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다양한 문화

-* [우리는 산친구] 김영준과 윤영화 *-

paxlee 2010. 10. 29. 22:29

 

           [우리는 산친구] 대학 동기서 산행 동기로 25년 김영준·윤영화
 
‘등산중독’, ‘빨치산 산꾼의사’로 변신…주말 야간산행 즐겨

1987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의대 본과생이었던 영준과 영화, 그리고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그 추운 겨울을 지리산 정상에서 보내기로 의기투합했다. 목표는 2박3일 걸려 노고단까지 가는 것. 동네 뒷산에 올라본 경험이 전부인 이들은 천왕봉에서 의미 있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각자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지리산도 동네 뒷산같이 오르면 되는 줄 알았다. 아이젠이 뭔지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젊은 혈기라는 가장 큰 무기 하나에 과자와 사탕만 잔뜩 넣은 배낭, 장비라곤 춘추용 침낭 하나와 허접한 버너 정도. 지리산을 종주하는 팀의 모습이라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침낭도 혹시나 해서 가져간 것이었다.


▲ 김영준 원장(왼쪽)과 윤영화 원장이 안양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수리산 관모봉 정상에서 손을 맞잡고 활짝 웃고 있다.

“그래도 겨울 산행인데 침낭 하나로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산장에서 잘 건데 침낭은 필요 없어.”


“산장에서 불편해 잠이 안 오면 밤새 화투나 치지 뭐. 그래서 동양화는 챙겨 왔어, 걱정 마.”


조금은 꺼림칙했지만 ‘아무 일 없겠지’라고 자위하며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중산리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터리산장에 도착했다. 마침 힘도 들고 조금 쉬기로 했다. 산장 주인은 이들의 행색이 아무래도 미덥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해서 어디까지 갈 계획이요?”


“천왕봉을 거쳐 2박 이상 걸리더라도 노고단까지 갈 예정입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산장 주인은 “아이젠과 침낭은 가져왔어요?”라고 물었다.


“예? 아이젠이 뭡니까? 그건 어디에 쓰는 겁니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듯 “아이젠 없이 겨울 산을 오르다 미끄러져 사고 당하거나 죽기 십상이니 죽지 않으려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산장 주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나 벼르고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지’라며 젊은 혈기로 다시 의지를 다지는 객기를 부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이젠은 준비하자”고 뜻을 모아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이리저리 훑어보며 읍소작전에 들어갔다.


“혹시 아이젠 있으세요? 있으면 저희들한테 파세요.”


이들은 남이 신던 아이젠을 당시로선 거금인 3,000원을 주고 마련해서 천왕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리산 8부 능선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 ‘별것 아닌 걸 가지고 괜한 사람 겁주고 난리들이야’라며 호기를 부리기까지 했다. 날씨가 너무 맑아 주변 설경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같이 감동적이었다. 


▲ 김원장과 윤원장이 수리산 관모봉 정상에 올라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기가 통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오후 5시쯤 되었을까, 천왕봉 150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눈보라가 휘날렸다. 불과 몇 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 겁이 덜컥 났다.


빙판과 눈으로 뒤덮인 등산로는 그나마 겨우 장만한 아이젠으로 조심조심 지나갈 수 있었다. 아마 아이젠이 없었다면 꼼짝달싹 못했을 것이다. 눈발이 계속 휘날려 길은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원래 계획은 ‘천왕봉 정상에서 앞으로 살아갈 사나이들의 기개를 논하자’는 다짐이었건만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길조차 만만치 않았다.


미끄러운 등산로를 엉금엉금 기듯 올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왕봉 비석을 안고 사진 한 장 달랑 찍고 바로 장터목산장으로 하산했다. 사나이 기개를 논하기는커녕 다들 공포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첫 지리산행서 호된 신고식 치러


그새 날은 어두워져 깜깜한 밤이 됐다. 호롱불 비슷한 랜턴으로 겨우 장터목산장을 찾아 내려왔다. ‘그나마 이것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산장의 온도계는 영하 20℃를 가리켰다. 이빨이 덜덜 떨리고 재킷도 변변찮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상황은 계속됐다. 산장에 가본 적이 없었던 이들은 산장이 도시의 여관이나 여인숙쯤 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돈만 내면 따뜻한 아랫목에 편히 쉴 줄 알았지만, 실제는 군내무반 같은 마룻바닥에 살을 에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곳인 줄 꿈에도 몰랐다. 


▲ 수리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김원장(앞쪽)과 윤원장.

밤새 고스톱을 치면서 몸에 열기를 내자고 했다. 막 판을 벌이려는 순간 “밤 9시부터 소등이니 등산객들은 미리 짐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가져온 짐이 있어야 정리하고 취침준비를 하지….


뻘줌하게 떨고 있는 이들을 발견한 산장지기가 다가와 “잘 준비 안 하고 뭐하고들 있어요?”라고 채근했다.


“저, 그게 사실은…, 저희는 준비한 게 없어서……”


“서울 대학생들이 왜 이리 무식해. 다시는 산 근처에 절대 얼씬거리지 말아.”


호통 치며 10여 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듯한 걸레 같은 조난자용 이불을 건네줬다. 실제로 이들은 조난자급이었다. 그것도 감지덕지하게 받아 지리산에서 그 추운 겨울날의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산의 노여움을 더 사기 전에 빨리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합의하고, 지리산 종주는커녕 능선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곧바로 내려왔다. 하산길에 젊은 혈기는 비닐을 주워 눈썰매를 타는 추억도 만들었다.


바로 23년 전 엘비뇨기과 윤영화 원장과 김영준소아청소년과의원 김영준 원장이 겪은 일이다. 지금은 무용담처럼 웃으며 얘기하지만 자칫 신문 사회면 한 쪽을 장식할 수도 있었던 그런 날의 추억이다.


고통이 클수록 추억은 그만큼 깊고 오래가는 법. 이들은 지리산에서의 첫 산행이 영원히 잊을 수 없고, 잊혀질 수 없는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 생생한 기억을 교훈삼아 윤원장은 서울 은평구 비뇨기과 의사들 사이에서 ‘빨치산 산꾼’으로 불릴 정도의 준족으로 변신했다. 모두 김원장 덕분이다. 김원장은 산뿐만이 아니라 수영·마라톤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산은 이들을 묶는 끈이지만 산이 아니더라도 둘의 인연은 계속됐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똑같이 거치며 월급쟁이 의사로 있다가 전문의로 개업하기까지 산은 조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워낙 비슷한 성향인지라 만남은 지속해 왔다.


▲ 1.김원장이 2008년 12월 선자령을 오르면서. 2.김원장이 2009년 2월 유명산 오토캠핑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3.김원장이 2009년 6월 관악산 폭포를 배경으로 섰다. 4.2006년 9월 북한산에서 윤원장과 김원장이 함께했다.

소홀했던 산은 김원장이 먼저 가까이 다가섰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의사생활로 인한 권태와 체력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산을 다시 찾았다. 우선 가까운 산부터 올랐다. 매봉산, 장수산, 지양산 등 동네 뒷산부터 누볐다. 달리기와 겸해서 시작한 산행이라 접근성 좋은 곳부터 선택했다. 그러다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등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녔다. 


10년 전쯤 윤원장이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가끔 한 번씩 하던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저녁 먹고 만나 공원길을 산책도 하고, 안양천을 걸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나아가 주변 야산을 오르다 관악산, 북한산 등지로 산행했다.


김원장은 엉덩이가 무거운 윤원장을 산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내가 전부 준비할 테니 아무 것도 필요 없고 몸만 오라”고 숱한 감언이설로 공을 들였다. 윤원장도 “하루 종일 진료실에 앉아 있기만 하는 생활에 무슨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김원장으로부터 등산하자는 제의를 받아 쉽게 나설 수 있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윤원장은 이렇게 돌이킨다.


“대학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고,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이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또 무엇보다 둘 사이엔 공통점이 많았어요. 둘 다 술을 못 하고, 순대국이나 만두 같은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북적거리는 도시보다는 한적한 시골생활을 꿈꾸고, 힘들게 몸을 움직여야 운동을 좀 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등산이 가장 적당했지요.”


두 사람 모두 사람 붐비는 걸 싫어하고 한적하고 호젓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찾은 산이 바로 김원장 병원 주변에 있는 수리산이다.


“맨발로 걸어도 될 정도의 편안한 흙길 코스와 칼바위,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험악한 바윗길이 잘 어우러진 멋진 산이죠. 단짝 친구와 둘이 가는 산행이라, 이만큼 진득한 맛이 느껴지는 산행도 없습니다. 여행은 동행이 맛이라 했어요. 둘이 같이 산길을 걸으며 옛날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안사람 흉보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버립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 발명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말문을 던져놓으면 그걸 되받아 치면서 장단을 맞춥니다. 우습지요. 박장대소가 터집니다.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 쾌감도 들고요.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오후에 산을 찾으면 그야말로 우리만의 세상입니다. 오후 3~4시쯤 산에 오르기 시작해 노을이 지고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 산을 타는 느낌은 정말 좋습니다. 달빛 밟으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우리만의 아지트에 자리잡고 가져온 음식에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것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시름이 전부 사라집니다.” -김원장

         성취감과 동료의식에 끈끈한 정 생겨


“산행은 보통 혼자, 아니면 둘, 또는 여럿이 가는데, 나름대로 맛이 다 틀립니다. 저는 혼자 아니면 김원장과 둘이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역시 둘이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함께 산행을 하면 단독산행보다 힘이 덜 들고 훨씬 즐겁습니다. 오늘 진료한 환자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온갖 사소한 대화를 나눕니다. 남자들 특징이 아내에게 약한 모습 보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잖아요. 혼자 감당해야 하는 덩어리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덜게 되고, 산 정상에 올라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세상을 보면 그런 고민들은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산행이 끝날 즈음이면 다리는 무겁지만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산에 올랐다는 성취감과 함께했다는 동료의식에 끈끈한 정이 생깁니다. 무슨 운동이든 둘 이상이 같이 해야 오래가더군요. 특히 등산은 재미도 재미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혼자보다는 같이 다녀야 하는 운동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같이 산에 다니면서 산에게도 배우고 동료에게도 많이 배웁니다.” -윤원장  


주말이 가까워지면 김원장은 윤원장에게 “주말에 뭐 할 거냐?”고 전화를 건다. 매주 걸려오는 전화지만 그래도 항상 ‘이번 주도 잡혔구나’하며 반가이 등산계획에 맞장구를 친다. 주말은 주로 수리산 야간산행이다. 토요일 진료를 마친 오후 4~5시쯤 출발한 산행은 수리산 종주를 끝내고 고즈넉한 산길을 독점하는 밤 9~10시쯤 끝난다.


▲ 1.수리산의 호젓한 참나무숲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다. 2.윤원장이 북한산 사모바위 앞에서. 3.2006년 11월 눈 덮인 수리산에서의 윤원장.

“하늘에는 달과 별이 빛을 비추고, 저 멀리 아스라이 도시의 불빛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빛납니다. 밤의 풀벌레 소리는 낮하고는 또 다르죠. 가을밤에 ‘사각사각’하고 낙엽 밟히는 소리도 좋습니다. 겨울밤에 ‘뽀드득뽀드득’하고 눈 밟는 재미는 더하죠. 캄캄한 밤에 별빛을 벗 삼아 산길을 한 번 걸어보세요.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 속에 들어간 기분입니다.”


둘이서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전국의 많은 산을 찾아다녔다. 김원장은 훨씬 더했다. 매일 아침 일찍 수영하러 나가면서부터 일과가 시작되는 김원장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마라톤을 하지만 매주 토요일은 어김없이 친구와 함께 산에 간다.


일요일 오전은 마라톤 하러 나간다. 당연히 생활의 일부라고 강조할 정도가 됐다. 마라톤 풀코스도 매년 두 차례씩 완주해 벌써 10회를 훌쩍 넘겼다. 지난해엔 동경마라톤까지 원정 갔다 오기도 했다. 여기에 진료를 더하면 다른 일에는 아예 눈 돌릴 새가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등산마니아, 마라톤마니아로 변해 있었다.


“등산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맑은 공기 마시며 유산소 운동하는 것을 좋다고 느낄 것입니다. 체력증진은 물론 군살 빼는 데도 등산만 한 운동이 없죠. 또 정신적으로 정화되는 느낌도 많이 받습니다. 바람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동안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씻겨지는 기분이에요. 일주일 내내 진료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처지라 산 정상에 올라서 탁 트인 전망을 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요.” - 윤원장


▲ 김원장과 윤원장이 수리산 돌탑 사이로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산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 우리가 합니다. 우리가 투정부리고 화를 내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산은 그저 받아주고 들어주었을 뿐입니다. 또 산은 아름다워요. 아름다운 나무,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계곡, 아름다운 바위, 그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걷는 것이 행복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면 사람도 아름다워집니다. 아름다움이 잉크 번지듯 마음속으로 번져옵니다. 그것이 저를 산으로 이끄는 에너지입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 김원장


산은 말이 없이 그저 받아줬을 뿐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은 아름다워진다’는 철학을 터득한 김원장은 이 정도면 어느 산꾼 못지않은 내공의 소유자가 됐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 2004년 가을 구대봉산 정상에서.

“산이 좋네, 어떻네 하는 백 마디 말보다 스스로 산이 주는 평화와 안식을 느껴봐야 합니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게 됩니다. 산에 오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에 생기가 돌고 신이 납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배려의 마음이 생깁니다. 도시에서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도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지요. 그런데 산에 오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자연스럽게 인사가 나오고 음식을 나누게 됩니다. 참 신기하지요. 산의 힘입니다. 아마도 산에서 얻은 호연지기 덕일 겁니다. 산정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 저 아래서 아옹다옹 사는 모습이 다 부질 없어집니다. 부와 명예가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저 건강한 몸이 있어 아름다운 자연 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산정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걸치는 곡주 한 잔의 맛과 멋은 정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비록 속세로 다시 내려오면 꿈에서 깨듯 허망해지지만 그 행복한 여운이 한 일주일은 갑니다. 그 약발이 떨어질 때쯤 또다시 산을 찾게 되는 거지요. 그래요 중독입니다.”


‘등산중독’ 김원장, 은평구 비뇨기과 ‘빨치산 산꾼의사’ 윤원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이미 운명공동체다. 의사라는 같은 직업에, 등산이라는 같은 취미에, 서민적이라는 같은 스타일에…. 대화를 나눠도 목소리가 높아질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 (왼쪽부터)2007년 3월 수리산 노송 옆에서 윤원장. / 김원장이 산음자연휴양림을 거쳐 오르면서.

앞으로 시간이 나면 부부가 함께 크루즈 여행이나 세계의 안 가본 곳을 가겠다는 윤원장, 백두산과 우리나라 명산 300개 등산이 목표라는 김원장, 역시 이들은 산과 여행이 화두였다.


8월 7일 푹푹 찌는 말복을 하루 앞두고 오후 4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짧게 종주한 수리산 등산은 평소 그들이 즐기는 대로 산 속에서 하늘에 빛나는 별과 도시의 야경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김원장은 다음 주말에 지리산 종주, 그 다음 주말에는 설악산행이 예정돼 있었다. 철인산꾼을 방불케 했다.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 김원장이 윤원장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 (왼쪽부터)김영준 소아청소년과 원장. / 윤영화 엘비뇨기과 원장.

“우리 백두산 가지 않을래? 준비할 것 없어, 몸만 오면 돼.”


그렇게 그들의 산행은 영원할 것 같다.

/ 글 박정원 부장대우   사진 이경호 기자 / 월간 산 10월호