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30주년 헌정 등정 (7)*-

paxlee 2007. 5. 13. 19:08

 

        제2信 - 남체에서 베이스캠프까지


 

         

 ->박영석 원정대는 4월 6일 남체를 출발해 탕보체로 이동했지만 6톤의 짐을 실어 나를 야크를 구하지 못해 일부 짐의 운반이 지연됐다. 어렵게 구한 야크들이 무거운 짐을 싣고 풍기탱가의 나무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다.

 

        

 ->베이스캠프 가는 길의 마지막 농촌 마을인 딩보체에서 바라본 아마다블람이 해발 6,856m의 위용을 드러냈다. 아마다블람은 '엄마의 목걸이'를 의미한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한국을 떠난 지 11일 만인 4월 10일 마침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루크라에서 3일 캐러밴을 시작했으니 7박8일간의 강행군의 결과다. 기상이 안좋아 비행기를 내리지 못해 루크라 도착을 하루 늦춘 원정대는 남체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원정대 물자 운반을 위해 예약해놓았던 야크 40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4월은 에베레스트 원정 시즌이라 전세계 원정대와 트레커들이 몰려들어 야크와 포터가 동이 나는 시기. 알고 보니 예약해놓은 야크는 원정대가 남체에 도착하기 바로 전 날, 모 원정대가 웃돈을 주고는 가로챘다. 분통 터트려 봤자 ‘원님 행차 뒤 나팔’이다. 급히 수소문한 결과, 5일 당시 남체에 남아있는 야크는 고작 4마리. 결국 박영석 대장은 남체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하고 셰르파들을 사방으로 보내 야크와 포터들을 불러모았다.

 

짐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급한 순서대로 베이스캠프에 올려보내기로 하고, 원정대는 6일 남체를 출발해 탕보체, 페리체, 두크라, 로부제, 고락?v 등을 거쳐 베이스캠프로 행군했다. 원정대는 안정적인 베이스캠프 운영시스템을 확보하는 대로 정상 도전을 향한 공격캠프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남체를 넘어서면서 원정대를 맞는 풍광이 확 바뀌었다.

 

지금까지가 깊고 푸른 골짜기와 초록이 출렁이는 산자락, 그 너머 희끗희끗 설산이 옆 모습을 살짝 드러낸 ‘한 폭의 그림’이었다면 남체에서부터는 히말라야의 6,000~8,000m급 대표 연봉들이 열을 지어 펼쳐 보이는 풍광이 장엄하다. 초록이 줄어드는 대신 설산의 흰빛은 서릿발처럼 공기를 가른다. 히말라야 최고의 전망대는 해발 3,860m의 탕보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마을을 가운데 두고 크레용 끝을 깎아 세운듯한 아마다블람(6,856m)이 위용을 드러내고, 그 왼편으로 로체(8,516m) 에베레스트(8,848m) 눕체(7,861m) 등 설산이 360도 파노라마를 연출하며 흰 능선을 이룬다. 원정대는 탕보체의 라마사원 옆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한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비’에서 묵상을 위해 잠시 멈춰 섰다.

 

1997년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일보가 세운 것이다. 에베레스트 자락은 국립공원이고 워낙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지역이라 외지인의 비석을 세우기는 매우 어렵다. 97년 쿰중에 있는 힐러리스쿨의 네팔 어린이 20명을 한국으로 초청한 인연으로 탕보체 라마사원의 큰 스님이 특별히 허락, 사원 땅 한쪽을 내줘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다.

 

원정대는 이곳에서 지난 날 영광의 주역들을 떠올리며 코리안 루트 개척의 투지를 다졌다. 이곳 라마사원에서는 7일 한국일보 장기영 한국일보 창간 사주의 30주기(周忌) 추모제가 열렸다. 77년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은 대한산악연맹과 한국일보가 의기 투합해 벌인 큰 일이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장 사주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장 사주는 원정대 출발 직전인 4월 10일 타계해 애석하게도 등정 성공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77원정대 이태영 대원은 “장 사주의 끊임없는 애정과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세계의 지붕에 올라설 수 있는 기회는 한참 뒤로 미뤄졌을 것”이라며 제단에 꽃을 바쳤다. 탕보체를 벗어나 팡보체(3,930m)부터는 산천의 황량함이 물씬 느껴지기 시작한다.

 

울창했던 숲은 작아지고, 주변 산자락의 색도 갈색으로 바뀐다. 페리체(4,270m)와 인근 딩보체(4,410m)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부락을 이루는 마지막 마을이다. 주민들은 야크의 변을 받아 땔감과 밭의 거름으로 사용하고, 높다란 돌담을 친 밭에서 감자와 보리를 재배한다. 이곳을 넘어서면 인간이 사는 거주지는 더 이상 없다.

 

고도가 더 높은 로부제(4,910m) 고락?v(5,140m) 등 마을이 있지만 이 곳들은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원정대나 트레커들이 하룻 밤 몸을 누이는 공간을 제공할 뿐, 농사를 지으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곳은 아니다. 고지에 적응하기 위해 발걸음 마다 숨을 고른다. 에베레스트에 오른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 한계선 너머, 그 배가 되는 높이에 대한 도전이다. 원정대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한다.

-/ 로부제에서 (네팔)2007/04/11 =이성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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