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여기는 로체샤르 정상이다 *-

paxlee 2007. 6. 6. 22:34

 

           엄홍길 로체 남벽 원정대 로체사르 등정 성공

                     3전 4기이자 14+2를 달성한 쾌거

  

 * "여기는 로체샤르 정상이다."

 

3000m가 넘는 직벽도, 초속 45m의 강풍도, 산더미 같은 눈사태도, 5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몬순(폭우,폭설을 대동하는 계절풍)도 엄홍길(47) 대장의 집념에는 손을 들었다. 엄대장이 이끄는 '2007 한국 로체샤르ㆍ로체 남벽 원정대'(중앙일보ㆍKT 후원, 신한은행ㆍ(주)트렉스타 협찬)가 5월 31일 오후 5시45분(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9시) 해발 8400m 로체샤르 정상에 올랐다.

 

 

 

특히 2007년은 1977년 고상돈 씨(79년 사망)가 한국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8848m)에 오른 지 3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번 로체등정의 의미는 남달랐다. 원정대는 5월 29일 해발 8100m의 캠프 4 사이트에 텐트 2동을 설치함으로써 마지막 교두보를 확보했다. 다소 비관적이었던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일거에 반전됐다.

 

엄홍길 대장(47)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프런트 포인팅(아이젠을 부착한 설상화 앞 부분을 빙벽에 차 넣으면서 오르는 방식)으로 4일간 올라왔다"고 전했다.

 

 

5/30일 변성호ㆍ모상현ㆍ우성호 대원이 캠프 4에서 정상으로 가는 루트를 개척했고, 캠프 4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31일 새벽 엄 대장과 변성호ㆍ모상현 대원이 정상 공격에 나섰다. 원정대는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4시15분)쯤 마침내 3000m가 넘는 수직 절벽 구간을 넘어 능선 구간에 접어들었다.

 

정상 부근에는 초속 45m의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졌지만 원정대는 더욱 속도를 냈다. 엄 대장을 비롯한 3명의 대원과 1명의 세르파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12시간 동안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엄 대장은 네 번째 로체샤르 원정에서 기어코 성공을 거뒀다. '3전 4기'다. 2006년 5월 원정 때는 정상 200m를 앞두고 기상 악화로 내려왔고, 2003년에는 150m 앞에서 눈사태를 당해 대원 2명을 잃은 뒤 철수한 아픈 기억이 있다.

 

2000년, K2(8611m)에 올라 14좌(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 완등을 마친 엄 대장은 목표를 '14+2'로 정했다. 알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를 집어넣은 것이다. 8000m 이상 이지만 국제 산악계에서 아직 공식적인 독립봉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최근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주봉으로 간주하는 추세다.

 

엄홍길 대장은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히말라야 14좌+2(알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로체샤르는 세계 4위봉 로체(8천516m)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위성봉으로 산세가 험하고 얼음, 눈이 섞여 있는 거대암벽이 3천여m나 이어져 있어 히말라야에서 난이도가 높은 등정코스로 꼽힌다.

 

1970년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남서릉으로 세계 초등에 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대구등산학교 원정대 권축식 대원이 초등 한 뒤 다시 정상에 오른 팀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체=김춘식 중앙일보 기자 

 

 * 8400m 정상에서 해가 졌다 … 기적의 생환 

 

`설맹 걸린 동료와 생사 함께했다` 새벽에 귀환한 대원들

 

해발 8100m에 설치된 캠프4. 깎아지른 절벽, 만년설을 깎아 만든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겨우 텐트를 치고 돌출된 바위에 로프를 묶어 고정시켰다. 로체 등반대원들은 이곳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잔 뒤 13시간 악전고투 끝에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다음날 새벽에 캠프4로 돌아왔다.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

 

히말라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아마다블람 봉우리가 노을에 붉게 물들던 5월 31일 오후 6시50분(한국시간 오후 10시5분), "베이스 캠프,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이라는 엄 대장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날아들었고, 베이스캠프는 일순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 엄 대장 일행과 베이스캠프의 무선 교신이 완전히 두절돼 버렸다.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습니까? 들리면 제발 무전기 키를 한 번만 눌러 주십시오." 거의 울부짖듯 소리를 질러댔지만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엄홍길(47.㈜트렉스타) 대장은 물론 로체샤르(8400m) 정상에 올랐던 변성호. 모상현 대원, 그리고 셰르파 등 4명이 모두 3대의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무전기도 터지지 않았다.

 

베이스캠프(5220m)는 거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럴 수는 없는데…."

정상에 오른 시간이 문제였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어두워지는 히말라야에선 오후 2~3시 정상에 올라야 하고, 그 이후엔 과감히 돌아서야 하는게 산악인들의 철칙이다.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니고, 살아 돌아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엄 대장 일행이 로체샤르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50분. 히말라야 등정 사상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정상에 오른 예가 있었는지, 있었다고 해도 살아서 돌아온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엄 대장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니었을까' '그 시간에 정상에 오른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누구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대원과 셰르파가 텐트 밖으로 나와 로체샤르 정상을 주시했다. 시력이 2.0을 넘어 3.0에 가깝다는 셰르파들의 육안으로도, 망원경과 취재용 망원렌즈로도 아무런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

 

"헤드랜턴 불빛도 안 보여."

오후 8시쯤, 누군가 깊은 한숨과 함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뱉어냈다.

설상가상으로 자정 무렵부터는 짙은 안개가 몰려와 더 이상 관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시간은 벌써 오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통신이 두절된 지 6시간째. 엄 대장에 앞서 캠프4(8100m) 사이트까지 루트를 개척했던 배영록 대원은 "캠프4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13시간이 걸렸지만 정상에서 캠프4까지 내려오는 데는 아무리 길어도 5시간이면 족하다"면서 "지금쯤이면 이미 캠프4에 와 있어야 정상"이라며 엄 대장 일행의 안전을 걱정했다.

 

충격에 휩싸인 기자는 거의 포기 상태에서 '엄홍길 대장, 하산 중 실종'이라는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전 1시15분. 조용하던 무전기에서 갑자기 헐떡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캠프4. 먼저 왔음. 무전기는 분실했음. 나머지 대원들은 뒤에서 귀환 중."

 

셰르파 사다 파상의 목소리였다. 베이스캠프는 다시 한번 환호성에 묻혔고, 가슴을 졸이던 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엄 대장과 교신을 하고 싶었지만 이들은 텐트에 들어서자마자 통나무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했다.

 

1일 아침, 겨우 엄 대장과 교신이 됐다.

"아니, 4시간이면 온다는 거리를 10시간이나 걸려서 내려온 이유가 뭡니까."

"변성호가 설맹(雪盲.눈에 반사되는 강한 햇빛을 받아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에 걸렸어요. 두고 내려올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많이 걸린 거에요."

 

"…."

"사실은 나도 죽는 줄 알았어요. 어쨌든 살았으니 다행이죠, 뭐."

 

로체=김춘식 기자

 

 * 등정 성공한 엄홍길 대장 인터뷰] "서로가 생명의 은인"

 

 

            - 여기는 로체샤르 정상이다 - 

 

여기가 로체샤르 정상. 13시간의 사투 끝에 정상에 오른 엄홍길 대장이 따라오던 셰르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캠프 4(8100m)에 머물고 있는 엄홍길 대장의 목소리는 고소증세 때문에 잔뜩 잠겨 있었다.

 

-새벽에는 어디 있었습니까.

 

"변성호 대원이 정상에 오르자마자 설맹에 걸렸어요. 바람은 불고, 춥기는 하고, 대원 한 명은 장님이 됐고. 정상에는 얼마 있지도 못했습니다. 셰르파 한 명이 로프를 잡고, 제가 앞에서 사인을 주면 변성호가 내려오고 모상현이 뒤에서 변 대원을 잡았습니다. 어두워서 하산 루트를 잠시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변 대원은 엄대장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다. 변 대원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내려온 엄 대장이 정말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무전으로 수없이 불렀는데 대답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날은 어두워지고 앞도 못 보는 변 대원을 데리고 내려오는데 무전 받으려니까 장갑 벗어야죠, 마스크 벗어야죠, 맨손으로 영하 40도 추위에 쇠붙이를 잡아야죠. 엄두가 안 납디다. 그래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겠네요.

 

"정상에서 대원들 서있는 사진만 몇 장 찍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을 위해 깃발을 여러 장 준비했는데 한 장도 못 꺼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후원해 주신 중앙일보와 KBS. KT, 협찬해 주신 신한은행.㈜트렉스타에 말로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돌아오니 기분이 좋네요. 정신력이 대단합니다.

 

"사실은 이 친구들(변성호.모상현)이 내 은인입니다. 혼자였다면 이미 포기했을 겁니다."

 

            로체에서=김춘식 기자[중앙일보 2007-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