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화제] ‘미실’의 작가 김별아, 백두대간 오르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산행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출간… 치유의 산행 담아

‘미실’의 작가 김별아, 그녀는 백두대간 종주길에 올랐다. 과천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청계산 한 번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그녀가 어떻게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고 의아스럽다. 초보 산꾼이 된 ‘부끄러운’(그녀의 겸손한 표현이다) 얘기를 그녀를 만나 들었다.

 

표면적 이유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학부모 동아리에서 오래 전부터 해오던 산행을 아이들과 같이 ‘아름답고 힘든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녀 스스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40대에 접어들어 ‘처음처럼, 똑 같이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변화하지 않고 ‘꼰대’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익숙한 삶’에 반기를 들고 결별을 선언하기로 했다.

 

동시에 여태 안 해본 것, 싫어했던 일, 여전히 초보인 것에 대해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능숙하지만 정체상태에 빠져 쉽게 권태가 오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바보 같고 서툴지만 그 속에 삶의 생기가 서려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2010년 3월 과감히 첫 도전에 나섰다. 40여 년 동안 산에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첫 산행을 백두대간 종주로 감행하려고 했을 때, 얼마나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을까 눈에 선하다.

‘잠을 설쳤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히 자둬야 한다고 평소보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건만 정작 눈을 뜬 것은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중략) 두려웠다. 새로운 시작 앞에 겁을 덜컥 집어먹고 불안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말로는 애써 아닌 척 호언장담을 했지만 몸은 맘도 말도 속이지 못한다. (후략)’

그녀의 백두대간 산행 에세이를 모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코의서재 刊)란 제목으로 출간한 책의 앞부분에 있는 글이다.

▲ 백두대간을 종주한 뒤 산행에세이를 낸 작가 김별아. 그녀는 40여 년간 산에 한 번 가지 않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전형적인 평지형이었다.

드디어 장도에 올랐다. 남원 고기리에서 수정봉(804.7m)~입망치~여원재~고남산(846.4m)~통안재~권포리까지 총 16㎞를 9시간에 걸쳐 주파했다. 완전한 아마추어 초보 산꾼들도 힘들어했지만 중1년에서 고3년까지 아이들의 불평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백두대간을 폭파시켜버려야겠다”, “내려올 걸 왜 올라가느냐”, “사람들이 산을 깔아뭉개고 아스팔트를 깔아대는 이유를 이해하겠다”, “힘든 일을 왜 굳이 해야 하느냐” 등등 다들 한마디씩 짜증을 내뱉었다. 그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스스로 선택한 그녀였기에 불평을 늘어놓을 처지는 아니었다.

힘들어하고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처음엔 문화상품권으로 유혹했다. 차츰 산행이 반복되면서 문화상품권의 당근보다 산행 그 자체에 훨씬 더 큰 만족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에서 힘들 때 먹는 음식맛과 하산할 때 느끼는 뿌듯함과 행복감은 오히려 다음 산행을 기다리게 할 정도로 됐다. 더욱이 자연이 마음을 편하게 하고 힘든 산행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인내력은 눈에 띄게 키워졌다. 산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아이도 있었다. 운동 못 하는 아이들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변해 갔다. 산이 주는 견디는 힘과 자연의 포근한 품속을 맘껏 즐기는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해 갔다.

40여 년 평지형 인간서 종주꾼으로 변신

더욱이 같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도 가지게 됐다. 애들이 자기 부모들에게는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지만 동행하는 다른 부모들과는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모든 학부모들은 학부모이기 이전에 인생선배로서 역할을 했다. 노는 토요일인 ‘놀토’에 격주로 하는 백두대간 종주 15차 산행 때였다. 그 주는 토요일의 공개수업 때문에 일요일에 진행됐다. 일요산행은 다음날 출근하는 어른들이나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다음주 목요일부터 아이들 중간고사였다. 그때 시험공부 대신 산행을 선택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게 더 어려운지 산을 타는 게 더 어려운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중1년생 한 명이 뚜렷하게 주장했다. “그야 당연히 산을 타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할 수도 있지만 산은 타는 척할 수 없잖아요?” 너무 명언이다. 산을 타면서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훌쩍 커버린 것이다.

▲ 지난해 11월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신체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청소년기의 넘치는 에너지를 힘든 산행을 통해 발산하면서 공격적 성향은 자연과 함께 있으며 순화됐고, 인내력과 쾌활함까지 얻게 됐다. 화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생겼다. 처음엔 힘들고 두려웠던 산행이 차츰 기다려지고 설레는 산행으로 바뀌어 갔다. 산에 가면 언제나 혼쭐이 났지만 그만큼 다음 산행도 기다려졌다.

 

그녀는 다행히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기 전부터 체력을 다지는 요가와 걷기운동을 10여 년 이상 하던 터였다. 매일 아침 명상차원에서 108배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산행할 때 사용하는 근육은 달랐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산행에도 쉽게 적응해 갔다.

사실 그녀가 10여 년 동안 해 온 요가는 산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요가는 기기묘묘한 동작을 뽐내는 기예나 단순히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즉 명상의 일종이다. 등산도 운동의 측면으로만 보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산을 탈 때 발생하는 뇌파는 운동할 때의 베타파가 아니라 명상을 할 때의 알파파가 뚜렷이 나타난다. 따라서 등산은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고, 긴장이 아니라 이완인 것이다.

그녀의 요가와 걷기는 어쩌면 본격 산행을 하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는지 모른다. 산행을 하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는 사실을 느꼈다. 계속되는 산행으로 산이 친숙하게 다가왔고 점차 속살까지 알게 됐다. 산은 모든 사람을 계급장 떼고 같이 걷게 만드는 평등한 공간이고, 산이 곧 삶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산길은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고 삶도 다른 사람이 절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더 이상 ‘도대체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됐다. 삶이 그러하듯 산이, 산이 그러하듯 삶이, 그 걸음걸이 자체가 이유이자 목적인 ‘끊임없는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1년생이 한 말이 다시 유추된다. ‘산은 타는 척 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 할 수 없다’고.

▲ 지난 3월 26일 대관령에서 아들과 함께.

또 있다. ‘내가 왜 산을 타야 하지?’ ‘내가 왜 살아야 하지?’ 등과 같은 풀리지 않는 화두를 번갈아 던진 뒤 한참을 고민하다, 역으로 ‘산은 항상 거기 있었고, 삶도 항상 거기 존재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받고는 산과 삶이 감사하게까지 느끼게 된다.

“산은 내가 사랑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있어”

산과 삶의 가장 큰 공통점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꼭 경험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날 우두령~황악산~대방령 구간을 산행할 때였다. 크리스마스도 그들의 종주 열정을 막지 못했다. 영하 30℃에 육박하는 살을 에는 강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렇게까지 추운 줄 모르고 마스크와 장갑 등 장비를 별로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에도 덥다고 모자를 잘 쓰지 않던 고1년 아이가 그날도 무방비였다. 생전 처음 겪는 추위에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덮어썼으나 막을 수는 없었다. 하산 후 그 아이는 귀가 벌겋게 변하면서 퉁퉁 부어올랐다. 부랴부랴 병원 가서 응급 처치한 결과 2도 동상의 진단이 나왔다. 정말 비싼 경험을 치른 것이다. 그 이후 모든 준비물을 철저하게 챙기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가 사랑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산은 자신을, 아니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신비로운 비밀을 깨달았다고 그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산에 오르면 그 상처를 정화시켜 주는 걸 느껴요. 산에 오르면 삶이 솔직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높이 오를수록 마음은 더욱 깊고 단단해집니다. 오직 나를 믿고 나가야 한다고 다짐할수록 마음의 울림은 더 강해집니다. 높은 산의 메아리가 깊은 것처럼 말입니다.”

▲ 백두대간 종주 7차산행 성삼재에서 만복대를 거쳐 정령치~고기리까지 갈 때 지리산 자락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췄다.

이번에 발간한 책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부제로 ‘김별아 치유의 산행’라고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40여 년 평지형 인간에서 산지형· 등산형 인간으로 변한 지금 그녀는 산이 주는 깊이와 치유의 기능에 큰 감동을 받은 상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주인 글쓰기도 치유의 방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잘 표현하고 사랑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에 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생각이다. 교사였던 부모님으로 인해 ‘절대 남을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어느덧 치유란 이름으로 남을 가르치려는 자신을 볼 때는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번에 발간한 책에 이어 백두대간 종주 나머지 구간을 모아 올 연말쯤 후속 책을 낼 예정이다. 한국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한 편의 시를 통해 한 구간마다 감상을 담아 선보일 작정이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신비의 여인 미실을 천오백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대에 되살린 소설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그녀가 ‘치유의 산행’을 그려냈다. 다음엔 또 어떤 산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선보일지 벌써 기대된다.

            - 글 | 박정원 부장대우 사진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