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639. <사람 향기를 뿜는 국민가수, 박창근>

paxlee 2022. 8. 5. 05:53

사람 향기 뿜는 가객, 박창근

 

인산의학 매거진 8월호 커버 스토리 모델인 박창근/인산의학

 

“코로나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울 그니 님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에요. 그니님 목소리는 삶의 비타민이에요!” “그니 님에 스며들어 매일매일 포근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니님 응원하면서 200살까지 행복을 느끼고 살고파요.” “변방에서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니님을 존경해요. 이제서야 알게 돼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제부터 포그니로 더 오래오래 응원할래요!”

 

좋아하는 스타에게 보내는 팬들의 애정은 여느 아이돌 못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입덕(빠져드는 것)기부터 방송·콘서트·음반 관련 각종 후기 등을 들여보다 보면 응원 문구를 넘어 수상록(隨想錄)을 읽는 듯하다. 감탄사 그 이상의 자기반성과 인생을 반추하는 문장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기도 하다.

 

◇”200살 될 때까지 건강하게 만나요.”

 

노래에 삶의 궤적을 담아 이야기하는 가수 박창근. 지난해 방영된 TV조선 오디션 예능 ‘내일은 국민가수’ 우승자로 대중 앞에 선 그 주인공이다. 1회 방송 당시 “23년째 노래란 길을 걸으며 이제 다른 용기를 내서 ‘이렇게 노래해 온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다”며 이전과 결이 다른 무대를 향한 문을 두드렸다. 포크라는 장르를 주무대 삼으며 노래로 자신을 이야기해왔다. 자신이 위로받았던 노래를 통해 자기가 하고 픈 이야기를 펼치고, 이젠 그 이야기로 팬에게 위로를 건넨다.

 

청량한 미성이지만 힘차다. 순수한 그의 성정이 세파에 상처 입고 깎이고 다시 다져지는 동안, 그의 소리는 일부러 거칠게 뽑아내지 않아도 단전부터 솟는 단단함이 무대를 지배한다. 여러 가지 삶의 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용기는 이제 박창근이란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8일 TV CHOSUN '국가가 부른다'(이하 '국가부')의 새 코너 '캐슬주의 음악 살롱'에 나선 박창근. /TV조선

 

그의 애칭인 ‘그니’는 팬들이 용기 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열정을 고백하게 하는 열쇠요, 그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무기다. 낯 모르는 팬들끼리도 가족 못지않은 끈끈함과 친밀감을 형성하며 어느덧 서로를 격려한다. ‘그니’를 향한 ‘포근함’이 다분히 느껴지는 팬덤명 ‘포그니’는 ‘for 그니’ ‘forever그니’ ‘포크송가수그니’ 등의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많은 스타들이 내세우는 ‘선한 영향력’은 기본.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자기 스타에 대한 경의와 편견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가수의 철학을 톺아 보려는 시선이 자리한다.

 

올해 50세로 반백의 고개 위에 선 박창근은 “포그니님들을 모두 소년소녀로 만들어 드리겠다”며 “200살 되실 때까지 건강하게 만나자”고 말한다. 10대부터 중장년, 노년층까지 좌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는 그의 팬들에 “오래오래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200살’이란 단어로 압축해 환호하게 한다. 그의 노래를 듣고, 그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읊게 되는 순간이다. 팬카페 포그니 앞에 붙는 수식어, ‘자유롭고 품격있는 싱어송라이터 박창근 가수’는 박창근을 단번에 이해하게 하는 문구다.

 

◇하모니카와 기타만 있으면 그곳이 무대

 

포크 음악의 ‘전설’로 꼽히는 쎄시봉의 멤버 윤형주는 통기타 아우라를 발산하며 경연에 나선 박창근을 보며 “사라져가는 포크의 명맥을 이을 마지막 재목”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윤형주는 ‘내일은 국민가수’ 후속 예능인 ‘국가가 부른다’ 속 스페셜 코너인 ‘노래하는 창근이’ 편에 등장해 “원픽이었다”며 박창근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국민가수’ 첫회서 故 김광석의 ‘그날들’로 대중을 놀래킨 그는 살아있는 김광석의 현현(顯現)이라 불린다. 김광석처럼 대구출신인 그는 1999년 정식 데뷔한 뒤 듣는 이가 있든 없든 박창근의 포크를 놓지 않았다. 2012년부터 3년간 김광석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주연을 맡았고, 대구에서 열린 ‘김광석 노래 다시부르기 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박창근은 “김광석, 김민기 선배님을 좋아하고 닮고 싶은 이유도, 음악에 대한 진정성과 치열한 고뇌가 삶과 일체를 이루며 ‘진짜 음악’을 지향하고 제시했다”면서 “선배님들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보편적 인생의 시간들을 담아 삶의 희로애락을 대신 표현하고 공감해주는 힘을 조금이라도 전달해 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창작자이자 소비자로서 가수가 어디에 눈높이를 두고 어떤 노래를 해야 할지는 박창근에게 지속적인 숙제였다. 타협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달하기엔 대중적인 파급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TV 오디션에 도전한 것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내적 갈등 끝에 도달한 것인지 짐작케 한다.

 

과거 가진 게 없어도 버스킹을 해 노숙자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했던 그였다. 어쩌면 그 순수한 마음이 이 시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컸을 진 모른다. 그에 따르면 거리의 점유자들이 박창근을 비롯한 동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 곳에서 노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돌고 돌아 박창근은 TV 앞에 섰다. 박창근 노래와 음악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한 터였다. 2005년 발표한 음반은 ‘올해의 음반’이라 꼽힐 정도로 작사 작곡에도 뛰어난 걸로 정평나 있었다.

 

박창근을 오래 지켜보며 응원한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다른 용기’를 내어 경연에 도전한 박창근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보다 김광석 노래를 잘부르지만 박창근의 목소리로 소화해냈다”며 그의 도전을 추켜세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창근을 보여주겠다는 오롯한 각오가 호흡과 호흡, 마디와 마디 사이 살아숨쉬고 있었다.

 

기타와 하모니카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박창근을 위한 공연장이 됐다. 바람에 실어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전자 기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미를 담고, 듣는 이의 폐부 깊숙이 향한다. 박창근의 노래를 듣자마자 눈물을 흘렸다는 수많은 팬이 말해주듯 그 자체로 정화(淨化)다. 박창근의 노래를 듣고 나면 마치 독특한 자기장이 흐르듯 하염 없이 마음을 끌고 가는 강한 인력을 느끼곤 한다.

 

국민가수 김준수 마스터는 경연 중 “박창근 님의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영상처럼 그려진다. 제가 아는 모든 노래를 박창근 님의 기타와 노래로 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고, ‘국가가 부른다’에서 박창근과 듀엣 무대를 꾸민 성악가 김동규는 “박창근 씨를 사랑하는 이유는 노래의 느낌, 의미를 참 잘 전달하기 때문”이라며 “제가 존경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n.CH엔터테인먼트

 

◇바람따라 발길따라 사람 향기를 싣고 나르는 가객 (歌客)박창근의 바람

 

박창근의 품격과 자존심, 진솔함은 노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능에서도 자신의 몫 이상을 충분히 해냈다. 국민가수 ‘맏형’으로 ‘손 많이 가는 형’ ‘짠내 나는 新 캐릭터’ 등 가끔은 망가지면서 웃음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풀어줬다. 고고하게만 스스로를 포장하려 했다면 감히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허약미’로 보는 이를 배꼽 잡게 하는 동안에도 팬들은 알고 있다.

 

그가 꾸준한 러닝과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왔다는 것을. 그의 나이 절반인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게다가 그 모습에 어색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녹화 무대나 콘서트장에서 ‘맏형’이자 ‘맏내(맏형+막내)’같이 든든함과 애교를 오가는 그를 자주 관찰할 수 있다.

 

남다른 동안(童顔)도 한 몫 했지만 그에게 ‘꼰대’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울리려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은 ‘라떼’ 도돌이표 속에서 ‘90년대 생들은...’이라며 보이지 않는 벽을 치는 어른들이 반성하고 배워야 할 점이다. 그뿐인가. 그를 정치색에 가두려는 일부 움직임에 그는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로 ‘좌우 대통합’을 보여주곤 했다.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원불교 라디오 DJ를 했고, 불교의 가르침도 존중한다. 채식을 하면서도 ‘채식주의자’로 자신을 규정짓지 않는다. 미래세대와 환경을 위해 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지구에 가장 덜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탁발’ 정신도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 중 하나라고 했다. 탁발(托鉢)이란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 당시부터 행했다. 그는 “내가 탁발이라 생각하면 그 집에서 고기를 주든, 쌀을 주든,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안 먹게 된다”며 “과한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차별과 차이 없이 사람을 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웠어도 거리를 다니며, 혹은 소극장에서 그를 반기는 이 하나 없어도 묵묵히 기타를 쳤고,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낼 수 있었다. 지난 6월 발표한 새 EP ‘리본’(Re:born)은 박창근의 삶의 태도를 음악으로 이야기해 준다. 콘서트장에서 불러 팬들에게 열렬하게 사랑받은 ‘그대 사랑 앞에 다시 선 나’기 타이틀곡. 20년간 미발표곡이었던 숨은 명곡이다. “’본질적 자아를 견고히 다져내기 위해 필히 수반되는 고통은 반성이다’라는 내용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어요.”

 

앨범 'Re:born' 자켓 촬영 현장의 박창근 /n.CH엔터테인먼트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연곡 이외 그동안 발표해왔던 제 노래들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고 감격하면서, 그동안 지치지 않고 창작해 온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명곡의 재탄생 현장은 오는 8월 27일 서울 KBS 아레나홀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 투어 단독 콘서트에 나서며 박창근 열풍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창근은 예능으로 대중을 다시 한번 품어냈다. 지난 7월 20일 MC 김성주와 함께 TV조선 예능 ‘바람의 남자들’. 공동 MC로 신고식을 치른 이번 음악 에세이 로드 예능에서 박창근은 바람 따라 길 따라 풍광과 사람을 담는다. 그는 대중성을 지닌 노래에 대해 “나를 위로하고, 보듬으며, 감동하게 하는 콘텐츠”라고 밝힌 바 있다. 목소리의 힘으로 봉합의 미덕을 보인 그는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으켰던 노래로 위로를 건네겠다고 했다. 자신의 노래를 통해 대중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바람을 담아낸다.

 

“세상 곳곳엔 저마다의 사연과 역사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것들을 느끼고 공감하면서 너의 삶,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하고 그려 나가보는 방송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 예쁘게 잘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연예인이 아니에요. 일상을 부대끼고 후회하고 번뇌 속에 몸부림치는 모두의 삶과 같은 그 안에서 나의 음악적 영감이 태어났지요. 투박하고 거친 곳에서 자생하며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노래하는 사람의 본모습을 그냥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든 사람 냄새 나고 감성이 흐르는 모든 공간이 우리의 무대가 됩니다.”

 

최보윤 기자. 仁山의학 8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