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서울시계(市界)종주 9·구간 *-

paxlee 2010. 8. 20. 21:22

 

 

           [서울시계(市界)종주 9구간]

         
          197.3㎞ 종주 마쳐…산·고개·성곽·하천과 문화유적 두루 살펴
  한성 백제의 혼 서린 ‘위례’ 선사 주거유적지 거쳐 ‘끝’

인류는 문명을 시작하면서 성(城)을 쌓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엔 유달리 산성이 많다. 전국적으로 약 1500여 개 된다고 한다. 성은 일종의 요새 성격을 띠고 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였다. 성곽의 범위는 국가권력 크기의 상징이었고, 넓고 길수록 강력한 왕권을 뜻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은 크고 작은 성들이 많다. 주변에 산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아 왔기 때문에 점령국마다 성을 쌓은 결과다. 백제·고구려·신라는 서울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그때마다 방어진지를 구축할 목적으로 성을 쌓았다.


▲ 갈대숲이 우거진 한강 광나루 유원지 생태경관보전지역 옆으로 서울시계종주팀이 걷고 있다. 배경에 있는 산이 아차산이고 그 아래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산성과 도성·읍성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유사시를 대비한 방어체제 구축에 있다. 산성은 험준하거나 높은 곳에서 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구축한 것이다. 평지성과 산성으로 이루어진 도시 구조는 도성을 보호하거나 왕을 비롯한 지배집단의 피란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나라 성곽구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이 원칙이 계승됐다.


기원전 서울에 도성을 정한 한성 백제는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리토성을 쌓았고, 방어성곽인 몽촌리토성으로 한성 외곽을 보호했다. 한강변을 따라 축성된 옥수동 토성, 구리시 수석리토성, 삼성동토성, 양천고성, 대모산성, 암사동토성, 하남시 구산토성 등이 풍납리토성의 외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은 삼국이 통일을 위해 서로 각축을 벌였던 전쟁터였다. 서울지역 한강권에는 아차산 고구려 보루성, 아차산성, 장한성, 대모산성, 호암산성, 행주산성 등을 축조하고 삼국이 서로 대치했다. 임진강권에는 칠중성, 호로고루성, 대전리산성, 반월산성, 고모리산성, 고성산보루, 은대리성, 당포성, 아미성, 수철성, 오두산성, 계양산성 등이 축조되었다.


고려시대엔 성곽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지만 고려 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피란지로 삼각산에 중흥산성을 쌓고,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옮겨오기도 했다. 물론 왕이 몽골의 침입을 피해 40여 년간 기거한 강화도에는 고려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서울성곽이 축조되어 왕도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췄다. 탕춘대성과 북한산성이 잇달아 축조되면서 한강 너머 남한산성과 함께 피란처를 다원화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산성들은 외침이 있을 때 일부 이용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행주산성과 양천고성, 호암산성 등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비롯하여 한양 탈환의 주요 기지로 활용됐다.


서울시계종주 9·10구간은 한성 백제의 흔적이 서린 위례성과 남한산성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유서 깊으며 시계종주를 처음 시작했던 아차산을 마주 보며 걸어간다. 서울시계종주 10구간을 통해 총체적인 서울의 연혁과 역사, 서울에 있는 강과 산, 하천에 대해 나름 살펴봤다.


▲ 노송과 각종 야생화가 어울린 범바위산 마지막 자락에서 아름다운 야생화 모습을 담고 있다.

[  9구간   ]


트럭터미널~옥녀봉~494.8봉~옛골~세정이마을~인릉산~범바위산~세곡사거리~복정역~장지역 18.7㎞


이번 구간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트럭터미널 앞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양재역에서 오전 10시에 모인 회원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이리저리 이동했다. 이구 대장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왔다갔다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다른 회원이 “산에서는 방향을 잘 인도하더니, 평지에서는 길을 잘 모르구먼, 역시 산 전문가야”라고 농담을 했다. 한바탕 웃으며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서 내렸다.


트럭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밤나무골 등산로 입구까지는 약 200m 거리다. 트럭터미널 주변은 공사를 하느라 산만했다. 겨우 길을 찾아 서울시계인 청계산 밤나무골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엔 ‘청계산등산로 안내’라는 이정표가 길을 가리키고 있다.


청계산은 서울과 성남, 과천, 의왕을 가르는 경계다. 1899년에 간행된 <과천읍지> 산천조에 따르면‘청계산은 군 동남으로 8리에 있는데, 일명 청룡산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 푸른 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했다고 해서 청룡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풍수에서는 관악산을 바위가 많고 거칠어 남성의 산이며 백호의 산이라 부르는 반면, 마주 보는 청계산은 골이 깊어 여성의 산이며 좌청룡에 해당한다 해서 청룡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청계산 유래의 또 다른 설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러한 내를 지닌 산이라 해서 청계산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몇 가지 유래가 다 그럴듯하다.


청계산은 계곡물이 맑아 이름 붙었다는 설도


청계산의 주봉은 망경대다. 이는 고려가 망한 뒤 조선 개국공신인 조준의 아우 조윤이 청계산 정상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을 달랬다고 해서 망경대로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과천읍지>는 ‘망경대는 또한 주위의 삼라만상 경치를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만경대라고도 한다’라고 적고 있다. 


청계산 기슭의 토양은 사질토양으로 밤나무가 잘 자란다. 과천의 옛 이름이 율목현(栗木縣)인데, 이는 밤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시계인 청계산 들머리도 밤나무골이다. 한때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지금도 언뜻언뜻 눈에 띈다. 밤나무뿐만 아니라 초목과 관목, 교목 등 모든 나무가 우거져 어느 산보다 훌륭한 숲을 보여준다. 이제 나무들은 신록을 넘어 녹음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등산길 따라 보이는 나무들은 푸름이 넘친다.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 모두 푸르게 만든다.


푸른 등산로는 계속된다. 조금 가파르면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등산객들이 올라가기 수월케 했다. 우거진 숲은 새를 부른다. 숲을 찾은 새들은 아름다운 노래로 보답한다. 자연의 순환이치이고, 공생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무들이 다양한 높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라듯이 새소리도 각양각색이다.


여기저기서 검은등뻐꾸기가 운다. 4음절의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린다. 시인 박남준씨를 예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는 검은등뻐꾸기 우는 소리가 왜 그리도 처량하게 들리는지 마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흐흐흐~”라며 가엾게 여기는 것 같더라고 했다. 갑자기 자기 인생이 서럽게 느껴져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내 삶이 얼마나 비참했으면 저 새까지 나를 비웃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중에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어 여기저기 강연 가서 “그 새소리가 어떻게 들리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홀·딱·벗·고~, 홀·딱·벗·고~”로 들리더라고 했다. 가깝게 지내는 스님에게 다시 물었다. 그 스님은 “빡·빡·깎·고~, 빡·빡·깎·고~”로 들리더라는 거였다.


어느 소리가 맞는지 아무도 모르고 정답은 없다. 전문가들은 “미·레·레·도~, 미·레·레·도~”로 들린다고 한다. 조그만 새소리가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지금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이 어떻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들린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 같다. 여름날 우거진 숲 속의 시원한 그늘에 있으면 이 새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 1. 서울시계종주팀 중 한 명이 천마산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마주 보는 산이 남한산성 자락인 금암산. 2.외곽순환도로 방음벽 옆에 조성한 은행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종주팀이 걸어가고 있다. 방음을 위해 심은 나무들이 오히려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3. 종주팀이 나무들이 우거진 청계산 옛골로 내려오고 있다. 4.강동구에서 조성한 강동그린웨이는 서울시에서 가장 걷기 좋은 구로 선정될 만큼 잘 단장된 길이다. 강동그린웨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인릉산은 순조의 능인 인릉의 조산


해발 375m 옥녀봉에 도착했다. ‘봉우리가 예쁜 여성처럼 보여 옥녀봉이라 붙였다’고 한다. 예쁜지 어쩐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다시 일행을 찾아 나섰다. 옥녀봉은 잘 모르겠지만 ‘등산로는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유달리 여성들이 많았다. 물론 주말에 서울에서 가장 많은 여성이 찾는 산이 청계산이라고 익히 들었지만 지금 보니 평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주능선 따라 일송정쉼터, 떡갈나무 군락지, 참나리 군락지 등을 거쳐 매봉 조금 못미처 헬기장에 도착했다. 벤치도 마련돼 있어 잠시 휴식이다. 동행하는 54년생 아주머니들을 힐끗 쳐다봤다. ‘참 대단하신 분들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주 한 번 이상씩 등산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시계종주만 하더라도 한 달에 두 번씩, 한 번 걸을 때마다 20㎞ 내외를 거뜬히 걷는다. 물론 그중에 올해 65세인 전윤정 대장은 그보다 훨씬 더 한 분이지만. 


서울시계는 헬기장에서 정상 가는 방향인 매봉으로 가지 않고, 왼쪽 옛골 방향으로 돌렸다. 내려가는 등산로도 우거진 숲 속이기는 마찬가지다. 청계산이 높지는 않지만 여성의 산이라는 기록대로 깊은 계곡과 숲이 있고, 곳곳에 물이 넘친다. 여성의 산은 대개 육산이면서 물을 오래 머금어, 사람들이 필요할 때 조금씩 내놓는 특징을 지닌다. 청계산이 그런 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옛골 입구로 내려왔다. 주변은 온통 밭들이다. 감자와 콩 등을 재배하고 있다. 길가엔 하얀 아카시아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상쾌한 냄새다.
바로 앞엔 경부고속도로가 지난다. 그 밑 지하보도를 건너 새정이마을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엔 커다란 비석이 방문객을 반긴다. 새정이마을을 가로질러 인릉산 자락으로 진입한다.


인릉산이 서초구 내곡동과 성남시의 경계를 이룬다. <대동여지도>에 인릉산이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천림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릉산은 산 북쪽에 위치한 순조의 능인 인릉의 조산(朝山)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이 원래의 산 이름을 바꾼 격이다.


인릉산으로 접어들자 성남시계 이정표가 자주 보인다. 성남시 이름으로 돼 있다. 성남시계가 바로 서울시계와 똑같기 때문에 이 길을 따라가면 된다. 산 밑으로 내곡터널이 뚫려 있다. 지금 터널 위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성남시계는 이정표가 일정거리마다 안내하고 있어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신구대학 식물원도 시계종주길에 있다. 그 식물원 뒷길 등산로로 올라간다. 식물원은 철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다시 등산로를 따라간다.


이번엔 조금 딱딱한 철조망이 나온다. 아까는 식물원이었지만 지금은 군부대다. 철조망의 차이는 식물원과 군부대의 차이다. 그 철조망 중간의 열린 문을 통과해 인릉산 정상으로 향했다. 조그만 헬기장이 나오는 동시에 확 트인 정상에 도착했다. 모두 휴식이다. 정상은 확 트였지만 주변엔 나무들이 우거져 시내는 조망할 수 없었다.


약 600m 남짓 더 가면 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저 멀리 북한산 인수봉과 중간쯤엔 여의도 쌍둥이 빌딩, 가까이는 내곡IC까지 한눈에 조망됐다.


세곡동 방향으로 하산길은 붓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등 각종 야생화와 수백 년은 족히 된 듯한 노송들이 길을 수놓았다. 노송은 금빛을 띤 금강송으로, 우람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듯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길이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을 그냥 놓칠 수 없다.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그새 일행을 찾을 수 없다. 잠시 한눈만 팔면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사람들이다. 부랴부랴 뒤쫓았다. 겨우 꽁무니를 따라잡아 같이 갔다.


주택가로 내려와 23번 국도로 나왔다. ‘안녕히 가십시오, 경기도 성남시’ ‘어서 오십시오, 서울시 강남구’ 이정표가 마주 보고 있다. 세곡천을 가로지르는 세곡교 서울 방향으로 해치상이 서울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세곡동사거리에서 성남송파IC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서 복정역까지 걸었다. 이번 구간 종점이다. 모처럼 20㎞ 이내로 걸었지만 그래도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 정정현 부장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