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의 고장 상주

-* 나각산 - 상주 MRF ‘숨소리길’, [1] *-

paxlee 2010. 8. 12. 23:06

 

                            나각산 - 상주 MRF ‘숨소리길’ [1],

 

         최고의 낙동강 조망 코스로 추천!

          “해발 240m, 그러나 숫자는 전부가 아니다.”

 ‘다들 너무 좋다고 하기에 죽기 전에 구경 한번 하려고 올라왔어.”    나각산 정상의 팔각정에서 만난 할머니 세 분의 ‘등정의 변’은 사뭇 남달랐다. 주변에서 얼마나 산 위에서 본 경치 자랑을 했는지 노인들끼리 단합을 해서 길을 나섰다는 것. 아직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각산은 이미 낙동 주민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7월 중순, 나각산 코스 개척을 주도했던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전병순씨와 함께 주요 구간을 답사했다.


“산길(Mountain Road)과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로 이루어진 상주 ‘MRF’는 모두 1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인근 코스를 이어서 걸을 수 있도록 연결성이 좋지요. 그런데 유독 이곳 나각산 코스는 단독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찾아와 둘러봐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산 위에서 보는 낙동강 조망이 가히 일품입니다. 직접 보면서 판단해 보시죠.”


▲ 나각산 전망데크에서 본 낙동강. 큰 물굽이를 그리며 돌아나가는 강줄기가 시원스럽다.

나각산(螺角山·240m)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봉우리다. 이곳은 500km가 넘는 낙동강의 긴 줄기와 맞닿은 곳 가운데 유일하게 ‘낙동’이라는 이름을 지닌 면(面) 지역이다. 게다가 나각산이 있는 동네의 이름까지 낙동리다. 이름만 봐도 이 곳과 낙동강의 깊은 인연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각산은 산의 형상이 둥근 소라의 모양이고 정상에 뿔 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지금은 정상에 구름다리와 팔각정을 세워 상대적으로 나각바위가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날카로운 바위지대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지요.”


나각산은 산의 모양도 눈에 띄지만 지질 또한 독특하다. 이 지역 주변 산들이 대부분 비슷한데, 나각산 역시 옛날에 강이었던 지역이 융기해 산을 이룬 것이다. 산길 바닥은 물론 콘크리트를 버무린 듯한 모습의 바위에 박혀 있는 돌의 형태가 강돌 마냥 둥글다. 산행 도중 줄곧 이러한 돌들을 관찰할 수 있다.


가볍게 오를 수 있는 트레킹 코스 낙동강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나각산 산길은 상주 MRF 제4코스 ‘숨소리길’로 명명되어 있다. 들머리인 낙동강한우촌에서 낙단교 초입의 제방으로 올라서면 강 상류를 향해 이어진 도로가 보인다. 이 길 입구에 숨소리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부터 나각산 정상까지는 약 3km 거리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 나각산 정상에서 본 구름다리와 팔각정. 상주의 새로운 명물로 인기를 끌 것이다.

이번 답사에는 상주 MRF 동호회에서 함께했다. 올해 1월 결성된 이 모임은 상주 시민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주 넷째주 토요일마다 각 코스를 답사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코스를 답사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을 외부에 알리며 MRF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10여 명의 회원들과 어울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낙동강 가운데 건설 중인 낙단보 공사현장이 나타난다. 포크레인으로 강바닥을 파내는 준설공사가 한창이다. 낙단교에서 500m 거리의 삼거리에서 왼쪽의 마을길로 방향을 꺾는다. 갈림길에 ‘현 위치 낙단보’라고 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길은 강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으로 파고든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논 위에 싱싱한 벼가 가득하고 군데군데 한우를 키우는 축사도 보인다. 마을길을 따라 1.2km쯤 걸어가면 산길 입구라고 표기된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의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방향이 헷갈리는 곳에는 언제나 파란색 유성스프레이로 그린 화살표가 나타난다. 이정표와 지도를 이용해 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 화살표는 숨소리길을 걷는 이들에게 가장 단순한 길잡이가 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긋하게 화살표를 따르면 어느새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 나각산 등산로에 세워 둔 생태해설판. 이곳은 낙동강생태문화탐방로이기도 하다.

휴식처와 편의시설 곳곳에 설치 산길은 소나무가 무성한 야트막한 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숲속은 경사가 완만하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코스다. 햇살을 받은 숲에 나무 향기가 가득하다. 잠시 뒤 산길 오른쪽에 잘 지은 간이화장실 하나가 나타난다. 그 앞에 사유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고, 바로 뒤로 낙단보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보인다.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곳을 지나쳐 계속해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산길 바닥에 둥그런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다.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숲길에서 잠시 빠져나와 시야가 터지는 곳에 서면 상주에서 영덕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공사현장이 내려다보인다. 이 길이 완공되면 바닷가까지 1시간이면 닿을 수 있게 된다.


다시 숲으로 숨어든 길을 10분 정도 따르면 ‘옛길 갈림길’이라고 쓴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는 옛길은 정비가 되지 않아 희미하다. 주변에 최근 일어난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전망대까지는 600m 거리. 하지만 잠시 뒤면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나타난다.


나각산에는 모두 3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 것이다. 오르막을 치기 전에 여유를 즐기며 숨을 돌리라는 뜻으로 이곳에 정자를 세운 모양이다. 나머지 두 개의 전망대는 구름다리를 사이에 두고 솟은 두 봉우리 정상에 세웠다.


▲ 낙동강변 바위절벽 위에 서 있는 관수루.

정자를 지나면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조성한 체육시설이 모습을 드러낸다. 헬기로 옮겨왔다는 시설물이 얼핏 보아도 최신식이다. 이곳에서 쉬고 있던 낙동면 주민들이 “이제 상주 시내 부럽지 않다”며 동네 자랑을 늘어놓는다. 정말 복받은 분들이다.


운동기구를 지나면 전망대를 오르는 긴 계단이 나타난다. 목제로 만든 계단길의 길이는 200m가량. 자연 경관의 훼손을 최소화한 설계가 돋보인다.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낙동강이 발아래 펼쳐지는 커다란 목조데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보는 낙동강의 전망이 환상적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복날 올라와서 자고 내려가도 좋을 정도로 넓고 시원하다.


데크 옆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길이 있지만 일단 정상을 오르는 것이 우선이다. ‘50인 이상 오르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두 번째 전망데크를 지나면 2층 팔각정 전망대를 만난다. 이곳에서 보는 크게 굽이를 돌며 흐르는 낙동강의 파노라마가 장쾌하다. 비록 산의 절대 높이는 낮으나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진다.


소라 모양의 나각 암반에 설치된 첫 번째 전망대를 뒤로하고 새롭게 조성한 구름다리로 이동한다. 지금은 출렁다리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향후 구름다리로 개명할 예정이란다. 정상부의 두 봉우리 사이에 걸쳐 있는 이 현수교에서 보는 전망은 나각산의 보물이다. 낙동강의 물굽이가 다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머지않아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상주의 명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새로 만든 구름다리 명물 될 듯 구름다리를 지나면 또 다른 팔각정이 서 있다. 2층의 널찍한 마루는 이미 낙동리 할머니 세 분의 점심식사 자리가 되어 있었다. 그중 팔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정말 큰마음 먹고 산에 올랐다며 한숨을 지였다. 평생을 살아온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정상의 팔각정에서 지그재그로 내려서는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바로 옆의 바위벽에 부처손이 가득하고 한쪽에는 개고사리가 탐스럽게 군락을 이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행히 나무 계단으로 탐방로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 이러한 군락지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나각산 바위절벽 하단에 형성된 마귀할멈굴.

 

계단을 내려선 뒤 수풀 속의 좁은 길을 통과해 구름다리 밑으로 내려서니 ‘마귀할멈굿터’라고 표기된 널찍한 데크가 나타난다. 정확히 말하면 굿터는 아니고 동굴이다. 서너 명이 들어가 서 있을 수 있는 자그마한 바위굴이다. 굴 속을 들여다보면 둥근돌이 박혀 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구경을 하기에는 모기가 너무 많다.


마귀할멈굴 직후 만나는 삼거리에는 ‘숨소리길 낙동강 0.8km 15분’이라 쓰인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직진하면 첫 번째 팔각정 밑의 전망데크로 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강으로 내려가려면 산속의 소로를 타고 전진한다. 주능선에서 벗어나 하산하는 길은 아직은 숲이 짙어 오솔길 같은 분위기다.


무덤이 수시로 나타나는 산속을 거쳐 강변으로 내려선다. 이곳에 ‘낙동강한우촌 3.3km 50분’이라 쓴 이정표가 서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강줄기는 낙단보 공사가 끝나면 널찍한 호수처럼 바뀌게 된다. 남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잠시 뒤 서쪽의 산속으로 파고든다. 최근에 개설한 분위기 좋은 임도를 타고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화장실과 솟대, 장승이 세워진 곳에 닿는다.


▲ 소나무가 숲을 이룬 나각산 능선길.

 

이곳에서 숨을 돌린 뒤 다시 고개를 넘으면 조성 중인 낙동강생태체험단지가 나타난다. 아직은 공터에 불과하지만 몇 년 후면 육중하고 멋진 시설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낙동강의 생물과 역사,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키워나갈 예정이다. 생태체험단지를 빠져나오면 다시 낙동강과 만난다. 낙단보 공사 현장이 한층 가까워지고 민가와 문을 닫은 음식점들이 눈에 띈다. 강 건너 낙단교 옆으로 영남 삼대 누각 중에 하나로 꼽는 관수루가 숨어 있다. 강가 절벽에 위치해 시원한 전망이 일품인 곳이다.


계속해 제방을 따라 하류로 500m쯤 진행하면 코스 초입의 ‘현위치 낙단보’ 이정표와 다시 만난다. 출발지점인 낙동강한우촌이 지척이다. 나각산 산행은 부담 없고 가벼워 남녀노소 누구나 도전해도 좋을 곳이다. 산행 뒤 보너스로 즐기는 한우 맛도 일품이다.


▲ 임도를 걷다가 만나는 나각산 장승과 솟대.

 

‘MRF’가 뭐지? /(“산길(Mountain Road)과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


산, 강, 들을 연계한 상주의 걷기 코스

 

▲ 산딸기를 따며 즐거워하고 있는 상주 MRF 동호회 회원들.

 

경북 상주시가 걷기 문화 활성화를 위해 낙동강과 이안천 등 상주시내 13곳에 MRF 코스를 개설했다. MRF란 산길(Mountain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을 조합한 코스를 의미한다. MRF 코스는 낙동강에 4개소, 상주시내 4개소, 이안천 5개소 등이고 거리는 6.6km에서 42.7km로 다양하다. 걷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부터 12시간까지. 각 코스마다 이야기가 있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코스는 이야기꾼이 되는 낙동강길, 2코스는 야! 하고 무엇인가 외쳐보고 싶은 초원길, 3코스는 역사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아자개성길, 13코스는 남매의 전설이 전해오는 너추리길 등으로 정해져 있다. 나각산을 올라 솔향기와 소라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숨소리길은 4코스다.

 

- 글 김기환 기자 / 사진 염동우 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