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495. <[초·중·고 동기동창 기자의 한동훈 연구] >

paxlee 2022. 6. 2. 08:47

리더십과 정의감 강한 모범생 스타일이지만 反骨 기질도… 윤석열을 따르게 된 진짜 이유

 

⊙ 초-중-고 내내 반장 도맡아 하면서 인기도 많았던 ‘인싸(insider)’
⊙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 “베풀 줄 알고 잔정 많은 친구… 부모님 영향”
⊙ 비틀스와 지미 헨드릭스를 사랑한 韓, 플루트 실력도 수준급
⊙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한동훈이 패배감과 충격에 휩싸였던 사건 두 가지
⊙ 어려서부터 정의감과 反骨 기질 있어… 윤석열 최측근이 된 것도 이 때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을 제외하고 세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정부 인물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라는 데 이견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장관은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중 최연소(1973년생)다.
 
  윤 대통령이 그를 법무부 장관으로 점찍은 이유는 수사와 재판뿐만 아니라 기획업무, 법무행정 현대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 정비 등의 최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찰 기수를 크게 뛰어넘은 인사이지만, 윤 대통령은 “절대 파격 인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지휘했던 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각을 세웠다는 점, 검언유착 의혹을 받은 점 등을 들어 부적격자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한 장관 임명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섰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 딸을 공격하면서 ‘이모(李某) 교수의 논문’을 ‘이모(姨母)와 쓴 논문’이라고 주장하는 등 헛발질을 했고, 한 장관의 인기만 높인 셈이 됐다. 한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보인 차분하고 논리적인 모습에 그를 지지하는 팬이 늘어났고, 2년 전 생긴 팬카페는 대선 후 회원 수가 급증했다. 그의 경력과 인맥은 물론 패션과 가족관계 등 모든 것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장관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2017년 국정농단 특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하고 당시 검사장이었던 한 장관이 수사팀에 참여하면서다. 특검 수사팀은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면서 윤석열 수사팀장과 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검사장은 수사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 검사로 주목받았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당시 야당(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응원을 얻어 정치적 무게감이 커졌고, 한 장관 역시 보수 진영에서 호감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 장관은 문재인 정권에서 네 차례나 좌천을 당했지만 끝까지 검찰을 떠나지 않았고 2001년 검사 생활을 시작한 지 21년 만에 법무부 장관이 됐다.
 
  대선 전 정치권과 관가를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면 한 장관이 서울중앙지검장 또는 검찰총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예측은 나왔지만 법무부 장관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 장관에게는 ‘소통령’, 리틀 윤석열 , 윤석열의 후계자, 차기 대권 주자 등의 별칭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한 장관은 최근 몇 년간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의외로 그의 성장 과정과 학창 시절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대학 4학년 때 사시(司試) 패스, 최연소 검사장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빠른 승진, 8학군 고등학교와 서울법대 출신, 법조인 가족, 강남 거주 등 ‘냉철한 귀족 엘리트 검사’로 보이지만 주변인들의 얘기에 따르면 실제로는 반골(反骨:뼈가 거꾸로 솟아 있다는 뜻으로, 권세나 권위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골을 이르는 말) 기질이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베풀 줄 알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술을 싫어하고 음악 감상을 즐기며 가족과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한 장관의 초-중-고-대학교 동창들과 법조계 동료 및 선후배들을 다각도로 취재해 ‘인간 한동훈’을 들여다봤다. 한 장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서초구에 살았고 이후에도 서초동, 삼성동, 도곡동 등 거주지가 강남구와 서초구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른바 ‘8학군’ 학창 시절 친구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8학군에서 초-중-고 다니며 반장 도맡아

 

지난 4월 13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한동훈 장관은 1973년 4월 9일 한명수(작고)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두 살 위인 누나가 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은 충북 청주에서 보냈다. 아버지 한씨는 세계 1위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Applied Materials: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소재)’의 한국 지사에서 일했고, 청주 공장 임원으로 재직하다 한 장관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가족이 서울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했고 한 장관은 신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한 장관과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홍원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임상부교수(산부인과 전문의)의 기억이다.
 
  “처음 볼 때부터 키가 크고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눈에 띄었는데, 1학기 초 반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반장이 됐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좋고 다른 반 친구들도 한동훈을 잘 알고 있어서 전학 온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년에 청주에서 전학 왔다는 얘길 듣고 조금 놀라기도 했다.”
 
  역시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밸류크리에이션서비스 조용석 대표는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 있었고 남자다우면서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서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의 눈에도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는 부유한 부모님이 학교 일에 관여하면서 뒷바라지하는 아이들, 즉 일종의 ‘마마보이’들이 있었는데 한동훈은 그런 걸 싫어했다. 반장 한동훈은 모든 반 친구에게 친절했지만 부모가 학교에 자주 드나들고 교사들이 챙기는 일부 아이를 향해서는 싫은 기색을 보이곤 했는데, 그런 아이들이 상을 받거나 좋은 실기점수를 받는 걸 보면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싸’ 한동훈
 
  1986년 경원중학교로 진학 후 3년 내내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반장을 도맡아 하고 친구가 많았던 그는 요즘 말로 ‘인싸(insider)’였다. 경원중 동창들에 따르면 늘 전교 1등을 하는 김현석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한동훈이 가끔 1등을 하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이 ‘이과 김현석, 문과 한동훈’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중학교 교과과정은 문과와 이과가 구분되지 않지만 한 장관은 특히 문과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는 뜻이다.
 
  한 장관이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김현석 김현석성형외과(서울 압구정동) 원장의 얘기다. 그는 한 장관과 신동초-경원중-서울대 동기로 30년 이상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동훈이 가족 모두가 ‘베푸는’ 성향이 있었다. 아버지는 미국 출장을 자주 가셨는데,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아들 친구들을 위해 그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헤비메탈 음반들을 사다 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굉장히 미인이셨고 아들 친구들을 무척 친절하게 잘 챙겨주셔서 친구들이 다른 집보다 동훈이 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집안 형편이 엇비슷했는데 동훈이가 친구들한테 뭔가 나눠주거나 밥을 사거나 하는 일이 흔했고 대학교 때까지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경제관념이 좀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고, 어머니와 아내가 꼼꼼히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동기 누가 있

한동훈 법무장관의 현대고 졸업앨범 사진.

 

한 장관은 1989년 서울 압구정동의 현대고등학교(5기)로 진학한다. 지금은 자율형사립고인 현대고는 당시에는 주변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무작위로 배정받는 일반고였고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부유층 및 전문직 부모의 자녀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연예인도 다수 배출했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 이정재씨가 한 장관과 고등학교 동기다.
 
  한 장관은 고등학교에서도 1학년 1학기부터 반장에 선출되고 시험에선 늘 전교 1~3등을 차지해 이름이 ‘빌보드(시험 후 전교 등수 10등까지의 학생 이름과 점수를 적어 붙이는 벽보)’에 오르는 등 금세 학교의 ‘인싸’로 떠올랐다. 고교 동기 A씨의 얘기다. “현대고는 경원중 출신이 많지 않고 압구정동에 사는 학생들이 많아서 입학 당시 한동훈은 대부분 학생에겐 낯선 얼굴이었는데, 고1 첫 반장 선거에서 바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반장이 되더니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성적도 빌보드로 공개되면서 금방 유명해졌다. 공부 잘하는 애들 중 잘난 척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한동훈은 그렇지 않아서 다들 한동훈에게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한 장관과 고등학교 동기(현대고 5기)인 법조인은 김동연 김앤장 변호사(연수원 27기), 한희열 법무법인 수로 변호사(연수원 39기), 김보현 법무법인 AK 대표변호사(연수원 31기, 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가 있다. 그 외에 친분이 있는 동기로는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승석 전 한화생명 상무 등이 있다.
 
  중학교 동기동창까지 범위를 넓히면 사회에서 활동 중인 주요 인사로 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핀테크 총괄 변호사(연수원 29기, 전 쿠팡 부사장), 이원주 AT커니 코리아 대표이사, 김현석 김현석성형외과 원장, 홍원기 연세대 의대 교수, UCSD(미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 종신교수 출신인 김영한 가우스랩스 대표 등이 있으며, 언론계 인사로는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차장), 김시중 MBN 제작부장 등이 있다.
 
  한 장관은 서울법대 92학번으로 입학한 후 여느 대학생처럼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대학 동기 한 명은 한 장관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대학 1학년 때 강남 8학군 출신 법대와 경영대 친구들이 대부분 명우회(서울대와 이대 재학생 중 명문가 및 재벌가 자녀들로만 구성된 사교모임)에 가입하면서 약간의 특권의식 같은 걸 가진 적이 있는데, 한동훈은 함께 가입하자는 주변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1992년)는 서울대에도 수많은 ‘오렌지족(소비지향적이고 개방적인 1970년대생 부유층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한동훈은 8학군 출신이면서도 그런 친구들과는 결이 달랐다. 포시라운(포시랍다:귀하게 대접받고 자라서 험한 것을 잘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경상도 방언)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대학신문(서울대학교 학보)사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운동권이 들어가는 곳 아닌가라는 생각에 좀 놀랐다.”
 
  한 장관은 부인인 진은정 미국 뉴욕주 변호사(현재 김앤장 근무)와는 대학 시절 동문 선후배로 가까이 지내다 결혼에 골인했다. 현대고 6기이며 서울법대 93학번인 진씨는 한 장관의 현대고 1년 후배이며 서울법대 1년 후배다. 동문들은 진씨가 대학 시절 법대 내에서는 물론 서울대 전체에서도 외모가 돋보이는 ‘퀸카’였다고 추억했다.
 
  한 장관과 경원중-서울법대 동문인 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핀테크 총괄 변호사는 “현대고-서울대 동문 수가 꽤 많았는데 한동훈과 진은정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외모였고 법대 동문 선후배들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귀게 된 것으로 안다. 진은정의 아버지가 검사장 출신(진형구 전 검사장)이라는 점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검사 장인이 검사 사위를 찾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는데,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험이나 대회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생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한 장관은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친구들은 “동훈이가 그렇게 충격을 받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한 일이다.
 
  서울법대 시절 처음 맛본 좌절

 

2017년 2월 17일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 중인 한동훈 검사가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한 장관이 입학한 1992년 당시 서울법대는 신입생 300명을 법학과로 입학시킨 후 2학년 때 사법학과와 공법학과로 분리했고 이런 학과 분리는 96학번까지 이어졌다. 사법학과를 희망하는 학생이 더 많았기 때문에 사법학과에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몰렸고, 사법학과와 공법학과가 우열(優劣)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때 한 장관은 공법학과로 가게 된다. 사법학과를 희망했지만 점수에서 밀린 것인데, 20여 년간 성적으로 밀려본 적 없는 한 장관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한 장관은 절치부심(切齒腐心) 끝에 대학 4학년 때인 1995년 사법시험(제37회)에 합격한다. 서울법대 학생 중에서도 재학 중 사시를 패스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데다 판검사 임용이 가능할 정도의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러나 한 장관은 4학년 때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서울법대 선배들보다 연수원 및 검찰 기수가 높아졌다.
 
  한 장관의 두 번째 좌절은 2020년 1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에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던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 대학살 인사’를 시행하면서 한 장관을 부산으로 발령 냈다. 한 장관은 2001년 검사 발령을 받은 후 그때까지 지방근무를 한 적이 없었지만 이때 처음으로 주말부부 생활을 하게 됐다.
 
  당시 한 장관을 만났던 김현석 원장의 얘기다. “주말 저녁에 친구들끼리 만난 김에 동훈이한테 (좌천 후) 잘 지내느냐고 전화를 했다. 술을 안 마시는 친구라 늦은 시각에 나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밤 9시가 다 된 시각에 모임 장소로 와서 다들 깜짝 놀랐다. 그날의 모습은 대학 시절 공법학과로 가게 돼 충격받았을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해 보였다. 늘 당당한 태도였고, 특히 서울지검 3차장검사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인 최근 몇 년간은 더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어 보였는데, 그렇게 잘나가다 갑자기 좌천을 당했으니 대학교 때의 충격과는 비교가 안 됐을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 한 장관의 좌천은 한 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산행 5개월 후인 같은 해 6월 법무부는 그가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보냈고, 4개월 후에는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발령 냈다. 한 해 동안 세 번 좌천을 당한 셈이다.
 
  한 장관은 세 번째 좌천된 지 3개월이 지난 2021년 2월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는데, 부산 좌천 시점에서 1년여가 지나면서 충격은 거의 극복한 것으로 보였다. 인터뷰에서 한 장관은 “세상에 억울한 사람들이 참 많은데 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억울한 일 안 당하고 살았다”며 “저같이 사회에서 혜택받고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다고 징징대면 구차하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읽은 친구들은 “역시 한동훈”이라며 안도했다. 요즘 친구들은 한 장관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락을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비틀스와 재즈를 사랑하고 잔정 많은 캐릭터
 

2020년 7월 개설된 한동훈 팬클럽. 사진=네이버 카페 캡처

 

한 장관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학 시절과 평검사 시절 술을 아예 마시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술이 몸에 잘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아예 마시지 않고 술자리에서도 탄산음료 등을 주문한다. 어린 시절부터 한 장관과 친하게 지내온 35년 지기 A씨의 얘기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동훈이에 대해 종종 묻는데, 술도 안 마시고 중·고등학교 때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없고 취미생활은 음악 감상이라는 얘길 하면 다들 ‘친구라고 너무 감싸주는 것 아니냐’며 믿지 않는 눈치다. 지금은 술은 아예 안 마시고 어쩔 수 없이 마실 때도 주량은 맥주 한 잔 수준이다. 골프나 당구도 좋아하지 않고 재즈, 블루스, 록 등 음악을 듣는 게 여가생활이다. 어릴 때부터 비틀스를 특히 좋아했고 지미 헨드릭스와 레드 제플린도 좋아했다.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라며 악기도 이것저것 배웠는데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른 악기는 플루트 정도다. 여학생들에게 인기는 있었지만 본인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 장관의 친구들은 모두 “(한동훈이) 음악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장관은 초등학생 시절 자신의 취미에 대해 작문하는 시간에 제목을 ‘오디오 갖고 놀기’라고 쓰기도 했다. 김현석 원장은 한 장관과 가장 많이 만난 장소가 서울 이태원의 재즈 라이브카페 ‘올 댓 재즈’라고 했다.
 
  “동훈이가 술을 안 마시니 친한 동창 친구들이 모일 때는 주로 올 댓 재즈로 갔다. 한 번은 용산 어디에서 공연을 보고 난 후 앉아서 이야기할 곳을 찾는데, 다른 친구들이라면 맥주집에 갔겠지만 동훈이가 있어서 숙대 앞 ‘와플하우스’에 가서 그 가게에서 유명한 딸기빙수와 와플을 먹으며 이야기한 적도 있다.”
 
  중학교 동창 B씨는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땐 다소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친구”라고 말했다. 경원중-서울대 동기인 그의 얘기다.
 
  “대학 졸업 후엔 일하는 분야가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는데, 4년 전 내가 현재 컨설팅회사 대표에 임명됐을 때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해온 친구가 한동훈이다. 사실 법조인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컨설팅업계 소식을 알 수 있는지 의외였는데, 경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후 한 번은 가까운 친척 중 법적인 문제에 휘말린 친척이 있었는데 고민하다 동훈이에게 문의를 했다. 너무 바쁠 것 같아 망설이다 전화를 했는데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알아보고 성심성의껏 알려줘서 감동을 받았다.”
 
  35년 지기 A씨는 자신이 노량진에서 재수하던 때 대학 1학년인 한 장관이 학원 앞으로 찾아와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일견 차가워 보이지만 잔정이 많은 친구다. 동훈이의 생활은 늘 일 아니면 가족이다. 친구들과 저녁때 만나도 10시가 가까워지면 아이들 학원 라이드를 해야 한다며 가는 게 보통이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학원에 간 후 은정씨(부인)와 브런치 카페에 가는 걸 종종 봤다. 너무 ‘바른생활 사나이’ 아니냐고? 옛날부터 자신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거나 흐트러지는 걸 못 견뎌하는 체질이었다. 일 때문에 비판을 받을지는 몰라도, 사적으로 남들한테 민폐를 끼치거나 욕먹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
 
  동창들의 얘기를 쭉 들어보니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범생 스타일인 한 장관이 어떻게 주당(酒黨)에 호인(好人)으로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합이 맞아 최측근이 됐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한 장관을 아는 친구와 동료들은 그에게 ‘반골’ 기질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가진 자들의 질서와 권력’에 순순히 따르는 체질이 아니었고, 자신의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정의감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동창 C씨가 들려준 학창 시절 얘기다. “중학교 때 같은 반에서 이른바 모범생 한 명과 문제아 한 명이 비슷한 시기에 전학을 가게 됐는데, 선생님이 반장인 한동훈에게 모범생을 위한 롤링페이퍼를 반 친구들에게 돌려 적어주라고 시키셨다. 그랬더니 동훈이가 왜 그 친구만 해줘야 하느냐,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걸 봤다. 반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동훈이를 좋게 생각했고, 불량한 태도의 아이들도 동훈이가 반장인 반에서는 얌전히 지냈다.”
 
  한 장관의 한 법조계 선배는 “한동훈은 법조인의 스펙으로 볼 때 출세가 보장된, 이른바 ‘다 가진’ 조건인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은 예상외의 길을 걸었는데 그건 그의 반골 기질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얘기다.
 
  “한동훈은 권력층이나 기업과 결탁해 세력을 과시하거나 돈 잘 쓰는 검사들, 이른바 ‘구악(舊惡)’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런 선배들은 8학군-서울법대-빠른 사시 합격-법조인 집안 등 조건 좋은 한동훈을 자기 라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했지만 다들 실패했다. 윤석열과 친해진 데도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윤석열은 9수 끝에 합격한 인물인 만큼 다른 검사들에 비해 권위적이지 않았고, 돈을 밝히지 않았으며, 인맥보다는 수사에만 집중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동훈이 윤석열의 그런 점 때문에 호감을 가졌고 잘 따랐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은 나이 차이가 13세나 나지만 두 사람이 각각 ‘늦깎이’와 ‘소년급제’ 케이스이다 보니 둘의 사법연수원 기수는 4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성격도 걸어온 길도 다른 이 두 사람이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은 그 정도로 가치와 철학이 잘 맞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검사 시절 줄서기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던 한 장관이 윤석열과의 친분은 공공연히 과시했고 남들 앞에서 보란 듯 윤석열과 페이스톡(카카오톡 영상통화)을 수차례 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장관은 작년 2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이나 저나 눈 한 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거다. 그 사건 하나 덮어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거다. 그분(문재인 정권)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나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다.”
 
이 인터뷰를 본 한 장관의 친구는 “동훈이는 옛날과 변한 게 없다”라고 했다.⊙

 

- [초·중·고 동기동창 기자의 한동훈 연구] -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