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86.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paxlee 2021. 1. 23. 09:37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눈, 마스크의 역사가 말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roy?)

과거에 대한 ‘사건’, 그 중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한 ‘선택’,사료를

바탕으로 가장 근접한 ‘객관성’,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사람의 ‘평가’ 이 네

가지가 끊임없이 순환 되는 게 바로 대화의 모습이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의

주체는 당시 사회와 오늘의 사회이고, 더 나아가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로 확장한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단순한 진영

논리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찬반을 논하기 전에 우선 역사 인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서의 역사’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교적

객관적이다. 반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내재된 기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는 서로 충돌되는 이 두 관점의 공통분모를

찾아“역사란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과거의 어떠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할 때 존재할 수 있다.

역사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정하고 선택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해석과 설명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는 역사 속에서 보다 광범위한 추진력, 즉 경제적

변화와 산업화, 계급 형성과 계급 갈등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가들 이란 그들이 속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역사는 개별적인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해 저술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한 사회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물론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명확

하게 인지하고 항상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또한 왜 자신이 역사를 저술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작업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도 줄곧 ‘왜?’라고 묻는다. 원인의 문제에 대해 역사가가 접근하는

첫 번째 특징은 한 가지 사건에 몇 가지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떤 수험생이 ‘1917년

러시아에서 왜 혁명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단 한 가지 원인만 쓴다면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 것이다. 역사가라면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 전쟁

부담으로 인한 경제 붕괴, 볼셰비키의 교묘한 선전, 정부의 무능,

레닌의 확고한 결의 등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개인적 원인들을 나열할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수험생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원인을 10가지 이상 들고 나서 그것으로 만족 한다면,

그 성적이 중위권은 몰라도 상위권에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식은 풍부하나 상상력이 부족

하다’라는 것이 채점관의 평일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란 여러 원인의 상호관계 속에서

어떤 계통 질서를 설정하며, 가능하면 어떤 원인을 ‘궁극적인 원인’으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직업적인 의무를 느낄 것이다.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역사에 관한 모든 논의는 결국 어떤 원인을

위에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역사란 역사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본 선택의 과정이다.

역사란 실재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태도가 아니라, 인과적인 태도의 선택적 체계이다.

역사가가 자신의 목적에 맞는 의미 있는 사실을 넓은 사실의 바다에서 가려내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인과의 연속, 바로 그것을 무수한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따라다니는 법이다. 예부터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만 명의 생각이 있다고 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또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일은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만큼 굳이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굴절되어

나타난다. 나아가 오늘날은 모든 시대 가운데 가장 역사 의식이

발달한 시대이다.

 

세계속의 역사는 어느 시대나 부침을 거듭했다. 로마의 흥망사가 그러했고, 프랑스 혁명이

그랬다. 성공과 실패가 한 사람의 성장을 말해주는 것과 같이 나라의 흥망성쇠도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현재도 5.16 군사혁명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과 사, 이전에 그 시점에 혁명이 일어나게 만든것도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그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린 그 사실을 가지고

현재의 잣대로 그 때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역사의

바탕에서 볼때 현재인들의 욕심이 아닐까?

 

그 다음으로 회자되는 것이 일제 침약으로 식민지 시대의 잔재로 친일파에 대한 계념이

오늘의 사고로 날개을 달고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춤을 추는 현상은 역사

인식이 아니라, 역사 왜곡이라는 생각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역사를

역사로 보지않고 지난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판가름을 해야

속이 시원 하겠다는 그 생각 자체가 역사를 역사로

보지않고, 편견에 멍들어 있는게 아닌가 한다.

 

세계 역사의 흥망성쇠를 바라보아도 엄밀히 따저보면 그 원인과 과정이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때의 과정이 잘못 되었다고 오늘의 시각에서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는 아집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로 인식하고 그때의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런

결과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고 인식하면서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역사 공부를 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속에 혁명을 찾아보면, 고려말 조선의 건국과 5.16 군사혁명이 일어 날수 밖에 없었던

사실이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역사이다. 프랑스 혁명이 그렇듯이 성공한 혁명은 정당성을

인정해 왔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기 때문에 혁명이 가능하였다. 혁명가들은

선정을 먼저 실천하려 했고, 그렇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왔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되풀이 하지 않기위한 것이라 했다. 과거와

현재을 알아야 미래로 나아갈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