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삶의글

창덕궁 후원

paxlee 2018. 4. 30. 21:31

창덕궁 후원


오후 2시에 창덕궁 금원 후원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관람객들이 모여 있다.


좌측 창덕궁 담장과 우측 창경궁 담장 사이 길이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창덕궁 후원의 첫번째 연못 부용지와 부용정.


담장사이로 난 숲 길을 걸어가다가 얕은 고개길을 내려서면 부용지와 부용정, 영화당,언덕위에 주합루가

보인다.


부용지에는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곳에 소나무 한그루가 그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건너편 언덕위에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주합루는 임금이 신하들과 시를 짖고 여가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임금님이 시제를 내고 시간내에 시를 짖지 못한 신하는 부용지 섬으로 귀양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우측에 있는 영화당은 과거시럼을 보던 곳이라 한다. 아마도 후원에서 부용지와 부용정이 있는 이곳이 후원의 면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부용정은 한쪽 두 다리는 부용지에 담그고, 또 다른 두 다리는 부용지 뚝위에 놓여있다.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은 주합루 남쪽 부용지(芙蓉池)에 면한 누각이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이다. 부용정은 원래 숙종 33년(1707) 택수재(澤水齋)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정조 16년(1792)에 부용지를 고치면서 부용정(芙蓉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부용지는 길이 34.5m, 폭 29.4m의 장방형 연못으로, 가운데에는 도가 사상을 상징하는 직경 9m의 원형

인공섬이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후원은 먼저 연못을 조성하고 정자를 짛어서 후원을 만들었다.


부용지 주위에 좌측에는 부용정이 있고, 건너편 언덕위에는 주합루, 우측에는 영화당이 있어 부용지의

매력을 보여준다.정사각형의 부용지는 규격화 된 연못의 정석으로 보인다. 후원에는 크고 작은 연못이

많은 편이다.

.

후원으로 진입하는 길에 늘어선 소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길을 향해 비스듬이 서있다.


애련지와 의두합이다. 창덕궁 후원에는 이와 같은 연못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애련지 바로 위에 동그라미 연잎이 동전처럼 늘려있다.


연경당이다. 아름다운 산, 풍요로운 숲, 그리고 연못과 정자가 이루어내는 이상적인 환경 속에 자리 잡은 이 집은건축적으로도 뛰어난 짜임새와 만듦새를 보여 주고 있다. 궁궐의 후원 안에 지어졌으면서도 사랑채·안채·안행랑채·바깥행랑채·반빗간·서재·후원·정자 및 연못을 완벽하게 갖춘 주택건축이다. 이른바 99칸집이라 불리고 있으나 현재 건물의 실제규모는 109칸 반이다. 연경당은 사랑채의 당호(堂號)이자 집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연경당을 지나 옥류천으로 올라가는 숲이 우거진 길을 걸으면 신록의 신선함과 녹색의 숲속을 걸으면 신록의 향이 코를 깊게 자극한다. 이런 향을 IT기술로 소리를 녹음 하듯이 녹향을 하였다가 집에 돌아와서 그 향기를 그대로 맡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된다면 배박이 날텐데,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어본다.

4월의 마지막 휴일에 창덕궁 후원의 숲길을 걷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가슴 깊숙히 스며오는 숲길에서 느낄수 있는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조선시대의 궁궐을 걸으며 그때 궁궐의 주인들은 이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의 여백을 체워본다.


드디어 창덕궁 후원의 제일 깊은 곳에 존재하는 옥류천 앞 소요정에 도착했다.


옥류천 그 이름과 명성은 창덕궁을 뛰어 넘고 있으나, 막상 옥류천 그 앞에서면 생각하고 올라온 기대가 왜소

해 진다. 물줄기는 가물어서 그런지 실낫같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모양세가 실망스럽기만 하다.


옥류천을 만들고 정자를 짛고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후원의 기품이 돋보이게 조성한 임금이 인조라고 전한다. 옥류천의 바위를 소요암이라 하고 소요암 앞에 경주 안압지와 같이 바위에 물이 흐르게 둥근 홈을 파서 술잔을 띄었다고 하는데, 이를 유상곡수면(流觴曲水面)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소요암에 오언절구 시는 이 곳의 경

치를 읊은 숙종임금이라 하는 분도 있고, 옥류천을 조성한 인조임금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언절구 시는아래와 같은 시구가 소요암에 음각으로 세겨져 있다.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 물이 흩날리는게 삼백척이고,

                              遙洛九天來(요락구천래) = 까마득한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 = 보고 있으니 하얀 무지개 일어나고,
                              飜成萬壑雷(번성만학래) =골자기 마다 우뢰소리 가득하고 세차게 흐른다.



위쪽에 돌로 두껑을 씌워놓은 곳이 어정(御)인데 이곳에서 물이 흘러서 옥류천을 만들고 있으니

물줄기가 약하게 흐른다. 여름에는 산골짜기에서 물이 흐르면 옥류천의 멋이 살아날 것 같다.


임금님이 직접 벼 농사를 지었다는 농산정과 논이 조성괴어 있다.

그 옆에는 철쭉꽃이 고고하게 피어서 관람객등의 사랑을 받고 있다.


뒤쪽에 태극정이 있고, 바로 앞에 있는 볍집으로 지붕을 이은 농산정이다.


옥류천 앞에 있는 정자는 소요정이다.



창덕궁 후원의 면적이 10만 3000여 평. 사적 제122호로 지정된 창덕궁 안에 있는 조선시대 정원이다.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조원(造苑)유적이다. 1997년 창덕궁과 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원은 부용지와 부용정이 첫번째 후원지역이고, 두번째는 애련지와 의두합, 불로문으로 진입하여 연경당이 있는 곳이고, 세번째는 존덕정과 관람지가 있는 곳이고, 마지막 옥류천 지역으로 네곳의 각각 다른 모습의 후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의 모형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