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산악계가 바뀌고 있다. *-

paxlee 2007. 8. 3. 08:26

 

                             -* 산악계가 바뀌고 있다. *-

 

- 50여 년 전 힐러리가 초등했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코스와 스텝들 -

 

◇ 50여 년 전 힐러리가 초등했던 에베레스트는 선구자들이 무려 32년 긴 세월 악전고투한 곳이었다. 힐러리가 오를 때만 해도 영국 원정대는 남봉과 정상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거기가 등정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에베레스트가 오늘날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힐러리의 초등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됐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사진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의 힐러리 스텝을 오르는 각국의 원정대원들의 모습니다.    / 사진 양정산악회.

 

산악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실은 산악계가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고 있으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요새는 쓰지 않아 마치 폐어처럼 됐으나 사자성어에 ‘유위전변(有爲轉變)’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인생의 무상함을 말한다. 우리는 산악계의 변천사를 누구나 알고 있다. 세계 등산계 250년 역사가 바로 그 과정이다.

 

그런데 산악인들조차 그러한 변천 과정을 굳이 의식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다.그것을 당연한 발전으로 여겼기 때문에 별로 문제로 삼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천과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그것과는 그 사이에 커다란 질적 차이가 있다. 이 질적인 문제가 우리의 의식 표면에 나타나게 됐다.

 

지난날이라고 하지만, 긴 역사에서 보면 근래의 이야긴데 우리 산악계가 크게 부산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즉우리 산악인이 히말라야 거봉 14개를 줄줄이 완등하고, 세계 10위 안팎에 셋이나 자리를 잡았으며, 그랜드슬램이라고 해서 이른바 지구상의 3극점을 점유하였으며, 여성으로 7대륙 최고봉 완등까지 이뤘으니 그 성취와 기록들은 대단했다.

 

지난 세기 후반기에 갑작스레 불기 시작한 한국의 등산 붐은 한 때 히말라야 러시를 이르키고 급기야는 세계 등산계에 합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도취와 희열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산악계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재빨리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산악계를 놀라게 했던 그 성취와 기록의 주인공들과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일반 산악인들이다.

 

우리들, 적어도 공부하는 산악인들은 지난날의 에베레스트 낭가파르바트 등반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또한 북극과 남극에서 벌어졌던 상상을 초월한 탐험가들의 의식과 행위를 자세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구상의 수평적, 수직적 세계에 대해 그리고 거기에 투신했던 선구자들의 궤적에서 쉽사리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자기의 뒤를 좇거나 자기를 넘어서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오직 앞을 내다보며 자기 길을 갔다. 얼마 전에 하인리히 하러가 죽었다. 긴 장정을 끝냈다고 미망인이 추모했는데 얼마나 멋진 인생이었던가! 알프스 마의 북벽 아이거를 초등한 영웅인 그가 초등 50년을 맞으며 그 역사를 집대성했을 때 하러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그는 추호도 자기 기록이 깨지며 자기의 명성이 퇴색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아이거에서 같이 자일을 묶었던 당시의 파트너들에 대한 감회로 시종했으리라. 그러기에 그는 그 책을 자일샤프트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책머리에 붙였다. 낭가파르바트 초등자였던 헤르만 불이 간지는 오래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의 힐러리경은 아직 건재한데, 그의 오늘의 심정은 어떨까? 50여 년 전 그가 초등했던 에베레스트는 선구자들이 무려 32년 긴 세월 악전고투한 곳이었다.

 

힐러리가 오를 때만 해도 영국원정대는 남봉과 정상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거기가 등정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대장 존 헌트가 그의 등반기에 썼다. 그런 에베레스트가 오늘날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힐러리의 초등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됐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은 70년대 초 메스너가 개척한 이래 아무도 도전 못한 채 공백 지대로 남아있었는데,

 

우리 등반대가 근자에 비로소 재등의 쾌거를 이룩했다. 낭가파르바트 도전은 에베레스트와 나란히 세계 등반대의 주요 목표로 돼 있으면서, 그 험로로 알려졌던 루팔벽이 한국 등반대 손에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로서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북극점을 여성 탐험가가 혼자 가는가 하면 루팔벽을 솔로로 오른 등반가가 외국에서 나왔다.

 

절대로 예상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성취에 적어도 그 세계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물론 기록이란 언젠가느 깨지게 되어 있으며, 인류의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이거 북벽만 해도 그렇다. 옛날은 고사하고 전 세기 70년대에 일본 등반대 두 팀이 각기 여름과 겨울에 직등 후트에 도전, 전자는 31일, 후자는 34일 걸려 모두 완등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메스너도 아이거에서 10일이나 지냈는데 후일 부벤도르파와 차파이더라는 젊은 이들이 나타나서 서로 45분과 50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초단 시간에 그 거벽을 돌파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벽의 등반시대가 마감되지는 않았다. 알파니즘은 원래 누구와의 싸움이나 누구를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자기와의 싸움이다.

 

기록을 내세우고 자랑할 일이 아니며 등반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거기에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등산 세계의 의의와 가치는 바로 그런 것이며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넘어설 때 희열과 만족에 도취하는 것이 알파니스트의 특권이다. 지난날 고상돈이 메킨리에 갔을 때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영웅이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일본의 우에무라 나오미도 역시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고상돈이나 우에무라의 명성이 도말되거나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뿐인가, 우리는 예지 쿠쿠츠카를 잊지 못한다. 그가 한때의 명성만 노렸다면 당시 메스너를 능가할 정도의 성취로도 충분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언제나 자기만의 목표가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공백지대를 노리다. 조난했다.

 

구도자 같은 산악인의 원형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는 지난 1977년 에베레스트에 갔다. 71년 입산 신청을 하고 77년 가을에 비로소 등반하게 됐던 그런 원정이었다. 18명의 대 부대가 600여 명의 포터를 앞세우고 20여일 산록 행진을 하는 그런 어프로치였다. 그리고 끝내 한 사람을 그 정상에 올렸다. 그러한 당시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오늘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엄홍길, 박영석의 성취도 마찬가지다. 김창호의 경우도 그렇다. 이 모두가 이미 과거의 기록 속에 묻힌 셈이지만 그것은 당시의 기록으로 영원히 기록되고 빛난다. 여기 이러쿵저러쿵 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당사자들도 등산사에 남은 많은 선구자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기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속에 살고있다. 동서고금은 물을 것도 없다. 이것이 인생이니까.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 산악계의 존립조건이다. 표고 2000m도 안되는 무대에서 자라 세계로 진출한 것 만은 사실 아닌가. 그러니 누가 누굴 말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사랑하고 힘주고 같이 뛰어야 한다. 이번에도 기록이 깨졌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3극점을 두번 갔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건 고사하고 눕체를 쿰부 빙하에서 붙어 그 길고 긴 칼날능선을 지나 로체 정상을 거쳐 사우스콜로 내려가 에베레스트 동남릉을 따라 정상에 섰다가 웨스트 숄더를 내려온 등산가는 없으며, 그런 꿈을 가진 등반대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은 한마디로 인간능력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알피니즘은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고 있지만 그 덕분에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다. 그래서 우리들 산악인은 산악인으로서의 자부와 긍지와 특권을 가지고 것이다.

 

   -<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김영도님의 글 / MOUNTAIN 06 04월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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