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고향 이야기 *-

paxlee 2010. 8. 8. 23:29

                               고향 이야기

 

때 / 2010, 08, 06 ~ 08.
곳 / 상주시 화서면 상용2리, 상두골.

 

* 고향의 위치

 

나의 고향은 삼백의 고장 상주이다. 크게 이야기해서 상주이고, 작게 자연부락 단위의 고향은 상두골이다. 그곳에서 함께 자란 사람들과 친구들은 모두가 고향을 떠나 전국에 흩어져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여름휴가를 고향에서 보내며 고향을 떠나 만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인연을 조금 더 의미있는 만남을 위해 여름휴가를 고향을 방문하여 함께 보내기 위하여 향우회를 결성하자는 의견에 동조하여 1990년 8월에 고향에서 고향향우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나의 고향에 대한 참고자료('지명총람'(상주문화원,상주얼찾기회)와 '지명유래'(경북도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상주시 화서면은 상주시와의 거리는 26km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명은 화서면(化西面)이고, 화령(化寧)이라고 부른다. 화서는 중화지구(中和地區)의 중심으로, 신라 경덕왕16년에는 화령현(化寧縣)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그대로 따라 썼으며, 조선시대 1413년(태종13년)에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서 상주목에 속하였고, 상주군, 상주시에 속하게 되였다. 

 

1895년 5월 26일 상주군으로 개편되면서 중화의 서쪽에 위치 하였다하여 화서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1986년 1월 1일 상주시와 군이 분리되어 상주군에 속하였으며, 1988년 1월 1일 상주시 도농복합형 시, 군 통합으로 현재 상주시 화서면으로 되어있다. 화서면지역은 북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코스 봉황산(740m) 아래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화서면 화령은 지대가 높아(320m) 상주쪽에서도 올라가야 하고, 보은 쪽에서도 올라가야 하는 고지대이다. 

 

상주 보은간 25호선 국도가 2차선 포장도로로 동서로 관통하고, 남으로 황간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며, 북쪽으로 화북면에 이르는 지방도로 49호가 있다. 2007년 11월 27일 상주~청원간 고속국도 30호 고속도로가 개통으로 화서IC가 열리면서 교통의 요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행정동명 '상용2리'에 속한 '상두골'(복룡/伏龍)은 자연부락명이다. 우리가 자랄때는 33세대가 있어 인구가 150~200여명 이었으나, 지금은 20여호에 30~40여명으로 줄어 들었다.

 

* 고향 향우회

 

우리 향우회는 1990년 8월 여름 고향을 방문한 몇몇 사람이 모여, 고향에서 함께 자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 후 얼굴보기가 어렵고, 그 후의 변화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여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향우회를 조직하자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 향우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회원들이 매년 여름휴가때 모이는 것이 가장 좋다며 모이는 날짜는 기억하게 좋게 8월 두번째 일요일로 정하였다. 

 

회장은 현 마을 대표을 선임하고, 부회장의 고향을 찾은 사람중에서 선임하였다. 그래서 마을회관을 먼저 건축하여야 하겠다는 의견에 접근하게 되었다. 모임시 각 회원들이 회비를 내어 회관을 건축하기로 결의를 하였으며, 1991년 두번 째 모임에서 회비를 모아서 마을회관을 건립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우선 특별회비를 모금하여 바로 신축을 하여야 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회관건립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70여명이 10만원에서 부터 500만원까지 회관건립 특별기금을 헌납하고, 2년간 모금한 회비를 합하여 92년 4월 마을회관 건립을 위해 마을을 떠난 한 회원으로 부터 회관부지를 헌납받고, 외지회원인 건축업에 종사하는 두분이 설계에서 부터 시공을 맡고, 상주군청으로 부터 시멘트는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건설협력은 우선 주민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외지 회원들도 시간을 내어 방문하였다.  단층 슬라브 건물로 방 2개와 넓은 거실, 그리고 사무실 하나를 신축하여 8월 15일에 준공을 하였다.

 

1992년 8월 15일 제3회 향우회는 마을회관 준공식을 함께 하였다. 상주군수께서 참석하여 축사를 하여 주었으며, 많은 내외빈을 모시고 주민과 고향을 찾아온 향우회 회원과 함께 뜻 깊은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이 날(향우회의 날)은 동내주민과 외지회원이 만나서 동내잔치를 하면서 옛정을 나누며 향수를 달래는 시간을 가졌다. 음식은 마을주민들이 마련하고, 그 비용은 외지회원들이 회비로 충당하여 왔다. 올해로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향우회에서 만나는 고향의 정이 그 만큼 쌓였다.

 

8월 두번째 일요일 전날 토요일에 오전부터 저녁늦게 까지 외지회원들이 고향에 모여든다. 1년만에 만나는 회원들은 반갑게 맞아준다. 2년만에, 3년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 보다 더 오랫만에 만나게 되는 회원은 더 많은 반가움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회관 안밖에 모두가 모여앉아 맛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조금 늦게 총회를 개최한다. 경과보고를 하고, 몇년에 한번씩 회장선거도 하고, 새로운 사업계획도 세우면서 진지한 토론을 거처 다음년도를 준비한다.

 

올해는 20주년 총회에서 회장과 총무는 유임하고, 대구경북지역 부회장과 충청지역 부회장, 그리고 서울경기지역 부회장을 새로 뽑고, 몇명의 고문을 추대하면서 회의를 끝내고, 우리마을 출신 KBS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면서, 올해 60년 회갑을 맞는 회원 3명 앞에 축하케익에 촛불을 밝혀놓고, 축가를 함께 부르고 준비한 고향막걸리와 음료, 돼지고기 보쌈과 떡, 수박등등을 차려놓고 먹으면서 사회자의 재치로 웃음 꽃을 피우는 분위기가 무러익어 갔다.

 

그리고 다음순서는 노래방기기를 틀어놓고 돌아가면서 흥에겨운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나이의 구별없이 남여의 구별이 없이 모두가 형제자매처럼 즐거움의 시간은 고향에 살던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언제나 어디에 살고 있던 내고향 내친구를 그리며 살아온 고향사람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여 고향의 정을 나누는 시간은 20년, 30년, 40년, 5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때를 회상하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별처럼 총총한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그 시간은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 

 

나는 휴가 중이라 8월 6일(금요일) 오전 10시쯤 친구와 함께 하루 먼저 출발하였다. 고향마을에서 약 9km 떨어진 속리산 자락 절골이란 곳에 별장이 있어 그곳에 가서 쉬다가 다음날 고향마을에 가기로 하였다. 지인 두분과 함께 넷이서 출발하였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무척 덥다. 아침 일찍부터 소낙비가 내려 하루종일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면서 걱정을 하였는데, 출발시간 쯤엔 비가 끄쳐 다행이었다. 만남장소에 갔을 때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은 언제나 그렇지만, 향우회에서 많은 친구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이번 여행은 그 어느 여행을 떠나는 마음보다 슬레임이 강하게 울림을 전해준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들어가지 않고 쾌적하고 운치가 있는 시골길을 달렸다. 가다가 몇 번이나 소낙비를 만나고, 소낙비가 지나고 나면 다시 무더운 여름햇살을 받으며, 장호원을 지나고 충주를 지나, 음성에서 다시 괴산을 지나며 언덕위에 낯선 고택같은 기와집들이 궁금하여 올라가서 구경을 하였다.

 

대궐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으며 가운데는 연못이 있고 풍경이 아름다웠다. 주인을 만나 문의하였드니 개인소유라고 하면서 영화촬영 장소로도 이용한다며, 별순금 등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찍었다고 알려주었다. 앞으로는 펜션으로 활용도 할 계획이리고 하였다. 그곳에서 나와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내려가 자리를 잡고 지인이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는데, 그 점심을 먹는 시간에도 산에 짙은 안개구름이 밀려오면서 빗방을 뿌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와서 새로 개통한 경북 상주와 경계지점을 지나 상주시 화북면으로 접어들었다. 갈령재를 넘어 친구의 별장이 있는  절골에 2시가 넘어서 도착하였다. 친구는 이곳에 천막을 쳐 놓고 몇년을 지나다가 지난해에 별장을 완공하였다. 나는 그간 한 번도 방문하지를 못해 이번에 방문을 하였다. 2층 양옥으로 아랫층엔 방이 2개이고 주방과 거실이 있고, 2충은 넓게 하나의 크다란 거실과 주방이 있고, 두게의 화장실이 있으며, 앞 뒤에는 베란다가 있어 전망이 아주 좋았다.

 

아랫층에도 앞쪽에 넓은 배란다가 있어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대화의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부추밭에서 부추를 베고, 고추를 따고, 호박은 아직 알맞게 자란것이 없어 생략하고 부추전을 부쳐서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시골의 맛을 음미하였다. 그리고는 이곳에 아홉가구가 사는데, 한 집을 방문하였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하는 그 집주인은 여자분인데, 아주 활발한 성격이었으며, 우리를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찰 옥수수와 참외와 방울토마도를 농사지은 것이라며 내 주었는데, 그렇게 맛이 좋은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 찰 옥수수의 맛이 입맛을 끌어 당겼다. 우리와 같이 간 두분은 천주교 신자여서 함께 만남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산을 향해 올라가다가 또 소낙비가 내려 그냥 집으로 향했다. 휴식시간을 가진 후 저녁에는 돼지고기 보쌈을 만들고, 저녁밥을 하고, 벌레먹은 얼가리 무를 뽑아 생저리를 만들어 꿀맛같은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을 먹은 다음 2층에 올라가 PC로 카페와 블로거을 확인하고 다시 1층 베란다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웃에 산다는 분이 함께하여 건강에 대한 이야기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종교와 철학에 관한 대화 등으로 폭넓은 이야기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사워를 하고 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공기가 맑고 주위  환경이 청량해서 그런지 여행후 이렇게 밤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는데도 피로하거나 졸리지가 않았다. 밤에는 의외로 무척 시원함을 느끼게 해었다.

 

* 다음날은 산행

 

다음날은 일찍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하고 산행을 하자면서 배낭을 매고 산행을 떠났다. 산행은 조금 아래 달마선원에서 산길이 연결되었다. 우리는 냇가를 건너가는 지름 길에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 길에 수풀이 우거져 낫으로 길을 내면서 진행하였다. 달마선원에서 올라오는 길에 이르니 산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 오르막 길은 처음부터 구슬땀을 흘리게 하였다. 몇년 전에 왔을 때는 이런 산 길이 없었는데, 충북 산악팀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산행을 위해 산 길을 잘 다듬어 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중간 쯤에 올라가고 있을 때, 대구 팀과 서울팀이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가 그 봉우리에 도착하여 쉬고 있을 때 우리들의 고향 상두골에서 점심을 준비 해 놓고 기다린다며 점심시간에 맞추어 오라는 연락이다. 우리는 백두대간에 연결되는 형제봉까지 산행을 계획하고 출발하였는데, 부득이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그 정상에서 간식을 먹고, 형제봉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땀을 흠뻑 흘려서 그런지 마음과 머리는 맑고 몸은 가벼워졌다.

 

집에 도착하여 사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상두골을 향해 출발하였다. 회관앞에 도착하니 햇볕을 가리기 위해 차일천막이 쳐 저 있고, 오랫만에 만나는 많은 반가운 얼굴들과 궁금한 인사를 나누고, 고향회원님들이 마련해 주는 고향맛을 전해주는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벌써 점심을 먹었다고 하였다. 점심을 먹고 회관앞 정자에 모여 앉아 먹걸리와 부친게를 들면서 만남의 대화를 화기애애하게 나누고 있는데, 오늘도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정자에 소낙비가 들이쳐 한쪽으로 물러나기도 하고 일부는 서서 사정없이 쏟아지는 소낙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을 찾아오는 자동차는 그치지 않고 고개를 넘어왔다. 회관 안과 밖에서 모두가 저녁식사를 하였다. 고향의 김치와 물김치는 그 옛날 고향의 맛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오늘도 외부에서 고향을 찾아온 50여명과 주민 30여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향우회의 아름다운 모임을 옛정 그대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자고 결의하였다.

 

다음 날 일요일은 마을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보고, 선산에 가서 성묘도 하고, 점심을 먹고 각자가 생활하고 있는 현지로 출발을 하는 것으로 향우회는 막을 내린다. 오늘은 동행하는 친구가 법주사에 들려가야 한다며 점심시간 전에 향우회 회원들과 내년에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고향을 출발하였다. 아주 옛날에 우리가 걸어서 다니던 옛길도 지금은 아스팔트 길로 잘 다듬어져 있다. 절골에 들렸다가 법주사를 찾아갔다. 중학교 동창이 법주사 부주지로 있다고 하여 그분을 만나러 갔다.

 

법주사입구에서  방문 목적을 이야기 하였드니 스님의 사무실이 있는 곳까지 승용차를 통과시켜 주어서 편하게 들어갔다. 우리가 만난 스님의 법명은 무상스님 이셨다.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내주는 차를 들면서 불교에 대한 궁금한 것을 문의 드렸드니 아주 친절하게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하여 주셔서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여 식당에 가서 부페식으로 배식하는 절 밥을 맛있게 먹고 나와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법주사를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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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尙州)와 삼백(三白)이란

 

 상주를 삼백의 고장이라 한답니다

 쌀, 누에고치, 곳감,(삼백이란)을 이야기 합니다.

 흰쌀과 흰 누에고치, 그리고 곶감이 옛날에는 하얗게 곶감 분이 나서 하얀 곶감이었는데,

 곶감을 말릴 때 밤에 이슬을 맞히면서 건조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 발생한 곶감의 하얀 분이

 나도록 하는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수공이 많이 이용되어 중간에 곶감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곶감의 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묻이는 사이비가 많이 발생하여 지금은 곶감을 말릴때 유황을 피워

 건조를 시키므로 곶감의 자연 분말을 억제하고있다.

 그래서 지금은 붉은 그대로의 곶감으로 건조가 되고 있으나 곶감의 맛은 그대로 간직하게 되어

 보기도 좋고 맛조 좋으며 위생적이다.

 속리산의 수려함과 낙동강의 젖줄이 휘감아 흐르는 복받은 땅 충절의고장 상주는

 연속사극 선덕여왕편에서도 미실에게 굴하지않고 불의에 타협하지않으며 신라와 덕만공주를 구한이도

 상주사람이구요.

 황희 정승이 후학들을 양성한곳도 상주 모동면의 옥동서원 이랍니다

 忠과 孝와 義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지키며 생활화된 모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며.

 아버지와 국민학생 어린아들이 구정 설날 큰집에 가는중에 눈길에 고립된 아버지를 감싸다가 죽은

 어린소년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곳도 상주 화령이며,

 의로운 소이야기의 무대가 된곳도 바로 상주 사벌 이랍니다

 예로부터 양반 고을로 이름난곳 평야가 넓고  기름지고 비옥한땅 수자원과 지하자원

 산림농산 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며 산세와 경관이 수려하고,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곳이 바로 상주랍니다

 경상도의 어원이 경주와 상주에서 시작 되었음은 우리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구요.

 무공해 마을 용화 속리산 문장대 바로밑에 위치한 마을 세계식물 도감에 등재된

 천연기념물 망개나무 자생지도 이곳에 있답니다

 위사진중 용화정 삼거리 비석은 정기룡장군 전적비랍니다

 이곳은 제가나고 자란 고향이기에 설명이 길었습니다

 

곳감의고장

곳감 말리는 풍경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탐스러운 이게바로 상주곳감 이랍니다 .........

 

문장대.jpg

 속리산 (1.057 m )문장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함

 

 사본

 용화정 삼거리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에 있는 정기룡 장군 전적비

 

 

감나무.jpg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달린 감나무 이곳이 상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