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바위 위의 곡예' 볼더링의 완성자 '존 길' *-

paxlee 2008. 5. 22. 22:14

 

                                '바위 위의 곡예' 볼더링의 완성자 '존 길'(1938~

 

존 길

존 길이 2004년 6월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한 작은 바위에서 ‘트래버스’(옆으로 횡단)를 하고 있다. 존 길이 바위 위에서 펼쳐 보이는 ‘볼더링’은 한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다.

체조선수 출신인 존 길은 클라이밍에 체존 동작을 결합시켰다.

토요일 밤의 북한산 인수봉 주변은 야영을 하러 들어온 산악인들로 붐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을 해먹고 소주도 두어 잔 걸치고 나면 달리 할 일이 없다. 이럴 때 그들은 낮고 작은 바위 아래 모여 ‘장난’을 즐긴다.

 

“왼손만 써서 이 바위를 올라갈 수 있는 사람?”“지상 30cm를 유지하면서 이 바위 끝에서 저 바위 끝까지 트래버스(옆으로 횡단)할 수 있는 사람?” 짓궂으나 풀기 어려운 ‘문제’다. 심지어 아예 출발 지점에서부터 문제를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땅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은 자세에서 시작하여 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작은 바위에서의 ‘문제 풀이’식 등반을 ‘볼더링’(bouldering)이라고 한다. 남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월하게 해치운다 하여 무작정 덤벼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비록 지상 1m 정도의 높이라고 해도 추락의 공포는 여전하다. 왼발 끝을 10cm만 옆으로 옮기면 체중을 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동작이 영 여의치 않다. 게다가 바로 뒤통수 밑에서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는 친구들이 바글바글대니 남몰래 식은 땀까지 흐른다.

 

머리 위로 쭉 뻗은 오른 손의 손가락 마디 끝이 파르르 떨리며 경련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결국 추락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볼더링 팀들과 함께 한다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뒤에서 보고 서 있던 친구들이, 마치 헹가래로 하늘 높이 던져올렸던 축구감독을 다 같이 감싸안듯, 저마다 팔을 벌려 추락자를 안전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볼더링에서 추락시 부상을 방지해주는 장비로는 ‘크래쉬 패드’(crash pad)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 일종의 ‘쿠션’이다. 이 장비를 따로 구입하기 싫다면 집안 거실에 있는 소파의 쿠션을 따로 떼어내 바위 밑에다 깔아놓아도 그만이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지만 요즘에는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볼더링을 좀 더 장난스럽고 스펙타클하게 발전시킨 개념이 ‘빌더링’(buildering)이다. 철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빌딩’과 ‘볼더링’의 신종 합성어인데, 도심 속에 있는 고층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등반을 말한다.

 

수 년 전 윤길수와 김태삼 등 한국의 클라이머들이 서울 강남의 무역센터 외벽을 타고 옥상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공중파 방송의 뉴스시간에 보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흔히들 ‘클라이머들의 장난스러운 놀이’ 정도로 인식되는 이 볼더링이라는 행위는 그 족보가 어찌되는 것일까?

 

예상 외로 역사가 깊다. 볼더링은 암벽등반의 역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즉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클라이머들이 도시 교외의 나지막한 암벽이나 표석 또는 노변에 접해있는 작은 바위를 찾아 암벽등반의 미세한 동작들을 ‘훈련’해 본 데서 그 기원을 찾는다.

 

볼더링이라는 단어가 문헌 상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1914년의 일이니 무려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초창기 볼더링의 개념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즉 보다 높고 험한 바위에서 펼쳐질 암벽등반 기술을 낮은 곳에서 연습한다는 개념이었다.

 

이 볼더링을 암벽등반으로부터 따로 떼어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미국의 볼더러 존 길(1938- )이다. 얼마 전 정년 퇴임 하기 전까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건물 외벽을 타고 창문을 통해 강의실로 넘나드는 괴짜 행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준 유쾌한 사내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전 세계 산악인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볼더링 이외의 암벽등반이나 거벽등반 혹은 고산등반 등 그 어떠한 등반에도 관심이 없다. 존 길은 ‘볼더링을 위한 볼더링’을 주창하며 그것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가치를 확립하는 데 자신의 삶을 다 바친 사람이다.

 

그는 볼더링 루트와 엘캐피탄 루트(요세미티 최대의 거벽등반 루트)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한다. “예이츠의 시와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은 전혀 다른 겁니다.” 존 길은 1954년 조지아 전문대학에 입학하면서 체조와 처음 접했다. 하지만 그는 190cm에 육박하는 신장과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갖추었으면서도 체조부원으로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접하게 된 로프 클라이밍과 평행봉 그리고 링 운동은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바로 “클라이밍에 체조 동작을 결합시켜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는 저 혼자 볼더링을 위한 사려 깊은 트레이닝 동작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트레이닝에는 정지링과 평행봉 등 전통적인 체조 동작은 물론이거니와 발레나 곡예에서 요구되는 미묘한 평형감각 그리고 손가락 끝 한 마디만으로 턱걸이를 계속하는 엄청난 완력 훈련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오래 전 그가 볼더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감상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는 어떤 클라이머보다 과감했고, 어떤 체조선수보다 강인했으며, 어떤 발레리나보다 유연했다. 3m 남짓한 바위에 붙어 그가 펼쳐보이는 동작들은 더 없이 다이내믹하고 예술적이며 드라마틱하여 마치 한편의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어째서 그를 ‘현대 볼더링의 아버지’ 혹은 ‘바위의 체조선수’라고 부르는지 절로 납득이 되는 순간이다. 존 길, 그에게 있어서의 산이란 작고 낮은 2m짜리 볼더링 바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바위에 오르는 것은 動中禪을 추구하는 명상"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존 길이 최근 한 클라이밍 전문지와 인터뷰를 했다. 뜻밖에도 흥미로운 고백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남 몰래 흠모했던 인물이 낭가파르바트의 초등자 헤르만 불(1924-1957)이었다는 사실이다. “제가 손가락 끝 한 마디만으로 턱걸이 연습을 했던 것은 순전히 헤르만 불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그가 그런 방식으로 훈련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거든요.” 존 길은 극도의 위험과 그것의 극복에서 표출되는 아드레날린의 도취보다는 마치 명상을 하듯 완전히 고요하고 집중된 상태에서 마음의 흐름(flow)을 따라가는 ‘동중선’(動中禪)을 추구한다고 고백한다. “어려움과 위험은 등반의 본질적 즐거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완전한 ‘플로우’에 이를 때까지 같은 루트를 반복해서 오르며 보다 미묘하고 소박한 즐거움을 찾습니다. 제가 오르는 바위와의 합일을 통하여 어떤 영적인 직관에 이르며 깊은 만족감을 맛보게 되지요.” 지극히 소박한 출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볼더링은 이미 ‘극한 스포츠’(extreme sports)의 한 갈래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동작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완성자인 존 길은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몹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볼더링이 마치 스케이트보딩처럼 10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준으로 전락할까봐 걱정됩니다. 저는 볼더링이 죽기살기식으로 격렬해지고 결국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백만불짜리 스타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명상적이고 품위 있는 스포츠로 남아있기를 희망합니다.”

 

[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