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삶의글

-* < 시간여행자의 아내> *-

paxlee 2009. 11. 8. 23:01

 

                            <영화감상 / 시간여행자의 아내>

 

 

                              
 

   

요즘 일기예보는 매우 정확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에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로 지리산 산행이 취소되어 산행도 못하는 따분한 일요일이다. 비오는 날 집에서 할 일 도 별로없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오늘 바쁜일 없으면 비오는 날 우산쓰고 만나자고 하였다. 

 

그러면 코엑스에서 12시에 만나자고 하였드니, 1시쯤 나겠다고 하였다. 집에서 출발하려고 하니 어느사이 비는 끄처있고 하늘에서 햇볕이 내려 쬐고 있다. 1시에 친구를 만나 우선 점심부터 먹었다. 코엑스에는 젊은 이들로 가득하였다. 먹거리 광장에는 다양한 메뉴들이 많았지만 역시 우리는 한식을 먹었다. 그래도 그것이 입에 맞으니까.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영하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메가박스 앞에는 역시 영화를 보려는 젊은 이 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그 뒤에 가서 줄을 섰지만, 우리는 이방인 같았다. 그만큼 세대차이가 나는 것을 느껴야만 하였다. 무엇을 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간 것도 아니어서 줄을 서서 상영 푸르그램을 살펴보았다.

 

'뉴욕 아이러브'와 '시간 여행자의 아내'중에서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보기로 합의를 하였다. 표를 사고도 1시간 쯤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어 입장을 하였다.

이 영화는 사간을 마음대로 또는 임의대로 여행하는 한 남성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봐야 한다. 시간과 공간을 왔다갔다 하는 주인공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이해가 되면서 마음이 놓이게 된다. 

 

처음 영화의 서막은 어머니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어머니는 사고로 사망하고 6세인 헨리는 시간여행자가 되어 현실과 미래를 왔다갔다 하는 여행자기 된다. 주인공 헨리는 시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후반부까지 들어서면 남성이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정한 공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죽음 이후에도 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가 진행하다가 지난날로 돌아가 과거를 이야기하므로 영화의 진행과정을 이해하게 해 준다. 현실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발가벗은 상태로 아무곳에나 버려진다. 그래서 옷을 구해 입어야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고통이다. 어느때는 옷을 훔처입다가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 붙잡혔다가 입었던 옷 만 남겨놓은 체 범인은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에 모두가 놀라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 6세 여자 아이가 초원에 홀로 놀러나왔다가 시간여행자를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인연이 되어 후에 결혼하게 된다. 클레어(레이첼 맥애덤스)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편을 갖고 있다. 30대 중반의 남편과 연애했던 그녀는 28살의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뒤, 40대 초반의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고 30대 초반의 남편에게 아이를 얻었다. 그녀의 남편 헨리(에릭 바나)는 시간여행자다.

 

유전적인 장애로 수시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든다. 어린 시절의 클레어에게 헨리는 신기한 남자였다. 하지만 결혼 뒤의 헨리는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게 만드는 무심한 남자다. 클레어는 점점 시간여행자의 아내로 사는 일을 버겁게 느낀다. 반면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시간 여행에 대해 기다림으로 대처한다. 재미있게도 아내는 남편이 여행한 장소에 대해 묻지 않는다.

 

혹 추운 공간에 벌거벗은 몸으로 가지 않을까 염려는 하지만 그가 다녀온 공간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가 다녀온 시점에 대해서 주로 설명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 또는 딸이 자란 어느 시점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한 뿐이다. 아내의 궁금함이 시간에 대한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헨리의 일상적인 시간여행은 의지와 무관하다. 이 소재는 동명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매력적이다.

 

가령 언제나 나체인 채로 뜻밖의 시공간에 떨어지는 헨리가 옷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의 달인이 되는 설정은 디테일한 상상력의 결과다. 그가 느끼는 시간여행의 피로감, 시간여행을 하면서도 다른 이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묘사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영혼>의 각본가였던 브루스 조엘 루빈이 원작에서 비중있게 묘사된 시간여행자의 일상을 놓치지 않은 것은 적절한 각색이다.

 

수없이 많은 시간여행 이야기 중에서도 오드리 니페네거의 원작이 지닌 힘은 시간여행을 유전적인 장애로 등치시켰다는 점이었다. 헨리와 클레어의 로맨스는 통제 불가능한 시간여행이 가진 유머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연인의 어린 시절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시간여행자가 가질 수 있는 로맨틱한 장점이다. 현재의 남편에게 서운한 점을 과거에서 날아온 또 다른 남편에게 털어놓는 클레어의 모습은 의외의 유머다.

 

단, 소재의 한계는 영화로 건너오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영화는 소재에서 비롯된 신기한 에피소드를 연결짓는 데에만 공을 들인다. 감정적인 배려가 결여된 탓에 때로는 등장인물의 절실함과 상관없이 웃음이 앞서는 경우도 생긴다. 소재에서 비롯된 로맨틱한 상상보다 흥미로운 건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겪는 고통이 불치병 환자를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는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처지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클레어는 헨리의 시간일탈증상을 고치고 싶지만 치료는커녕 남편의 병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남편의 흔적을 아이를 통해 남기고 싶지만, 임신마저 여의치 않다.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태아가 뱃속에서부터 시간여행을 하면서 유산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고칠 수 없는 병과 그로 인한 연인의 아픔이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대목이다.

 

배속에 있는 태아의 미래를 현재로 만나는 아빠 헨리와 딸의 대화와 그들의 얼굴표정은 심각하다는 것 보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소재로서나 정서상으로나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을 찾자면 <내 사랑 내 곁에>가 어울릴 듯싶다. 흔히 영화는 시공간의 예술이라고 한다.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늘 섞여있는 시간과 공간을 논리적으로 분리해서 시간과 공간의 가치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미세한 차이를 시간과 공간에 대치시킴으로 시간과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영화는 시간의 이동의 이야기에서 점차 공간의 이동의 이야기로 변모시키면서 이러한 시도를 한다. 여성에게는 시간을 지배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기억과 기다림이라고 하는 초월적 능력으로 남성과 그 남성의 공간마저 움켜쥐고 있다.

 

남성이 나타날 장소에 옷가지를 마련해둠으로서 남성의 모든 공간과 생각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을 이동하는 남성이 일정한 장소에 나타나는 것은 늘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모든 시간을 통제하고 있는 여성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여성은 공간적 여행자인 남성의 시간적 아내인 셈이다.

 

딸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닮아서 시간 여행자가 되어 미래를 왔다갔다 하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예고 하기도 한다. 딸이 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다는 것을 알 면서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시간의 여행중 눈이 내린 산 속에서 우연히 큰 사슴을 만나게 되는데, 서로를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를 한 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그 때 사냥꾼이 사슴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사슴은 놀라 도망을 가고 헨리가 총에 맞아 집 현관에 쓰러저 사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인간은 다양한 삶을 사는 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된다. 서울 시민이 1000만이라면 천만인의 사랑이 존재하고, 그들의 삶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나 책이나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 이다. 작가가 조금 역설적으로 사건 전개를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는 것 뿐이다. 영화는 로맨스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소재여서 가끔 의미있는 웃음을 선사 하기도 하여 재미있게 즐겁게 보았다.

 

 - 강병진님과  이정배 영화평론가의 글을 참고 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