 남서벽 사진 촬영

우리 원정대는 시샤팡마를 등정해 이러한 또 다른 주봉과 중앙봉의 미스터리를 확인하고, 그리고 남서벽에 비엘리키 루트 우측 두드러진 스퍼에 알파인스타일로 신 루트를 개척하려는 목표도 가지고 왔다.

▲ 마지막 캠프2(7,200m)를 밤 2시께 떠나 700여m 피포드 쿨와르(Peapod couloir) 상부를 안자일렌으로 오르고 있다.

해발 4,500m 지점의 야크 방목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눈이 내리는 가운데 시샤팡마 남서벽 BC(5,300m)에 9월 16일 도착했다. 중국티베트등산협회 정부연락관에 의하면 2010년 가을시즌 시샤팡마에는 모두 7개팀의 등반대가 입산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중 북면 BC에 6개팀, 남서벽 루트로는 우리 팀뿐이다(BC 철수 후 경기도산악연맹 초오유-시샤팡마 원정대가 남서벽으로 입산했다).

한 달가량 머물 BC를 구축하고 등반준비를 마무리한 9월 18일 원정대 전원은 남서벽 루트 초입지점인 전진베이스캠프(ABC·5,780m)까지 등반에 필요한 모든 장비·식량을 수송하고 출발 9시간 만에 BC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샤팡마를 포함한 랑탕히말은 아직도 여름계절풍 몬순이 끝나지 않아 짙은 안개가 끼고 비, 그리고 폭설이 BC에 내려 일주일 동안 시샤팡마 산군을 볼 수 없었다. 두 팀의 한국대(경기도연맹팀, 코오롱챌린지팀)가 등반하고 있는 초오유에 위성전화로 연락을 취해 보니 같은 사정이라고 했다.


▲ 캠프2로 루트개척을 하는 대원.
9월 22일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구름 속에 잠시나마 희미한 얼굴을 내민 보름달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조용한 추석을 보냈다. 9월 24일부터 날씨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여 내일 전진베이스캠프로 이동, 본격적인 등반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9월 25일 ABC로 진출했다. BC에서 ABC로 접근루트는 세 갈래 길이 있다. 원정대는 처음엔 냐낭푸빙하(Nyanang Phu Tsang) 동쪽 모레인 언덕 위를 따르는 길을 택했다. 이 루트는 가장 평탄하지만 길다는 단점이 있었고 후에 바꾼 두 번째 길은 풍파리(Pungpa Ri·7,445m)와 냐낭리(Nyanang Ri·7,071m)봉우리 사이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는 모레인 빙하 말단을 경유해 가는 길로 남서벽으로 접근하기에 가장 이상적이었다. 세 번째 길은 두 번째 루트와 비슷한데 빙하의 말단이 아닌 원두의 얼음빙하 밑자락을 거치는 길로 짧지만 깊은 협곡을 업다운해야 한다.
다음날 ABC 위의 크레바스가 발달한 빙하를 건너 남서벽 루트 초입으로 진입했다. 루트는 평균경사 50도로 장벽을 이루고 있다. 하단부 5,900m 지점에서부터 캠프1(6,600m)에 이르는 구간에 빠르게 루트 개척을 완료하고 ABC로 하산, 다음날 하루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28일 이른 아침 전진캠프를 출발한 대원들은 5시간 만인 정오경(북경표준시각) 캠프1에 도착, 나이프 리지상에 캠프1을 구축하고 이어서 6,800m 지점까지 루트를 개척한 후 캠프1으로 돌아왔다. 29일 캠프2까지 루트를 개척하려 했으나 로프의 부족으로 상부 쿨와르로 진입하는 암벽부 6,950m 지점까지만 진출한 후에 베이스캠프로 하산, 휴식을 취했다.

캠프1으로 오르면서 냐낭푸 빙하 원두에 하나의 안부가 보인다. 바로 시샤팡마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한 연결고리다. 시샤팡마의 정체를 더욱 확실히 파악한 것은 스위스인 지질학자 토니 하겐(Toni Hagen)의  랑탕히말 탐험에서였다. 물론 랑탕히말을 먼저, 그리고 광범위하게 답사한 사람은 영국 탐험가 틸맨(H.W. Tilman)의 1949년 랑탕히말 산군 방문이었다. 그러나 틸맨은 몬순으로 인해 네팔 측 랑탕빙하의 원두에서 시샤팡마를 정확히 관측할 수 없었다. 남서쪽에서 시샤팡마를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보여준 최초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하겐이었다.

▲ 캠프1(6,600m)의 위치는 좁은 설릉을 깎아 설치했다. 까마귀들은 캠프1은 물론 캠프2까지 따라 다니며 등반식량을 약탈했다.

‘나의 여행은 1952년의 가을이었고 고사인탄의 사진과 약도를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한 것이 귀중한 수확이었다. 또 나로서는 6,000m 이상의 높이에서 텐트를 친 첫 경험이었다. 카트만두에서 랑탕계곡까지는 아름다운 경치의 순례 길을 따라 고사인쿤드 산맥을 넘어서 갔다. ?가부빙하(랑탕계곡 상류·지금의 Langtang Gl.)의 남단 3,9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카트만두에서 데리고 온 포터들을 돌려보내고 여기부터는 셰르파 아일라와 둘이서 크레바스가 많은  ?가부빙하를 고생 끝에 올랐다. 3일 만의 저녁 때 지빙하(支氷河)와의 합류점 조금 아래 눈 속에 최후의 텐트를 쳤다. 다행히 다음날은 일기가 좋아 우리들은 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지빙하를 올라가서 능선(국경)에 섰을 때 눈앞에 고사인탄이 솟아 있었다. 즉 이 산의 정면에서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다.’

그의 사진은 독일계 스위스인 군터 디렌푸르트(Gunter Oskar Dyhrenfurth) 박사의 <To the Third Pole : the history of the High Himalaya 1955>의 연대기 책에 등재되어 드디어 널리 알려졌다. 하겐이 오른 능선상의 안부는 그 후 ‘하겐의 고개(Hagen’s Col)’로 불렸다. 이 능선은 랑탕히말에서 주갈 히말(Jugal Himal) 쪽으로 뻗어 국경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으로 시샤팡마는 결국 티베트 영토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재증명되었다.

10월 4일부터 제트기류가 남하하면서 향후 10일간 그 가장자리에 위치, 강풍이 예상된다는 기상예보에 따라 조금 무리가 따르지만 10월 1일 캠프1, 2일 캠프2에 진출, 3일 정상등정을 시도할 계획을 세웠다. 하루를 휴식한 1일 정상등정 시도를 위해 BC를 출발, 9시간 만에 ABC를 거쳐 바로 캠프1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밤부터 강풍이 몰아쳐 이튿날 캠프2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캠프1에서 하루를 보냈다.

체링 도르지가 있어 도움은 되었지만 고소포터를 고용하지 않은 원정대는 루트개척은 물론 무거운 짐수송을 해야 했다. 캠프1까지의 하단부에는 고정로프를 일부분에만 설치해 로프가 없는 구간에서는 안자일렌으로 오르내렸다.


▲ 캠프1에서 캠프2로 루트작업을 하는 대원 뒤로 랑탕리룽(Langtang Lirung 7,227m)을 비롯 랑탕히말의 명봉들이 솟았다.
BC의 홍대장님과의 무전교신에서 3일 오후부터 기상예보가 바뀌어 제트기류의 가장자리에 위치, 시속 70km 이상 강풍이 분다는 정보에 등정시도를 포기하고 지난번 완성하지 못한 루트를 개척하며 7,200m 지점의 캠프2 사이트까지 진출한 후 이날 밤 10시경 BC로 하산했다. 제트기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바람이 잦아든다는 10월 7일부터 두 번째 등정을 시도할 작정이었다.

주봉 정상에 서자 중앙봉에서 올 수 없는 이유 깨달아

그러나 이후 제트기류는 정체했고 랑탕히말 전역에 강풍이 몰아쳐 계속 베이스캠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우리 팀의 대원으로 참가한 네팔인 체링은 더그 스코트와 함께 소속사의 트레킹피크 등반일정 때문에 11일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이번 시즌 시샤팡마에 도전한 7개 팀 중에 북면으로 6개 팀이 등반에 임했으나 적설량이 많아 캠프1까지 진출한 후 눈사태의 위험으로 등반을 포기하고 한 팀을 제외하고 모두 철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한 시샤팡마와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초오유(8,201m)에서도 캠프2~캠프3 구간에서 눈사태가 발생해 고정로프 작업을 하던 외국팀과 경기도팀의 셰르파들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2차례나 발생했고 지속적인 강풍으로 500여 명에 달하던 원정대가 모두 철수하고 현재 경기도연맹팀과 코오롱챌린지팀, 그리고 외국대 한 팀뿐이라고 전해왔다. 이들은 10월 9일 정상등정 시도를 위해 BC를 출발했으나 강풍으로 캠프1 이상 진출치 못하고 하산했다. 10월 14일 등정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했다.

▲ 이번 시즌 시샤팡마에는 7개팀이 입산해 우리팀 2명만이 정상에 섰다. 사진의 중앙 뒤쪽에 칼날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가 중앙봉이다.

8일간 긴 기다림 끝에 10월 12일 BC를 출발한 김창호·서성호 대원은 이날 캠프1, 13일 20여kg의 짐을 지고 5시간 만에 캠프2에 진출했다. 기존 팀들은 이 부근에서 비박을 하고 7,500m대에 한 번 더 비박을 한 후에 등정에 나섰다. 우리는 적정한 캠프지를 찾았고 텐트에서 푹 쉰 다음 바로 등정을 시도했다.

14일 새벽 2시경 캠프2를 출발한 두 대원은 강풍과 혹한 속에 700여m의 콩깍지 모양의 피포드 쿨와르(Peapod couloir)를 돌파하고 정오경 약 7,900m 지점의 정상부로 이어지는 동릉에 올라섰다. 이어서 2시간15분 동안 정상부 능선을 횡단, 캠프2를 출발한 지 10시간15분 만에 시샤팡마 주봉에 도달했다.

이번 시샤팡마 등정은 올해 가을시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샤팡마 정상에 오른 것으로, 두 대원은 이 산의 통산 286~287번째, 국내 21~22번째 등정자로 기록됐다. 등정 후 강풍은 계속되었고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에 신 루트 개척시도는 접고 원정등반을 마무리했다.


▲ 등반루트는 5,900m 벽밑에서 정상까지 평균경사 50도이다. 캠프1 밑의 하단부 암릉을 안자일렌으로 오르는 대원들.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봉에서 중앙봉까지의 거리는 약250m(외국 등정자들은 400m) 정도로 보였으며, 특히 중앙봉 직전은 칼날 설릉으로 형성되어 있어 왜 시샤팡마 북면루트로 등반한 전체 등정자들 중에 80% 이상이 중앙봉에서 주봉으로 횡단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되돌아서야 했는지를 산은 말해 주고 있었다. 등반가였던 르네 뒤몽드(Rene Dumonde)는 이렇게 말했다.

“위에 서면 아래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 있으면 위에 있는 것을 모른다.”

- 글 김창호 / 사진 부산희망원정대 / 월간 산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