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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일상 - 797. <지방소멸 바로잡을 시한 얼마 안 남았다>

paxlee 2022. 9. 10. 09:21

"지방소멸 바로잡을 시한 얼마 안 남았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인터뷰

 

“복잡한 통계모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건 산수(算數)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강력한 정부개입이 있어야 해요. 너무 시급한 과제입니다.” 8월 29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의 말이다. 지방소멸과 저출산, 집값 문제 해법 등에서 그는 여러차례 ‘심오한 직관’이 필요한 고차원 방정식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산수 문제이자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데 답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소멸 문제를 직격하는 책을 여러권 냈습니다. 일본에서 이 문제를 다룬 ‘마스다 보고서’가 2014년에 나왔고, 한국에서 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가 보고서의 문제의식을 적용해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만들어낸 것이 2016년입니다. 햇수로 6년이 흘렀는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소멸위기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직접 쓴 <지방도시 살생부>를 보면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도시의 재생을 바라더라도 재생이 가능한 시기가 존재한다고 했어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그 재생의 ‘때’를 놓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가능한 우려입니다.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를 쓰는데 운동장이 기울어지면 기울어질수록 다시 운동장을 조정하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정말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교정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는 겁니다. 난 아직은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그 재생의 불씨가 살아 있는 곳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불씨가 살아 있는 광역시와 주변도시에 집중투자해 지역회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관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게 지난 정부 때 나왔던 메가시티 구상 같은 겁니까.

“지금은 메가시티 추진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인데요, 궁극적으로는 메가시티 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지금은 지역 인구감소 위기 문제에 대응할 수단이 그 외에는 사실상 없어요. 만약 15년 전이었다면 지금 메가시티처럼 진짜로 거점 체계를 마련하고 대규모 투자만이 지역을 살릴 정책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15년 전에 균형발전 정책을 했다면 지금 같은 특단의 처방까지는 안 갔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15년 후에는 어떤 수단을 강구해도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는 힘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수도권의 지방대도시권, 그러니까 예를 들어 부산·울산, 대구, 대전, 광주와 같은 지방대도시권이 사실은 인구가 크게 감소하진 않았어요. 그게 가능했던 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인구를 수도권으로 보내더라도 주변의 군급 지역 인력을 흡수하는 메커니즘을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주변의 군급 지역 인구들도 인근 광역시가 아니라 수도권으로 그냥 옮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도시권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어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 현상이냐면 대도시권의 핵심지역인 광역시를 보면 광역시 청년인구 100명이 있을 때 주고받는 인구를 감안해도 1년에 한두명씩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순유출인 거죠.”

-주로 청년층입니까.

“네. 청년인구가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이동하는 인구 90% 이상이 청년인구입니다. 이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2015년 이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 간단히 산수를 해보면 압니다. 예측하는 데 복잡한 통계모형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아요. 15년간 100명당 매해 1.5명에서 2명씩 빠져나간다면 지역이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요. 이건 너무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2015년이 기점일까요. 여러 데이터를 보면 고도산업화 성장 시기인 1960~1970년대에 이어 ‘2차 엑소더스’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산업구조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왜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된 현상이 과거 10년 동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졌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의 부상이죠. 그것도 굉장히 강한 속도로. 문제는 이런 기업들의 입지 선호입니다. 그 기업들의 입지 선호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거든요.”

-과거에는 대도시 외곽에 제조업 산업단지를 만드는 형식이었죠.

“맞습니다. 산업단지를 잘 만들어놓으면 외부인구유입률을 50% 정도로 봤습니다. 1000명이 일하는 산업단지이면 500명 정도는 지역민을 고용하고, 500명 정도는 외부인원을 고용합니다. 그러면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는데 그 인구가 가족을 데려오고요. 가족을 데리고 온 인구와 노동자를 서포트하는 상업·문화기능, 그리고 공공기능과 지역이 발전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산업단지를 계획하면 주변의 배후주거지까지 같이 계획을 해야 하지요. 그게 2010년쯤부터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거예요. 이제는 있는 산업단지마저 자꾸 공실이 날 지경이니 기업유치를 위한 새로운 산업단지의 인센티브는 좀처럼 먹히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특히 첨단기업의 경우 법인세, 소득세, 투자보조금 같은 걸 감면해주는 인센티브를 받지 않고 드는 비용의 3배가 넘는 돈을 물더라도 수도권에 머물겠다고 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떠오르는 첨단기업이 수도권을 고집하고 그중에서도 입지가 정말 좋은 강남이나 판교를 고집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이 기업의 존망을 결정하는 게 이제는 아이디어인 겁니다. 과거에는 밸류체인에서 자본과 값싼 노동력의 결합비율이 관건이었지만 최근 기업들은 인재에 목을 맵니다. 100명의 인력을 뽑는다 치면 100명 모두 우수한 인재겠지요. 이중 두세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기업의 10년, 20년 먹거리를 확보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혁신적인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에 기업들이 모여들고 청년구직자들도 이런 공간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게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강남이고, 그다음으로 첨단기업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판교입니다. 판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간단합니다. 강남과 접근성이 좋아서에요. 강남에서 상업·교육·주거기능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상 판교에 가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주거 기능도 거의 없습니다. 다른 지방이 판교모델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하다가 다 실패하는 이유죠.”


-결국 핵심은 지방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소구력이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일 텐데 그게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올해 첫 교부를 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같은 걸 투여하고 지자체들은 각종 사업을 공모한다고 하지만 그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접 쓴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를 보면 사람에 대한 투자보다 사업 위주, 인프라 위주로 가는 것이 문제라고 했는데요.

“<지방도시 살생부> 책을 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초에 냈어요. 우리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책을 두고 찬반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논란이 됐다니 의외인데요.

“지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니 ‘지방이 그렇게 네 생각처럼 쉽게 무너질 것 같냐’, ‘왜 소멸이라는 말을 쓰는가, 공간이 소멸하는 경우가 있냐’와 같은 반론이었습니다. 사실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지만 사실 굉장히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통계학을 공부했기에 인구감소 추이가 완전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겁니다. 그래서 지역·지방소멸은 지방인구소멸이고 인구가 사라지면 그 지역을 기억해줄 사람도 사라진다는 주장을 펼쳤더랬죠.”

-어떻게 보면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상식적인 경고를 한 것 아닙니까.

“그건 지금 시점에 그렇게 보는 거죠. 2017년 시점은 안 그랬습니다. 사실 되게 힘들었습니다. 6개월 동안 잠수하면서 진짜 외부활동을 안 했어요. 굉장히 지지를 보내준 분도 있고, 그러지 않은 분도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공부하면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는 책을 냈습니다. 직을 걸고 썼습니다. 국세·지방세 체계 변화를 시뮬레이션해가면서 재정분권이 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꼼꼼히 썼습니다.

 

다음으로 건드린 것이 행정부 문제였습니다. 책을 쓰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는데 정말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저출생·고령화 문제와 공간 쏠림 현상이 맞물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책인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는 책을 설계했어요. 실제 검토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약간 좀 급하게 썼습니다.”

-비수도권 출신의 베이비부머가 수도권을 떠나 고향이나 제3의 안착지로 귀향·귀촌을 한다면 전체 인구 중 이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해법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거의 유일한 자산인 부동산을 놓지 못하고 있고, 집값 문제가 다시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문제와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자원의 배분을 다루는 정치와 제도는 왜 실패를 거듭해온 걸까요.

“그렇죠. 우리는 다른 나라나 역사에서 겪어보지 못한 격변기를 겪고 있는 겁니다. 고령화 비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고령화 속도죠. 전무후무하게 겪어보지 못한 속도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충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정치의 호흡이 짧다 보니 장기적 계획은 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는 거대계층입니다. 1700만명 정도예요. 앞으로 20년 동안 이 인구가 한방에 고령층으로 쏟아져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든 제도는 65세 이상 인구에 대해서는 ‘쉬어라’, ‘일하면 쪽팔려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력한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은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주 비참한 상황이 된 거예요. 거기다가 노인복지는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입니다. 이 사람들이 셀프복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이분들이 집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그게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다음으로 일을 놓을 수 없고요.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은 인구 변동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런 일이 앞으로 정해져 그냥 일어날 일인데, 이 정해진 미래에 대해 대책이 없다는 데 놀랐습니다. 베이비부머가 수도권을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완벽한 대안은 없습니다.”

-책 맺음말에서 베이비부머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 이야기를 했어요. 비수도권 고향을 가진 남성들이야 돌아가고 싶을지 모르지만 이미 서울 수도권에서 친구나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여성 배우자들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쓰셨는데요.

“베이비부머 전체가 다 귀향·귀촌을 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요. 10%만 하더라도 170만명입니다. 그것만 이뤄져도 어마어마합니다. 또 실제로 내려가려는 여성도 많아요. 책에서 다룬 내용은 이분들을 포함해 모든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중 일부를 대상으로 정책 설계를 한 것입니다. 이분들이 내려가 중소기업에 취업해 이틀에서 사흘 정도 일하면서 100만원 정도를 받고, 지자체나 문화센터에서 사회적 임금으로 나머지를 충당하는 모델이지요.

 

교육부는 이들을 위해 평생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요. 지역대학이 위기이니까요. 중소기업은 기업대로 컨설팅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할 게 너무 많습니다. 이걸 패키지화하면 100만원의 가치는 자존감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겁니다. 할 일이 없어 등산은 안 가도 되니까. 관건은 그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튼실한 기업을 찾을 수 있을까의 문제인데 실제 검토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볼 수 있는 희망의 불씨입니다. 문제는 그것도 가능한 시한이 얼마 안 남았다는 점이에요.”

- 글·정용인 기자.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경향신문 / 202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