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K2, The Story of The Savage Mountain *-

paxlee 2008. 7. 9. 22:58

 

                 K2, The Story of The Savage Mountain

         짐 큐런 저 / 세계 제2의 고봉 K2 등반사
‘산 중의 산’, ‘잔인한 산’, ‘산악인의 산’이라고 통칭되는 K2(8,611m)는 8,000m급 중 등반이 가장 어렵다는 거봉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 동안 16개 등반대가 K2에서 연속 실패한 것은 13명이 사망한 1986년도 비극의 여파 탓도 있지만 주로 악천후 때문이었다. 그리고 K2의 노멀루트인 아브루치 능선이 다른 8,000m급 거봉의 어떤 루트보다도 난이도가 훨씬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3년까지 52명의 산악인이 K2의 기슭에서 유명을 달리했고, 그 때까지의 등정자는 여성 5명을 포함해서 196명(2회 등정자 2명의 등정횟수는 1회씩만 계산)이었다. 루트별로는 아브루치 능선(남동릉) 103명, 북동릉 4명, 서릉 4명, 북릉 26명, 남벽의 폴란드 루트 2명, 남남서릉(매직라인) 3명, 북서벽~북릉 2명, 북서릉~북릉 2명, 서릉~서벽~북벽 루트 11명, 남남동릉~아브루치 능선 41명인데, 그 중 무산소 등정자는 129명이었다.

1902년 영국 에켄스타인 대가 북동릉의 6,600m 지점까지, 1909년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대는 남동릉 상의 6,250m 부근까지 진출했다. 1938년 미국의 찰스 휴스턴 대는 남동릉의 난코스인 하우스 침니(6,400m)와 블랙 피라미드(7,400m)를 돌파하고, 숄더(7,900m) 위쪽 7,925m 지점까지 무산소로 진출하고 하산했다. 1939년 미국 산악인 프리츠 비스너는 셰르파 파상 다와와 함께 무산소로 8,382m 지점까지 진출했으나 셰르파의 등반거부로 하산했는데, 후원자인 미국 백만장자 두들리 울프와 셰르파 3명이 사망하여 K2의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1953년 미국 휴스턴 대는 남동릉 상의 7,9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폭풍설로 최종캠프에 여러 날 갇혀 지내는 동안 아트 길키 대원이 혈전증에 걸렸다. 그들은 환자를 후송하며 하산하던 중 3개 자일조가 얽혀 추락하는 것을 쇠닝 대원이 필사적으로 확보하여 재난을 겨우 면했다. 그러나 그들이 환자를 확보해놓고 폭풍설 속에서 캠프를 구축하는 동안 눈사태가 덮쳐 길키 대원이 실종되었다. 40년 후인 1993년 그의 유해 일부가 옷 조각과 함께 BC 상부에서 발견되어 미국의 가족에게 인계되었다.

1954년 이탈리아 대의 가장 건장한 마리오 푸초즈 대원이 남동릉 상의 C2에서 폐렴(사실은 폐수종으로 의심됨)으로 사망하여 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장기간의 고된 등반으로 여러 대원들이 탈진상태여서 지원조 활동이 부실했다. 그러나 보나티 대원과 셰르파 마디가 공격용 산소통을 8,000m 부근까지 운반한 덕택으로 콤파뇨니와 라체델리가 초등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76년 19명으로 구성된 폴란드 대는 고소포터의 지원 없이 북동릉의 눈처마와 암봉이 늘어선 칼날능선을 10일만에 돌파하고, 스노돔을 지나 서미트 헤드월 밑(7,700m)에 도달했으나, 8,4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악천후로 퇴각했다.

1977년 52명으로 구성된 매머드 일본대가 아브루치 능선으로 산소를 사용하며 2등 했다. 1978년 영국 크리스 보닝턴 대가 서릉 6,700m 지점에 C2를 구축했는데, 닉 에스트코트 대원이 판상 눈사태로 사망하여 등반이 중단되었고, 같은 해 미국의 위태커 대가 북동릉의 서미트 피라미드 밑(7,700m)까지 진출했는데, 눈사태의 위험 때문에 북동릉 상부 등반이 불가능하게 되자 동벽을 트래버스하여 아브루치 능선 상의 숄더에서 비박한 후 등정하여 K2의 두 번째 루트가 열렸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매직라인이라고 명명한 남남서릉(일명 남서필라 루트)은 네그로토 콜에서 정상까지 수직고 2,300m인 능선인데, 6,000m 지점에서 8,000m 지점 사이의 사우스 웨스트 필라가 최난 구간을 이룬다. 1979년 최정예 클라이머들로 구성된 프랑스 대가 8,400m 지점에 최종캠프를 구축하고 5차례 정상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했다. 메스너도 이 등로로 등반을 계획했으나, 포터 1명이 사망하여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로를 변경하고 메스너와 다커가 무산소 등정으로 제4등을 했다.
1980년 영국 산악인 피터 보드만, 조 태스커, 딕 렌쇼, 더그 스코트 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등반대가 서릉으로 7,000m 지점까지 진출하고 퇴각한 다음 아브루치 능선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했는데, 보틀넥(Bottleneck) 쿨와르 밑의 캠프(8,100m)에서 취침 중 눈사태에 매몰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1981년 일본대의 오타니 대원과 파키스탄인 사비르가 서릉 8,200m 지점에서 서벽을 횡단하고 남남서릉(매직라인) 상부 8,300m 지점에 최종캠프를 구축했다. 그들은 암설지대를 지나 설동 속에서 비박하고 등정하여 제3루트를 개척했다. 이듬해에는 북서릉 등반허가를 받은 폴란드 대가 일본대 루트인 북릉 8,200m 지점에서 등반하다가 발각되어 강제 하산당하기도 했다. 일본대 대원 7명이 북릉으로 무산소 등정하여 제4루트를 개척했는데, 야나기사와 대원이 하산 중에 탈진으로 사망했다.

아브루치 능선 좌측에 남남동릉이 있는데, 이 능선은 아브루치 숄더(7,900m)로 이어진다. 1983년 영국의 더그 스코트는 영국인 3명과 프랑스인 1명으로 구성된 등반대를 이끌고 이 능선의 7,600m 지점까지 알파인 스타일로 진출했다. 같은 해 이탈리아 대는 북릉을 무산소 제2등 했다.

1985년 스위스 대의 에라르 로레탕 대장과 대원 4명이 아브루치 능선으로 무산소 등정했고, 1986년 프랑스의 바라르 부부와 폴란드의 여성 산악인 반다 루트키에비치(무산소) 일행이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정했으나 하산 도중 바라르 부부가 실종되고 말았다.

같은 해인 86년 이탈리아 대의 일원인 체코의 라콘카즈는 아브루치 능선으로 두 번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또다른 아브루치 능선 2회 등정자는 셰르파 장부다. 프랑스의 베누아 샤무는 다른 등반대가 설치한 고정로프와 캠프를 이용하며 아브루치 능선으로 23시간만에 등정했다. 이탈리아의 레나토 카사로토는 알파인스타일로 세 차례에 걸쳐 남남서릉(매직 라인) 등반에 나서 8,300m 지점까지 진출했으나 악천후로 포기해야 했고, 베이스캠프를 거의 다 내려선 지점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했다.

또한 폴란드의 쿠쿠츠카와 피오트로프스키는 남벽의 하키 스틱 걸리에서 두 번 비박하며, 100m 높이의 수직암벽을 돌파하고 아브루치 능선 상부에 도달하여 폴란드 루트(제5루트)를 개척했다. 그러나 피오트로프스키는 남동릉으로 하산하던 중 추락사했다. 한국대의 장봉완·김창선·장병호가 아브루치 능선으로 산소를 사용하며 등정했는데 고소포터 알리가 낙석에 맞아 사망했다.

폴란드 산악인 브뢰즈와 아세츠키, 체코인 보치크는, 프랑스 대가 이미 8,400m 지점까지, 그리고 이탈리아의 카사로토가 8,300m 지점까지 진출했으며, 그 위쪽으로는 일본 서릉 등반대가 구간 등반한 바 있는 남남서릉(매직 라인)을 완등하여 제6루트을 열었는데, 남동릉으로 하산 도중 브뢰즈 대원은 탈진으로 사망했다. 폭풍설로 인해 아브루치 능선의 C4에 7명의 산악인이 갇혀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디엠베르거와 바우어 두 사람만 탈출에 성공했다.

유고대의 토모 체센이 남남동릉을 올라 아브루치 능선의 솔더에서 하산했다고 주장했는데 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1990년 일본대가 북서벽의 7,000m 지점까지 오르고 북릉으로 등정하여 제7루트를 개척했다. 같은 해 미국-호주 합동대의 스웬슨 대장과 그레그 차일드, 모티머 대원은 북릉으로 무산소 등정했다.

1991년 프랑스의 베겡과 프로피 두 사람은 북서릉 6,900m 지점에서 야영하고, 10시간만에 북서벽을 대각선으로 횡단하고 북릉 상부 이글스 네스트 레지(Eagle's Nest Ledge·7,900m)에 도달하여 2인용 텐트를 설치하고 야영했다. 그들은 6시간만에 현수빙하를 횡단하고 정상 쿨와르를 오른 후 2시간 후에 정상을 밟아 제8루트를 완등했다. 이 루트의 북릉 교차지점까지는 폴란드 대가 고정자일을 설치하며 이미 등반했고, 북릉 상부는 일본대의 초등루트이기 때문에 알파인 스타일 등반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른 등반대가 설치한 고정자일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영국의 프라트와 마주르는 일본 루트인 서릉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그들은 서벽을 횡단하여 매직라인 상부 8,300m 지점에 도달했다. 10m 높이의 암벽을 오르자 좁은 침니가 나타났다. 여기를 오르고 바위와 가루눈 지대를 통과했다. 8,550m 지점의 오버행 볼더 밑에서 휴식을 취한 후 짐을 모두 볼더 밑에 보관해두고 정상능선으로 등반을 계속하여 밤 11시에 등정하고 볼더로 돌아와 비박 후 하산했다. 그들의 등정을 입증할 수 있는 사진은 사우스 웨스트 필라 위쪽 8,300m 지점에서 촬영한 것인데, 그 위쪽으로는 난코스 구간이 없다.

같은 해 캐나다의 블랜차드 일행 3명은 남벽의 폴란드 루트를 등반하며 아브루치 능선 상부에 도달했으나 정상을 밟지 않고 하산했다. 1994년 바스크 대가 남남동릉과 아브루치 능선 상부로 등정하여 제9루트가 열렸다. 1995년 영국의 여성 산악인 하그리브즈는 무산소 단독등정에 성공하고, 다른 등반대의 남자 산악인 3명과 하산도중 강풍에 날려 실종되었다.

1996년 폴란드-이탈리아 합동대의 크지슈토프 대장, 비엘리키, 비앙키 등 대원 4명이 북릉으로 무산소 등정했다. 1997년 일본대의 다나베 대원 외 6명과 셰르파 4명은 서릉 상의 7,083m 지점까지 오르고, 서벽을 횡단하여 북서릉 숄더(8,001m) 지점에 도달하여 C5를 구축하고 북벽으로 등정하여 제10루트를 개척했다.

2000년 6월 한국대의 박정헌 외 7명이 남남동릉과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정했다. 이어 7월에는 엄홍길 외 4명과 셰르파 장부가 남남동릉과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정했다. 2001년 한국의 박영석, 강성규, 오희준, 셰르파 장부, 파상 체링이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정했는데,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던 박영도는 추락사하고 말았다.

이 책의 저자 짐 큐런은 영국 언론인이며 산악인으로 수차례 영국 등반대에 참가했다.

국판 271쪽. 1995년 영국 호더 앤 스터튼 출판사 간행.
리뷰 /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 / 월간 산 [464호]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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