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킬리만자로 등정은 73가지 꿈 중 34번째" *-

paxlee 2011. 1. 17. 21:09

"킬리만자로 등정은 73가지 꿈 중 34번째"

[글로벌 영 파워] [8] 로열 더치쉘 영국 본사 직원 김수영씨
아빠부도로 자퇴·가출 방황 1년 늦게 실업계高 진학 고학하며 대학 마치고 취업
"행복하지 않으면 억울한 삶" 암 진단받고 인생관 바꿔 세계 돌며 꿈 이뤄어 가는 김수영씨

지난달(12월) 31일 새벽 스물아홉 살 김수영씨는 울면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동쪽 킬리만자로산 해발 5895m를 오르고 있었다. 돌부리에 걸려 수십 번 넘어지고, 발이 엉켜 쓰러졌다. 등반 3일째부터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김씨는 "저의 꿈 중 하나인 킬리만자로 등반을 20대의 마지막 날에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이루고 싶은 73가지 꿈을 세우고 지금까지 33가지 꿈을 이룬 그가 34번째 '고지(高地)'에 도전한 것이다.

김씨는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로열더치쉘 영국 본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일한다. 영국 내 1000여 개 주유소의 윤활유·차량용품 판매를 총괄 관리하고 있다. 작년 폭설 등으로 거의 모든 사업 부문의 매출이 감소했지만, 김씨가 맡은 부문만 약 10% 상승했다.

그는 연세대 영어영문학·경영학을 이중 전공했고, 영국 유학을 떠나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교 중국 국제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영어·일본어·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최근에는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

지난달 31일 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동쪽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오른 김수영씨가 73가지 꿈 가운데 34번째 꿈인‘킬리만자로 오르기’를 이룬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사진 김수영씨 제공

이 모두 그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스스로 얻어낸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회사 부도로 시골 마을회관 쪽방에 얹혀살아야 했다. "학교 준비물 살 돈이 없을 때, 막노동판 전전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를 때 어린 나이였지만 정말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왕따'였고 중학교 땐 '문제아'였다. 중학교를 자퇴했고 세 번이나 가출했다.

김씨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듣고 집에 돌아갔다"고 했다. "노래 가사에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에 꽂혔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쳐서 1년 늦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갔다. 돈이 없어서 남이 쓰던 문제집을 얻어다 지우개로 답을 지우고 풀면서 공부했다. 첫 중간고사 이후 졸업할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한 교사는 "여기서 전교 1등 해도 전문대 가는 게 고작"이라고 했고, 부모는 "취업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1999년 연세대 정시 모집에 합격했다.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에서 모든 문제를 다 풀어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해 매달 4개의 과외를 하며 모은 돈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해외여행을 다녔다. 졸업한 뒤 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합격했다. 김씨는 "취직 후 받은 건강검진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너무 억울했다"고 했다. 그는 "수술을 무사히 마친 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생 말고 내가 행복해지는 인생을 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하고 싶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73가지를 정했다.

 

그는 첫 번째 꿈을 '인생 3분의 1은 한국에서, 3분의 1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머지 3분의 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사는 것'으로 정했다. 곧바로 짐을 싸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차례차례 꿈을 이뤄갔다. 아마추어 뮤지컬 무대에 서 봤고, 살사 댄스와 스페인어를 익혔다. 책을 쓰고 인세(印稅) 10%를 청소년 단체에 기부했다. 김씨는 "지금껏 이룬 꿈 중 작년에 부모님께 작은 집을 사 드린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2월 31일 오전 8시 김씨는 등반 5일 만에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피크에 도착해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다. 1월 1일 서른 살이 된 김씨는 올 6월 휴직하고 1년 동안 런던에서 서울까지 육로로 여행할 계획이다. 그는 "여행 중 인도 뭄바이에서 인도 영화에 출연하는 꿈을 꼭 이루겠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이 제게 '꿈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이메일을 보낸다"면서 "대부분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학벌이 안 좋다'는 한탄이 많은데 저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완벽한 상황은 절대 오지 않죠.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준비는 하되,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니거든요.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잖아요? 인생은 생각보다 길더라고요."

 

              - 글 / 잔지바르(탄자니아)=전현석 조선일보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