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494. <586은 가도 ‘모피아’는 남는다>

paxlee 2022. 6. 2. 08:09

586은 가도 ‘모피아’는 남는다

 

‘한 팀’이라는 새 정부 경제팀은 형, 동생 하는 경제관료 출신은 文 정권 실책 반성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새 정부에 자리를 차지 하였다. 정권 바뀌고 세상도 변하는데, 모피아 생태계는 왜 견고한가

 

한덕수 국무총리가 최근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밀었다가 소란이 일자 접었다. 윤 행장은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소득 주도 성장 같은 핵심 경제정책 수립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피아 생태계’를 파악하면 한 총리의 시도가 해독(解讀)된다.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와 윤종원 기업은행장.

 

‘모피아’란 재무부·재정경제부로부터 기획재정부로 이어지는 경제 관료 집단을 일컫는다. 옛 재무부의 영어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와 범죄 조직을 뜻하는 ‘마피아’의 합성어인데 기획예산처 등 범(汎)경제부처 출신도 포함한다. 마피아처럼 촘촘한 조직을 구축하고 서로를 챙긴다는 뜻으로 1990년대부터 쓰여 왔다.

 

문 정권은 ‘586끼리’ 자리 나눠 먹기로 비난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능력에 따른 인재 발탁을 약속했다. 그래 놓고 검사 출신이 득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상을 따져 보면 ‘모피아’라는 또 다른 숨은 키워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총리에 이어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등 대통령실 핵심 참모를 경제 관료 출신으로 임명하고, 일사불란하게 서로 자리를 배분하는 전형적인 모피아식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통계청장·조달청장·관세청장, 심지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경제 관료 출신에 돌아갔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에도 모피아가 내정됐다는 얘기가 돈다. 이미 두세 개씩 외부 ‘장급’ 자리를 거친 인사들이다.

 

경제 관료들이 그래도 가장 똑똑하단 이들이 있다.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모피아가 진짜 실력파라면 왜 지난 정권의 반복되는 경제 실책에 동조했나. 경제를 끌어내린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수립에 기재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증거는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 실정으로 꼽히는 부동산 대책, 납득하기 어려운 징벌적 종합부동산세 등에도 기재부가 열심히 참여했다. 기업이라면 배임 수준이다. 하지만 모피아는 반성도 책임도 없이 승승장구한다.

 

국무조정실장 등극엔 실패했지만 윤종원 행장은 기업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을 무시한 적자 국채 발행 문제를 지적하자 “정무적 판단을 하라”고 질책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가 경기도지사 출마까지 했다. 문 정권에 충성하며 권력 맛을 보았던 청와대 경제 비서관들은 기재부 1급으로 돌아간다 한다. 과거엔 정권이 교체되면 관행적으로 용퇴했던 자리다. 윤석열표 인사의 또 다른 수혜 그룹이라는 검사들은 지난 정권에 항명해 직을 내놓거나 집단 하방을 당하는 어려움이라도 겪었다. 모피아는 무슨 이유로 개국공신처럼 대거 영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경제 관료집단을 뜻하는 이른바 '모피아'의 금융단체장 독식 등 인사 '낙하산' 문제를 지적한 1999년 조선일보 기사. 마피아처럼 서로를 끌어주고 '자리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모피아의 회전식 인사, 기득권 강화 문제는 1990년대부터 줄곧 제기됐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DB

 

한 경제학자는 모피아의 득세를 ‘조합주의’에 빗댔다. 조직원에게 ‘조합’이 이익을 보장해주고 조직원은 조직 존속을 위해 활동하는 구조다. 모피아는 조직 강화를 위해 관과 민을 회전문처럼 오가면서 영향력을 불린다. 경제 부처 장관은 퇴임 후 당연하다는 듯 대형 로펌에 들어가 일한다. 은행연합회 등 4대 금융협회 회장 중 셋이 모피아다.(나머지 한 명은 정치인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낙하산’ 관행을 깨자며 은행·보험사·카드사 사장 등 업계 출신으로 모두 바꾼 지 10년도 안 돼 모피아의 자리로 회귀했다. 정권 수뇌부, 여러 부처 핵심 장·차관, 민간 협회장, 로펌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의 모피아 네트워크는 자가발전식으로 서로를 강화한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고, 행정고시 기수를 꼽아가며 자리 물림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제팀을 짰을 때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금융감독원장 격인 증권거래위원장 게리 겐슬러는 투자은행 출신 가상 화폐 전문가, 공정거래위원장 리나 칸은 온라인 플랫폼 문제를 파온 30대 법대 교수다. 재무장관엔 중앙은행장을 지낸 재닛 옐런을 이례적으로 기용했다.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가상 화폐,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독점 폐해 등 디지털 경제의 굵직한 의제를 최고 전문가로 구성한 ‘팀 바이든’이 풀어가겠다는 메시지가 인사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도 경제팀에 대한 철학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나의 팀’이라고 한다. 명문대 졸업, 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경제 관료 출신 남성으로 서로 ‘형, 동생’ 하는 균질한 모피아 집단이 ‘원팀’의 핵심 원칙인가. 기술이 경제 환경을 빠르게 바꾸는 21세기엔 다양한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조직이 훨씬 효율적이다. 민간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모피아의 권력은 정치 권력보다 더 지속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관료 출신의 금융권 장악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더욱 확대해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2006년 조선일보 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사이 정권도 세상도 많이 바뀌었는데, 모피아 생태계만 그대로다.

 

[朝鮮칼럼 The Column] 김신영 경제부 기자 : 2022.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