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678. <잉여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paxlee 2022. 8. 15. 06:24

잉여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하(Johan Hoizinga. 1872~1945)는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 표현했다. 그는 인간의 속성을 '놀이'에서 찾으려 했다. "일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것이고,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경합되어 있다. 따라서 놀이는 전혀 임무가 아니고 명령에 의한 놀이는 이미 놀이가 아니다. 필히 자발적 행위라야 한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이라면 고단함으로 가득 찬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라고 호이징하는 설파했다. 

 

대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곁에 많은 것들이 놀이로부터 나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하느 예술의 원천도 따지고 보면 놀이의 산물이다. '징하 형'이 살아 있다면 나에게 "당신은 자전거 타는 인간, 호모 바이쿠스"란 칭호를 주고 세상이라는 넓은 놀이터에서 마음껏 달려보라고 할 것만 같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리투아니아 국경에 도착했다. 다체로운 땅 유럽은 이제 하나의 유렵으로 통합 되었지만, 두 바퀴로 국경을 넘을 땐 아직도 묘한 전율을 느낀다. 용됴 폐기된 국경검문소가 폐가처럼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인간이건 사물이건 제 역할을 잃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TV에서 '와일드 라이프' 프로그램을 볼 때 가끔 섬뜩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백수의 왕 사자가 늙어 사냥할 기력이 떨어져, 무리에서 도태되어 죽을 때까지의 기간이 매우 짧다는 사실이다.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도 그랬다. 나이 들어 사냥할 힘이 떨어지면 젊은 이에게 양보하고 굶었다. 우리네 고려장과 같은 맥락이다. 

 

늙어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의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데는 모두 공감대를 이루었다. 인간에 휘자되는 우스갯말, 구구팔팔이삼사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거의 100년을 산다는 말인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삶이란 "시간 개념이 아닌 활동 개념, 즉 두 다리로 폐달 돌릴 수 있을 때까지가 현역이다."이다. 

 

장수시대, '재수 없으면 100살 산다'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저항하고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웬만큼 살았으므로 떠나야 할 사람이 각종 장비를 꽂아 자연스럽게 살다 가지 못하게 하는 의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신이 떠난 육신은 의미 없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가족의 바람이고, 정작 본인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나의 모토는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늙어서 사람답게 죽어야 한다.이다. 

 

 

나는 젊어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보다, 나이 들어 남은 가족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고종명(考終命)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들면 사랑받기 쉽지 않고, 존경받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연륜의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야 한다.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돌아갈 때는 내 의사대로 가고 싶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죽음을 경원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다. 

 

- 출처 : 『자전거 백야기행』 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