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3] *-

paxlee 2008. 7. 20. 09:02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3]


아프리카 최고봉… ‘코카콜라 루트’로 우후루 피크 올라
이젠 전설이 될 ‘검은 대륙’의 만년설이여...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얻는다 했던가! 나는 어쩌면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기에, 한달 여에 걸친 준비기간 동안 킬리만자로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와 산행기를 읽어가며 이번 여행을 준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 갑작스레 나를 이끈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 머나먼 곳까지 나를 이끌어 낸 것일까?

 

사라진 만년설 위로 생긴 하산길로 하산하는 일행들.


인천을 출발, 오사카를 경유하여 도착한 도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금 최종 목적지인 나이로비를 향해 룹알할리 사막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늘에서 바라다본 아비시니아 고원은 결코 검지 않았다. 어쩌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내 눈이 검었고, 내 마음이 검어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 해발 1700m인 이곳은 생각만큼 덥지는 않다. 가끔씩 부는 시원한 바람과 먼지들, 뒤죽박죽 복잡한 도로들. 국경마을로 가는 길은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바다처럼 넘실거려, 지평선 너머로 지구 끝이 보일 듯한 대평원으로 난 길을 달리면서 그 안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달린 그 허허벌판들이 사람냄새 가득한 곳으로 바뀌리라는 기대로 말이다.


외곽으로 멀리 나오니 아프리카 아카시아와 소떼들이 이곳이 진짜 아프리카임을 말해준다. 길가에 마라톤 연습을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이곳이 마라톤왕국 케냐의 국경마을 나망가다. 국경마을 치고는 부산하지는 않지만, 멀리 킬리만자로가 구름 위로 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곳에서 아프리카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호텔식당에서 자리에 앉고 40분 만에 스프가 나왔다. 처음으로 그들이 말하는 ‘뽈레 뽈레(천천히)’를 느껴봤다.
 
내 생애 최고의 선택 킬리만자로


아프리카산 아침커피를 마시며 여행일지를 작성한다. 내 마음껏 아프리카를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일 듯하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일행 24명에 현지인 가이드, 포터, 쿡 등 68명을 포함해 모두 92명, 대단위 트레킹팀이 꾸려졌다.


멀리 킬리만자로가 늠름한 자태로 머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다. 내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킬리만자로는 천상의 모습으로 내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다. 대장 가이드 솔로몬의 지휘 하에 100명 가까운 인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킬리만자로의 여신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출발한지 49시간 만에 산행을 시작한다. 일명 ‘코카콜라 루트’다.

 

나머지는 ‘위스키 루트’란다. 등산로의 아이들이 카멜레온을 들고 다니며, 가이드들에게 혼날까봐 조심하는 모습으로 “원 달러”에 가격 흥정을 한다. 남몰래 고소증세로 가슴앓이를 하는 중에도 뽈레뽈레를 읊어대며, 넓고 완만한 비탈길의 울창한 정글지대를 지나자 나온 급경사를 올라 전망 좋은 만다라 산장에 다다른다. 로지마다 태양열판이 붙어 있고 밖에는 수도시설도 되어있다. 찬물에 세수 등은 안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이만 닦았다. 가이드와 포터가 그들 특유의 춤을 곁들여서 ‘쿰바야’와 ‘킬리만자로’를 합창한다.

 

멀리 보이는 키보봉. 킬리만자로에는 시라봉(3962m), 키보봉(5895m), 마웬지봉(5149m)이 있는데, 만년설로 덮여 있는 키보봉 정상을 우후루피크라 부른다.


오늘밤은 비박을 하는데, 적도의 밀림 속 첫날밤은 북한산에서 수없이 했던 비박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숭이들의 고성방가를 음악으로 착각하며 밤새 뒤척이다가 실낱같은 월출이 뜬 후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는 마사이어로 ‘누가이에 누가이(신의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신의 아들 마사이족이 숭배하는 숭고한 산으로 킬마(Kilima)는 스와힐리어로 ‘산’이란 뜻이고, 자로(njaro)는 마사이어로 ‘물의 원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무려 200만년 전부터 용트림을 하며 수차례의 기형학적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5895m 높이의 아프리카 영산!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과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도 부족할 것 같다. 킬리만자로는 1889년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가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밀림과 산악사막과 혹한의 만년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낮과 밤


산장을 출발하자 밀림지대가 차차 관목지대로 바뀌고 초원지대에 나온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하쿠나마타타-뽈레뽈레(괜찮아-천천히천천히)”를 수 없이 되뇌이며 영감님 걸음으로 걷다 보니 전망이 탁 트이고, 선인장 같은 아주 멋있는 세네시오와 로벨리아 넘어 여우같은 마웬지 봉이 웃고 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키보 봉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3000m를 넘어서는 메말라 보이는 히이드들, 로베리아, 금작화들이 인사한다.

 

이름 없는 야생화가 끝이 없도록 벌판에 계속이다. 감탄사도 필요 없을 지경이다. 구름이 밀려오고, 바람도 차지면서, 옅은 구름에 휩싸였지만,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시금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짙은 구름을 보고 서둘러 호롬보 산장으로 발을 옮긴다. ‘세네시오킬리만자로’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호롬보 산장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이곳이 오르려는 사람들과 내려갈 사람들이 교차하기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빛이 전날보다 더 밝은 듯하다. 별들을 더 돋보이게 하려함인가. 어디론가 숨어버린 달과 아프리카 밤하늘 킬리만자로 위로 떠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은하수의 발원지도 보이고 씩씩한 견우와 어여쁜 직녀도 보인다. 누군가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의 별빛이 가장 아름답다고. 달이 없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이 별들을 몽땅 따다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주고 싶다.

 

새벽4시 잠에서 깬다. 영상 1.7℃다. 아직 먼동이 트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비박으로 밤을 지새고 나니, 여명 속에 별과 달이 어우러져 그 분위기와 빛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도저히 형언할 수 없어, 내 안의 깊은 곳에 담아본다. 그 풍경이 정지한 듯 아닌듯한 모습으로 나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블랙홀처럼…. 발아래 운해가 기가 막히다. 계속되는 손과 발의 저림현상, 뒷골이 쑤시고, 새벽녘에는 구토까지 고소증세가 나타났지만, 뽈레뽈레를 되뇌이면서 산장을 출발한다.

 

급경사를 올라 하얀 에베레스팅(영혼의꽃) 군락지인 습지대를 가로지르면 마지막 샘터가 나온다. 포터들이 열심히 물을 챙기면서 빨리빨리가 습관화된 마음 급한 일행에게 “뽈레뽈레”를 외친다. 잠시 고민을 하다 한 글자씩 따서 ‘빨레빨레(적당히)’ 신조어를 만들어 웃어본다. 길은 점점 사막화 되어가고 붉은 색을 띤 흙과 바위들이 나를 완전히 매료시킨다.

 

한없이 거칠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산악사막지대다. 그 자체가 매력이다. 차가운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가득하다. 길은 마치 넓은 시골 우마차로 같다. 평지길 같은데도 서서히 고도를 올리고 있다. 키보 산장에 도착하니 눈이 내린다. 키보봉과 마웬지봉의 눈 내린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키보봉은 오늘밤 오르겠지만, 마웬지봉은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보봉이 무덤덤한 남자라면, 마웬지봉은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이다.
 
우후르피크에서 외치는 아프리카의 자유


아주 춥다. 길고 긴 불빛 행렬. 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숨이 차다. 오르고 또 오른다. 솔로몬의 지휘하에 가이드 포터가 “킬리만자로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 뽈레뽈레”를 힘차게 외치며 고객들의 사기를 북돋아 준다. 그것도 잠시, 끝없이 이어지는 급경사와 지그재그 길에 점점 쉬는 주기가 빨라진다. 솔로몬과 그들의 노랫소리도 없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불빛이 왜 이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두 번 다시 고산등반은 하지 말아야지!’ 맹세했건만 하산 후면 또다시 고산등반을 꿈꾸고 있던 나였다.


6시간의 사투 끝에 길만스 포인트(5685m)에 다다랐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며 분화구가 보이고 멀리 만년설이 보인다. 모든 것이 발아래에 있다. 이곳은 1927년 선교사 로이치가 표범의 시체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하여 ‘레오파드 정상’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하산하는 사람은 녹색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는 갈색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말하자면 A와 A+의 차이다.

 

길만스 포인트에서 바라다 본 정상이다. 이곳까지 오르면 녹색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눈물이 나고,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지쳤지만, 210m를 더 올라야만 평생을 노래하던 킬리만자로 최고봉 우후르피크에 다다른다고 한다. 그 210m가 2100m를 오르는 만큼이나 힘들게 느껴졌다. 드디어 ‘자유’를 뜻하는 우후루피크(5895m)! 시간과 숨이 멈췄다. 아프리카의 영산 킬리만자로의 가장 깊은 곳에 안기었다. 감개무량하다. 온 몸이 흥분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흘리는 눈물로서 나를 안아준 신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대신했다. “킬리만자로의 여신이여~ 진정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우후루피크 지역은 5000m이상의 고지대로 연강수량이 100mm 이하다. 극지와 같은 기후로 밤에는 얼어붙을 정도로 춥고, 낮에는 태양의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이라 대기 중 산소는 평지의 반으로 지표에 물기라곤 만년의 얼음과 눈뿐이다.

 

그나마 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시한부의 만년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봐야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아프리카는 결코 검은 대륙이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륙에는 형형색색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지구상의 모든 색을 망라하고 있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쉬기를 반복하여 길만스 포인트에 다다른다. 8시간의 긴 하산에 이은 다음날 6시간의 하산 끝에 킬리만자로 여신의 품에서 벗어났다. 끝인가? 허전하다. 너무나 짧은 사랑에 아쉬움만 남는다. 킬리만자로의 여신이여 안녕!


 - 글·사진 / 김기인 경복산우회 / 월간 마운틴 20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