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라운드 [1] *-

paxlee 2010. 7. 8. 22:03

 

          [히말라야 MTB 라이딩 <상>]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라운드 MTB 라이딩 도전

2월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어디로?”
“네팔.”
나는 다시 묻는다.
“네팔 어디?”
“안나푸르나 라운드.”
다시 반문한다.
“전에 갔었잖아!”
“이번엔 자전거로 가려고 해.”
약간 골이 나는 것 같아 다시 질문을 던진다.
“누구랑?”
“혼자.”
“혼자는 안 돼!”


▲ 하이캠프를 지나 짭짭하게 장사를 하는 찻집을 뒤로하고 힘겹게 자전거를 지고 올라간다. 뒤편의 흰 산들이 아름답다.
아내의 행동을 모른 척 밀어낼 수가 없어 누군가 동행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기본 계획서를 만들어 내 카페에 올려보았지만 같이 가고자 나서는 동행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네팔 오지에서는 요즘 중국인 여행객이 금품을 강탈당하고 실종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외모가 비슷한 한국인도 피해를 볼 수가 있어 걱정이다. 결국 여자 혼자 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고 동행자가 나서지 않아, 내친김에 내가 동행하기로 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번다(마오이스트의 강요에 의한 파업)로 인해 업무가 마비돼 트레킹 허가를 받기 위해 하루를 더 묵고 셋째 날 오후 베시사하르(Besisahar·1,293m)로 향했다. 오후 7시30분 베시사하르에 도착하니 어두워지기 시작해 곧바로 호텔을 잡고 들어간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수시로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미리 캠프용 랜턴을 준비한 것이 도움을 많이 준다.

도보로 쫓아오는 고용인들 때문에 주행거리 짧아져

불불레(Bhulbhule·840m)까지 차가 이동하려고 했는데 번다로 인해 6시간쯤 걸어서 가야 한다고 한다. 길은 차가 다녀서 그런지 매우 양호해, 출발한 지 1시간 조금 지나 불불례에 도착했다.

숙소인 바훈단다(Bahundanda·1,430m)까지 가는 길이 경사 급하고 더워 엄청 고생을 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물만 마신 게 체력 유지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자니 파리가 달려들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시원한 콜라를 한 잔 하고 바로 숙소로 올라가 샤워를 했지만 그래도 모여드는 파리를 쫓을 수가 없다. 그냥 더불어 있는 것이 나을 듯싶어 이내 포기한다.

▲ 1 현재 지프가 운행을 멈추는 상제마을. 여기서부터 지프 대신 말과 당나귀가 짐을 수송한다. 2 암반을 제거하는 도로 공사가 한창인 구간. 차메 가기 전이다 멀리 자캇마을이 보인다. 이렇게 신작로는 햇빛을 피할 데가 별로 없다. 3 체크포인트가 있는 탈 마을을 지나고 있다.
팬케이크로 아침을 해결하고 마을을 넘어 내려가는데 마을 아주머니가 신작로는 불볕이라며 구길로 가라 한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려면 신작로로 가야 한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측은하게 바라본다. 조그마한 인심에 감사하며 큰길이 나올 때까지 자전거를 들고 메며 걸어간다.

자전거로 지나가기에 위험 구간이 간간이 나와 어려움을 느끼며 바훈단다 고갯마루를 내려선 지 얼마 안돼 상제에 도착한다. 1,100m 고지인데도 너무 더워 자전거 타기에는 무리라 생각하며 허름한 레스토랑 처마 그늘에 얼굴만 들이밀어 열을 식힌다. 빨리 선선한 고소에 가고 싶다. ‘최소한 2,500m는 올라가야 시원할 텐데’, 생각하며 오가는 지프를 본다. 연방 트레커들을 실어 나르고 또 내려간다. 알고 보니 트레커 거의 다 베시사하르에서 이곳 상제까지 차로 이동해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지독한 더위에 나오는 로지마다 물이나 콜라를 사먹으면서 가다 보니 슬슬 현지 음식에 싫증나기 시작한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하루에 물을 5리터 이상 마실 정도로 땀을 쏟아냈다. 아내도 싫증이 나는지 가져온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는 배고픔만 면할 수 있게 최소한의 음식을 먹는다. 네팔 음식을 내 입에 맞추는 게 나 역시 힘들다. 이제 메뉴가 얼추 정해진다. 아침에는 팬케이크와 찐 달걀 그리고 찐 감자로 먹다가 남으면 점심이나 간식 대용으로 가지고 다니고 저녁에는 수프에 달밧이나 라이스 볶음 정도다.

▲ 베시사하르 마을을 지나서 계곡물을 건너가고 있다.
지금까지 걸은 구간은 네팔 오지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지리산 계곡을 지나다니는 것 같아 더 정겹고 아름다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올라온 표고가 1,450m밖에 되지 않으니 무성한 나무와 숲길이 우리네 산과 별 다르지 않다. 지도를 보니 차메(Chame·2,100m)를 벗어나야 깊은 계곡에서 빠져나가 비로소 높은 산들이 보인다. 하루하루 표고를 올리면서 앞에 펼쳐질 안나푸르나 히말라야 장관을 기대하면 하루의 피로도 곧 풀린다.

고도를 올릴수록 고용인의 걸음이 늦어진다. 우리는 걷는 사람보다 매일매일 일찍 하루 일과를 끝내곤 했다. 아내는 현지인들이 짧은 거리를 간다고 투덜대지만 내가 보기에 이 친구들은 하루에 500m 안팍의 고도를 올리면서 가는 것 같다.

람중히말과 안나푸르나2봉, 마나슬루가 보여야 하는데 안개가 가득 차서 5,000m 이상의 고봉조차 안보인다. 지형도에 나온 것과 달리 로워 피상(Lower Pisang)까지는 실력이 좋은 사람은 라이딩이 가능하다. 아름다운 숲길이 나오면 쉬고 놀면서 시간을 때웠는데도 피상에 도착한 게 오후 1시. 예상외로 길이 자전거 타기에 좋다. 간혹 거친 길도 나오지만 이제는 길 상태보다는 고도 때문에 숨이 차서 끌고 가는 경우가 더 자주 생긴다. 바훈단다까지 자전거 끌고 들고 올라간 것이 가장 힘든 구간인 것 같다.

그 다음에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라타 마랑이다. 이 구간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위산으로 공사는 점점 더 어려워져 진도가 잘 안 나간다. 폭파 작업 후 인부들이 곡괭이와 지렛대 그리고 망치로 돌을 치워내고 있다. 저녁 무렵 공사 인부 한 명이 계곡으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석회암으로 인해 회색 빛으로 변한 강물 옆으로 시신을 수습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맨발과 맨손으로 돌을 치우다 말고 자전거와 함께 지나가는 우리를 쳐다보는 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나마스테”만 외치고 얼른 지나친다.

베시사하르에서 바훈단다를 거치지 않고 바로 상제로 간다면 두 시간 동안 들고 올라가는 고생을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상제나 자캇에서 숙박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 구간만 빼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크게 힘들 것이 없다. 신작로와 트레킹 로드가 겹치고 갈라지며 즐거운 하이킹 코스가 된 로워 피상에서 마낭(Manang·3,539m)까지 지도를 보니 길이 매우 양호하다. 내내 이런 일정을 기대하면서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여본다.

마낭의 사원에서 늙은 스님 우리의 장도 성공 기원

피상을 출발해 작은 언덕을 타다 끌다 넘어가다 보니 상류인 마낭 쪽 계곡은 거의 평원처럼 펼쳐진다. 정말 아름답다. 높은 산들을 보려고 언덕을 올라서다가 뒤를 돌아보니 돔형 피크가 보인다. 6,092m 높이의 트레킹 피크인 파상 피크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고 단정하게 생긴 것이 아름답다. 그동안 구름이 낀 날씨로 고산 준봉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는데 한참만에 보는 봉우리라 그나마 반가운 것 같다.

고갯마루부터 마낭까지 마냥 간다고 아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 휴식을 취한다. 지도를 보아도 자전거로 넉넉잡아 2시간이면 갈 것 같아 초원처럼 펼쳐진 길을 따르며 사진도 찍고 풀을 뜯어먹는 말도 구경하고 지나가는 트레커와 눈인사도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을 따라가다 보니 훔데에 들어선다. 이곳에 마낭 비행장이 있다. 아직도 착륙장 끝에서는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계곡이 넓고 풍요로워 보이는데 마을 규모가 작은 것 같다.

▲ 1 운행 3일째 처음으로 흰 산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여성원정대로 등반했던 람중히말(6,932m)이 보인다. 2 차메 마을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곳에 조그마한 온천이 나왔는데 지금은 장마로 인해 없어져 볼 수가 없다. 3 7일째 로워 피상에 뒤로하고 고전적인 네팔의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마낭 가는 길은 우측으로 예전에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히말라야 특유의 석회암 바위가 있다. 모래와 자갈이 굳어서 형성된 기암들이 2~3부 능선에 늘어선 것이 트레커를 환영하거나 보호하는 근위병 같은 분위기다.

마낭 관문에서 아내와 기념사진을 찍고 마을로 들어서니 길가에 늘어선 집들이 어느 마을보다 정겹다. 빵집이 보이고 다른 곳과 다르게 매점이 즐비해 있고 현지인들의 식당 겸 술집이 눈에 띈다. 오후 1시에 도착해 빵을 사서 커피와 함께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밀린 빨래를 한 다음 짬을 내서 마을 입구 초르텐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쉬는데 바로 비가 내린다. 깊숙이 들어올수록 오후만 되면 날씨가 흐려져 비가 온다. 이 정도 비면 토롱 라(Thorong La·5,400m)는 많은 눈이 내릴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고소적응 차 아름다운 틸리초 호수를 가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고 마을 위에 있는 구름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 없어 마을 위에 있는 곰파에 가보기로 했다. 바위 절벽 중간에 있는 석굴을 이용해 석축으로 쌓아올린 조그마한 절이다.

        - 글·사진 유학재 필라코리아 기술고문 / 월간 산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