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백수의 일상 - 187. <옷은 언어이고, 삶과 사회에 대한 태도가 패션이다>

paxlee 2021. 5. 27. 07:00

 

신 명품 ‘르메르’ 두 디자이너

 

‘르메르’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르메르(오른쪽)와 사라 린 트란. [사진 르메르]

 

최신 트렌드에 밝은 동시에 남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 이들의 소비

성향에는 ‘가성비’와 ‘플렉스’라는 이중성이 공존한다. 욕망에 솔직해 값비싼 명품 소비에 주저

함이 없지만, 돈을 허투루 쓰지는 않는 합리적 소비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르메르·사라 린 트란 인터뷰
간결한 디자인, 우아한 실루엣 특징
르메르 “타임리스·미니멀리즘 구현”
트란 “사람을 잘 드러내는 옷 꿈꿔”

 

이런 성향의 MZ세대에게 최고급 명품 ‘에르메스’만큼 신뢰를 얻고 있는 ‘뉴 명품’ 브랜드가 있다. 프랑스

브랜드 ‘르메르(Lemaire)’다. 이브 생로랑, 크리스천 라크르와를 거쳐 라코스테에서 10년간 크리에이

티브 디렉터를 지낸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르메르가 1991년 론칭한 브랜드다. 그는 2010년 에르

메스 여성복 수장으로 발탁됐고, 르메르에만 전념하기 위해 2014년 에르메스를 떠났다.

 

이후 여성 디자이너 사라 린 트란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영입하고 브랜드 이름도 ‘크리스토퍼 르메르’에서

‘르메르’로 바꿨다. 크리스토퍼의 에르메스 경력,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우아한 실루엣, 고급

스러운 소재 덕분에 르메르는 ‘MZ세대의 에르메스’ ‘패션 좀 아는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입소문 났다.

 

국내에서 르메르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에 따르면 전년 동기대비 매출이 2019년 64%, 2020년 96% 상승

했다. 올해는 현시점까지 168%라는 놀라운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말 두 디자이너를

이메일로 만났다.

지난해 국내 시장 매출 96% 상승


21SS 컬렉션 중 스테디 셀러 ‘카메라백’과 가죽 코트. [사진 르메르]

 

패션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일상을 편안하게 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좋은 옷과 액세서리를 제안하는 디자이너.”(크리스토퍼 르메르, 이하 르메르)

“관찰, 관찰, 또 관찰하는 디자이너!”(사라 린 트란, 이하 트란)

 

세계적으로 ‘크루아상 백’의 인기가 높다. 이 재미있는 실루엣이 나오게 된 과정은.

“사실 우리는 이 가방이 ‘크루아상’을 닮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아차렸다(‘크루아상 백’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 매니아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처음 의도한 건 부드러운 나파 가죽을 이용해 착용한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편한 스타일의 가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마치 얇은 나뭇잎이 몸을 감싸듯, 피부에

닿았을 때 부드럽고, 신체의 연장선처럼 이질감 없는 가방이 목표였다. 2018년 출시 후 많은 사람

들이 사랑해줘서 매 시즌 다른 컬러를 제안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컬러는

선명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버터 컬러다.”.”(트란)

 

두 디자이너는 데님을 사랑한다. “좋은 재질의 데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적”

이라는 게 이유다. 21SS컬렉션. [사진 르메르]

 

‘르메르’의 디자인을 키워드로 정의한다면.

 

“타임리스, 젠더리스, 미니멀리즘이다. ‘타임리스’는 입으면 입을수록 멋스러워지는, 좋은 친구처럼 오랫

동안 옷장에 보관할 수 있는 양질의 옷을 상징한다. ‘젠더리스’는 다양성을 표현하는 키워드다.

모든 인간에게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한다. 우리는 그 섬세하면서도 독립적인 욕구를

자연스럽게 담으려 노력 중이다. ‘미니멀리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했던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Less but better)’이라는

말처럼 디자인 면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다.”(르메르)

“크리스토퍼의 말에 ‘부드러움·자신감·개방적인 마인드’를 더하고 싶다. 우리의 클래식한 실루엣과 시대를

초월하는 타임리스 컬러들(예를 들어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뉴트럴·화이트·블랙 등의 은은한 컬러)은

고객이 자신만의 ‘르메르 옷장’을 완성하고 또 개인적인 스타일(스토리)을 만들기에 용이하다.

실용적이며 편안한 옷들은 전통적인 시안 복식의 넉넉함과도 닮았다.”(트란)

 

'크루아상 백'으로 유명한 베스트 셀러. 사진 르메르.

한국의 젊은 세대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고 인생에서 주도적인 선택을 하는 것, 나를 둘러싼 물건과 내가 입는 옷을 통해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 매일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시간을 갖는 것. 결국

럭셔리는 삶의 질에 관한 것이다.”(르메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 우리에게 어떤 것이 중요한지 느끼게 해주는 일들을 하는 것.”(트란)

 

‘크루아상 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사진 르메르]

 

‘장인 정신’과 ‘패브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래될수록 멋지게 변해가는 옷의 기본은 안정감과 견고함을 가진 소재다.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소재인 데님은 어떤 사람이 입느냐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개성 있는 흔적을 남긴다.”(트란)

“우리는 패브릭의 품질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다. 원단 비용은 의류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믿을

수 있는 패브릭이 믿을 수 있는 의복을 만든다’는 신념을 버릴 순 없다. 다만, 무조건 우아한 소재

만 쫓진 않는다. 너무 연약한 패브릭은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르메르)

‘크루아상’ 닮은 가죽 백 인기 끌어

'르메르'는 언제 어떤 옷들과 매치해도 좋은 타임리스 컬러&디자인을 추구한다. [사진 르메르]

 

요즘 패션업계의 화두는 친환경을 위한 ‘지속가능성’이다.

 

“에르메스의 전설적인 CEO 장 루이 뒤마는 ‘좋은 품질의 제품이란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라고 얘기한 바 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에게 완벽한 해답이다.”(르메르)
“소비자라면 적게 사되 좋은 품질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 답이 될 수 있다.”(트란)

 

‘트렌드보다 지속가능성’처럼 패션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옷은 언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전, 당신에 대한 첫 번째 정보가 패션이다.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르메르)

“사람이 옷에 가려지기보다, 옷이 그 사람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옷의 컬러를

선정할 때도 신중히 고려하는 부분이다. 얼굴 화장으로 비유하자면, 가벼운 메이크업은 피부와

개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과도할 때는 사람이 메이크업에 가려져 버린다. 우리가

만드는 옷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타이거 밤(tiger balm·100년 전통의 동남아권

소염 연고. 오랫동안 포용력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사랑받았다) 같았으면 좋겠다.”(트란)


서정민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중앙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