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정상의 세계 *-

paxlee 2010. 7. 6. 22:17

            

                             정상의 세계

 

         - 오은선의 14거봉 완등을 감격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 산에는 정상(頂上)이 있다. 산마루로 두드러진 부위를 말한다.

산에는 정점(頂點)이 있다. 이때의 정점은 정상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 등산에서는 산마루에 오르는 것을 정상에 오른다, 선다고 한다. 정점에 오르거나 선다고는 보통 쓰지 않는다. 독일어에 “wortspiel(말장난)”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상과 정점은 다르다. 정상 속에 정점이 있지만, 정점에는 정상이 들어갈 수 없다. 정점은 정상의 부분이고, 말 그대로 점(點)이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점은 아니더라도 그 산의 최고점을 말한다.


나는 지금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이란 어떤 곳이고, 거기는 특히 고소 등반의 경우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새삼 생각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산의 정상의 문제는 고소 등반에서만 문제가 된다. 미답봉의 경우는 정상 도달이 필요, 필수 조건이다. 거기에는 객관적인 정확성을 전제로 하는데, 그것은 기록으로 명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답봉이 아닌 경우라도 개인의 등반을 기록할 때도 물론 그러한 정확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대자연에 목숨을 걸고 온갖 정열을 쏟아서 도전하는 마당에 이른바 과학적 정확성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관용성의 문제가 여기 있다.


등산은, 특히 히말라야 같은 고산의 경우 거기에는 과학은 고사하고 스포츠의 세계를 넘어서 정신의 세계, 즉 철학적 고찰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왜, 무엇을 노리고 그런 모험에 도전하는가. 그것이 등산 초창기의 고전적 의미를 벗어난 현대적 차원에서 볼 때 이런 관점은 더 심각해진다. 가치관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8,000m 고봉 정상 부근은 ‘죽음의 지대’라 말한다. 인간의 생존이 좌우되는 곳이라는 뜻이리라. 이러한 죽음의 지대에서는 ‘정점에 정확히 선다’는 과학적 기록이 대상이 아니다. 정상 부위에서 등반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그 행위로 무엇을 얻는가가 문제다. 거기 알피니스트로서의 의식과 행위가 검증된다. 남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알피니스트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 검증의 기록은 바로 그의 그때 등반기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생산품이지만 매물이 아니다. 그 본인의 ‘아이덴티티’며, 등반가에게는 그 이상의 값진 것이 없다.


지난 5월 29일은 53년에 에베레스트가 초등된 날이다. 네팔 당국은 이날을 ‘사가르마타 데이’라고 정하고 의미 있는 행사를 열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우 09년까지의 에베레스트 등정자에게 기념패가 수여됐다. 알고 보니 그날의 수여 대상자가 무려 110명이나 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30여 년간의 놀라운 실적이다. 열악한 자연 조건하에 우리나라 산악계의 그간의 발전은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여기 아쉬운 점은, 그 많은 에베레스터 가운데 두드러진 기록적인 성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과의 경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진의 모습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 수많은 원정대가 노말 루트를 택했고, 알파인 스타일의 시도는 고사할지라도 베리에이션의 길을 간 흔적이 보기 드물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은 못될 것이다.


나는 77 에베레스트 원정을 항상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였지만, 그리고 그해 8,848m 최고지점에는 산악인으로 고상돈 한 사람이 섰던 그런 시대였지만, 당시 우리는 반세기 전 영국대의 초등 기록에도 못 미치는 그런 빈약한 원정 활동이었던 것을 잊지 못한다.


나는 남달리 오은선이 8,000m급 14봉을 두루 답파한 것을 감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녀가 완등을 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문제를 나는 그리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나라 등산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그렇게 놀랍고 오은선을 고맙게 볼 따름이다. 이 시점은 지난날 산사나이들이 그 길을 갔던 것과도 다르다. 오은선의 경우 선진 등산국의 세 여성과의 대결 같은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조건과 오은선의 그것은 너무나도 구별된다.


이러한 오은선을 보는 선진 등산계의 눈은 다르다. 오은선이 히말라야 14봉 마지막 안나푸르나를 올랐을 무렵 독일 슈피겔지의 평 속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즉 오은선은 지난날 10년 동안에 8,000m 거봉 다섯을 올랐고, 그 뒤 15개월 사이에 8개 봉을 올랐다는 점을 특히 주목했다. 이 글에서 나는 고미영의 경우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06년에 초오유를 첫 출발로, 그 뒤 이태 동안 각각 8,000m 거봉을 연속 셋씩 오르더니 운명의 해 09년에는 불과 40일 만에 세 개 봉을 오르는 놀라운 성취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것은 250년에 걸친 세계 등반 사상 없었던 일이다.


정상-거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그 행위로 무엇을 얻는가가 중요


이런 8,000m 거봉 연속 등반은 78년 메스너의 에베레스트와 낭가 파르바트 연속 등반이 시작으로, 그때만 해도 전 세계가 놀라는 일대 역사적 사건이었다. 물론 메스너의 연속 등반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는 무산소, 석 달 뒤인 낭가 파르바트 등정은 단독 알파인 스타일이었으니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은 세계 등반사의 일대 전환기였다.


서양 산악계에 ‘Trilogy(3부작)’라는 말이 나돈 것은 그 뒤 이야기인데, 이런 놀라운 추세 속에 느닷없이 우리 한국 산악계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오은선까지 왔다. 우리는 알피니즘의 역사를 공부하며 250년의 역사 속에 부침한 위대한 알피니스트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등반기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세계 산악계를 독점 지배하다시피 해왔다. 서구인들이 등산을 ‘western concept(서구적 개념)’라고 호언하는 까닭도 거기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 지난날 박정헌과 고미영이 있었고 지금 오은선의 이름이 나돌았다. 얼마 전만 해도 상상 못했던 일들이다. 나는 여기 한국 알피니즘의 내일을 내다본다.


모든 문제는 관점의 차이를 가진다. 20세기 초엽 남극점 선착 경쟁이 생각난다.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의 싸움이다. 결과는 아문센의 승리로 끝났다. 그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고 역사적 사실로 영원히 기록됐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는 이런 주장을 가지고 있다. 즉 도보로 처음 도착한 자는 스콧이라는 것이다. 선착 문제로 보면 아문센이 스콧보다 달포나 먼저 도착했지만, 그는 내내 개썰매로 달렸던 것이다.


나는 오은선과 메스너의 만남에 특히 눈이 갔다. 그때 메스너는 오은선에게 몇 마디 물으며 환담하고 그녀의 히말라야 행보를 축하했다.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대선배다운 아량을 보였다. 지금까지 이름도 없던 연약해 보이는 극동의 작은 여인이 세계 최고봉급 14개를 그토록 누빈 데 대한 메스너로서의 경탄의 눈초리가 거기 있다.


죽음의 지대는 오늘의 등산 세계에 색다른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세계야말로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기가 어떤 곳인지 상상도 못한다. 하물며 히말라야 최고봉 급의 지대를 두루 뚫고 나간 사람으로서의 연속적인 죽음의 지대의 공포와 절망과 무엇보다도 고독감은 당사자가 아닌 자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본다.


‘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라는 독일어 특유의 말은 사전에 ‘짓궂고 고약한 즐거움,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 깊숙한 곳에 이런 의식이 잠재하고 있어 이런 말도 생겼다고 보는데, 특히 대자연을 상대로 남다른 생활 세계를 가지고 있는 알피니스트의 경우, 우리가 갖추어야 할 인간성은 우정과 아량을 근거로 한 인간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극한의 세계, 한계 상황 속에서 싸우려는 자들의 가장 소중한 조건이 아닐까 싶다. 

- 글 김영도 77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장 / '월간 산'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