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백수의 일상 - 205.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

paxlee 2021. 6. 22. 08:04

여행은 나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저자 조송희는 나이 마흔아홉 살에 떠난 생애 첫 해외여행지은 한겨울의 바이칼에 매혹된 후 ‘늦은 여행자’

로 입문했다.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북인도와 산티아고를 걸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아오모리를 여행했으

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오지를 찾기 위해 틈만 나면 가방을 싸곤했다.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그녀

의 여행은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여행지에서 그녀의 하루는 보통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 매 순간 충

실하게 그날의 몫만큼을 걷고 카메라에 담는다. 소소하고 잔잔한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향이 깊게

배인 나무 사이를 걷는 기분이 든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문화 재단에서 10년째 사진을 찍고 글 쓰는 일을 해왔다. 길 위에서 부는 낯선 바람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기에 카메라를 벗 삼아 삶이 다할 때까지 세상의 길과 자기 안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꿈꾼다. 여행은 나의 고정관념과 어리석음이 깨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깨어짐은 통쾌하다.

작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기꺼이 내어준다. 바람을 베개 삼아 쉬고,

태양을 이불 삼아 잠잔다. 힘이 차오르면 또 일어나 걷는다.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저자가 우연히 찾아온 여행의 기회를 접

한 뒤 ‘여행생활자’로 다시 태어나는 10년간의 기억들을 소환했다. 작가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마흔아홉

살에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한겨울 ‘바이칼’의 압도적이고도 경이로운 대자연 속

에서 그녀의 여행본능은 봉인해제 되었다. 이후 여행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스스

로의 삶을 치유했다.


준비 없이 도전한 안나푸르나 등정에서는 행여 일행에게 누가 될까봐 전전긍긍했고, 산티아고 길에서는

낙오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한다. 여행이 고통과 고독이 되는 순간은 자신의 내면에 더 깊이 마음을

포갠다. 삶이 건네는 수많은 질문의 해답을 길 위에서 찾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깃들어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과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행을 하면서 그녀의 고정관념이 부서졌다.

어리석음이 깨졌다.

여행은 나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행은 나에게 건네는 친절한 위로이며, 내안의 나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작가 조송희는 낯선 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는 가장 든든하고도 따뜻한 ‘동행’라고

말한다. 처음 여행을 떠났을때, 그녀는 참 많이 울었다. 세상 속에서 받은 상처들이 아프게 되살아났기 때

문이다.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깊이 보듬었고,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발 길 뜸한 곳만 골라서 찾아다니는 작가 조송희의 여행길을 따라가다 보면, 갓 지은 따뜻한 밥상을 앞에

두고 나직나직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그녀의 여행은 화려하지 않다. 특별한 재료도 없다. 소복이

담은 한 그릇의 밥에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집밥’ 같은 맛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의 하루를 소박하게, 때로

는 기품 있게 담아낸 이야기들에 깊은 탄식과 공감이 절로 나온다. 조송희처럼 여행하는 것, 이보다 좋은

‘여행 법’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더니 또다시 울음이 터진다.

도대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고여있었던 것일까? 온몸이 흔들리며 통곡처럼 터져나오는 울음을 걷

잡을 수가 없다. 마음은 터질 듯 벅찬데, 뜨겁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무언가가 내 영혼을 뿌리째 흔들어

대는 느낌 이다. 슬픔이 아니었고 고통과 회한이 아니다. 나는 분명 오열하고 있지만, 이 눈물은 어떠한 불

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감사와 기쁨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쁘고 내 앞에 펼쳐진 모든 세상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_ p. 42, ‘# 04 내 영혼의 피정지

(避靜地)’ 중에서

안나푸르나에 가자는 메일을 받은 순간, 본능적으로 나는 알았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존재가 되

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 존재가 진짜 나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경계를 넘어

서 야 한다는 것을, 그 경계가 바로 신들의 나라 네팔, 그중에서도 안나푸르나라는 것을……. 작가 김연수의

말처럼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며 바로 이 순간이 ‘경계를 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_ p. 51, ‘# 05 전혀 다른 존재와 나 자신사이’ 중에서

길을 걸으면서 내가 지나왔던 날들을 보았다. 나는 내 봉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줄 알았다. 나만 힘들게

산다고, 나혼자만 죽을 것처럼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고 생각

하 지 못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면서 비로소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산을 넘고 있었다. _ p. 81, # 09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산을 넘고 있다’ 중

에서

장례식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데도 이 광경을 보려고 이렇게 먼 길을 달려온 것 같다는 생

각이 든다. 불타는 시체 옆에서 염소 두 마리가 시신을 덮었던 붉은 꽃을 우물우물 먹고 있다. 검은 소들이

긴 우기 동안 잔뜩 부풀어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누런 개 한 마리가 가트 위에 앉아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

보고 있다. 상주들도 화장터의 일꾼들도 말이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존

재들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윤회한다고 믿기때문이다. 고요한 한낮이다. 이곳에는 물과 불과 흙과 바람이

한 몸이 되어 떠돈다. 삶과 죽음, 사람과 짐승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깃든다.

_ p. 141, ‘# 16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깃든다’ 중에서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여행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여행의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대로 할수 없다. 길을 잃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서 내 여행을 원치 않

는 방향으로 틀어놓는다.그때는 여행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나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여행의 주인

이 내가 아니고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신비로운 건 그 순간이 전혀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리는 또 하나의

출구가 된다 는 것이다 _ p. 208, ‘# 24 때로는 여행이나를 이끈다’ 중에서

헨티 아이막에서 내 몸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별처럼, 들풀처럼, 강물처럼 사는 것임을 알았다. 해가 뜨고

해가지고,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젖고,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흐르며

지내는 삶을 내 영혼이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일주일 동안

나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 _ p. 227, ‘# 27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중에서.

 

<편집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