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라운드 [2] *-

paxlee 2010. 7. 9. 21:56

 

           [히말라야 MTB 라이딩 <상>]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라운드 MTB 라이딩 도전
2시간 정도 느릿느릿 걸어올라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이 반가이 맞아준다. 할머니가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어디로 가느냐?” 묻는다. 토롱라를 넘어간다고 하니 기도를 하면서 연방  “토롱라 굿 럭(Good luck), 토롱라 굿 럭!”을 외친다. 나는 “하늘의 날씨가 안 좋다”고 했더니 아무 문제없다 하신다. 스님이 주는 행운의 끈을 목에 걸어주고 라마 경전으로 머리에 축복을 내리며 기도를 하여 주신다. 나도 이 지역을 등반하고 있을 한국 원정대가 안전하기를 빌어본다. 아내도 똑같이 축복과 안전의 기도를 받고 나니 할아버지 스님은 복채를 내라며 손으로 책상을 가리킨다. 미리 준비한 루피를 올려놓자 눈이 나쁘신 지 아주 천천히 돈을 확인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느껴진다.

곰파를 나오려다 아내가 간식용 땅콩을 주니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할아버지한테 자랑한다. 여기서는 땅콩이 귀한 음식이다. 때문에 땅콩을 두고두고 아끼면서 드실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를 생각하면 우리가 축복을 받는 부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올라오는 길에 봐둔 초르텐 옆 잔디밭에서 준비해 온 커피기구를 꺼내 원두를 우리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그윽한 커피 향, 빼어난 경치와 함께. 그동안의 여정은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그리 힘들지 않은 것 같다. 자전거를 들고, 밀고 간다는 것이 내게는 불편하지 않다. 아마 그것보다 더한 고된 등반을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자전거의 엔진 동력인 심폐 능력이 달려 언덕을 올라갈 때는 아내보다 먼저 페달을 풀어야 하는 경우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마낭 다음 목적지인 토롱패디(Thorong Phedi·4,554m)까지는 약 18km. 길이 좋아 아침에 출발하면 오후 2시쯤 도착할 거리다. 마을을 출발하여 끌기와 타기를 반복하면서 지도보다 월등히 좋아진 트레킹 루트를 가니 시야가 좋아진다. 3,000m를 넘으면서 주위에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작은 잡목들로 경계를 이루니 시야가 더욱 트여 멀리까지 볼 수 있다.

▲ 1 마낭 위 절벽 밑에 있는 곰파에서 할아버지가 토롱라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 주고 있다. 2 날이 밝으면서 도착한 하이캠프. 3 토롱 라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부산에서 오신 두 여성 분 말고 또 한 분의 한국 분을 만났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야크카르카 마을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한국 분이 오셨다. 틸리쵸 호수를 경유해서 왔다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만 익히 알고 있던 선배님이었다. 이곳에서 만나니 정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같이 오신 분 중 알고 있는 선배들이 몇 분 더 있었다. 제주의 이종량, 평택의 장익진 선배님이어서 정말 반가웠다. 2년 전에도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는데 또 만난 것이다.

선배님들의 가이드와 쿡 그리고 키친보이도 3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친구들이라 더욱 반가웠다. 덕분에 그날부터 묵티나스(Muktinath·2,531m)까지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식사 때마다 선배님들이 초대를 해 주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동안의 자전거 무용담을 답례로 들려주었다.

어렵게 올라선 토롱라에서 안나푸르나 여신께 감사

야크카르카에서 선배들과 많은 시간을 눌러앉아 얘기를 나누다 오후 늦게 출발한다. 자그마한 계곡에서부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더니 가시거리도 짧아지고 손과 발이 젖어 추워지기 시작한다. 작은 움막에서 바람을 피하며 배낭에 있던 옷들을 있는 대로 껴입는다.

▲ 1 토롱라를 넘기에 힘겨운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이용해 올라간다. 2 앞에서 보던 안나푸르나 산군을 뒤로 보냈다. 산군을 보는 것도 흐린 날씨로 오래가지 못했다. 3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깨끗하고 편한 카로파니 로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간에 너무 시간을 끌다 보니 토롱패디에 제일 늦게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저녁 내내 비와 눈이 번갈아 내려 걱정이다. 아내 얘기로는 바람이 많이 불면 이튿날 토롱라를 넘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눈비까지 내린다면 자전거를 들고 가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다음날 새벽 눌은밥 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자전거 들고 고개를 넘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헤드랜턴을 켜고 새벽 5시 출발한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20여 명의 외국인들이 우리를 추월한다. 아내를 앞세웠지만 힘이 드는지 자꾸 뒤로 처진다. 끌고 갈 수 있는 구간도 자전거를 지고 가겠다고 한다.

새벽 트레킹은 장대한 아침 일출을 맞는 것이 큰 기쁨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날씨가 계속 흐려 아침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특히 해발 5,400m가 넘는 토롱라를 넘는 순간 스카이라인을 뚫고 넘어오는 여명은 가슴이 확 트일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일 것 같은데 흐린 날씨로 그리 선명한 여명을 보지 못했다.

그저 그런 여명을 맞이하고 작은 찻집에서 코코아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토롱라로 향한다. 선배들은 다른 운송 수단(말)으로 지나가 버렸다. 구릉의 끝이 보일 듯하다가 또 돌아가고 끝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오름의 연속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전거 브레이크가 하이캠프서부터 작동을 안 하더니 이제 아예 말을 듣지 않는다. 어떻게든 오르막은 넘겠지만 토롱라 이후가 걱정이다.

하이캠프에서 이것저것 얄팍한 정비 기술로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안된다.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구간이 나와 혹시나 해서 올라탔는데 브레이크가 듣지를 않아 계곡 언덕 아래로 마구 내려간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졌는데도 가속도가 붙어 계곡 아래로 몸이 한 바퀴 뒤집어진다. 

- 글·사진 유학재 필라코리아 기술고문 / 월간 산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