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79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paxlee 2022. 9. 8. 08:1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그림=이철원

 

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는 오래전 문 닫은 여성 잡지에서 함께 일한 동료였다. 20대 시절, 춘천으로 간 MT에서 김연수가 시원하게 내지르던 이상은의 노래 ‘담다디’나 김천에서 치른 그의 결혼식에서 류시화 시인이 읊던 인디언풍 축시가 생각난다. 시조와 하이쿠의 서정이 어우러진 김연수의 애잔한 문체를 좋아하지만, 기실 나는 그가 낸 책의 제목에 먼저 반하곤 했다. 왜 있지 않은가. 제목만으로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는 책들. 이를테면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든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같은 책들. 그리고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 친구’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같은 책들. 특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소설이지만, 내러티브는 잠시 잊고 싶을 만큼 제목만으로 심장이 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볼 때나 파도가 들이치는 바다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세계의 신비에 머리가 아득해지곤 했다. 우리는 바람을 볼 수 없지만, 유일하게 송홧가루가 날릴 때만큼은 노랗게 흔들리는 바람의 육체를 볼 수 있다고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회고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당신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느냐는 나의 질문에도 그는 파도와 바람을 권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파도 그리고 파동.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바위 같은 생을 꿈꾸지만,

우리는 왜 쉼 없이 흔들리는가. 흔들리는 것들에 매료되는가.

 

‘떨림과 울림’을 쓴 물리학자 김상욱을 만났을 때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우주는 떨림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떨고 있다’고.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도, 사랑을 고백하는 심장의 두근거림도, 딱딱한 책상이나 건물도 각자의 진동으로 떨고 있습니다. 소리나 빛도 떨림이라는 측면에서 같아요. 과학자들에게 모든 것은 진동으로 환원됩니다.” 그 진동에 반응하는 것이 울림이라고 했다. “우주가 떨림이라면 인간은 울림입니다. 울림은 공명이죠. 라디오도, 스마트폰도 주파수가 맞아야 울려요. 엉엉 우는 것도 울림이죠. 무수한 떨림이 있지만, 그 떨림에 공명을 맞추지 못하면 울림은 없어요.”

 

파도 치는 바다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떨림과 울림’의 거대한 모태와 거기서 나서 흔들리며 사는 DNA의 운명을 감지한다. 사물도 생물도 모두 각자의 진동으로 떨고 있다. 그럴 땐 수많은 연애시가 왜 파도 앞에서 서성이며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유치환의 시 ‘그리움’)

수사와 멜로의 알리바이를 무서운 속도로 뒤섞은 후, 마침내 출렁이는 남색 바다 앞에 관객을 던져놓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사랑의 진심은 까무룩 파도에 묻힌다.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랬잖아요. 그 핸드폰을 바다 깊이 멀리 아무도 모르게 던져버리라고.”

 

스크린에 안개가 자욱해질 때, 이성복의 시 ‘남해금산’이 뇌수 안에 격랑을 일으킨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올여름 휴가 때 바다에 갔다. 동해 기장 임랑 바닷가에 태풍이 몰아치던 아침, 처음으로 서핑이라는 것을 했다. 몸을 낮추고 멀리 보아야 파도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바다 거품을 타고 늠름하게 모래사장에 착륙했고, 젊은 서퍼들은 우키요에 판화에서 본 거대한 물결 위를 고래처럼 솟구쳤다. 물은 높았고, 나는 여러 번 중심을 잃고 낮은 바다 밑으로 고꾸라져 짠물을 마셨다. 해 질 녘에, 한 청년이 먼 바다로 뛰어들었다. 누군가 ‘사람이 떠내려간다’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청년은 거친 파도 틈으로 허우적거리는 물체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끝내 닿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사람들은 해변에서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다. 백사장에 쓰러지며 청년이 신음하듯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미역이었어요.”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타인을 위해 미련 없이 ‘파동’ 속으로 몸을 던진다. 바다 앞에 서면 알게 된다. 우주 전체가 떨고 있다는 것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사랑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김지수의 서정시대] :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