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김우중 '새로운 도전']
"해외에서 '젊은 김우중'을 길러내는 일, 이게 내 일생의 마지막 흔적이고 싶다"
14년 은둔을 깨다 [1]
"길은 바깥에 있다" 한국 청년들 데려와 베트남에서 취업·창업 교육
대우그룹 해체의 진실 묻자 "나중에 기회되면…" 함구
1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언론 인터뷰에 응한 김 전 회장은 '청년 해외 창업 조련사'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지금 베트남에 머물면서 해외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한국에서 데려와 키우고 있다.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 베트남에서 사업가로 클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사업 재기가 불가능한 자신을 대신해 젊은 사업가들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 경영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인 듯했다.
'글로벌 YBM(영 비즈니스 매니저)' 프로그램으로 이름 붙은 이 사업은 전직 대우맨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회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가 주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다 챙기면서 진두지휘하는 것은 김 전 회장이다. 그는 일종의 '김우중 사관학교'를 만들어 교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이 사업을 "내 인생의 마지막 흔적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김 전 회장과의 인터뷰 및 베트남 현지 취재는 조선일보와 TV조선 공동으로 4월 23~25일 사흘간 진행됐다. 그는 취재진에게 YBM 청년들의 교육 현장을 샅샅이 취재해줄 것을 주문했고 "나라 밖으로 나가 기회를 찾자"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원했다. 그 자신과 대우맨들이 그랬듯이, 지금 청년들의 취업·창업 기회도 해외에 있다는 말을 인터뷰 내내 반복했다. 그는 돈 버는 비즈니스 대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김우중식 재기(再起)'로 여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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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4년간의 은둔을 깨고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25일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김 전 회장은 해외 청년사업가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으나, 대우 해체를 둘러싼 민감한 질문엔 입을 닫았다. /하노이=오종찬 기자
'김우중 사관학교' YBM 베트남 연수생들의 생활은 [2]
새벽 5시30분 기상… 점호·음주규제 등 규율 엄격
베트남語·금융·무역 등 하루 9시간씩 10개월 공부
새벽 5시 30분 베트남 하노이 국립사범대학의 외국인 기숙사동 4·5층에 불이 켜졌다. 4인 1실의 방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20대 남녀 청년들이 눈을 비비며 나와 기숙사 앞 공터에 모였다. 체조를 끝낸 후 '하나' '둘' 구령 소리를 내며 구보를 시작했다. 대학 주변을 두 바퀴 도는 2.5㎞ 코스다.
이 대학에서 YBM 연수생들은 '김우중 사관생도'로 불린다. 섭씨 30도를 넘는 날씨에도 아침마다 구보하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현지인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10개월의 교육과정은 절반 이상이 베트남어 공부이고, 이외 비즈니스 영어와 회계·금융·무역 등의 실무를 배운다. 수업·자습 등 공부하는 시간을 합치면 하루 평균 9시간에 달한다.
하루 세 끼는 현지식이다. 아침에 쌀국수, 점심·저녁은 '껌(COM)'이라고 부르는 현지식 백반이다. 군대에서나 볼 법한 점호(點呼)도 있다. 밤 10시 기숙사 방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점호를 끝내고 11시 반까지 베트남어로 일기를 쓴다. 김호범 글로벌 YBM교육팀장은 "인내하고 절도 있는 생활을 습관화하자는 것이 김우중 회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생활 규율도 엄격해서 술은 1주일에 맥주 2캔으로 정해져 있다. 한 캔을 더 마실 때마다 5점의 벌점이 매겨진다. 아침 구보에 이유 없이 빠지면 5점, 지각은 3점이다. 이런 식으로 벌점 100점을 넘기면 퇴소당하고 귀국해야 한다.
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새로운 기회를 찾아온 젊은이들이다. 연수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해외에서 꿈을 찾기 위해 왔지만 그렇다고 나를 친구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버린 게 아니다. 꿈은 있는데 그 꿈을 펼칠 공간이 없었다"는 말도 나왔다.
한서대 장애인보조기기 학과를 나온 강승운씨는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을 1순위로 잡고 이를 위해 토익을 공부하고 스펙을 쌓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연수생 중에는 박은솔·진감 남매도 끼어 있다. 동생 진감씨는 아주대 건축공학과 재학 시절 모바일 관련 창업을 했던 사업가였다. 이 남매는 앞으로 베트남에서 IT 관련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경북외대를 나온 김대희씨의 꿈은 개도국에서 정화조·변기 관련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중고차 매매 사업에 관심이 있는 김준현씨는 이미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중고차 무역을 해본 경험이 있다.
작년 말 졸업한 1기생 33명은 100% 현지 기업에 취직했다. 장갑 제조업체 ㈜하이비나에 취직한 김보원씨는 "단체 생활을 하며 앞으로 사업가로서의 삶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업체인 '은민'에 취직한 고민정씨는 김우중 회장에게서 '도전'을, 고진선씨는 '열정'을 배웠다고 했다.
☞글로벌 청년사업가(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
한국 청년들이 베트남 등 해외로 가서 취업·창업할 수 있도록 현지어와 비즈니스 실무를 1년간 압축적으로 가르치는 과정. 김우중 회장 주도로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 비용을 부담하며 주관한다. 작년 배출된 1기 졸업생 33명은 전원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에 취업했다. 또 현재 2기 연수생 39명이 국립 하노이사범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연수생과 졸업생에게는 대우그룹 전직 임원들이 일일이 멘토(mentor)로 붙어 조언해준다. 베트남에 이어 내년엔 미얀마에도 연수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시작, 미얀마·인도네시아까지 넓혀갈 것" [3]
"해외서 한국 청년들 키워내 華僑(화교)·유태인 능가하는 네트워크 꿈꿔…
-'김우중 사관학교' 왜 하나
중국·이스라엘을 봐라, 땅 좁은 우리나라도 이들처럼 밖에 나가 서로 돕고 투자해야
-후진 양성이 '제2의 세계경영'
옛 대우 임직원들이 내는 회비로 한 해 40명 안팎 연수생 가르쳐…
지난 24일 베트남 하노이 사범대학 외국인 학생용 강의동 707호실. 한국서 대학을 졸업한 뒤 글로벌 청년 사업가(YBM·영 비즈니스 매니저) 프로그램에 선발된 청년 39명 앞에 김우중 전 회장이 나타났다. 건강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청년들은 환호하며 노(老)멘토를 맞았고, 김 회장은 1시간 특강 내내 쉬지 않고 성공 노하우를 가르쳤다. 그는 "모든 사고방식을 여기(베트남) 기준으로 바꿔라"고 주문했고, "주변을 깨끗이 정돈해라"는 식의 아버지 같은 세심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는 지난 23~25일 사흘간 YBM 교육 현장과 졸업생 취업 현장을 옮겨가며 몇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김 회장은 그중에서도 주(主) 인터뷰 장소로 하노이 대우호텔을 선택했다. 세계 경영 전성기 시절, 대우가 지었던 이 호텔은 베트남 국영기업에 넘어갔지만 '대우'란 이름은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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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이 23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국계 장갑 업체 하이비나를 찾아 공장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김 회장은 이 업체에 취업해 근무 중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YBM) 1기생 박종은(생산 기획 담당)씨 등 3명과도 만나 환담했다. /하노이=오종찬 기자
◇돈이 더 있으면 더 뽑을 텐데…
―14년 만의 언론 인터뷰다. 왜 이제야 나오셨나.
"예전에 하도 오랫동안 일만 하다 보니 건강에 등한했다. 대학 졸업 후 30년 이상을 건강 체크도 안 하고 다녔다. (2005년에) 귀국해서 큰 수술을 많이 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건강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젠 건강이 예전의 80% 정도는 회복돼서(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주치의 말로는 나처럼 빨리 회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체류지로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는?
"의사가 더운 곳에서 회복하는 게 빠르겠다고 권했다. 내가 젊을 때 이곳에 일찍 진출했다. (베트남) 정부도 투자하는 과정에서 잘해줬다. 그래서 이곳이 편안하다."
―YBM은 무슨 프로그램인가.
"밖에 나가 기회를 찾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운명적으로 땅이 좁다. 내가 세계를 돌아다녀 보니 중국 화교들이 미국이고 유럽 도시 어딜 가더라도 다 있어서 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서로 다 도와준다. 전 세계 어느 중국집(음식점)을 가도 만원이다. 이스라엘 인구가 600만명 된다는데, 밖에는 두 배 세 배 나와있다."
―왜 이 사업에 승부를 걸었나.
"재작년까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무얼 할까를 별로 생각 안 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해보니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3년 전에 이 구상을 확정했고, 1년간 준비 과정을 거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성공해 자신감이 생겼다. 원래는 (올 연말) 2기를 졸업시켜 놓고 알리려 했는데, 청년 실업 문제도 있고, 대학이며 KOTRA 할 것 없이 전부 다 (청년 해외 취업 프로그램을) 하는 걸 보고 공개해도 된다 싶었다."
―어떤 점에서 성공이라고 자평하나?
"100% 만족하진 않지만 (1기) 졸업생이 100% 취직했다. 첫 연봉도 생각보다 높게 받았다. 현지 기업들이 (YBM 졸업생을) 인터뷰해 보고, 가치가 있으니까 채용한 거다. 자기들 신입 사원도 서울에서 왔는데 눈빛부터 행동까지 우리 연수생이 확실히 다르다고 한다."
―전액 무료인데 비용 충당은.
"돈이 있으면 더 많이, 100명도 1000명도 가르치겠지만 돈이 없다. 대우 임직원이 모인 대우세계경영연구원 회원이 3000~4000명 된다. 이들이 1년에 10만원씩 회비 낸다. (걷힌 회비로) 1년에 40명 안팎을 가르칠 수 있는 선에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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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본지 박정훈(왼쪽) 부국장과 TV조선 김미선(오른쪽) 앵커와 대담중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
- 조선일보 / 수정 : 2013.04.30 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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