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9) *-

paxlee 2007. 6. 8. 22:47

 

                      에베레스트 오른 ‘실버 원정대’ 가족들 환호

 


▲ 18일 60~75세 노인 8명으로 구성된‘실버 원정대’대원 중 김성봉(66), 이장우(63) 대원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장우 대원의 부인 장순조(사진 가운데)씨와 딸 이세영(왼쪽)씨, 사위 이기조(오른쪽)씨가 기뻐하고 있다. 설암(舌癌) 수술을 받은 김성봉씨의 부인은“너무 기쁘지만, 사진촬영은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 허영한 기자

 

60~75세 8명으로 구성된 ‘실버 원정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와 싸우는 동안 한국에 남은 가족들은 초조감을 떨치지 못했다. 일부 가족은 병마와 사투(死鬪)를 하며 성공을 빌었다. 정상까지 100m, 10m…. 가족들은 원정대 홈페이지(www.silverexp. com)에 시시각각 올라오는 소식을 밤새 뜬 눈으로 지켜봤다.

 

18일 오전 7시13분(현지시각)과 오전 9시45분, 김성봉(66·한국산악회 부회장) 대장과 이장우(63·경북지방경찰청 경감 퇴임) 대원이 정상을 밟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원정대 홈페이지에는 “우리 할아버지 최고”라는 손자들의 축하글도 이어졌다.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는 노인들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자 조선일보와 월간 산, 한국산악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족들

 

“에베레스트로 떠나던 날 남편이 현관에서 말했어요. ‘아픈 사람 두고 가는데 꼭 성공하리라’고. 약속을 지켜준 남편에게 너무 고마워요.” 가장 먼저 정상을 밟은 김성봉 대장의 부인 김기숙(60)씨는 남편의 성공 소식에 울먹였다. 한걸음 또 한걸음. 아픈 자신에게 희망을 주겠다며 눈보라 속을 걸어갔을 남편 모습이 눈에 보일 것만 같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2월 혀에 암이 생겨 혀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에베레스트 원정에 자원했던 남편은 아내의 수술 때문에 훈련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 남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 김씨의 응원이었다. “우리 같은 노인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남편은 투병 중인 아내가 써준 메모를 들고 에베레스트로 떠났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 걱정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16일 오전 박영석(44) 대장이 이끄는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원 2명이 등반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30대 젊은 베테랑 산악인마저 삼켜버린 그 산을 예순여섯 살인 남편이 오르고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남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는 글이 원정대 홈페이지에 올라왔을 때 김씨는 “장해요 장해”를 외치며 방에서 만세를 불렀다. 아픈 것도 잊었다고 했다. “제가 정상에 오른 것처럼 가슴이 막 뛰어요. 남편은 그 어려운 곳에도 갔는데 저도 힘을 내서 건강해져야죠.”


   ◆ 반대했던 아내 “돌아오면 손잡고 산에 갈 것”

 

김성봉 대장에 이어 정상에 오른 이장우 대원의 부인 장순조(58)씨는 “솔직히 정상에 오르기 1분 전까지도 ‘괜히 보냈다’고 걱정했다”며 “하지만 남편이 잘 해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장씨는 다른 원정대 가족들처럼 남편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말렸다. “젊은 사람들도 하기 어렵다는 일을 환갑도 지난 양반이 하겠다니까….” 등반 때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남편이 가져온 날, 아내는 끝내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나이가 있는데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가느냐”고 말려도, “지금 이 나이에 여기서 죽으나 내가 좋아하는 산에서 죽으나 똑같다”는 무심한 남편이 미웠다.

하지만 남편이 원정을 떠난 뒤 아내는 오로지 남편 생각뿐이었다. 절과 컴퓨터 모니터 앞을 오가는 생활이었다. 원정대 홈페이지에서 남편의 소식을 듣고, 절에 가서 남편의 무사등반을 기원했다.

 

등반 마지막 날 장씨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딸 세영(28)씨의 집에서 뜬 눈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남편이 정상을 정복한 순간 장씨는 딸과 돌이 안 된 외손녀를 끌어안았다. “애들 아빠가 돌아오면 오늘 마음 졸인 만큼 손을 꼭 붙잡고 둘이 자주 가는 팔공산(대구)에 오르고 싶어요.”

 

정상에 오른 두 대원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의 가족들도 실버원정대의 성공을 축하했다. 이충호(64·서울증권 지점장 퇴임) 대원 부인 김옥숙(61)씨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제 남편이 정상에 올라간 것 같다”며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제일 좋아하는 장어구이와 생선회를 잔뜩 해주겠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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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실버초인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정복하고 27일 오전 1시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으로 입국한 실버원정대 김성봉 대장(66·왼쪽)과 이장우 대원(63). 공항에는 가족과 한국산악회 회원 100여명이 실버원정대 대원들을 환영했으며, 일부 가족들은 “장하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성봉 대장은 “실버원정대의 도전이 우리나라 실버세대에게 큰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고 2007년 5월 27일 01시 입국한 실버원정대가 인천공항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가운데 세 사람 좌부터 김성봉 대장, 최홍건 한국산악회 회장, 이장우대원/ 조선일보 정경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