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30주년 헌정 등정 (6) *-

paxlee 2007. 5. 11. 21:40

 

                제1信 '카트만두에서 남체까지'


고산병 피하려 머리 안 감고 잘 때도 모자 써… 5000m급 무명 설산 파노라마
좁은 비탈길 믿을 건 오직 '다리'… 캐러밴 첫날 설렘속에 잠 못자

  

              

 ->팍딩에서 하루를 보낸 77원정대 대원들이 3일 해발 3,400m에 위치한 남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멀리 눈 쌓인 히말라야의 위용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남체 가는 길, 깍아 내린 듯한 절벽을 잇는 다리를 77원정대원들이 건너고 있다. 

 

             

 ->네팔 푸클라공항에서 시작된 캐러밴 도중 만난 소녀. 라마교의 경문이 잔뜩 새겨진 마니스톤 옆을 소를 몰고 지나가고 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 산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산은 저마다에는 영험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세계 최고의 봉우리들을 거느린 히말라야는 더욱 성(聖)스러운 곳이다. 신의 영역인 히말라야는 인간이 원한다고 쉽게 품을 열지 않는다. 4월 2일 오전 네팔 카트만두에서 77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77KEEㆍKorea Everest Expedition) 대원들을 태우고 출발한 16인승 경비행기는 만년설을 뒤집어쓴 히말라야 연봉을 스치고 무사히 루크라(Lukla)에 도착했다.

 

16인승 경비행기라 짐의 일부를 다음 비행기편에 실었는데 뒷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 같은 날 함께 들어오기로 했던 박영석 원정대는 비행기를 타고 루크라 상공까지 진입했지만 산골짜기를 가득 덮은 구름과 안개 때문에 몇 바퀴 선회하다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갔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루크라에서 비행기 연착과 짐을 제 때 받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우기에는 날씨가 더욱 궂지만 요즘 같이 비교적 날씨가 순한 건기에도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이 정오만 지나면 설산에서 내려온 구름과 안개로 기류가 불안해진다.

 

다행스럽게도 박영석 원정대와 나머지 짐은 3일 무사히 루크라에 도착했다. 원정대는 예정보다 하루 늦은 출발을 보충하기 위해 캐러밴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산속의 마을 루크라는 매연 가득한 잿빛 이미지의 카트만두와는 딴판이다. 햇빛은 눈부셨고 공기는 더없이 청정했다. 급경사의 산비탈에 만들어진 공항 활주로는 15도 이상 경사가 졌다. 짧은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이륙할 때도 보다 짧은 거리에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고안된 경사진 공항이다.

 

해발 2,800m의 루크라에서는 공항의 비행기 말고는 바퀴라는 걸 찾아 볼 수 없다. 워낙 경사진 지역이라 이동 수단은 오직 '다리' 뿐이다. 대부분의 짐은 셰르파족인 포터들이 짊어지고 큰 짐은 해발 3,000m 이상에서 사는, 들소를 닮은 야크를 이용한다. 야크는 3,000m 이하에선 고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는다. 루크라에서 남체(Namcheㆍ3,400m)까지는 야크와 소의 교배종으로 3,000m이하에서도 힘을 쓰는 좁교와 야크가 번갈아 짐을 나른다. 일당 10달러 가량의 돈을 받고 30kg의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포터들의 모습은 놀라움 반 애처로움 반이다. 급경사의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야크나 좁교의 행렬도 경이롭다.

 

루크라를 출발해 트레킹 코스를 걷기 시작하니 스케일 큰 히말라야의 풍광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초록색 싱그러운 보리가 넘실대는 계단 논 너머로 '우유강'이라는 뜻의, 빙하가 녹아내린 강물 두드코시(Dudh Kosi)가 콸콸 흐른다. 강 건너편 머리 위에는 만년설을 뒤덮은 산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일상 보았던 풍경을 15인치 TV화면에 비유한다면 히말라야는 '아이맥스' 급이다. 짐을 나르던 포터에게 눈 앞 설산의 이름을 물으니 그건 산이 아니란다.  4,000~5,000m는 족히 돼 보이는 봉우리지만 그 정도는 산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설명이다.

 

길 가 곳곳에서 셰르파족의 종교인 라마교의 탑과 경전을 새겨놓은 마니스톤, 마니차 등을 만난다.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어 둔 법륜으로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를 돌리는 짙은 구릿빛 여인의 얼굴에는 세속의 시선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온화한 미소가 어려있다. 팍딩(Phakding)에서 캐러밴의 첫 날을 보낸 77원정대원은 30년 전의 추억으로 달뜬 채 밤을 지새웠다. 3일 오전 일찍 팍딩을 출발, 몬조를 지나 급경사의 비탈을 3시간 가량 올라 남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하루 늦게 당도한 박영석 원정대를 만났다.

 

남체가 위치한 해발 3,400m는 '죽음의 병'이라는 고소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높이다. 고소병을 피하려면 체온을 빼앗길만한 행동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머리를 감지 않는 것은 물론 자거나 식사할 때도 항상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 77년 원정 당시 의료를 담당했던 조대행(61ㆍ의사)씨는 이번 에베레스트 가는 길에도 대원들의 건강을 챙겼다. 고소증 예방에 좋다는 '아세타졸아미드' 성분의 약을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베이스캠프까지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함께 가기를 독려했다.
 
                 -/ 남체에서 (네팔) =이성원기자  2007/04/07 /- 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